가톨릭구약성경노트

6. 판관시대의 인물 [2]-① 오트니엘.에훗.드보라.기드온.입타.삼손

써니리버 2024. 9. 26. 12:16

Ⅰ. 판관기 입문 [判官記; JUDGES; ΚΡΙΤΑΙ] 

판관기는 판관들의 시대, 즉 여호수아의 죽음 직후부터 왕국 건립 직전까지(BC 1200-1020) 180년간의 이스라엘 역사를 말합니다. 이 역사는 이스라엘이 부족사회에서 왕정시대로 들어가는 대전환기의 역사입니다. 여호수아기 24,31 “여호수아가 살아 있는 동안 내내, 그리고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하신 모든 일을 아는 원로들이 여호수아보다 장수하며 살아 있는 동안 내내, 이스라엘은 주님을 섬겼다.”는 구절은 판관시대의 초기를 잘 설명합니다. 여호수아의 죽음 이후에 그와 시대를 함께했던  원로들이 이스라엘을 이끌었던 것으로 보이며, 여호수아와 같은 지도자가 필요했을 시기였습니다. 
이스라엘은 계약의 궤를 ‘실로’에 안치하고 그것을 중심으로 각지파는 자유로운 연합체를 형성(지방자치제;12지파 부족중심제)하였는데 서로간의 통합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각 지파들은 요르단 강 양편으로 흩어져, 차지한 땅을 적으로부터 방어하기만 급급하였을 뿐 아니라(판관 1장 참조), 각 지파를 한데 모을 만한 영도자가 없었습니다. 여호수아가 후계자를 지목하지 않은 것은 본디 이스라엘은 하느님께서 통치하는 부족중심제이고 그 중심에는 율법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부족중심제로 지내다가 사태가 급박해지면 하나의 카리스마적인 영웅, 즉 판관 아래 다시 집결하는 상태를 반복했습니다. 

역사가에게는 흥미로우면서도 동시에 난해한 문헌인 판관기는 무엇보다도 이스라엘인들이 지녔던 신앙의 산물입니다. 드보라와 바락의 노래와(5장) 같이 이 책을 구성하는 가장 오래된 본문들에서부터 이미 이스라엘인들의 확신이 드러납니다. 곧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는 어려운 때마다 당신의 백성을 도와주신다는 것입니다. 
판관기의 주인공들은 단순히 성인도 아니고 군자(君子)도 아닙니다. 관습들이 어떤 면에서는 충격적이고, 도덕 개념들이 우리와는 상당히 다른 시대에 뿌리를 둔 사람들입니다. 에훗의 계략(3,12-30), 자기 딸을 희생 제물로 바치는 입타의 행동(11,34-40), 삼손의 애정 행각(14─16장), 특히 부록이 전해주는 무질서와 혼란(17⎯21장) 등은 우리에게 당혹감과 혹은 불쾌감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충격적 현실을 완화시키거나 부도덕한 현실을 미화시키려는 어떠한 시도도 하지 않는 이러한 이야기들을 통해서, 우리는 당신의 영을 받은 지도자들, 인간적으로 볼 때에 나약하고 부족한 사람들을 보내시어 한 백성을 인도하시는 하느님의 행동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1. 정치.문화.종교적인 배경 
이스라엘은 지파마다 영토를 나누어 받았지만, 그 안에는 가나안人들이 성읍을 중심으로 살고 있었고 그들의 위협은 불가피했습니다. 가나안 성읍들은 그 지역의 고유한 관습과 문화들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이스라엘은 이 안에서 영향을 받게 됩니다. 하느님에 대한 유일신 觀은 확실히 있었지만 농경민이 되면서 가나안 토착 종교와의 갈등을 겪게 되는데 가나안 인들이 풍작을 위해 바알신과 아세라 神을 숭배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토착 가나안은 물질문명에서 이스라엘보다는 분명 앞서 있었으므로 이교의식을 배제하기 쉽지는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사람들은 바알과 하느님을 조화시키려 했고 판관기는 이 시기를 위험하게 여긴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신앙을 정리한 것이, 하느님께서 땅을 주셨고 바알은 풍작을 해 주는 추수의 神이라고 믿음으로서 종교 혼합주의(Syncretism)를 초래합니다. 혼합주의(混合主義)는 본질적으로 상이한 성격을 가진 여러 믿음을 조화롭게 공존시키고 다양한 사상들을 융합하는 것을 가리키는데 특히 종교적 영역에서 근본이 전혀 다른 전통을 하나로 합하고 조화시키려는(습합;習合)시도로 흔히 나타납니다. 
결실의 神이라고 믿는 바알의 결실은 바알과 아세라 여신 사이의 성행위에 의한 것으로 믿는 것이라서, 사뭇 퇴폐적인 이교적 종교 의식으로 인하여 하느님 신앙의 위기는 그렇게 시작 되었습니다. ‘살려거든 생명을 택하라’는 모세의 운명적인 권고를 마음에 두지 못할 만큼 퇴폐적인 이교의식은 이스라엘을 잡아끌었던 것입니다.

2. 이 책의 명칭
역사서의 두 번째 책 판관기는 히브리성경에서 여호수아기에 이어 전기예언서에 속합니다. 판관기는,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 가운데에서 가장 덜 알려진 시대에 지파들이 펼쳤던 생활의 일부를 엿보게 해 줍니다. 그 시대는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정착한 때부터 왕정이 출현할 때까지입니다.  ‘판관’이란 재판을 집행하는 자, 돕는 자, 통치자라는 히브리어의 쇼페팀(sofetim)에서 나온 이름입니다. 
구약에서 말하는 판관(判官)이란 재판정에서 법을 판결하는 법관의 직무 수행만을 뜻하는 말이 아니고 사회적, 정치적 지도와 통치까지도 내포합니다. 판관은 특은을 받은 지도자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위기에 처했을 때에 백성들을 인도하도록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사람들이었습니다. 왕정 이전의 시기를 판관 시대라고 부르는 것은 성서의 전통에서 잘 알려져 있습니다(2사무 7,11; 2열왕 23,22; 룻 1,1). 판관이라고 부르는 이들의 업적을 서술하는 또 다른 용어는 ‘구원하다’입니다(3,31; 6,15; 10,1). 오트니엘과 에훗이 구원자로 불립니다(3,9.15). 

3. 판관기의 신학
여호수아기의 성전(聖戰)과 가나안 땅의 분배, 스켐전례를 통한 계약갱신에 이어 판관시대에는 카리스마적 인물이 성전을 지휘합니다. 판관시대는 이스라엘 지파들의 역사 가운데에서 특별히 이 시기가 지니는 종교적 뜻을 밝히고 있습니다. 판관기가 말해주는 기쁜 소식의 주제는 회복입니다. 이 신학적 전망은 일련의 도식적 표현 정식에 의해서 특징지어지는데 이러한 표현 정식들에서 네 단계로 된 종교적 논리가 곧, 죄➜벌➜회개➜구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죄악은 하느님의 징벌을 불러오지만, 곤경에 빠진 이스라엘의 회심은 구원자의 파견을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①죄; 󰡐이스라엘의 자손들은 주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저질렀다󰡑(2,11; 3,7.12; 4,1; 6,1; 10,6; 13,1).󰡐그들은 주님을 저버리고 바알과 아스타롯을 섬겼다󰡑(2,11.13; 3,7; 10,6) 
➜②징벌; 󰡐주님께서 그들을 이러저러한 적들의 손에 넘겨 버리셨다’(2,14; 3,8; 4,2; 6,1; 10,7). 
➜③회개; 󰡐이스라엘의 자손들이 주님께 부르짖었다’(3,9.15; 4,3; 6,6; 10,10). 
➜④구원; 당신 백성의 이러한 탄원에 주님께서는 판관(2,16) 또는 구원자를 세우심으로써 응답하신다(3,9.15). 마지막으로 이야기의 종결 부분에 또 다른 표현 정식들이 나오는데 곧, 󰡐이 땅은 몇 해 동안 평온하였다󰡑라는 정식입니다(3,11. 30; 5,31; 8,28).
죄➜벌➜회개➜구원 이러한 순환도식 속에서 판관시대가 200년 가까이 지속한 힘은 율법의 기반이었습니다. 
그러면 이 신학은 어디에서 유래하는가? 우선은 옛 전통들과 이야기 모음들을 수집한 한 명 또는 여러 명의 편집자들에게서 나왔을 것입니다. 이 편집자들을 신명기계 저자들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역시 미흡한 가설일 뿐입니다. 신명기에서 열왕기까지 이어지는 이른바 ‘신명기계 역사’를 구성하는 다른 책들에서는, 위에서 말한 네 단계로 된 신학적 명제가 바로 그 순서에 따라 전개되는 것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밖에도 서문이 여럿이라는 사실, 가나안 땅 정복이 늦어진 사실에 대한 서로 다른 설명들(2,6─3,6), 그리고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에 따라 판관들의 수도 열둘로 끝맺으려는 편집자들의 의도 등은, 이 책의 편집 작업이 상당 기간, 여러 번에 걸쳐 이루어졌음을 드러냅니다. 아무튼 판관기에 나타나는 신학적 전망은 틀림없이 신명기계 편집자들의 영향 아래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이 전망을 강화하였다고는 하더라도, 직접 창출하였다고는 단정할 수가 없습니다.
판관기의 두 부록(17─21장) 역시 옛 전통들을 이어받은 것인데, 유배 중에 또는 유배 이후에 첨가되었습니다. 이 부록들이 사제계 문헌들에 나오는 어휘를 쓰고 있는 데에서 그러한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반면, 옛 사료들을 내포하면서 유다 지파를 옹호하는 경향으로 특징지어지는 1장의 서문이 어느 시대에 첨가되었는지 밝히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4. 판관기의 형성과정과 저작년도 
판관기 영웅 설화들의 일부는 각 지파별로 구전으로 전해지다가 고대의 다른 일화, 정복사, 민담, 설화가 덧붙여지면서 이스라엘의 영웅 설화로 발전되었고 이러한 구두 전승의 지역 영웅설화, 민담 등이 다윗-솔로몬시대에 ‘구원자들의 책’이라는 형태로 기록 발전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문서화된 사료들은 신명기적 역사가들에 의해 집성 편집되면서 기원전 5세기경에 현재와 같은 판관기로 완성되었을 것입니다.
여러 가지 불확실성이 판관기의 편집 과정을 둘러싸고 있지만 이 책은 역사가에게 여호수아의 죽음에서 왕정의 탄생에까지 이르는 시대에 관한 자료를 제공할 수 있는 유일한 원천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사용하는 데에는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이 책이 전하는 이야기들을 통해서 우리는 판관 시대의 모습을 어렴풋이 그려 보고, 이스라엘 몇몇 지파의 역사를 개략적으로 알아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연결해 주는 열두 지파 동맹 같은 것이 있기는 하지만, 그 이상의 정치적 통일성을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이 역사는 결국 특정 지파들 사이의 친근성 또는 적대감을 드러내는 여러 집단의 이야기, 이미 차지한 영토를 보존하기 위한 전쟁 이야기들이며 모두 단편적입니다. 그러면서도 이 책은 좁게는 판관들을, 넓게는 판관 시대를 연대순으로 쉽게 소개하려고 하는데 바로 이렇게 간략히 제시되는 연대 순서가 문제를 안고 있는 것입니다. 
판관기는 카리스마적인 12명의 판관들이 정치, 군사의 지도자로서 활약하는 영웅담을 전하는 가운데 어떠한 역사적 연대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각 판관의 직무 수행 기간만 제시합니다. 각 판관이 활동하였다는 햇수를 합치면 410년이 되는데, 이 수치는 이스라엘 역사의 다른 연대 사료와 들어맞지 않습니다. 대부분이 편집자들에게서 유래하는 각 판관의 활동 햇수는 나름대로 논리적 근거를 지녔음에 틀림없지만 그 근거를 찾아내어 이해하기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이 밖에도 한 사람이 일반적으로 활발히 활동하는 기간을 가리키는 40이라는 수가 자주 사용된다는 사실은, 판관기에 나타나는 자료들의 성격을 드러냅니다. 판관 시대의 연대는 왕정시작인 1020년과 탈출년도 및 가나안 땅에 들어온 시기를 함께 고려하면, 판관기에서 전해지는 전통들은 모두 기원전 1200년과 1020년 사이에 자리잡아야합니다. 그러므로 판관들의 시대는 여호수아가 죽은 후부터 왕정 시작인 기원전 1020년까지 약 180년간의 역사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이 역사는 이스라엘이 부족사회에서 단일 국가로 이르는 변천기의 역사입니다.
판관기의 역사성에는 문제점도 있는 반면, 가나안 정착 초기의 정치적, 종교적 상황에 관해 유일하게 정보를 제공해 주는 비중을 지닌 책이기도 합니다. 판관기를 통해서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을 완전히 정복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이미 철로 된 무기나 생활 기구를 사용하는 주변국의 문화적 혜택도 받았으며 그로 인해 우상숭배의 위험도 클 수밖에 없었다는 상황도 인식하게 됩니다. 

Ⅱ.판관기의 구조

약 180년에 걸친 판관기의 역사는 이스라엘이 부족사회에서 단일 국가로 넘어가는 변천기의 역사입니다. 이 책의 편집자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계약을 위반하고 불순종할 때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벌하셨으며, 그들이 잘못을 뉘우치고 돌아서면 용서해주고 판관들을 선택하여 이스라엘을 구원하셨다는 기본사상을 바탕으로 이 책을 편집하였고, 12명의 판관들을 12지파에 연관시켜 소개합니다. 
이 책은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①서문 [1장]
이스라엘 지파들이 성공도 하고 실패도 하면서 가나안 땅에 정착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지파들은 공동으로 보조를 맞추어 서로 협조하면서 자리를 잡아가기보다는, 저마다 따로 행동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1장은 이스라엘이 완전하게 이루지 못한 가나안 땅 정복을 어떻게 실현하였는가를 단편적이면서 서로 연결되지 않은 사료를 묶어 요약한 역사 및 지리적인 배경 설명인데 이 장은 하나의 독립된 소책자였을 것입니다. 지파들이 점령한 곳은 주로 남부 산악 지대였고 평지와 북부 지방 정복에서는 거듭 많은 실패를 경험하였다고 말해 주고 있습니다. 
②본론 [2,6-16,31]
가나안 정복 시대를 설명하는 이러한 예비 서술에 이어서, 판관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이 판관 시대는 이스라엘 지파들의 역사 가운데에서 특별히 이 시기가 지니는 종교적 뜻을 밝히는 둘째 서문으로 도입됩니다(2,6─3,6). 모세에 이어서 이스라엘 민족을 이끈 여호수아의 시대는 하느님의 백성이 주님께 충성을 다한 시대였지만, 판관 시대는 한마디로 불충의 시대로 묘사됩니다. 이러한 내용의 서문에 이어, 판관들의 행적을 전하는 단편적인 이야기들이 펼쳐집니다. 
전체 판관 수는 열둘인데 설화의 길이에 따라 대판관(6명) 소판관(6명)으로 구분합니다.
대판관 : 오트니엘, 에훗, 드보라, 기드온, 입타, 삼손
소판관 : 삼가르, 톨라, 야이르, 입찬, 엘론, 압돈 
판관 오트니엘은 아람임금 쿠산 리스아타임으로부터(3,8) 이스라엘을 구원하고(3,7-11), 왼손잡이 에훗은 모압 임금 에글론을 죽여 이스라엘을 해방시키며(3,12-30), 여예언자 드보라는 가나안 임금 야빈에 대한 저항의 불꽃을 타오르게 합니다(4,1─5,31). 이 뒤에 힘센 장사 기드온을 통한 이스라엘의 구원(6,1─8,35), 판관 입타의 인도 아래 동쪽 암몬족과의 싸움에서 거둔 승리(10,6─12,7), 그리고 삼손이 서쪽 필리스티아족에 대항하여 싸운 업적이(13,1─16,31) 소개됩니다. 대판관들로 불리는 이들 6인들은 소판관들인 삼가르(3,31), 톨라(10,1-2), 야이르(10,3-5), 입찬(12,8-10), 엘론(12,11-12), 압돈(12,13-15) 6인을 사이에 두고 중요하게 다루어집니다.
③부록 [17⎯21장]   
판관기는 왕정이 수립되기 전에 이스라엘에 팽배해 있던 무질서와 혼란을 보여 주는 두 개의 부록과 함께 끝을 맺습니다. 첫째 부록은 단 지파의 이주와 단 성소의 기원을 이야기합니다(17─18장). 그리고 둘째 부록은 기브아 주민이 저지른 악행을 서술하고, 이어서 범죄자들의 처벌을 거부하는 벤야민 지파와 그러한 벤야민인들을 징벌하려는 다른 지파들 사이의 전쟁을 이야기합니다(19─21장).

Ⅲ. 카리스마적 영웅들 

이 책에 소개되는 인물들은 전체적으로 “판관”이라고 불리는데, 이 명칭의 정확한 의미를 살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우선 이 칭호의 복수는 2,16-18에만 나오는데,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구원하려고 선택하신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왕정 이전의 시기를 ‘판관 시대’라고 부르는 것은 성경의 전통에서 잘 알려져 있습니다(2사무 7,11; 2열왕 23,22; 룻 1,1). 
사실상 판관들의 이야기 자체에서는 ‘판관’이라는 칭호가 사용되지 않고 대신에 이 명사와 같은 어근에서 나오는 동사 샤팟, 곧 우리말로 ‘재판하다’, 그리고 판관기에서는 특별히 ‘판관이 되다, 판관으로 일하다’로 옮길 수 있는 동사가, 이 책의 주인공들이 펼치는 활동을 서술하는 데에 상당히 자주 쓰임을 볼 수 있습니다(3,10; 4,4; 10,1-5; 12,7.8-15; 15,20; 16,31). 이러한 사실은 이 쓰임이 편집자들에게서 유래하는 것임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그러한 경우에 이 동사는 단순히 ‘재판하다’, ‘정의를 펼치다’라는 뜻만이 아니라, ‘지휘하다, 지배하다’라는 뜻까지 담고 있습니다. 이 동사를 일반적으로 ‘재판하다’로 옮기고, 판관기에서는 ‘판관이 되다’, ‘판관으로 일하다’로 번역해 오고 있지만, 우리는 그 의미를 넓게 이해해야 합니다. 사실 히브리 말에서는 이 동사가 권위와 권한을 행사하는 실질적 직책을 가리키는 데에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판관으로 일한다’는 것은 재판정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지도와 통치까지도 내포합니다. 
이 판관기에서 무공을 전해 주는 이들이 모두 실제적으로 이 직책을 가졌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판관’이라고 부르는 이들의 업적을 서술하는 또 다른 용어, 곧 ‘구원하다’라는 동사가 있기 때문인데 오트니엘과 에훗이 바로 “구원자”로 불립니다(3,9.15). 하느님께서는 어떤 사람을 선택하셔서 당신의 구원을 실현시키십니다(3,9; 6,36-37; 7,7; 10,13). 이로써 ‘구원자 인간’과 ‘구원자 하느님’이라는 표현의 이원성을 보게 됩니다. 이것은 아마도 판관기를 봉독할 때에 드러나는 인간적 전망과 신적 전망의 이중성을 가리키는 표지가 될 것입니다.

◉◉전체 판관 수는 12명인데 설화의 길이에 따라 대판관(6명) 소판관(6명)으로 구분되며, 여기에서는 여섯 명의 대판관만 다루고 소판관은 성경이 제시하는 구절만 소개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난세를 평정할 영웅들을 선택하셨고 12명의 카리스마적 인물들이 성전(聖戰)을 지휘하여 이스라엘을 구하였습니다.
 
1. 오트니엘(Γοθονιὴλ; Othniel) [3,7-11]
“주님의 영이 오트니엘에게 내리니, 그는 이스라엘의 판관이 되어 싸우러 나갔다. 주님께서 아람 임금 쿠산 리스아타임을 그의 손에 넘겨주셨으므로, 그의 세력이 쿠산 리스아타임을 억눌렀다. 그리하여 이 땅은 크나즈의 아들 오트니엘이 죽기까지 마흔 해 동안 평온하였다.” (3,10-11) 
이스라엘의 첫 판관은 칼렙의 아우 크나즈의 아들 오트니엘입니다. 오트니엘에게 주님의 영이 내립니다. 칼렙은 유다 지파와 연합한 크나즈 부족 사람인데, 이 크나즈 부족은 본디 에돔족에 속하였습니다.이스라엘 백성이 바알들과 아세라들을 섬기자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북부 메소포타미아의 아람임금 쿠산 리스아타임에게 넘기십니다. 하느님의 진노로 아람에 넘겨진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느님께 부르짖자 구원자 오트니엘을 세우십니다. 아람임금에게 넘기시는 분도 하느님이시고 구원자를 보내시는 분도 하느님이십니다. 그러니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운명을 주관하시는 분이 누구인지를 인식해야합니다. 오트니엘은 판관이 되어 싸우러나갔고 승리합니다. 이후 40년간 평온을 찾았습니다. 이러한 평온함은 앞으로 후렴처럼 되풀이됩니다(3,30; 5,31; 8,28). 그리고 평온한 기간은 보통 40년, 곧 한 세대입니다.

2. 에훗(᾿Αὼδ ; Ehud) [3,12-30]
“이스라엘 자손들이 다시 주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저질렀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모압 임금 에글론을 이스라엘보다 우세하게 하셨다. 에글론은 암몬과 아말렉의 자손들을 모아 진군해 와서,이스라엘을 치고 ‘야자나무 성읍’을 차지하였다.그러나 이스라엘 자손들이 주님께 부르짖자, 주님께서는 그들을 위하여 구원자를 세우셨다. 그가 곧 벤야민 지파 게라의 아들 에훗이다.”(3,12-15)
모압 왕국은 기원전 13세기, 요르단 동쪽에 수립되었고 그 북쪽 경계선은 아르논강이었습니다. 모압인들은 계속 이 경계선 너머로 세력을 확장하려고 시도하였습니다. 그래서 에훗 시대에는 사해 북동쪽 평원만이 아니라, “야자나무 성읍”에도 자리를 잡게 됩니다.“야자나무 성읍”은 예리코를 가리킵니다. 판관 시대에 아말렉인들은 계속해서 이스라엘 지파들의 주된 적이었습니다. 에훗은 모압임금 에글론에게 공물을 바치러가서 그를 살해하고 모압인들을 섬멸하여 평온을 찾았습니다다. 그후 80년 동안 세상은 평온했습니다. 

3. 삼가르 (Σαμεγὰρ ; Shamgar) [3,31] 
“에훗 다음에는 아낫의 아들 삼가르가 나왔다. 그는 소몰이 막대로 필리스티아인 육백 명을 쳐 죽였다. 삼가르도 이렇게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다.”

4. 드보라와 바락 (Δεββώρας καὶ Βαράκ; Deborah&Barak) [4―5장] 
전쟁에서의 승리는 무기이지만 이스라엘에게는 오직 하느님의 능력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소몰이 막대로 필리스티아인 육백을 죽인 삼가르와, 철 병거 구백대를 가진 하초르의 장수 시스라를 물리친 女예언자 드보라와 그의 장수 바락에 관하여 기술합니다. 바락은 판관이 아니고 드보라의 장군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주님께 울부짖었다. 야빈이 철 병거 구백 대를 가지고 있으면서, 스무 해 동안 이스라엘 자손들을 심하게 억압하였던 것이다.그때에는 라피돗의 아내 여예언자 드보라가 이스라엘의 판관이었다.그가 에프라임 산악 지방의 라마와 베텔 사이에 있는 ‘드보라 야자나무’ 밑에 앉으면, 이스라엘 자손들이 재판을 받으러 그에게 올라가곤 하였다.”(4,3-5)
①타아낙에서 이스라엘인들이 거둔 중요한 승리에 대해서 판관기는 두 가지 전통을 전합니다. 곧 산문으로 된 이야기와(4장) 운문형태의 시가입니다(5장). 여기에서 서술되는 사건은 역사적, 종교적으로 큰 중요성을 지닙니다. 한편으로는 가나안인들이 장악한 성읍들의 세력에서 벗어나려는 이스라엘 지파들의 노력을 볼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스라엘 왕정 시대에 예언 운동이 지니게 될 중요성을 여예언자 드보라가 수행한 역할로 드러내 보여 줍니다. 
②판관의 카리스마적 성격은 하느님 “영”의 오심으로 잘 드러나는데,판관을 ‘라피돗의 아내 드보라’ 같은 식으로 소개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초기 임금들인 사울과(1사무 10,6.10) 다윗의 모습을 예고합니다(1사무 16,13). ‘드보라 야자나무’는 드보라가 판관직을 수행할 때의 장소인데 레베카의 유모 드보라가 베텔의 참나무 밑에 묻힌 것과 관련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곳의 이름은 알론 바쿳(통곡의 참나무)인데, 신성한 나무를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창세 35,8 참조)
③드보라와 바락의 노래(5,1-30)는 구약 성경에서 가장 오래된 詩중의 하나로, 여기에서 노래하는 사건이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지어졌음이 틀림없습니다. 현장을 목격했거나 아니면 직접 전쟁에 참여한 사람이 쓴 작품으로 추정되며 이스라엘인들의 확신이 드러납니다. 따라서 당대의 정치 및 종교적인 상황을 알려 주는 귀중한 자료가 됩니다. 
④드보라(여성)의 군대가 필리스티아와 맞설 수 있는가? “이스라엘 사만군사 가운데 방패나 창이 하나라도 보였던가?” (5,8). 하느님께서 주도하시는 성전(聖戰)을 의미하는 구절인 반면, 2사무 24장에 언급된 다윗의 인구조사는 군사적 목적, 일종의 군대개편에 필요했던 것으로 聖戰에서 전략적인 전쟁으로 넘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5.기드온 (Γεδεών;Gideon) [6,1 – 9,57] 
기드온은 므나쎄지파 요아스의 아들이고 함께 거론되는 아비멜렉은 기드온의 아들이며 판관은 아닙니다. 70인역의 제목은 ‘기드온과 아비멜렉’입니다. 이스라엘은 미디안족이 가축과 식량을 약탈하며 괴롭히기 때문에 산에 은신처를 마련하며 피해 다녔고, 기드온 역시 같은 처지에서 고통을 받고 있을 때 하느님의 천사로부터 소명을 받습니다.    
‘그때에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은 미디안족의 눈을 피해 밀을 감추어 두려고, 포도 확에서 밀 이삭을 떨고 있었다.주님의 천사가 그에게 나타나서, “힘센 용사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하고 말하였다.그러자 기드온이 천사에게 물었다. “주님께서 저희와 함께 계시다면, 어째서 저희가 이 모든 일을 겪고 있단 말입니까? 지금은 주님께서 저희를 버리셨습니다. 저희를 미디안의 손아귀에 넘겨 버리셨습니다.”주님께서 기드온에게 돌아서서 말씀하셨다. “너의 그 힘을 지니고 가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족의 손아귀에서 구원하여라. 바로 내가 너를 보낸다.”’(6,2-14) 
①기드온은 하느님에 대한 열정이 충만했던 사람이었으나 때로 하느님의 조언을 구하지 않기도 했고 헤렘의 법을 지키지 않았으며, 많은 후처 사이에 70 명의 아들을 두고 살았습니다. 기드온은 왕으로 추대하려는 백성들의 뜻을 거절했으나 기드온이 죽은 후 아들 아비멜렉은 막내 동생 요탐만 남기고 모두 죽여 스스로 왕이 되었는데, 이스라엘의 공식 왕은 아니고 지방 왕(스켐지역)이었습니다. 왕국을 설립하려는 혁신 세력과 이를 반대하는 보수 세력 사이의 투쟁을 볼수 있습니다. 
기드온은 오프라 도시 주민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바알 제단을 헐어서(6,25) 여루빠알-‘바알의 제단을 헐은 자’라는 이름도 있습니다(성경은 기드온을 여루빠알로도 기록한다). 
②기드온 군대의 감축에 관한 7,2-7절의 이야기를, 성경 저자는 신학적 목적을 지닌 이야기로 제시합니다. 전투의 승리가 인간의 무력(武力)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 덕분이라는 점을 드러내려고, 기드온이 수가 많이 줄어든 군대를 거느리고 전투를 하게 된다는 사실을 부각시키는 것입니다.기드온이 이즈르엘평야에서 미디안족을 쳐부순 이야기는 복잡한 형성 과정을 거쳐 우리에게 전해집니다. 본디 이 이야기는 틀림없이 아비에제르 씨족이 전승한 역사적 전통으로 거슬러 올라갈 것입니다. 그러나 이 전통은 여러 차례의 손질을 거치게 됩니다.
③기드온이 왕권을 거부하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말하였다. “당신께서 우리를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해 주셨으니, 당신과 당신의 자자손손이 우리를 다스려 주십시오.”그러자 기드온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내가 여러분을 다스릴 것도 아니고 내 아들이 여러분을 다스릴 것도 아닙니다. 여러분을 다스리실 분은 주님이십니다.”’(8,22-23)
이스라엘인들은 기드온에게 세습적 왕권을 분명히 제안합니다. 기드온의 대답은 1사무 8,7; 12,12에도 나옵니다. 그래서 이 세 구절이 다 신명기계 편집자의 신학을 표현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제반 정황은, 기드온 여루빠알이(므나쎄, 에프라임, 아세르, 즈불룬 지파만 포괄하는) 작은 이스라엘에서일망정 실질적인 왕권을 행사하였음을 가리킵니다(8,24-27; 9,1-2 참조).
④“기드온은 그것들로 에폿을 만들어 자기가 사는 오프라 성읍에 두었다. 그러자 온 이스라엘이 그곳에서 그 에폿을 받들며 불륜을 저질렀다. 그리하여 그것이 기드온과 그 집안에 올가미가 되고 말았다. 미디안은 이렇게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굴복하고 다시는 머리를 들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기드온의 시대 마흔 해 동안 이 땅은 평온하였다.”(8,27-28)
에폿이라는 낱말은 성경에서 여러 물건을 가리킵니다. 우선 점을 치기 위한 고대 종교 의식의 기구, 그리고 사제들이 허리에 둘렀던 아마포로 된 에폿, 두 개의 멜빵으로 가슴에 고정시킨 에폿입니다. 고대 근동의 의복에서 이것은 하늘의 기둥을 떠받치는 땅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여기에서는 점을 치기 위한 고대 종교 의식의 기구를 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기드온은 장수를 누리고 죽어, 아비에제르인들의 땅 오프라에 있는 자기 아버지 요아스의 무덤에 묻혔다. 기드온이 죽자 이스라엘 자손들은 다시 바알들을 따르며 불륜을 저지르고, 바알 브릿을 자기들의 신으로 삼았다.”(8,32-33)
‘계약의 신’ 또는 ‘맹세의 신’을 뜻하는 바알 브릿 또는 엘 브릿은, 스켐인들이 섬기던 엘 또는 바알을 가리키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아비멜렉 (Αβιμέλεχ;Abimelech)[9장]
아비멜렉(‘나의 아버지는 왕이다.’라는 뜻)은 자신을 스켐의 임금으로 옹립하게 하는 데에 성공하지만, 이 왕정은 실패로 돌아갑니다. 이 이야기는 왕정 제도에 대한 격렬한 적대감을 드러내는데, 이는 의심의 여지 없이 이스라엘 왕정 시대에 활발하게 된 예언자 사회의 영향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고 나서 그는 오프라에 있는 아버지 집으로 가서 자기 형제들, 곧 여루빠알의 아들 일흔 명을 한 바위 위에서 살해하였다. 여루빠알의 막내아들 요탐만이 숨어 있었으므로 살아남았다.그리하여 스켐의 모든 지주와 벳 밀로의 온 주민이 모여, 스켐에 있는 기념 기둥 곁 참나무 아래로 가서 아비멜렉을 임금으로 세웠다.”(9,5-6)
아비멜렉은 스켐지역의 왕이 되지만 스켐인들은 반란을 일으키고 그는 어떤 여자가 던진 맷돌에 맞아 치명상을 입는데(9,53) 여자에게 돌에 맞아 죽을 수는 없었으므로 무기병에게 자신을 죽이라고 하여 죽게 됩니다. 
 
6. 톨라 (Θωλὰ;  Tola) [10,1-2] 
“아비멜렉 다음에는 이사카르 사람으로서, 도도의 손자이며 푸아의 아들인 톨라가 일어나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다. 그는 에프라임의 산악 지방에 있는 사미르에 살았다. 그는 스물세 해 동안 이스라엘의 판관으로 일하다가 죽어 사미르에 묻혔다.”

7. 야이르( ᾿Ιαΐρ; Jair) [10,3-5] 
“그 다음에 길앗 사람 야이르가 일어나 스물두 해 동안 이스라엘의 판관으로 일하였다.그에게는 아들이 서른 명 있었는데 그들은 저마다 나귀를 타고 다녔다. 그들은 또 성읍 서른 개를 가지고 있었는데, 길앗 땅에 있는 이 성읍들은 오늘날까지 ‘야이르의 부락’이라고 불린다.야이르는 죽어 카몬에 묻혔다.”

8. 입타 (Ιεφθάε ;Jephthah) [10,6 – 12,7]
“이스라엘 자손들이 다시 주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저질렀다. 그들은 바알들과 아스타롯, 아람의 신들, 시돈의 신들, 모압의 신들, 암몬 자손들의 신들, 필리스티아인들의 신들을 섬겼다. 그들은 이렇게 주님을 저버리고 그분을 섬기지 않았다.주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시어, 그들을 필리스티아인들과암몬 자손들의 손에 팔아넘기셨다.”(10,6-7)
이스라엘인들이 섬긴 신들 이름을 열거하면서 판관 입타의 등장 이전 상황을 말해줍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암몬족에게 핍박받는 이유가 10장에서 먼저 나오고 입타는 11장에 등장합니다. 
“길앗 사람 입타는 창녀의 아들이었는데 힘센 용사였다. 길앗이 이 입타를 낳았다.”(11,1)
길앗은 대부분의 경우 요르단 동쪽 지역을 가리키는 지명으로 나오는데 5,17에서는 분명히 한 지파를 뜻합니다. 여기에서는 이 길앗이 인명으로, 곧 이 지방 모든 주민의 선조 이름으로 쓰입니다. 입타가 아버지를 모르는 사생아였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입타는 본처의 아들들에게 쫓겨나 톱 땅에서 살았는데, 건달들이 입타에게 모여들어 비적 떼의 우두머리가 됩니다. 암몬족의 침입을 받은 길앗의 원로들이 톱의 입타를 찾아가 지휘관이 되어달라고 청합니다. 
“그리하여 입타는 길앗의 원로들과 함께 갔다. 백성이 그를 자기들의 우두머리와 지휘관으로 모시자, 입타는 미츠파로 가서 자기가 나눈 모든 말을 주님 앞에서 되풀이하였다.”(11,11)
입타와 길앗의 원로들(11,7에 의하면 입타를 쫓아낸 형들) 사이에 맺어진 협정을 다시 성소에서 엄숙하게 재확인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협정 당사자들의 성실성을 살피시는 분이십니다. 사실 미츠파는 ‘망보는 곳’, 곧 ‘살피는 곳’을 뜻합니다(창세 31,49 참조). ‘망대’를 듯하는 미츠바의 성소는 벤야민 지방에도 있기 때문에(20,1), 이 구절의 미츠파는 ‘길앗의 미츠파’로 불립니다. 
‘주님의 영이 입타에게 내렸다. 그리하여 그는 길앗과 므나쎄를 가로질렀다. 그리고 길앗 미츠파로 건너갔다가, 길앗 미츠파를 떠나 암몬 자손들이 있는 곳으로 건너갔다.그때에 입타는 주님께 서원을 하였다. “당신께서 암몬 자손들을 제 손에 넘겨만 주신다면, 제가 암몬 자손들을 이기고 무사히 돌아갈 때, 저를 맞으러 제 집 문을 처음 나오는 사람은 주님의 것이 될 것입니다. 그 사람을 제가 번제물로 바치겠습니다.”’(11,29-31)
입타는 암몬군에 승리하고 돌아올 때 자신을 맞으러 나오는 첫 사람을 하느님께 번제로 바치겠다는 서약을 합니다. 사람을 신에게 희생 제물로 바치는 것은 고대 셈족은 물론, 인도-유럽족에게서도 볼 수 있는 종교 의식입니다. 이스라엘 역시 인근 종족들처럼 예외가 아니었습니다(창세 22,1-19; 2열왕 16,3; 17,17; 미카 6,7). 그러나 이러한 종교 관습은 예언자들의 비판을 받고(예레 7,31; 19,5; 에제 16,20-21; 23,39) 율법에서는 금지됩니다(레위 18,21; 20,2-5; 신명 12,31).
입타의 설화는 하느님신앙 안에서도 인간 번제가 가능했던 당시의 상황을 잘 알려주고 있습니다. 율법 규정상 이스라엘 사람들은 인간 제사를 바칠 수 없지만(레위 18,21; 20,2-5; 신명 12,31; 18,10) 여기서는 인간 제사에 대한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고 단순하게 보도하고 있습니다. 

9.입찬 (Αβαισσὰν; Ibzan)[12,8-10] 
“입타는 여섯 해 동안 이스라엘의 판관으로 일하였다. 그러고 나서 길앗 사람 입타는 죽어 길앗에 있는 자기 성읍에 묻혔다.그 뒤로 베들레헴 출신 입찬이 이스라엘의 판관으로 일하였다. 그에게는 아들 서른 명과 딸 서른 명이 있었는데, 딸들도 일가 밖으로 시집보내고 며느리들도 일가 밖에서 데려왔다.그는 일곱 해 동안 이스라엘의 판관으로 일하였다.그러고 나서 입찬은 죽어 베들레헴에 묻혔다.”

10. 엘론 (Αἰλὼμ; Elon)[12,11-12] 
“그 뒤로 즈불룬 사람 엘론이 이스라엘의 판관으로 일하였다. 그는 열 해 동안 이스라엘의 판관으로 일하였다.그러고 나서 즈불룬 사람 엘론은 죽어 즈불룬 땅 아얄론에 묻혔다.”

11. 압돈(᾿Αβδὼν; Abdon) [12,13-15]
“그 뒤로 피르아톤 사람 힐렐의 아들 압돈이 이스라엘의 판관으로 일하였다. 그에게는 아들 마흔 명과 손자 서른 명이 있었는데, 그들은 저마다 나귀를 타고 다녔다. 그는 여덟 해 동안 이스라엘의 판관으로 일하였다.그러고 나서 피르아톤 사람 힐렐의 아들 압돈은 죽어 에프라임 땅, 아말렉 산악 지방에 있는피르아톤에 묻혔다.”

12. 삼손 (Σαμψὼν; Samson) [13,1 – 16,31] 
판관기 13─16장은 삼손의 행적을 전하는데, 삼손의 힘과 여자에 대한 그의 나약함이 대비됩니다. 대중적이면서 아름다운 이 이야기에는 이스라엘의 적 필리스티아인들에 대한 반어와 풍자도 들어 있습니다. 또한 종교적인 면도 잘 드러나 있습니다. 삼손의 힘은 하느님에게서 주어진 것이며, 그의 탄생 자체가 이미 하느님의 선물인 것입니다.삼손에 관한 전승은 여러 가지 형태의 설화와 일화들로 엮어져 있어 풍자적이면서도, 진지하고, 긴장감이 감돌 정도로 재미있으면서도 꾸밈없는 이야기 형태로 기술되어 성경 안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내용으로 보면 출생(13장), 결혼과 수수께끼(14장), 블레셋 인들의 밀밭을 태워 복수함(15,1-8), 당나귀 뼈로 적을 천명이나 죽임(15,9-19), 성문을 뿌리째 뽑아 던짐(16,1-3), 창녀 들릴라와의 관계(16,14-22), 삼손의 복수와 죽음(16,23-31)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는 다른 판관처럼 군사를 동원시켜 적을 무찌르지 않고 혼자 적진에서 적의 심장부를 분쇄합니다. 그는 엄청난 힘을 가진 장사였으나 평범한 한 남자였으며, 하느님의 영에 사로잡혔을 때는 그 누구도 대적할 수 없는 특출한 사람이면서도 어린애처럼 단순하였습니다. 또 그는 단지파 출신의 나지르인이었으면서도 금욕적 생활을 못했지만 하느님은 그를 큰 도구로 쓰셨고 결국 그는 죽으면서 살아서 보다 더 많은 적을 죽여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을 준비하였습니다. 
‘그때에 초르아  출신으로 단 씨족에 속한 사람이 하나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마노아였다. 그의 아내는 임신할 수 없는 몸이어서 자식을 낳지 못하였다.그런데 주님의 천사가 그 여자에게 나타나서 말하였다. “보라, 너는...이제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다.그러니 앞으로 조심하여 포도주도 독주도 마시지 말고, 부정한 것은 아무것도 먹지 마라....그리고 아기의 머리에 면도칼을 대어서는 안 된다. 그 아이는 모태에서부터 이미 하느님께 바쳐진 나지르인이 될 것이다. 그가 이스라엘을 필리스티아인들의 손에서 구원해 내기 시작할 것이다.”’(13,2-5)
머리에 면도칼을 대어서는 안 이러한 규정은 나지르인, 곧 하느님께 특별히 봉헌된 사람에게 해당합니다. 발효된 음료를 마시지 말라는 나지르인 규정이 여기에서는 그 어머니에게도 적용되는데, 이는 앞으로 태어날 아이가 이미 모태에서부터 하느님께 봉헌되었다는 사실을 드러내려는 것입니다. 삼손의 봉헌은 필리스티아인들을 몰아내는 사명과 연결됩니다. 그러나 앞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이스라엘의 한 지파가 필리스티아인들의 멍에에서 완전히 구원된다는 것보다는, 힘이 셀뿐더러 영리한 이 삼손이라는 사람의 과감한 행동들이 관심의 주 대상임을 드러낼 것입니다. 삼손은 앞서 거론된 11명의 판관들과, 같은 성격의 판관이거나 구원자는 아닙니다. 
“그 여자는 아들을 낳고 이름을 삼손이라 하였다.아이는 자라나고 주님께서는 그에게 복을 내려 주셨다.그가 초르아와 에스타올 사이에 자리 잡은 ‘단의 진영’에 있을 때, 주님의 영이 그를 움직이기 시작하였다.”(13,24-25)
삼손은 ‘태양’을 뜻하는 히브리 말에서 나온 이름입니다. 삼손의 고향 초르아에서 멀지 않은 곳에 ‘태양의 집’(태양신의 신전)을 뜻하는 벳 세메스 성읍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삼손이라는 이름이 고대 근동에서처럼 이 지방에서는 흔한 것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단의 진영” 대신에 히브리 말을 음역하여 마하네 단으로 옮기기도 합니다. 이 이름은 단 지파가 아직 고정된 거주 지역을 가지고 있지 않던 시대와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삼손에게 내린 “주님의 영”이 삼손의 비범한 힘의 근원이 됩니다. 삼손은 끝에 가서야 자기 힘의 원천이 바로 하느님이심을 알아보게 됩니다.
“주님의 영이 그를 움직이기 시작하였다.”(13,25) 
“그때에 주님의 영이 삼손에게 들이닥쳤으므로”(14,6) 
“그때에 주님의 영이 삼손에게 들이닥쳤다.”(14,19)
“그때에 주님의 영이 삼손에게 들이닥쳤다.”(15,14) 
“그는 주님께서 자기를 떠나셨다는 것을 알지 못하였다.”(16,20)
“저에게 다시 힘을 주십시오.”(16,28) 

‘그리고 삼손이 “필리스티아인들과 함께 죽게 해 주십시오.” 하면서 힘을 다하여 밀어내니, 그 집이 그 안에 있는 제후들과 온 백성 위로 무너져 내렸다. 그리하여 삼손이 죽으면서 죽인 사람이, 그가 사는 동안에 죽인 사람보다 더 많았다.그의 형제들과 그의 아버지 집안이 모두 내려와 그의 주검을 들고 올라가서, 초르아와 에스타올 사이에 있는 그의 아버지 마노아의 무덤에 장사 지냈다. 그는 스무 해 동안 이스라엘의 판관으로 일하였다.’(16,30-31)

삼손 설화들은 아직 유다 산간 지대 서쪽 중턱에 천막을 치던 단 부족이 필리스티아인들과의 여러 가지 마찰들로 엉켜 있었음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삼손은 특별히 나지르인으로서 하느님께서 사용하려는 특별한 도구로 성별 되었다는 것과, 초인적인 힘도 하느님으로부터 주어졌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삼손은 다른 판관처럼 군사를 동원시켜 적을 무찌르지 않고 현명한 판결을 내린 일도 없습니다. 기드온처럼 군대 지휘관도 아니며 드보라처럼 예언자도 아니고, 다른 판관들처럼 사람들에게 옳고 그름을 판단해 주지도 않습니다. 사자를 찢어 죽이거나, 성문을 뿌리채 뽑거나, 당나귀뼈로 혼자 천명을 죽이거나, 황소를 집어 던지는 등 희귀한 모습의 판관입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그는 판관이 아닙니다. 그는 혼자 적진에서 적의 심장부를 분쇄합니다. 삼손의 무절제한 욕망은 그 자신을 파멸의 길로 이끌었으나, 두 눈이 뽑히고 놋쇠 사슬에 묶이어 필리스티아에서 홀로 연자 맷돌을 돌리고 있을 때, 하느님은 이 참회하는 사나이에게 기회를 주셨습니다.“주 하느님,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이번 한 번만 저에게 다시 힘을 주십시오”(16,28) 사실 눈멀고 사슬에 묶인 삼손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하느님 외에 누가 알 수 있을까요? 

Ⅳ. 부록 [17―21장]
17─18장과 19─21장에는 이민족의 억압, 그리고 3─16장에서 보는 “구원자”의 개입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 17장 이하의 단락은 왕정(王政) 이전의 무정부 상태에서 이스라엘이 겪은 혼란과 고통과 부패를 기술하고 있는데 유배 이후에 왕정을 옹호하는 어느 편집자에 의해 부록으로 삽입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 부록의 의미는 판관들에 관한 영웅 서사시에서 사무엘기에 전해지는 왕조의 기원 역사로 넘어가는 연결 구실을 하게 하는 데에 있을 것입니다. 내용은 말 그대로 무정부상태의 종교, 사회가 배경이며 그 시대는 ‘자기방식으로’ 살던 시대입니다.

1. 17장; 미카와 레위인
“미카라는 이 사람에게는 신당이 하나 있었다. 그는 에폿과 수호신들을 만들고, 한 아들에게 직무를 맡겨 자기의 사제로 삼았다.그 시대에는 이스라엘에 임금이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저마다 제 눈에 옳게 보이는 대로 하였다.”(17,5-6)
미카의 신당은 “신”에 해당하는 히브리 말이 ‘신, 신들, 하느님’을 뜻하기 때문에, “신의 집”, “신들의 집”, 또는 “하느님의 집”으로 직역됩니다. 일반적으로 개인 신당으로 이해하지만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미카는 에폿과 집안 수호신들을 만들어 자기 신당에 두었는데 점을 치는 데에 사용되었을 것입니다. 이러저러한 조그마한 수호신 상들은 처음에는 용인되다가(18,14.20; 1사무 19,13-16) 결국은 금지됩니다(1사무 15,23; 2열왕 23,24 참조).
자기 가족을 사제로 내세우는 것이 당시에는 비정상적인 일이 아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13절에서 미카는 레위인 사제를 들이면서 비로소 하느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것을 보면 자기 아들의 사제직의 유효성에 대해서 완전히 확신하고 있지 못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 시대에는 이스라엘에 임금이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저마다 제 눈에 옳게 보이는 대로 하였다.’이 말은 판관기에서 여러 번 반복됩니다. 
“유다 땅 베들레헴에 유다 씨족의 한 젊은이가 있었다. 레위인인 그는 그곳에서 나그네살이하고 있었다.”(17,7)
이 7절은 “젊은이”가 유다인이면서 레위인이라고 말합니다. 이 사람은 레위 지파의 후손이기 때문에, 또는 돌아다니면서 필요한 곳에서 직무를 수행하는 ‘순회 사제 계급’에 속하기 때문에, 레위인이라 불립니다. 아무튼 그는 경신례와 점술의 전문가로서 베들레헴의 한 씨족에 ‘이방인’으로 몸 붙여 살고 있었습니다. 19장에 나오는 레위인도 베들레헴과 관련됩니다.
‘미카가 그에게 말하였다. “나와 함께 살면서 나에게 아버지와 사제가 되어 주시오. 일 년에 은 열 세켈과 옷가지와 양식을 드리겠소.”’(17,10)
사제직은 본디 각 가정의 아버지가 수행하였습니다(5절; 11,31-39; 13,19 참조). 그러다가 “아버지”라는 칭호가 특별히 존경받는 종교계의 인사(2열왕 2,12; 5,13; 6,21; 13,14), 나아가 일반 인사에게도 적용됩니다(창세 45,8; 1사무 24,12). 레위인에게 이러한 칭호를 부여하면서도, 미카는 동시에 별 어려움 없이 그를 “아들”처럼 여깁니다(11절). 레위인은 미카의 사제가 되어 그의 집에 머물렀습니다.미카는 레위인이 사제가 되었으니 이제 주님의 복을 누릴 모든 방도를 마련해 놓았다고 생각하였지만 그러나 이 레위인은 미카가 기대하는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합니다.

2. 18장; 땅을 찾아 나선 단 지파
단 지파의 이주는 여호 19,40-48에도 나옵니다. 단 지파 사람들은 벤야민 지파의 영토 서쪽에 배당된 자기들의 땅에 발을 붙이지 못합니다. 아모리인들이 그들을 산악 지방 쪽으로 물리쳤기 때문입니다(1,34 참조).
‘그 시대에는 이스라엘에 임금이 없었다. 단 지파는 그때까지도 이스라엘의 지파들 가운데에서 상속지를 얻지 못하였으므로, 바로 그 시대에 자기들이 살 곳을 찾고 있었다....그들은 에프라임 산악 지방에 있는 미카의 집까지 이르러, 그곳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18,1-2)...‘땅을 정찰하러 갔던 그 다섯 사람은 층계를 올라 집으로 들어가, 조각 신상과 에폿과 수호신들과 주조 신상을 꺼내 왔다...사제가 그들에게 “무슨 짓을 하는 것입니까?” 하고 따졌다.그들이 그에게 말하였다. “조용히 입을 다물고 우리를 따라나서시오. 그리고 우리에게 아버지와 사제가 되어 주시오. 한 집안의 사제가 되는 것이 좋소? 아니면 이스라엘의 한 지파, 한 씨족의 사제가 되는 것이 좋소?”그러자 그 사제는 마음이 흐뭇해져, 에폿과 수호신들과 조각 신상을 가지고 그 무리 한가운데로 들어갔다.’(18,17-20)
기회주의자 레위인은 흐믓한 마음으로 단지파를 따라갑니다. 그들은 조용하고 태평하게 사는 라이스의 백성에게 가서 그들을 죽이고 그 성읍을 불살라 버립니다. 그리고 성읍 라이스를 이스라엘에게서 태어난 자기들의 조상 단의 이름을 따서 단이라고 지었습니다(18,29). 이 모든 일이 다른 일들과는 달리 하느님의 어떠한 주도나 허락 없이 이루어집니다. 단순히 사실만 열거하는 이러한 문체는, 단 지파 사람들에 대한 성경 작가의 풍자적인 멸시를 쉽게 알아볼 수 있게 해 줍니다. 그들이 앞으로 섬기게 될 신상, 곧 우상은 “미카가 만든 것”일 뿐입니다. 단의 성소에서 이루어지는 경신례와 그 직무 수행자들에 대해 이보다 더 가혹한 비판은 없을 것입니다. 외따로 떨어진 성읍의 파괴, 조용하고 평온한 주민들의 학살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비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단의 자손들은 그 조각 신상을 모셔 놓았다. 그리고 이 땅의 백성이 유배를 갈 때까지, 모세의 손자이며 게르솜의 아들인 요나탄과 그의 자손들이 단 지파의 사제로 일하였다.그들은 하느님의 집이 실로에 있는 동안 내내, 미카가 만든 조각 신상을 그곳에 두고 섬겼다.”(18,30-31)
히브리 말 본문에는 모세가 므나쎄로 되어 있습니다. 본디 자음으로만 쓰인 히브리 말에서는 므나쎄와 모세 사이에 ‘ㄴ’에 해당하는 한 글자만 차이가 있는데 모세의 후손이 우상을 숭배하는 사제라는 사실에 화가 난 필경사들이, 모세가 아니라 (불경하고 부도덕한) 므나쎄로(2열왕 21 참조) 읽도록 글자를 집어넣은 것으로 여깁니다. 젊은 레위인의 이름이 여기에 처음으로 나옵니다. 그의 이름 요나탄(축약되지 않은 원형은, 여호나탄)은 ‘주님께서 주셨다.’를 뜻합니다. 그는 레위인일뿐더러 모세의 혈통입니다. 그들은 내내 ‘미카가 만든 조각상’을 섬겼다는 것입니다. 

3. 19장; 기브아인들의 만행
판관기의 두 번째 ‘부록’을 이루는 19─21장은, 벤야민 지파와 다른 지파들 사이의 전쟁을 그 원인과 결과와 함께 서술합니다. 이야기는 세 단계로 전개됩니다. Ⓐ전쟁의 동기: 기브아인들의 범죄(19장). Ⓑ전쟁의 전개: 벤야민 외 지파들의 소집과 군사 작전, 곧 다른 지파들의 초기 패배, 매복, 마지막 승리(20장). Ⓒ전쟁의 결과: 벤야민 지파의 생존자들을 복권시키고 그들에게 여자를 마련해 준다는 이스라엘인들의 결정(21장). 그러나 복잡한 문학적 전사(前史)를 지닌 이 이야기는 여러 면에서 분명하지 않고 편집 과정에서 많은 수정을 거치게 되는데, 이 마지막 세 장은 상당히 복잡한 형태로 펼쳐지고, 많은 반복이 이야기 전개의 명료성을 해치기 때문에 난해하기도 합니다. 최종 편집에서는 이야기가 상당히 후대의 것임이 명백히 드러납니다. 이스라엘은 종교 “공동체”(20,1; 21,10.13.16) 또는 “회중”으로 소개되는데(20,2. 그리고 21,5.8에서는 같은 히브리 말이 “집회”의 뜻으로 쓰인다.), 이 용어들은 유배 시대, 그리고 유배 이후 시대에 와서야 사용됩니다. 편집자의 손질이 있었음을 가리키는 이러한 모든 사항에도, 기브아를 치는 전쟁은 분명히 틀림없는 역사적 전통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호세아 예언자도 기브아인들의 만행을 알았던 것 같습니다(호세 9,9; 10,9).

4. 전쟁의 동기 줄거리 
19장은 기브아인들의 만행을 전하는 또 다른 레위인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유다 땅 베들레헴에서 어떤 여자를 소실로 맞아들였는데 부부 싸움이 벌어지고 소실은 친정으로 갑니다. 그 이유를 성경 본문은 밝히지 않는데 아무튼 남편은 자신이 직접 처가로 감으로써, 자기의 책임을 적어도 부분적으로 인정하고 아내와 화해를 시도합니다. 레위인은 소실과 함께 길을 떠나 여부스, 곧 예루살렘 맞은쪽에 이르렀습니다. 그들은 벤야민 지파에 속한 기브아에 들어가 하룻밤을 묵으려고 하는데 마침 한 노인을 만나 그 집에 묵게 됩니다. 그는 에프라임 산악 지방 출신으로 기브아에서 나그네살이 하는 사람이었고 그곳 사람들은 벤야민인 이었습니다. 그때 성읍의 남자들이 그 집을 에워싸고 문을 두드리며, 그 집 주인 노인에게 “당신 집에 든 남자를 내보내시오. 우리가 그자와 재미 좀 봐야겠소.”라고 말하면서 비극적인 사건이 시작됩니다. 집주인은 자기집 손님을 곤경에 처하지 않게 하기 위해 자기 딸을 내보낼 터이니 즐기라고하지만 레위인은 자기 소실을 내보냅니다. 기브아인들은 아침이 될 때까지 밤새도록 그 여자와 관계하며 능욕하다가 동이 틀 때에야 그 여자를 놓아 보냈습니다. 소실은 목숨을 잃게됩니다(19,28).

5. 20장 벤야민 지파와 다른 지파들의 전쟁
“그리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두 나섰다. 단에서 브에르 세바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길앗 땅에서도 온 공동체가 일제히 미츠파로 주님 앞에 모여들었다.”(20,1-2)
“단에서 브에르 세바에 이르기까지”는 이스라엘의 전 영토를 가리키는 전통적 표현입니다. 특별히 1-2절에서 그 문체를 드러내는 유배 이후의 편집자는 이스라엘을 하나의 종교 “공동체”로 이해합니다. 그런데 이 용어는 유배 이후에야 나타납니다. 원래의 이야기에서는 벤야민 지파를 징벌하는 전쟁에, 에프라임 지파 하나만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 전체도 아니라, 일부 지파들만 참여하였을 것입니다.

6. 21장 벤야민 지파의 복권과 회복
벤야민人들과의 결정적 전투는 승리로 끝납니다. 이제 죄는 처벌했으니 동족인 벤야민 지파를 다시 일으키려면 광야로 피신한 육백 명에게 여자들을 마련해 주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벤야민에 생존자들이 남아, 이스라엘에서 지파가 하나 사라지는 일이 없게 하겠는가?우리는 그들에게 우리 딸들을 아내로 내줄 수가 없지 않은가?” 이스라엘의 자손들이, “벤야민 사람에게 여자를 내주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다.” 하고 맹세하였기 때문이다...그래서 그들은 벤야민의 자손들에게 명령하였다. “가서 포도밭에 숨어 살피다가 실로의 젊은 여자들이 윤무를 추러 나오거든, 그대들도 포도밭에서 나와 그 실로 처녀들 가운데에서 한 사람에 여자 하나씩 잡아 벤야민 땅으로 돌아가시오.벤야민의 자손들은 그대로 하였다. 그들은 춤추는 여자들을 납치하여 그 가운데에서 저희의 수만큼 아내를 골라 가지고, 자기들의 상속지로 돌아가서 성읍들을 다시 짓고 그곳에서 살았다.’(21,17-23)

“그 시대에는 이스라엘에 임금이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저마다 제 눈에 옳게 보이는 대로 하였다.”(21,25)


모두 자기 좋을 대로 살던 판관시대와, 이스라엘 왕정시대를 시작하는 사무엘기 사이에 “룻기”가 놓여있습니다. 룻기는 “판관들이 다스리던 시대에....”(룻기 1,1)로 시작합니다. 
<판관시대의 인물 2-①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