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ospel According to Saint Luke
ΤΟ ΚΑΤΑ ΛΟΥΚΑΝ ΑΓΙΟΝ ΕΥΑΓΓΕΛΊΟΝ
1.신약성경과 그리스도교 2. 루카복음서의 그리스도론 3.루카복음서의 집필방식과 목적 4.루카복음서 요약
5.루카복음서의 주제 6.루카복음서의 신학적특성 7.교회의 시대 8.종말론
1. 신약성경과 그리스도교
1)예수님은 누구인가?
80-90년경 편집완료 되었을 것으로 여겨지는 루카복음서의 저자 루카는, 신약성경 저자들 가운데에서 현대인에게 가장 접근하기 쉬운 복음 해설가일 것입니다. 그의 그리스적 사고방식과 문화, 명확성을 좋아하고 설명하는 데에 애쓰는 성향, 감수성과 문학적 재능 등은 현대인에게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루카는 무엇보다도 현대의 독자들이 예수님의 신비에 다가갈 수 있도록 도와 줄 수 있습니다. 그는 가난한 이들과 죄인들과 이교인들에 대한 특별한 관심과 함께, 이 하느님의 아드님을 만민의 구원자로 보여 줍니다.
1951년에 있었던 칼케돈 공의회(Council of Chalcedon;451년 개최)의 1500주년 기념제에서 칼 라너(K.Rahuner 1904-1984 독일)는, “칼케돈 공의회가 정의한 ‘그리스도는 신성과 인성(natura divina, natura humana)의 결합을 이루고 있다’는 결론이, 그리스도교적인 사고의 종결이 아니라 이제 시작이어야 한다”고 언급합니다. 1950년대 신학자들이 칼케돈 공의회의 개념들을 다시 숙고함으로써 “도대체 이 분이 누구인가?”(마르 4,41)의 원초적인 물음에 대하여 교의적(敎義的) 정의에서 출발하는 새로운 물음을 제기하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루돌프 불트만(R.Bultmann 1884-1976 독일)에 의해 ‘예수님은 누구인가?’라는 이 물음이 개인의 신앙에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불트만은 脫신화론을 주장하는데 그리스도론적인 중요 표상들이 고대에서 유래하기 때문에 현대에서는 그것이 신화적 표상이라는 인상을 준다고 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즉 실존론적인 의미를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인데 사실 이러한 주장은 현대인들에게 지지를 받는 부분입니다. 예수님을 믿을 수 있는가?에 처음 당면하는 문제가 신화적 요소들이고 이러한 문제들이 신성 혹은 인성의 한 면만을 주장하는 이단들의 발생이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가 성경을 배우는 목적은 예수論에서 그리스도론論으로 가는 길을 배우는 것입니다. 즉, 나자렛사람 예수가 하느님의 그리스도였다!는 고백에 이르기까지의 신앙여정을 통하여 특히 마르코복음서의 로마인 백인대장처럼 믿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 사람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마르 15,39).
2) 예수그리스도에게 정향(定向)된 구약성경
신약성경에서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해 지평(地平)은 구약성경에서 형성되기 때문에 구약성경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복음서 저자들에 의하면 구약성경이 목적론적으로 예수님에게 정향되어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마태오복음사가가 예수님을 드러내는 방식은 이른바 ‘성서 논증’입니다. 그는 복음서 곳곳에서 구약성경을 인용합니다. 이 인용문들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행위의 뜻이 항상 성서로써 밝혀진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기능을 가집니다. 마태오복음사가는 ‘주께서 예언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신 바가 이루어졌다’는 구절을 11번 되풀이합니다. 나자렛 출신 인물 예수와 예수 그리스도 사건은 구약성경에서 유래하는, 따라서 구약성경을 통해서 올바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신약성경에서는 ‘대체 이분이 누구 인가?’ 라는 질문에 대하여 예수님이 ‘누구(Who)이다’라고 말해 주고 있다면 구약성경은 예수님이 ‘무엇(What)이다’는 미래적 역할론을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3) 그리스도교신앙의 역사적 출발점 - 부활
복음서들은 역사적인 발전 과정을 염두에 두고 그리스도론을 전개합니다. 특별히 루카복음은 이 부분에 세밀하고, 요한복음의 역사성은 많은 지지를 받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리스도 신앙의 역사적 시작입니다. 부활은 그리스도의 발현에 근거해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다시 모였고, 제자 뿐 만 아니라 사도 바오로와 여러 신자들을 결집하여 오순절의 성령강림과 함께 교회가 형성되었습니다. 그러나 부활 이전에 그리스도 신앙이 형성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이전에 그분의 지상 생애가 있었고 그 생애는 더할 나위없는 깊은 감동으로 동시대인의 마음에 새겨집니다. 예수님께서 유다교의 율법들을 애주애인(愛主愛人)으로 환원시킨 것은 그리스도인 뿐 아니라 전 인류가 알고 있는 일입니다. 사도 바오로에게있어서 그러므로 율법은 사랑의 완성인 것입니다(로마 13,10). 또한 초대교회가 나자렛 예수님을 메시아와 하느님의 아들로 고백했다면 초대교회는 신앙의 근거와 정당성을 예수님의 지상 생활 속에서 발견해야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반성과 숙고로부터 복음서들이 발생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은 초대교회의 케뤼그마(선언, kerygma,κήρυγμα)로 정식화됩니다.
“나도 전해 받았고 여러분에게 무엇보다 먼저 전해 준 복음은 이렇습니다. 곧 그리스도께서는 성경 말씀대로 우리의 죄 때문에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성경 말씀대로 사흗날에 되살아나시어, 케파에게, 또 이어서 열두 사도에게 나타나셨습니다”(1코린 15,3-5).
2. 루카복음서의 예수그리스도론
루카복음에서는 마르코의 ‘사람의 아들’이나 마태오의 ‘다윗의 아들’이 강조되지는 않습니다.루카에게 중요한 것은 독자들에게 다가오는 설득력 있는 그리스도상을 정립하려는 것입니다. 이런 의도에서 루카는 우리가 아는 대로 감동적인 특유의 편집의도를 드러냅니다. 루카는 구원사를 ⑴예수님의 시간, ⑵교회의 시간, ⑶재림의 시간 세 시기로 구분하는데 그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⑴예수님의 시간은 지상생활을 통하여 이미 발생한 것에 대한 회고이며,
⑵교회의 시간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시어 교회 안에 현존하는 것이며,
⑶재림의 시간은 예수님께서 다시 올 것이라는 종말론적 희망입니다.
이 모든 희망의 기쁜 소식이 루카복음사가의 신학적 특성이 두드러지는 ‘오늘’이라는 용어로서 표현됩니다.
그리스도론의 핵심요소는 ⑴그리스도의 인격 ⑵그리스도의 위격, 그리고 ⑶연대(連帶)적 그리스도입니다. 연대적 그리스도는 예수님께서 인간과 동일한 인간이라는 연대적인 면입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인간 조건은 실재입니다. 이러한 연대성의 의미는 예수님께서 인류의 역사의 한가운데서 새로운 문을 열어 주셨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는 대사제가 아니라, 모든 면에서 우리와 똑같이 유혹을 받으신, 그러나 죄는 짓지 않으신 대사제가 계십니다. 그러므로 확신을 가지고 은총의 어좌로 나아갑시다.”(히브 4,15-16)
3.루카복음서의 집필방식과 배경
1)집필방식
네 복음서 가운데에서 루카 복음서는 당시의 많은 그리스 말 작품처럼 ‘머리말’로 시작하는데 복음서를 시작하는 이 소제목을 “머리말” 대신에 “헌사”(獻辭)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루카는 당시의 그리스 저자들이 하는 식으로 자기의 작품을 시작합니다. 이미 같은 작업을 한 선배들, 자료 수집에 기울인 자기의 노력, 그리고 문학적 구성 원칙을 언급하고, 자기의 책을 중요한 인물에게 바친다는 말을 하는 가운데 거룩한 역사를 다루는 저자의 목적이 드러납니다. 루카는 전통을 바탕으로 복음서를 저술하려는 것입니다. 이 머리말은 당시의 중요한 인물로 여겨지는 테오필로스님에게 말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사도행전 첫 부분에도 같은 인물에게 바치는 머리말이 나옵니다. 사도행전의 이 머리말에서, 저자는 ‘예수님의 모든 행적과 가르침’에 관하여 기록한 첫 번째 작품을 언급합니다(사도 1,1-2). 그래서 초대 교회에서부터, 루카복음서와 사도행전이 동일한 저자의 작품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현대 성서학에서도 이 두 책에서 드러나는 사상을 바탕으로 같은 판단을 내립니다. 루카 복음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파스카 사건 곧 수난과 부활이 이루어지는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심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사도행전은 이 사건에 대한 설교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세상 끝까지 퍼져 나감을 이야기합니다(사도 1,8).
루카는 복음서의 머리말에서 자기 작품의 주제와 집필 방법과 목적을 명시합니다. 곧 교회가 수행하는 복음 선포의 출발점이 된 “일들”을 다루는데, 첫 증인들의 전통을 자세히 살펴보고 나서, 그들이 “전하여 준” 순서대로 이야기하겠노라고 밝힙니다. 그리하여 테오필로스도 지금까지 들어 온 이야기들이 진실되다는 사실을 알게 되리라고 말합니다. 루카는 이렇게 당시 역사 저술가들의 관습을 따르는 것이지만 그가 말하려는 역사는 거룩한 역사입니다. 그의 근본 의도는 지난 일들이 신앙과 관련해서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지 보여 주는 것입니다. 곧 파스카 사건과 교회 생활이 밝히는 신앙입니다. 이러한 의도로 저술되었기 때문에 이 책이 복음서라고 불리게 돕니다.
2)루카복음서의 언어
가톨릭성경은 ‘옛 계약’을 뜻하는 구약(舊約)과 ‘새로운 계약’인 신약(新約)으로 구분됩니다. 이 구약과 신약을 합해 ‘성경(The Bible,그리스어 타 비블리아 τὰ βιβλία)’이라고 부른 것은 요한 크리소스토모(349-407)가 최초입니다. 신약성경은 그리스 말(코이네,κοινὴ)로 쓰인 스물일곱 권의 책을 말하며 이 문헌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그 권위를 더해 갔습니다. 이 스물일곱권의 책이 각각 편집되어 신약성서라는 한 작품으로 결집되기까지는 길고 복잡한 과정을 거칩니다
(경전선집과정은 블로그 sunnyriver 신약성경입문참조).
그리스도교 시대가 시작될 때, 지중해 변과 근동은 알렉산드로스 대제가 이룩한 그리스계 제국을 이어받은 로마 제국의 세상이었습니다. 로마의 통괄 아래 단일한 문명이 펼쳐지고 있었으나 공통어는 계속 그리스 말이었습니다. 예수님 당시 팔레스티나 땅에서는 아람 말을 사용하였는데 신약성경 27권은 그리스 말로 전해집니다.
유배이후부터 신약성경시대까지 이스라엘민족의 배경에는 적어도 히브리어,아람어,그리스어,라틴어 등 네 가지 언어가 있었을 것이며 아람어가 상용어였습니다. 아람어는 고대바빌론의 통용어였고 페르시아제국 시대에도 통용어였습니다. 이스라엘은 히브리어와 아람어를 함께 사용하였는데 성서언어연구에 의해서만 히브리어와 아람어를 구분해낼 수 있습니다. 한국말을 하면서 영어가 상용어가 된 것과 같습니다. 로마인들은 라틴어를 사용하였으나 속주(屬州)의 대부분이 그리스어를 사용했기 때문에 로마제국시대에도 통용어는 그리스어였습니다. BC 331년 페르시아제국 다리우스3세의 5분의1도 안 되는 병력으로 가우가멜라전투에서 승리한 작은 섬 마케도니아출신의 스무살의 알렉산더는 정복한 도시마다 도시 알렉산드리아를 세우고 온세계를 그리스화하려 했습니다. 독일의 역사가 드로이젠이 말한 이른바 헬레니즘은 알렉산더가 페르시아문명을 소멸하지 않고 그리스문화와 합하여 이룩한 문화입니다. 스승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이 컸을 것으로 봅니다.
3)저자 루카
루카복음서의 저자로 알려진 루카는 마케도니아 출신으로 바오로 사도와 함께 선교했던 동역자로서, 예수님과는 시간상으로 동떨어진 제3세대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구약성경과 그리스 문화 등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유려한 필치로 복음서와 사도행전을 저술했습니다.그는 주요 인물들이 활동한 장소와 시간 등을 구체적으로 명시함으로써 구원 계획과 세상 역사를 결합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루카는 화가였다는 전설이 있고 2세기 말의 이레네오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어떤 전통에 따르면, 사도 바오로가 콜로 4,14; 필레 24; 2티모 4,11에서 언급하는 의사 루카가 이 복음서의 저자라고 여겨집니다. 그가 의사였는지의 사실여부는 중요하지 않지만 인간의 치유를 매우 중요시했음이 분명합니다. 그는 건강한 인생의 안내자로 그리스도를 선택합니다. 저자에 의하면 예수님은 우리의 상처를 치유하고 일으키는 진정한 의사로 오신 것입니다.
루카는 마르코복음서와, 다른 예수 어록과, 자신의 특수사료(60개)를 종합하여 기록하였습니다. 루카복음서는 미래의 하느님 나라를 위한 기다림의 신앙이 아니라 하느님의 역사가 이미 우리 일상에서 활동하고 있음을 전하는데 그 핵심이 있습니다. 학자들은 이 복음서의 편집을 80-90년경으로 생각합니다.
4)루카복음서의 상징
4복음서는 각 각의 독자적인 관점에서 기록되었습니다. 복음서의 상징은 다양하지만 흔히 일반적으로는 다음과 같이 알려져 있습니다.서기 170년 리옹의 이레네오에 따라 묵시록의 네 생물이(묵시 4,5-7) 4복음서와 그 저자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그러나 묵시록의 저자가 그 상징을 의도하였다고 볼 수는 없겠습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다음과 같이 복음사가의 상징을 표현합니다.
①마르코 : 마르코의 상징은 사람입니다. 마르코 복음은 복음서 중에서 가장 단순하고 솔직하게 기록되어있습니다. 꾸밈없이 예수님의 사실성을 기록한 사람으로 표현되기 때문에 흔히 이 책의 특징을 사실주의라고 합니다.
②마태오 : 마태오의 표상은 사자입니다. 예수님께서 유다의 꿈이 실현될 유다의 사자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마태오복음서는 레위라는 이름의 세리 마태오가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을 위하여 저술하였다는 설이 받아들여집니다. 유다의 사자는 야곱의 축복(49,8-10)에서 기원합니다. 유다 지파는 다윗이 나옴으로써 결국 남 왕국의 이름이 될 지파입니다. 유다에게 준 야곱의 축복처럼 유다는 이스라엘의 사자입니다.
③요 한 : 요한의 표상은 독수리입니다. 독수리는 어떤 다른 새들보다도 높이 날 수 있고 태양을 직시할 수 있는 눈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요한복음은 신학적인 복음서이고 그 고매한 사상은 타의 주종을 불허하는 것입니다.
④루 카 : 루카의 상징은 송아지입니다. 송아지는 희생 제물로 드리는 동물입니다. 루카는 예수님에게서 온 세상을 구원하는 희생의 제물을 보았던 것 같습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위해 스스로 자신을 희생하신 제물이었기 때문입니다.
5)정치.종교적 배경
유다민족은 정치적으로는 로마의 지배를 받았지만 직접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최고의회였습니다(산헤드린 Sanhedrin; 쉬네드리온 συνέδριον). 예루살렘 중앙의회는 사제와 평신도(바리사이,율법학자)71명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최고의회의 의장은 대사제가 맡았습니다. 바빌론 유배에서 돌아온 유다인들은 약속의 땅을 복구하면서, 시대가 이제 변하였고 더 이상 예전처럼 살 수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들이 히브리말을 버리고 아람어를 사용하게 된 동기가 될 것입니다.
유다인들은 갖가지 사상으로부터 영향을 받게 되지만 율법을 고수하며 하느님의 구원을 믿고 살아가는 길을 선택했으나 그 길을 어떻게 가느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였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여러 종파를 형성 하였는데 이들 가운데 예수님과 논쟁적인 그룹으로 등장하는 사두가이(Sadducees,Σαδδουκαῖοι), 율법학자(scribes, γραμματεῖς)들은 상당한 권위를 행사하면서 유다인들의 삶에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였고 바리사이(Pharisees, Φαρισαῖοι)라는 명칭으로 자신들을 경건한자들로 분류한 평신도 그룹도 백성들의 신앙생활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게 됩니다. 사두가이와 바리사이라는 두 큰 ‘파벌’ 주변에 ‘열혈당(Zelotes, Ζηλωτήν)’이라고 불리는 분파와 열혈당보다 더 잘 알려진 분파로 에세네파(The Essenes,Ἐσσηνοί)가 있었습니다. 신약성경에서는 이 에세네파가 한 번도 언급되지 않으나 최초의 그리스도교가 이 사상의 일부를 받아들여, 에세네적인 사고와 행동 방식이 예루살렘 초창기 그리스도교 공동체 안에서 적어도 한때 지배적이었을 가능성이 없지 않습니다.(상세내용은 블로그 sunnyriver 신약성경입문참조).
4. 루카복음서 요약
저자는 루카복음서를 그리스도의 신비와 구원의 역사,구원의 완수라는 구조로 전개합니다. 마태오 복음서 및 마르코 복음서와 전반적으로 구성이 동일합니다. 곧 도입부 → 예수님의 갈릴래아 선교 활동 → 예루살렘 ‘상경기’ → 수난과 부활을 통한 사명의 완수입니다. 공관복음의 형태와 비슷하지만 루카의 구원사는 좀 더 세밀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1)도입부(1,5─4,13)
①유년기 이야기(1,5─2,52)
루카 복음서에만 나옵니다. 여기에서는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을 체계적으로 나란히 배치시키면서, 요한이 예수님께 종속된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또 일련의 초자연적 메시지를 통하여 예수님의 신비가 제시됩니다. 곧 예수님을 성령으로 잉태되신 분,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1,35), 구원자, 주님이신 그리스도(2,11),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구원, 그리고 모든 민족들의 빛으로 선포하는 메시지입니다(2,30.32). 예수님은 동시에 당신 백성에게 배척받는 운명을 지니신 분이시기도 합니다(2,34). 예수님의 신비가 복음서의 다음 부분에서 서서히 드러나기 전에 이렇게 이미 서두에서부터 계시가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이 단락은 요한 복음서의 그리스도론적 서론(요한 1,1-18)과 견줄 수 있게 됩니다.
②사명 수행의 시작(3,1─4,13)
마태오 복음서와 마르코 복음서에서처럼 세례자 요한의 사명 수행, 예수님의 세례, 그리고 사탄에 대한 예수님의 첫 승리로 이루어져 있고 요한의 시대와 예수님의 시대를 구약과 신약으로 분명히 구분합니다(3,20). 또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직후, 하느님께서 당신의 이 아드님을 메시아로 임명하신 사실을 강조한 후 예수님의 족보를 소개합니다.
족보의 그리스말 게네시스(γένεσις, Genesis)는 탄생, 기원, 혈통을 의미하고 또한 게네시스는 구약성경의 첫 번째 책 이름입니다. 본디 족보는 중요한 인물을 소개하는 그리스식 문학유형 입니다. 아브라함으로부터 다윗가문 마리아의 남편 요셉에게까지 내려오는 마태오복음의 족보는 선택된 민족 이스라엘의 과거 역사가 예수님에게서 그 의미를 얻게 되었음을 뜻하는데 반면 루카복음의 족보는(루카 3,23-38) 다윗의 후손 요셉으로부터 첫 사람에게까지 소급되어 올라가는데 예수님께서 온 인류와 직접 연관이 있는 루카복음의 보편주의를 시사합니다.
③예수님께서 유혹을 받으신 이야기의 마지막 문장에서는, 수난 때 예수님과 사탄 사이에 벌어질 최종 대결이 미리 예고됩니다(4,13).
2)갈릴래아 선교 활동(4,14─9,50)
예수님 사명 수행의 이 첫 부분은 마태 15,21; 16,13과 마르 7,24.31; 8,27과 달리 전부 갈릴래아를 배경으로 합니다. 루카는 이 단락을 나자렛 회당의 설교 장면으로 시작하는데(4,16-30), 바로 이 장면이 뒤따르는 복음서 이야기 전체를 미리 보여 주는 기능을 합니다. 곧 구약성서의 바탕 위에서, 그리고 성령의 영감 속에 이루어지는 구원 예고, 이교인들에게 베풀어질 구원의 암시, 동포들의 배척과 살해 시도입니다. 이후에 펼쳐지는 예수님의 사명 수행 이야기는 그분의 행적(무엇보다도 기적)과 말씀을 전합니다. 그리고 이 부분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과 가까워지는 첫 기회를 마련해 주시는데 마르 1,16─3,6의 순서를 거의 그대로 따라갑니다.
①첫째 단락(4,31─6,11): 예수님께서 기적과 논쟁을 통해서 군중, 첫 제자들, 그리고 적대자들과 각각 이루시는 대면을 소개합니다.
②둘째 단락(6,12─7,50): 마르코 복음서에는 없지만 마태오 복음서에서는 여기저기에서 병행구를 볼 수 있는 열두 사도를 부르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여기에는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가르침이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가르침은 ‘행복 선언’을 필두로 하는 설교로 이루어집니다.
③셋째 단락(8,1─9,50)에서 루카는 다시 마르 4,1─9,40을 따라갑니다. 여기에서는 열두 제자가 예수님의 사명 수행과 밀접히 결합됩니다. 이들은 이 단락의 시작인 8,1에서부터 언급됩니다. 이어지는 비유의 말씀에서는, 예수님의 청중 가운데에서 비유만 듣는 이들과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된”(8,10) 이들이 구분됩니다. 그리고 제자들만을 대상으로 일어난 기적은, 그들에게 ‘도대체 이분이 누구이신가?’라는 질문을 하게 만듭니다(8,25). 또한 이 때에 열두 제자는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라는 사명을 받아 파견되고(9,1-6), 빵을 많게 하는 기적에도 적극적으로 동참합니다(9,12).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 자신에 대하여 발언하기를 촉구하시는데, 베드로가 그분을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시라고 고백합니다(9,20). 그러나 예수님의 신비에 관한 이 첫 발언은 곧바로 그 내용이 보충됩니다. 먼저 스승님 자신이 당신을 죽을 운명의 메시아로 규정하십니다(9,22). 그리고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모 때, 하느님 아버지 자신도 신비로운 방식으로 예수님이 당신의 아드님이심을 선포하십니다(9,35).
3)예루살렘 ‘상경기’(9,51─19,27)
예수님 사명 수행의 이 둘째 부분은 루카복음서의 구성에서 가장 독창적인 부분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많은 사료를 마태오 복음서 곳곳에서도 볼 수 있고, 더러는 마르코 복음서에서도 보게 됩니다. 그러나 루카만이 그 사료들을 여행이라는 틀에 맞추어 소개합니다. 이 여행 이야기는, 예수님의 여정을 이제 곧 일어나게 될 파스카 사건에 맞추는 장엄한 문장으로 시작합니다(9,51).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곧 구원이 실현되어야 하는 거룩한 도읍으로 향하는 길에 들어서십니다. 13,22와 17,11에 나오는 예루살렘에 관한 다른 두 가지 언급을 경계로 이 부분을 세 단락으로 나눌 수도 있지만 그렇게 구분된 세 단락 사이에 지리적인 연속성도 없고 교의적(敎義的)인 발전도 없습니다. 이 여행 이야기는 지리적 장소의 순서대로 전개되지 않습니다(10,13-15와 13,31-33의 배경은 여전히 갈릴래아인 것으로 여겨지고, 13,34-35는 예수님께서 이미 예루살렘에서 설교하셨음을 전제한다). 곧 이 여정은 인위적이고 문학적인 틀에 불과합니다.
루카는 자기의 사료들을 여행이라는 틀 안으로 모으고, 파스카 신비의 완수에 비추어 그것들을 배치시킵니다. 이 부분에서는 전체적으로(10,21-24; 12,49-50; 18,31-33; 19,12-15는 빼고) 기적보다 예수님의 말씀이, 그리스도의 신비를 드러내는 것보다 그분의 권유가 더 비중 있게 나타납니다. 여기에서 스승님께서는 계속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을 엄하게 꾸짖으시고(11,37-52), 당신의 백성에게 회개하라고 촉구하십니다(12,51─13,9). 그러면서도 그들이 당신의 촉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임도 보십니다(13,23-35; 14,16-24). 그러나 그분께서는 무엇보다도 제자들에게 관심을 쏟으시어, 그들의 사명을 확정지으시고(9,52─10,20) 기도와(11,1-13) 자기 포기를 권고하십니다(12,22-34.51-53; 14,26-33; 16,1-13; 18,28-30). 제자들에게 내리시는 이러한 가르침 가운데에서 많은 부분이, 예수님께서 그들 사이에 계시지 않게 되는 상황을 상정(想定)합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하늘에 들어올려지신다’는(9,51) 사실에 의해서 결정된 이 여행의 시각에 상응하는 것입니다. 곧 제자들이 성령을 청하고(11,13), 사람들 앞에서 자기들의 스승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며(12,1-12), 그분께서 다시 오심을 기다리고(12,35-40; 17,22─18,8; 19,11-27), 공동체 안에서 형제들을 돌보아야 하는 시간이 온다는 것입니다(12,41-48).
루카는 18,15에서부터 다시 마태오(19,15)와 마르코(10,13)의 노선을 따라갑니다. 그러나 끝 부분에 자캐오의 구원과 특히 ‘미나의 비유’를 덧붙입니다(19,1-10과 11-27절). 루카 복음서의 편집에서는 이 비유가, 예루살렘과 또 이 도시 주민이 배척하게 될 임금의 비극적인 대면을 준비하는 구실을 합니다.
4) 수난과 부활을 통한 사명의 완수(19,28─24,53).
예수님의 사명 수행의 이 셋째 부분에서는, 예루살렘에서 완수되는 구원을 이야기합니다. 여기에서 예루살렘은, 십자가라는 비극적 사건에서 예수님을 상대하는 선택된 백성 이스라엘의 대표로 등장합니다. 루카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초기 장면에서부터 이러한 사실을 선명하게 부각시킵니다(19,29-48). 곧 스승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임금으로 드러내시고(19,35-38), 임금으로 오시는 당신을 배척하는 이 고을을 두고 눈물을 흘리십니다(41-44절). 그리고 성전에서 상인들을 내쫓으시고 또 그 곳에서 날마다 사람들을 가르치시어, 성전에 대한 당신의 권한을 보여 주십니다(19,45-48). 예수님께서 이렇게 예루살렘에서 당신 자신을 드러내시는 이야기는 마태오 복음서와 마르코 복음서에서처럼 세 단락으로 이루어졌지만, 루카는 자기만의 고유한 의미를 끌어들입니다.
성전에서의 가르침(20─21장)은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과 사람의 아들의 재림 예고로 끝을 맺습니다. 루카 복음서에서는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이 예고의 대상입니다(21,5;21,20).
수난사(22─23장)는 다른 복음서들과 똑같은 구조로 전개됩니다. 그러나 최후의 만찬 이야기는 열두 제자에게 내리시는 가르침, 곧 그들이 종으로서 해야 할 역할, 미래의 하느님 나라에서 그들에게 주어질 권능, 스승님께서 떠나심에 따라 그들에게 야기될 새로운 상황에 관한 가르침 때문에 길어집니다(22,24-38). 그리고 예수님께서 겪으시는 고통은 그분의 의로움과 그분께서 당하시는 순교의 모범적인 가치를 부각시킵니다. 메시아께서 모욕과 굴욕을 겪으시는 가운데 그분의 왕권이 이미 시작되었음이 확인됩니다(22,69; 23,37).
부활절 이야기(24장)는 다른 복음서와 달리 전부 예루살렘을 배경으로 합니다. 루카 복음서에서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갈릴래아에 나타나셨다는 옛 전통이 언급되지 않습니다(마태 26,32; 28,7.10.16-20; 마르 14,28; 16,7; 요한 21). 이는 틀림없이 사도행전과 대칭을 유지시키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수난을,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당신의 영광으로 끌어들이실 목적으로 의도하신 여정이라고 해석합니다(24,26). 그리고 이러한 하느님의 뜻은 구약성서에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서(24,25-27.44-46), 예수님 자신이 이미 예고하신 바라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24,7). 예수님께서는 마침내 열한 제자에게 나타나시어 그들이 의심을 버리게 하시고(24,36-43), 그들에게 증인으로서의 사명을 부여하십니다(24,47-49). 이리하여 루카 복음서는 부활하신 분께서 주님이심을 드러내는 승천에 관한 첫째 이야기(51절)로 끝을 맺습니다(둘째 이야기는 사도행전 첫 부분에 나온다). 이렇게 루가 복음서는 전체적으로 주님이신 예수님의 신비가 점진적으로 계시되는 모습, 그리고 장차 그분의 메시지를 선포하게 될 제자들이 그 계시에 완만하게 접근하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5. 루카복음의 주제
①구세주를 선언하는 복음: 각 복음사가의 기술방식에 따른 4복음서의 공통주제입니다.
②보편주의: 마태오복음은 아브라함에서 요셉에게로 내려오는 하강형 족보를 소개하는 반면 루카 복음은 예수님으로부터 거슬러 올라가는 상승형을 취합니다. 이 족보는 아담에게까지 이르는데, 그를 '하느님 아들'이라 칭합니다. 이는 이방인을 포함한 우리 모두가 하느님 자녀라는 보편주의를 적용한 것입니다. 루카는 이 복음서를 하느님의 은총이 필요한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기록하였습니다.
③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위한 복음: 공통문헌과 자신의 특수사료에 의한 여인들, 이방인들, 가난한 사람들, 죄인들에 관한 여러 이야기들이 특별한 관심과 감동적인 서술로 소개 됩니다.
④기도를 가르쳐주시는 예수님: 예수님 생애의 중요한 부분에서 기도에 전념하는 예수님을 보여줍니다. ⑴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3,21) ⑵죄를 용서하는 권한에 대하여 바리사이와의 충돌을 앞두고(5,16) ⑶12사도의 간택 전 밤새워 기도(6,12) ⑷수난예고에 앞서(9,18) ⑸베드로가 믿음을 잃지 않도록(22,32) ⑹기도하러 올라가신 변모의 산(9,29) ⑺십자가상에서 기도(23,34).
⑤성령의 역사 개입: 시메온의 노래를 통하여 예수님은 '다윗 왕좌를 계승하는 이'와 '이스라엘을 영원히 다스리는 이'로서 그 신원과 사명이 제시되는데 이러한 모든 일들은 1장 4명의 인물에게 나타난 하느님의 약속인 성령의 역사개입이라고 기술합니다(1,15 세례자는 태중에서부터 성령으로 가득 차;1,42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 차; 1,67 즈카르야는 성령으로 가득 차; 마리아에게1,35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예수님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이들은 이 사명을 성령의 은혜를 입어 수행하게 됩니다.
⑥루카복음서에만 전해지는 네 개의 찬가
❶마리아의 노래(Magnificat) 1,46-55; Magnificat은 불가타에서 "찬양한다(그리스말 메가뤼노 Μεγαλύνω) "를 뜻하는 마니피캇으로 시작되어 이 노래의 제목이 되었습니다. 초기 그리스도 교회의 찬미가로 불렸고 다가올 메시아에게 이러한 역할을 기대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❷즈카르야의 노래(The Benedictus)1,67-79 ; 이 노래에 붙여진 베네딕투스라는 이름은 라틴어로 시작되는 첫 줄 "Benedictus Dominus Deus Israhel"(찬미하여라, 이스라엘의 주 하느님을!)에 의한 것입니다. 즈카르야의 노래는 개작된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의 찬미가입니다.
❸영광송(Gloria in excelsis Deo) 2,14
❹시메온의 노래(The Nunc dimittis) 2,29-32 ; 눈크 디미띠스라는 제목은 ‘이제는 떠나가게 하소서’의 라틴말입니다. 죽기 전 메시아를 뵙기를 간절히 청했던 시메온이 예수님을 안고 부른 이 노래는 하느님 구원이 이 땅에 도래했다는 결정적 사실을 나타냅니다. 이 찬미가는 시메온이 이스라엘의 구원을 감사하면서 하느님을 찬미하는 내용이며, 예수님의 소명에 관한 시메온의 예언은 이른 바 그리스도론입니다.
6. 루카복음서의 신학적 특성
①예루살렘; 루카복음서에서 예루살렘이 예수님 활동의 목적지였다면, 두 번째 작품 사도행전 에서는 예루살렘이 제자들 복음 선포의 출발점이 됩니다. 루카는 도성 예루살렘에 큰 의미를 부여합니다(13,22.33;17,11; 18,31; 19,11).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죽음과 부활로 인류구원 위업을 완성하시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향하십니다(9,51-19,28).그리고 예루살렘은 인류구원 사건이 완성된 곳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으라고 하셨고(루카 24,49),마르코 복음서에 의하면 예루살렘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갈릴래아로 보냅니다(마르 16,7).
②예루살렘 상경기; “하늘에 올라가실 때가 차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마음을 굳히셨다.”(9,51) 이 구절과 더불어 예수님의 긴 여행, 곧 ‘예루살렘 상경기’(9,51-19,27)가 시작됩니다. 예루살렘으로 향하시는 9,51의 예수님 모습은 구세사를 한마디로 요약해주는 엄숙한 표현입니다. 이 부분에서 예루살렘에 도착하기 전까지의 예수님 활동상이 상세히 묘사됩니다.
③루카복음서 기술 및 문학적 특징
❶서문: 루카는 수신인을 ‘테오필로스’라고 밝히고 머리말에서 자기 작품의 주제와 집필 방법과 목적을 명시하면서 지금까지 들어 온 이야기들이 진실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려합니다. 저자가 말하는 ‘우리 가운데에서 이루어진 일’은 하느님의 계시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진 사실을 말합니다. 루카는 처음부터 자세히 살펴본 후 새롭게 구성 하였고 그것을 순서대로 썼는데, 이것은 루카가 ‘이루어진 일’들에 대한 의미를 파악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독자는 이 안에서 자신을 발견하며 자신을 어떤 바탕위에 세워야할 것인지를 인식하게 될 것입니다. 교부 오리게네스(185- 254 알렉산드리아)는 말합니다. “그런즉 루카 복음의 목적은 구원에 이르기까지 버텨 낼, 완전한 지식에 바탕한 굳건한 믿음이다.”
❷고유자료: 세기를 두고 감동을 일으켰던 이야기들이 모두 루카의 특수사료에 속합니다.
⑴유년기 이야기(1─2장), 몇 가지 기적(7,1-17; 13,10-17; 14,1-6; 17,12-19),
⑵회개(7,36-50;19,1-10;23,40-43),헤로데의개입(13,31-33;23,8-12),부활이후발현 (24,13-35.36-53),
⑶일련의 비유들 곧, 착한 사마리아인(10,29-37), 벗의 청을 들어 주는 사람(11,5-8), 어리석은 부자(12,16-21),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13,6-9), 탑을 세우는 이와 출전하는 임금(14,28-33), 되찾은 은전과 아들(15,8-10.11-32), 약은 집사(16,1-8), 부자와 라자로(16,19-31), 해야 할 일을 하는 종(17,7-10), 불의한 재판관(18,1-8), 바리사이와 세리의 비유(18,9-14).
❸기술방식: 루카의 어휘는 다른 복음서보다 훨씬 다양하고 풍부합니다. 그의 문학적 재능은 무엇보다도 말 한 마디로 상황의 비장성을 표현하는 서술의 절제성에서 잘 나타납니다(2,7; 7,12; 8,42; 9,38).또 회개하는 강도(23,40-43), 엠마오로 가는 길(24,13-35), 되찾은 아들의 비유(15,11-32) 같은 데에서 느껴지는 극적인 긴장감으로도 잘 드러납니다.
❹역사적 고찰: 무엇보다도 루카 복음은 신중하게 다루어진 작품입니다. 그에게는 자료를 조사할 기회가 충분하였고 바오로의 동료로서 교회의 지도자들과 많은 접촉이 있었을 것입니다. 루카의 역사적 상황의 배려가운데 하나는 연대를 나타내는 기술에서 볼 수 있는데, 연대를 표기하기 위하여 동시대의 역사적 소개를 적어도 여섯 가지를 들고 있습니다. 즉, ⑴티베리우스 재위 15년째 ⑵본티오 빌라도가 유다 총독으로 있을 때 ⑶헤로데가 갈릴리의 영주로 있을 때 ⑷그 동생 필립보가 이두래아와 트라코니티스 영주로 있을 때 ⑸리사니아가 아빌레네의 영주로 있을 때 ⑹한나스와 카야파가 대사제로 있을 때 ‘그때 요한은 광야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들었다’는 식의 표현입니다.
④오늘;
⑴“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2,11)
⑵“오늘 이 성경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4,21)
⑶‘우리가 오늘 신기한 일을 보았다.’ 하고 말하였다. (5,26)
⑷“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19,9)
⑸“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23,43)
아직 완성된 구원의 모습은 아니지만 ‘오늘’ 여기에서 이미 하느님 구원의 손길을 깊이 체험할 수 있음을 뜻하는 구절들입니다. 루카복음서에 나오는 ‘오늘’은 단지 이 세상에서 흘러가는 어제 오늘 내일의 영역에 속한 개념이 아닙니다. 이 ‘오늘’은 이 세상 시간을 까마득히 뛰어넘는 ‘구원된 날’을, 이미 앞당겨 체험하는 ‘천상의 오늘’을 의미합니다.
⑤예수님의 두 가지 主要 가르침
❶하느님 나라; 예수님 가르침의 핵심은 ‘하느님나라’입니다. 예수님의 여러 표징들은 말씀이 구체적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보여주고, 나아가 하느님의 다스림이 우리 가운데에 드러나 있다는 것을 의미 합니다. 루카복음에서는 적어도 네 가지 이상의 하느님나라에 관한 말씀이 있습니다.
⑴“죽기 전에 하느님의 나라를 볼 사람들이 더러 있다.” 9,27
⑵“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 11, 2
⑶“하느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있는 것이다.” 11,20
⑷“하느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17,21
하느님나라는 예수님으로 인하여 ‘이미’ 와있고 ‘너희 가운데에’ 있지만, 한편으로 기다려야하는 미래이기 때문에 하느님나라의 도래를 위하여 기도해야합니다. 하느님나라는 형태가 아니라 신앙의 상태입니다. 성경을 근거로 신학적으로 정리된 하느님나라는 Already come but not yet! ; Now and hear but not yet! 입니다. 하느님나라는 ‘이미’와 ‘그러나 아직’이라는 현재와 미래 사이의 긴장관계를 이루고 있다고 성경을 통하여 이해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어 ‘나라’ 또는 ‘왕국’의 그리스말 바실레이아(βασιλεία)는 다스림, 왕권, 통치권, 왕국, 국가, 제국 등의 기능적,영토적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하느님의 다스림이 ‘이미’ 시작되었다는 신앙은, 바로 지금 새로운 태도로 함께 일하고 행동하도록 격려합니다.그리고 ‘아직’인 나라에 도달하기 위한 신앙은 우리의 모든 시간을 하느님께 의탁하는 것입니다.
❷이웃사랑;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에서 강도를 만나 죽어가는 사람을 두고 사제,레위인은 그냥 지나가지만 사마리아인은 응급조치한 다음 여관에 데리고 가 그를 돌보아주도록 부탁하고, 혹시 발생 할지도 모를 추가 경비도 지불하고 떠납니다. 완벽한 선행이었습니다. 敎父들은 이 사마리아인을 예수님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사마리아'는 히브리말로 목자를 뜻합니다. 예수님은 구원을 필요로 하는 우리들의 상처를 싸매주고, 치유할 수 있도록 교회라는 여관에 우리를 맡겼으며, 다시 돌아와 보살펴주겠다고 약속하고 떠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우리 자신이 누군가에게 그와 같은 이웃이 되어주라고 하십니다. 이 두 가지 주요가르침은 곧 하느님을 사랑 하여라, 이웃을 너자신처럼 사랑하여라 입니다.
7. 예수님 시대와 교회 시대
(1) 루카는 자기의 두 번째 작품을 사도들의 복음 선포에 할애하려고 의도하였기 때문에, 예수님 시대와 교회 시대의 차이를 마태오나 마르코보다 더욱 분명하게 드러낼 수 있었습니다. 루카 복음에서는 이스라엘만을 위한 예수님의 행적을 보여 줍니다. 물론 이 복음서 역시 구원의 메시지에 담겨 있는 보편주의적 목표를 지닙니다. 그러나 그것은 항상 미래의 예고 또는 예표론적(豫表論的)인 예시(豫示)에서만 이루어집니다(3,23-38; 4,25-27; 7,9; 8,39; 10,1; 17,11-19).
부활하신 분께서 마침내 다른 민족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라고 명령하십니다(24,47-48). 예수님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이들은 이 사명을 성령의 은혜를 입어 수행하게 됩니다(24,49;12,12). 그러나 복음서 안에서는 성령으로 잉태되신 예수님만이(1,35) 유일하게 성령의 권능을 지니고 행동하십니다(3,22; 4,1.14.18; 10,21). 유아기 이야기에서 시메온은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배척하리라고 예고합니다(2,34-35). 이 배척은 복음서 내용이 펼쳐지면서 조금씩 일어나지만, 십자가에서도 완전히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23,34 참조). 성령께서 강림하신 뒤에, 사도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유다인들을 다시 회개와 구원으로 부르기 때문입니다.
(2) 루카는 이렇게 예수님 시대와 교회 시대를 명백히 구분하여, 역사 안에 펼쳐지는 하느님 위업의 여러 단계를 밝히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둘러싼 사건들을 이런 식으로 서술하면서도, 구원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단 한 번으로 모든 사람에게 주어졌다는 사실은 결코 잊지 않습니다. 그는 복음서 시작 부분에서부터 구원이 ‘오늘 여기에서’ 이루어졌다는 구원의 현재성을 강조합니다. 이 세상에 생존하시는 첫 순간부터,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아드님이시고 구원자이시며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설교는 가난한 이들과 하층민들을 향한 구원의 메시지로 시작합니다.
루카는 예수님 시대를 서술하면서 이미 교회까지 염두에 둡니다. 그는 열두 제자를 마태오나 마르코보다 훨씬 더 자주 ‘사도’라는 칭호로 부릅니다. 그러면서 그들이 교회 공동체 안에서 수행해야 하는 임무, “나날이”(9,23; 11,3; 17,4) 지켜야 하는 생활 규칙,회개(5,32; 13,1-5; 15,4-32; 특히 7,36-50; 19,1-10; 23,39-43의 장면), 믿음(1,20.45; 7,50; 8,12-13; 17,5-6; 18,8; 22,32; 24,25), 예수님께서 줄곧 보여 주시는 본보기에 따라 바쳐야 하는(3,21) 기도(11,1-13; 18,1-8; 21,36; 22,40.46), 그리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 안에서 핵심이 제시되는 애덕 등을 강조합니다. 루카는 이 애덕을 가끔 자선으로 드러낼 것을 제안하는데(11,41), 그렇게 하면 재물의 포기라는 이상도 동시에 실현된다는 것입니다(5,11; 14,33). 이러한 것들이 제자들에게 엄격히 요구됩니다. 그러면서도 루카 복음서는 다른 모든 복음서보다도 더 기쁨이 넘쳐납니다. 하느님의 구원은 사람들을 기쁨 속으로 불러들이는 것입니다.
(3) 예수님께서는 종말에 다시 오실 것을 예고하시는데, 루카는 이러한 전망을 교회 시대가 끝나는 시점에 배치합니다(12,35-48; 17,22-37; 18,8; 19,11-27; 21,5-36). 그러나 현재의 구원, 파스카 이후에 예수님께서 주님이시라는 사실, 그리고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성령의 작용이 강조되는 루카 복음서에서는, 재림(再臨)이 임박하였다는 긴장감이 완화됩니다(17,23). 재림에 대한 희망은 온통 오늘의 구원에 대한 기쁨에 잠겨 있습니다.
8. 종말론 (終末論,에스카토로지아 eschatologia)
루카복음에는 두 편의 종말론이 있습니다. 17,20-37은 語錄集에서 옮긴 것이고 21장 5-36은 마르코복음 13장의 종말론을 자신의 종말 사상에 따라 수정 및 가감한 것입니다.
흔히 종말론을 ‘마지막 것들(타 에스카타, τά ἔσχατα)’ 에 관한 이론이나 학문으로 번역합니다. 이러한 종말론은 개인에 관련된 개별적 종말론과 인류의 역사와 관련된 우주적 종말론(;재림사상, 죽은 자들의 부활, 세상에 대한 심판, 세상의 종말=에스카톤 eschaton)으로 구별하여 다루고 있습니다. 생명은 결정적으로 제한적이기 때문에 개별적 종말에 대한 즉, 죽음에 대한 성찰은 오늘날에도 진지한 주제입니다. 그러므로 종말론에서-개인적으로든,우주적으로든-하느님나라를 사는 지침을 예수님 말씀으로부터 認知 해야 합니다.
1) 17장에 수록된 語錄集의 종말사상 요약
⒜하느님나라는 곧 도래한다 ⒝사람의 아들은 곧 재림한다 ⒞종말은 임박했으나 예기치 못한 때에 들이닥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시기와 장소는 미리 알 수 없다 ⒠종말은 시간적으로 예상할 수 없고 공간적으로도 어느 한 곳에 국한될 수 없다 ⒡그러므로 이러한 종말에 대비하여 회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노아시대의 사람들처럼 멸망하게 된다.
2)종말의 표징 21,7-38
종말에 일어날 환난을 묵시문학적 표현법으로 21,7 재난의 시작➜21,20 가장 큰 재난➜ 21,25 사람의 아들이 오시는 날➜21,29 무화과나무의 비유➜ 21,34-36 ‘깨어 기도하여라’로 마칩니다.
이스라엘사람들에게 깊이 작용한 묵시문학적인 요소를 예수님께서도 받아들이시어 당신의 말씀에 인용하십니다. 그러나 종말의 시기, 장소, 종말에 구원받을 사람의 수를 계산하는 일 등을 일축 하시고 현재의 중요성을 강조하시면서 깨어 기다리는 믿음의 결단을 촉구하십니다. 세상 종말의 표징에 관한 질문은 당시 유다교에서 오래전부터 제기 되어왔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여기에서는 종말의 표징들 세 가지 주제가 밀접하게 연결되어있습니다. 곧 ⑴예루살렘의 파괴, ⑵세상종말, ⑶사람의 아들의 영광스러운 재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종말의 표징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사람의 아들이 오시는 날을 깨어 기다리라고 권고하십니다.
3)예루살렘파괴와 이방인의 시대
루카는 예루살렘멸망 사건을 이스라엘의 불충에 대한 하느님의 징벌로서, 역사적 사건으로 알려주려 합니다. 그러한 의도로 이방인의 지배시대를 예루살렘멸망예고 다음에 배치합니다. 징벌의 결과가 이방인의 시대(21,24)라는 것입니다.
루카복음서가 대략 80년경 저술되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성전파괴 예고를 서기 70년의 티투스의 예루살렘파괴 상황을 본 루카가 상세하게 삽입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로마제국시대 전반에 걸쳐 콘스탄티누스대제의 313년 종교의 자유가 선언되기까지(밀라노의 칙령) 이스라엘은 다른 민족의 손에 넘겨지지만, 그 고난으로 인하여 사람들은 그리스도교 안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이 기간이 끌날 때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배척한 예수님께 돌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사도바오로가 로마서 11,25-27에서 토로하는 희망인데 루카도 동감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루카에 의하면 종말의 징조는 우주적인 이변인데 이것을 이스라엘 뿐 아니라 온 세상이 보게 될 것입니다.
21,28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
속량의 그리스말 아폴뤼트로시스 (ἀπολύτρωσις)는 속전(贖錢)을 지불하고 노예나 포로를 해방 시키는 행위를 뜻하는데 4복음서에서는 유일한 부분입니다. 바오로사도가 사용한 몸값(로마 3,23; 1코린 6,20),이 구원을 위하여 지불된 값은 당신의 아드님을 내어놓은 값진 성격을 강조 하는데 있습니다. 이때 치룬 값이 예수님의 생명이었습니다.
21,32 ‘이 세대가 지나기 전에’라는 終末時限語는 초대그리스도인들이 굳게 믿은 말로서, 이 어절은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의 사상이 반영된 첨가문일 가능성이 큽니다. 이 終末時限語는 다음절의 ‘깨어있어라’로 설명되면서 결론짓습니다.
21,34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 든 일에서 벗어나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
‘깨어있어라’에 관한 비유의 핵심은 하느님나라에 대비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그날은 바로 ‘하느님나라의 도래’입니다. 그러나 초대교회의 종말사상은 ‘예수님의 재림’으로 이해되었는데 교회론적으로 종말과 재림 이 두 가지는 같은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모든 말씀은 사실 종말론적 설교입니다. 마지막 날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날까지 행복하게 살기위한 선택이 종말론의 핵심입니다.
맺음말; 기쁜소식 εὐαγγελίου
루카복음은 예수님의 ‘기쁜소식’(에우안겔리온,εὐαγγελίου)에 우리를 초대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앞장서서 가시면서 그에게 다가서서, 그에게 돌아서서, 그를 보시며 등의 형식으로 함께 걷고 지내며 말씀하십니다. 성령의 힘을 받은 제자들은 예수님을 구체적으로 체험하였으며 하느님께서 그분을 살리셨고, 살아계신 주님을 믿는 자는 구원되었다는 선포(kerygma, κήρυγμα)를 하게 됩니다. 루카는 무엇보다도 현대의 독자들이 예수님의 신비에 다가갈 수 있도록 복음서를 집필 하였습니다. 가난한 이들과 죄인들, 이방인들에 대한 특별한 관심과 함께, 예수님을 만민의 구원자로 보여 주었습니다. 루카복음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요구하신 나날이 지켜야하는 생활 규칙은 매일 지고 따라오라는 십자가입니다. 오늘 매일의 십자가를 지는 삶은 자기절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언제나 기도하면서 일상의 모든 일에 대하여 최선을 다한 후 모든 것을 나와 우주를 주관하시는 하느님께 온전히 맡기는 삶이 비움의 삶입니다. 또한 매일의 십자가가 강조하는 것은 無所有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포기를 요구하시면서, 동시에 포기에 따르는 은혜를 베푸시는 생명의 주님이시라는 것을 루카복음은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비움은 깨달음에서 오고 깨달음은 자신의 삶을 가치있게 하고 긍정적 에너지로 채워줍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영적인세계로 들어가면, 우리가 세상에서 잘 살 수 있도록 많은 것을 주어서 세상에 내보내실 것입니다. <루카복음서 [1] 입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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