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그리스도의 신비
Ⅰ.마태오복음입문 Ⅱ.예수그리스도의 탄생 Ⅲ.나자렛사람 예수
Ⅰ.마태오복음서 입문
1. 복음
영어의 복음(gospel)이라는 말은 ‘좋은 이야기’를 뜻하는 앵글로색슨어 ‘god-spell’에서 유래했는데, 이것은 ‘기쁜 소식’또는 ‘좋은 이야기’를 뜻하는 라틴어 에반젤리움(evangelium)과 그리스어 에우안겔리온 (εὐαγγελίου)을 번역한 것입니다. ‘복음’은 무엇보다도 먼저 이에 해당하는 그리스 말 용어가 뜻하는 대로 구원의 ‘기쁜 소식’(εὐαγγελίου. 마르 1,1;1,15), 그리고 이 기쁜 소식의 선포를 뜻합니다. 곧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인격체 안에서 이루어진 구원의 선포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과거에 하신 모든 언행을 새로운 눈과 마음, 곧 ‘파스카 신앙’으로 돌아보게 됩니다. 이 파스카 신앙 속에서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선포하였고, 각 교회 공동체가 처한 상황에 따라, 그분의 말씀을 되풀이하고 그분께서 하신 여러 가지 일을 이야기합니다. 이렇게 하여 약 사십 년 동안에 걸쳐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여러 구전(口傳) 전통이 형성됩니다. 즉, 설교와 전례와 교리교수 등을 통하여 이 전통들이 오늘날 우리가 복음서에서 보게 되는 모든 자료를 보존하고 전승하였던 것입니다. 복음서 저자들은 구전으로 내려오는 것들을 나름대로 이해하고 또 그것에 응답하면서 이어받아 자기들의 고유한 관점에 따라서 복음서를 저술하였습니다.
2.정경(正經;Canon;κανών) 선집 과정
①성경을 지칭하는 ‘테스타멘툼 Testamentum’은 ‘유언’ 또는 ‘하느님과 인간과의 계약’이란 뜻입니다. 가톨릭은 성경을 계시(啓示; 영어 Revelation; 라틴어 Revelum; 그리스어 Ἀποκάλυψις;아포칼륍시스)된 교의(敎義. Dogma)의 원천이며 신앙의 원리를 가르치는 근본으로 믿고 있습니다. 성경은 ‘옛 계약’을 뜻하는 구약(舊約)과 ‘새로운 계약’인 신약(新約)으로 구분됩니다. 이 구약과 신약을 합해 ‘성경(The Bible,그리스어 타 비블리아 τὰ βιβλία)’이라고 부른 것은 요한 크리소스토모(349-407)가 최초입니다.
②신약성경은 그리스 말로 쓰인 스물일곱 권의 책을 말하는데 이 문헌 전체를 ‘신약성경’이라는 이름으로 일컫게 된 것은, 바오로 사도에 이어서(2코린 3,14) 그리스도교 초기 신학자들이 내린 결론에 기인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새 계약’을 이야기함에 따라, 그 때까지 “율법과 예언서”라고 부르던 작품에 ‘구약성서’라는 명칭을 부여하게된 것입니다. 27권의 책이 각각 편집되고 신약성경이라는 한 작품으로 결집되기까지는 길고 복잡한 과정을 거칩니다. 성경은 그리스도교에서 신앙과 생활의 규범이 되는 책입니다. 그래서 4세기 중반부터 성경을 본격적으로 ‘카논(經典/正經 Canon,κανών)’이라고 부르기 시작합니다.
③대략 150년부터 신약성서 경전 형성의 결정적인 시대가 시작됩니다. 경전의 형성은 4세기에 끝나는데 이렇게 종결된 경전은 대체로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동일합니다. 1546년 트리엔트 공의회는 382년 로마 주교회의의 성서 목록 확정을 받아들여 가톨릭은 구약46권, 신약27권의 성경 73권 목록을 경전으로 확정하여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구약성경은 오경 5권과 역사서 16권, 시서와 지혜서 7권, 예언서 18권 등 46권이며, 신약성경은 복음서 4권, 사도행전 1권, 바오로 서간 9권, 사목서간 4권(티모테오, 티토, 필레몬서), 가톨릭서간 8권(히브리서, 야고보서, 베드로 1.2, 요한 1.2.3, 유다서),묵시록 1권 등 27권으로 되어있습니다.(AD 90년경에 팔레스티나의 유다교 율법학자들은 얌니아에서 회의를 열고 성서의 목록을 결정하였는데 70 인 역(譯) 중 처음부터 그리스어로 쓰인 성경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가톨릭 교회는 이 책들을 구약 성경의 일부로 받아들이나, 개신교는 히브리 말 성경에 실려 있는 성경만을 구약 성경으로 인정하기 때문에 성경 권수의 차이가 있다. 히브리성경에서 제외 된 책들은 유딧서, 토비트서, 마케베오 전후서, 지혜서, 집회서, 바룩서, 에스텔서와 다니엘서의 그리스어로 된 내용들, 예레미야의 편지이다.)
④신약성경 필사본
신약성경의 작품들은 모두 그리스 말(κοινὴ)로 쓰였고 이 언어로 필사된 수사본이 오천 개 이상으로 전해집니다. 가장 오래된 수사본으로는, 4세기 것으로 판단되는 양피지 성경 두 권이 있습니다. 이 둘 가운데에서 높이 평가되는 수사본은, 바티칸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관계로 ‘바티칸 사본(Codex Vaticanus)’이라 부르고, 시나이 산 기슭의 성 가타리나 수도원에서 발견되었다 하여 ‘시나이 사본(Codex Sinaiticus)’이라고 불리는 두 번째 수사본에는 신약성서가 모두 들어 있습니다.
⑤성경필사(筆寫)
신약 성경 본문은 수백 년에 걸쳐 필경사들의 손에 필사되고 또 필사되어 왔습니다. 그러므로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도, 필사본과 ‘원본’이 완전히 일치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성경 본문이 수백 년 동안 전승되면서, 필경사들이 끌어들인 변형(變形)들이 점점 더 덧붙여져 인쇄 시대까지 내려온 최종 본문에는 이문(異文)들이 상당히 많다는 것입니다. 성서 본문들이 편집된 초기부터 인쇄술이 발명되어(1454년, 쿠텐베르크) 고정될 때까지 천사백 년이라는 세월동안의 간격, 신약성서가 탄생하고 퍼져 나간 역사적, 종교적, 그리고 문화적 환경, 본문의 진정성여부 등에 대한 것도 알고 있는 것이 성경을 모호하거나 막연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조건이 됩니다.
⑥본문 비평학이 밝혀낸 주요 본문
❶ ‘안티오키아 본문’ 또는 ‘시리아 본문’: 300년경 시리아의 안티오키아에서 유래하는데 비잔틴 지방에서 가장 많이 이용되는 본문이 되었기 때문에 ‘비잔틴 본문’이라고도 합니다. 신약 성경이 인쇄될 때에는 이것이 채택됩니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받아들이는 본문 ‘공인본문’이라는 뜻의 라틴 말 명칭 ‘텍스투스 레셉투스 textus receptus’로서 삼백 년 이상 표준 본문으로 인정을 받아 왔고,이 본문으로 1516년에 최초의 그리스어 신약성경이 인쇄됩니다.
❷ ‘알렉산드리아 본문’ 또는 ‘이집트 본문’: 이 본문은 늦어도 300년경부터 있어 왔는데 이 본문을 더러 ‘중립 본문’이라고도 합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전체적으로 이 본문에 높은 비평적 가치를 부여하는 데에 의견이 일치하였고 19세기 후반부터는 그리스 말 신약 성경이 흔히 이 본문 형태에 따라 출판됩니다.
3. 공관(共觀)복음(synoptic gospel)
로마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보이는 마르코 복음서는 65-70년쯤에 편집되었을 것으로 여겨지며 마태오 복음서와 루카 복음서는 그보다 15년에서 20년 뒤에 저술됩니다. 이 세 복음서는 관점(‘with the same eye’)이 같다고 하여 ‘공관(共觀) 복음서(함께 본다는 뜻의 시납틱synoptic 가스펠gospel)’라고 불릴 만큼 비슷한 방식으로 복음을 전합니다. 이 명칭은 18세기 말 ‘공관’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된 어떤 작품에서 유래합니다. 세 복음서는 모두 네 개의 큰 단락으로 모아져 있습니다. 즉, ❶예수님의 공생활 준비 ❷갈릴래아 전도❸예루살렘 상경 ❹예루살렘 전도 및 수난과 부활.
대다수 학자들의 가설에 따르면 마태오 복음서와 루카 복음서는 마르코 복음서에 직접적으로 종속되면서, 또 다른 공통 원천 ‘Q-문헌’(Logion-Quelle 로기온 크벨레)을 사용하였습니다.
4. 신약성경시대의 사회,종교,정치적 배경
1)디아스포라와 회당
70년 유다혁명에 대한 로마의 강경진압으로 예루살렘이 함락된 이후 유다인들은 지중해변 각지로 흩어지는데 이 거류민들을 ‘디아스포라(διασπορά)’라 부르며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시리아의 안티오키아, 로마 등에 많은 유다인이 거주하였습니다. 디아스포라의 유다인들에게는 법적으로 특수한 신분이 인정되어, 모세의 율법에 바탕을 둔 종교적·민사적 행정을 펴 나갈 수 있었고 유다인들의 삶은 회당을 중심으로 전개되었습니다.
2)최고의회와 종파(宗派)
유다인들은 율법을 고수하며 하느님의 구원을 믿고 살아가는 길을 선택했으나 그 길을 어떻게 가느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였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유다교는 여러 종파를 형성하였습니다.
❶최고의회(그리스 말 쉬네드리온 συνέδριον, 아람 말 산헤드린Sanhedrin).
예루살렘 중앙의회는 사제와 평신도(바리사이,율법학자)71명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유다민족은 정치적으로는 로마의 지배를 받았지만 직접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최고의회였습니다.
❷율법학자(율법학자 scribes, γραμματεῖς; 율법교사 lawyers, νομικοῖς)
신약 성경에서는 토라 해석가들이 “율법 학자”라고 불립니다. 이들은 여러 해에 걸친 학습을 한 후 任職式을 통해 율사가 됩니다.
❸사두가이(Sadducees,Σαδδουκαῖοι)
사두가이들은 이교도 식민 통치자들과 협력 또는 결탁한다는 혐의를 백성에게 많이 받았고 백성에 대한 모든 영향력을 상실합니다.기원후 70년에 성전이 파괴되자, 전적으로 성전에 종속되었던 사두가이들도 자연히 몰락하게 됩니다.
❹바리사이(Pharisees, Φαρισαῖοι)
바리사이는 헬레니즘화에 대항하던 투쟁에서 형성된 평신도 운동이었습니다. 전 지역을 통하여 그들은 경건한 평신도로서 결속력을 형성하고 있었고 일정한 수습기간을 거쳐 신성한 의무를 준수할 것을 서약 하는데 십일조 준수와 정결례 규정의 준수는 의무이며 그밖에 선행,하루 세 번 시간기도의 엄수, 주 2회 금식 등을 지킬 것을 서약합니다. 바리사이의 특징적 행동은 식사 전 손을 씻는 정결예식으로서 제관들의 儀典的 의무(탈출 30,17-21)를 엄수하는데, 이는 제관들의 구원에 자신들도 포함하려는 것으로서 perisajja라는 명칭으로 자신들을 경건한자들로 분류합니다.
❺열혈당과 에세네
⑴‘열혈당(Zelotes, Ζηλωτήν)’은 바리사이의 극단적인 한 지류를 이루었던 것 같고 여기에 속한 당원들은 수단을 가리지 않고, 심지어 폭력을 써서라도 사람들에게 율법 준수를 강요하기로 작심한 이들이었습니다. 예수님, 그리고 바오로의 제자가 된 사람들 가운데 이 열혈당과 관련이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⑵에세네파(The Essenes,Ἐσσηνοί)들은 대부분 수도 생활을 하였지만 그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쿰란의 대수도원 밖에 거주하면서, 팔레스티나 대중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였을 수도 있습니다.
3)로마제국시대
①그리스도교 시대가 시작될 때, 지중해 변과 근동은 알렉산드로스 대제가 이룩한 그리스계 제국을 이어받은 로마 제국의 세상이었습니다. 로마의 통괄 아래 단일한 문명이 펼쳐지고 있었고 공통어는 계속 그리스 말이었습니다(κοινὴ).
②로마 제국이 팔레스티나를 다스리던 시대의 초기에는 大헤로데가(마태 2,1) 기원전 40년에서 4년까지 다스립니다. 그가 죽자 세 아들 중 헤로데 안티파스(BC4~AD39)가 세례자 요한을 죽이고(마르 6,17-29)예수님께서 재판을 받으실 때에 일정한 구실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루카 23,6-16). 신약 성경에 따르면, 대헤로데의 손자 아그리파스 1세가 갓 태어난 교회를 처음으로 박해한 자입니다(사도 12,1-23).
③예수님께서는 로마제국의 초대황제 아우구스투스 옥타비아누스(BC27~ AD14)때에 태어나셨고, 2대 황제 티베리우스의 치세(AD14~37)때에 수난하시고 부활하십니다.
④그리스도교 시대 직전부터 황제 숭배가 로마 제국에 의해서 공식적으로 강요되지는 않았지만 황제 자신은 자기를 신으로 섬기도록 내버려 두었고 일면으로는 제국의 통치를 위해 황제숭배를 이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황제 숭배는 다른 종교 형태들(그리스-로마의 수 많은 神)과 완전히 공존할 수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절박한 문제를 제기하게 되는데 황제 숭배와 함께 공공의 경신례(敬神禮)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일이 포함되었기 때문입니다. 종교적으로 이렇게 복잡한 세상에서 이제 그리스도인들은 황제가 아니라 그리스도만이 주님이시라는 믿음을 고백하며 살게 됩니다.
(1~4의 상세내용은 <블로그 sunny river> 신약성경입문참조)
5.마태오 공동체
마태오 복음서 저자의 자료의 선택이라든가 배열을 보면 마태오 복음서가 태어난 공동체의 관심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우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루살렘을 떠나 각각의 지역에서 그리스도 공동체를 형성 하였으며 더불어 많은 시련들이 공동체 안에 들어왔습니다. 첫 목격자와 직계 제자들은 모두 떠났고 공동체의 믿음은 약해졌으며, 뽑고 싶은 가라지처럼 공동체 안의 식구들이 원수임을 피차에 통감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생명에 이르는 문은 좁고 그 길로 찾아 드는 사람이 적어지게 되었습니다. 봉사정신의 자각과 가난한 자들, 죄인들 향한 사랑에 대한 강력한 견책이 필요해졌습니다.
①마태오 공동체는 율법주의에 강력하게 저항한다.
마태오는 복음서 저자들 가운데에서 율법과 구약성경과 유다인의 관습을 가장 많이 강조합니다. 예컨대 그는 유다교 신심에서 가장 중히 여기는 세 분야, 곧 자선과 기도와 금식에 관한 바른 의식을 제시합니다. 이 복음서에서는 예수님께서 우선적으로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시면서, 몇 가지 중대한 수정이 있어야함을 강조합니다. 즉, ⑴율법이 완성되어야 한다는 사실, ⑵구약성서가 예수님 자신을 통하여 성취된다는 점, ⑶바리사이들의 전통이 불러일으킨 오용과 남용의 강조입니다.
하느님의 의지는 자유롭고 무한하기 때문에 유다에 한할 수 없고 의인을 율법으로 규정지을 수 없습니다. 예루살렘 함락 전 바리사이들은 탈출하여 얌니아에 유다학파를 창설하여 유다교 경전을 정경화 하였고 랍비직은 고유 형태가 되었습니다. 얌니야공의회는 그리스도교를 이단으로 간주하여 기도문 ‘비르캇 함미님’에서 그리스도인들을 단죄 하였습니다. 그리스도교 또한 복음서 내에서 율법학자들과 예수의 죽음을 책임지겠다고 지도자들의 처신을 수락했던 사람들을 비난하면서 더불어 그리스도 공동체를 준엄하게 힐책합니다(너희가 심판하는 그대로 너희도 심판받고....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7,2-3). 그리고 11,28-30 무거운 율법의 짐을 진자들 복음으로 초대합니다. 5장의 산상 설교 가운데에 나오는 반대 명제(“…옛 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가 가리키는 것처럼, 모든 것이 철저하게 재해석됩니다. 마태오는 ‘기쁜 소식’이 다른 민족들에게 넘어간다는 사실을 역설(力說)합니다. 이제 그의 관심은 전세계적 차원으로 복음이 울려 퍼지는 일입니다.
②마태오 공동체의 제자들은 무능하지 않다.
마태오 복음서에서는 제자들이 마르코 복음서와 달리 이해하는 데에 우둔하거나 무능하지가 않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계시 과정에서 탁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그들은 예언자이며 현인이고 새로운 율법의 학자입니다(13,52. 그리고 23,34 참조). 마태오는 제자들을 항구적인 가치를 지닌 본보기로 만들어 내는 일에 애를씁니다. 이렇게 하여, 비록 믿음이 약한 사람들로 보이기는 하지만(8,26; 14,31; 16,8; 17,20) 이 제자들이야말로 바로 미래의 모든 제자의 행동을 예시(豫示)한다고 마태오는 지적하는 것입니다.
③마태오 공동체의 그리스도
마태오는 복음서 곳곳에 구약성경을 인용하여 주님께서 예언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신 바가 이루어졌다는 구절을 11번 되풀이합니다. 마태오는 130개 구절에서 구약을 자유롭게 때로는 무리가 있게 인용하는데 그리스역 본을 사용했고 히브리 성서는 자신이 직역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구약성서를 완성하는지와 더불어 마태오는 예수님을 ‘스승’ 그 자체로 소개합니다. 마르코에서는 스승이라는 용어가 당시 고대 세계의 일반적인 의미로 쓰이며 루카에서는 예수님께서 당신의 제자들을 가르치십니다. 마태오에서는 주로 새로운 ‘의로움’ 곧 하느님의 법에 대한 새로운 충실성을 가르치십니다(5,19-20; 7,29; 15,9; 28,20). 그리고 그분은 하느님의 최종적 ‘권위’를 지니신 ‘종말론적’ 해설가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러한 분으로서 당신의 청중들을 율법학자들이 수호하는‘전통’에서 해방시키시고 그들에게 새로운 완전성을 가르치십니다(5,48; 19,21). 예수님은 마태오 복음서 첫머리에서부터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며 그리스도로서 ‘스승님’, 곧 하느님 뜻의 궁극적 해설가이십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이미 예수님을 생전에 “주님”이라고 부른다는 사실, 그리고 마태오가 예수님의 진노나 애정 같은 것을 서술하는 마르코 복음서의 표현들을 별로 채택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이해하게 됩니다. 이렇게 하여 마태오 복음서에서는 그리스도께서 마르코 복음서에서보다 훨씬 더 존엄하신 분으로 등장하십니다.
6.마태오 복음의 신학과 의의(意義)
1)마태오복음의 신학
루카 복음서에는 당시 그리스 작가들에게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작품의 대상과 선례와 동기 등을 밝히는 머리글이 있는데, 마태오 복음서에는 그러한 부분이 없습니다. 마태오는 그 대신에 예수님의 공생활 이야기를 도입하는 서론 부분(1─2장)과 자기의 복음서를 끝맺는 단락(28,16-20)에서 간접적으로 자기 작품의 의미를 밝힙니다. 28,16-20은 그리스도의 권한과 제자들 사명을 나타내는 중대 결론이며 이 복음서를 쓴 목적이 됩니다.
‘열한 제자는 갈릴래아로 떠나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산으로 갔다. 그들은 예수님을 뵙고 엎드려 경배하였다. 그러나 더러는 의심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가가 이르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여기에서 저자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이 명확히 제시된 삼위일체 교리를 설명하고 있습니다.부활하신 분의 이 발현에서 두 가지 중대한 사항이 강조됩니다. 곧 ⑴그리스도의 권한과 ⑵그분 제자들의 역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산 위에서 제자들 부르셨고 이 모임 안에서 백성들의 교회가 태동합니다. 성경의 山은 신학적의미가 있습니다. 변모의 산, 산상설교의 산, 모세가 율법을 받은 산 등이 그렇고 이 책의 끝에 제자들에게 사명을 주는 부분도 ‘갈릴래아의 산’ 위에서입니다.
①그리스도론
마태오 복음서 역시 다른 복음서들처럼 예수님의 생애와 가르침을 전합니다. 그러면서도 초기 그리스도론을 자기 나름대로 다른 복음서 저자들보다 더 명백히 제시합니다.
⑴요셉에게 예고된 “임마누엘”(1,23) 곧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을 지니신 분께서 ‘주님이시며 스승’으로서 세상 끝날 때까지(28,20) 신도들과 함께 계신다.
⑵지상에 살아 계셨던 이분께서는 당신 제자들의 중개를 통하여 충만한 권한과 함께 이러한 현존을 계속하신다.
⑶그리스도께서는 이 권한을 하느님에게서 받으신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그것을 그리스도께 넘겨 주시는 것이다(11,27).
⑷기쁜소식의 선포-이사 53장 ‘주님 종의 노래’에 예고된 대로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에게 배척을 받으신다. 그리하여 ‘기쁜 소식’이 다른 민족들에게도 전파될 수 있게 된다.
마태오 복음서의 서론(1─2장)이 이러한 사실을 압축적으로 드러냅니다. 요셉은 이스라엘과 다윗 혈통의 이름으로, 동정녀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하여 낳은 아기를 받아들입니다. 이렇게 태어나신 분을 동방 박사들이 찾아 뵙는데 이들은 ‘기쁜 소식’이 구원으로 초대하는 다른 민족들의 본보기입니다. 아기 예수님은 헤로데의 손아귀를 빠져 나가고 마침내 다른 민족들의 땅을 상징하는 갈릴래아에 몸을 피합니다. 이러한 극적인 역사 속에 이미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예시(豫示)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이러한 역사는 바로 다른 민족들에 대한 복음 선포에 이르게 됩니다. 그리스도이신 예수님께서는 선택된 민족 이스라엘의 역사를 완료하십니다.
⑸마태오가 예수님을 드러내는 또 다른 방식은 이른바 ‘성서 논증’이다.
저자는 복음서 곳곳에서 구약성경을 인용합니다. 이 인용문들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행위의 뜻이 항상 성서로써 밝혀진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기능을 가집니다.
②하늘나라
이 첫째 복음서의 특징적인 표현, 그리고 ‘하느님의 통치’에 관한 유다교 전통에도 속하는 표현에 따르면, 이 ‘기쁜 소식’의 선포는 먼저 ‘하늘나라’를 공포(公布)하는 것입니다. 사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백성 가운데에 현존하시는 통치자이시며, 특정한 때에는 당신의 그 절대적 권능과 함께 역사의 흐름 속으로 손수 개입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느님에 관해서 이렇게 말하는 방식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틀림없이 여러 세기에 걸쳐 존속하던 이스라엘의 정치 체제에서 유래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라는 전통적 표현을 받아들이십니다. 그러나 정치적 해방의 뜻으로 그 표현을 수용하신 것은 아닙니다. 마태오에게는 이 “하늘나라”가 당신 백성에 대한 하느님의 지배를 가리키는 전문 용어가 됩니다. 루카 복음서나 요한 복음서에서는 이 표현이 통상 재해석되어 ‘영원한 생명’이나 ‘하늘’ 등을 뜻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태오 복음서에서는 이 표현이 두 가지 뜻을 지닐 수 있습니다. 보통은 ‘통치’를 의미하지만, ‘들어가다’를 뜻하는 동사와 함께 쓰일 때에는 ‘왕국’을 뜻하기도 합니다.
③교회(라틴어 Ecclesia;그리스말 ‘에클레시아 ἐκκλησίᾳ’)
하늘나라는 단순히 미래만이 아니라 현재까지 그 대상으로 합니다. 13장에 나오는 “하늘나라”의 비유들이 그 특징들을 잘 드러냅니다. 씨 뿌리는 이의 파종으로 시작되는 하늘나라는 신비한 방식으로, 그리고 중간에 마주치게 되는 갖가지 실패에도, 마지막 수확 때까지 열매를 맺어 가야 합니다. 마지막 수확은 세상 종말의 사건을 가리킵니다. “교회”는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이 나라를 드러내는 표징들을 일으키는 제자들의 공동체를 가리키면서도(16,18; 18,17), 하느님의 나라와는 일정한 거리가 있습니다. 제자들의 공동체에서는 상호 봉사가 법입니다. 이러한 공동체가 베드로와 함께 하느님 나라의 열쇠를 쥐고 있습니다(16,19; 18,19).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잘 아는 이 공동체는 항상 그리고 계속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 하고 기도합니다(6,10). 그러므로 마태오의 제자들은 우둔하지 않으며 매우 탁월한 지위로 출발합니다.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전하는 모든 제자들의 예형이 되는 것입니다.
2)첫째 복음서의 의의(意義)
①교회의복음서
하느님의 자녀들이 한 공동체를 이루어 아버지의 나라를 드러내야 한다는 강력한 실천적 권고를 듣게 되는 마태오 복음서는 2세기부터 ‘교회의 복음서’로 여겨져 왔습니다. 이 복음서가 “교회”에 관하여 전하는 전통 때문일 것이고(16,18과 18,18), 그보다는 이 복음서에 들어 있는 자료의 풍부성과 그것의 질서정연한 배열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②마태오공동체의 언어
마태오는 자기의 교회 공동체를 위하여 복음서를 저술하고 자기의 교회 공동체에 말을 합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 시대의 언어를 말 그대로 옮기려는 노력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마태오가 속한 공동체의 복음서로 읽어야 합니다. 따라서 이 복음서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마태오 자신이 그려 내는 것 같은 신앙인의 자세를 취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복음서를 읽는 이는 그 문체의 셈족식 성격을 양해해야 합니다. 예컨대 여기저기에서 구약성경이 자주 인용되는데, 이는 마태오의 독자 곧 유다교 출신 신도들에게 꼭 필요하였던 것입니다. 언뜻 볼 때에 오늘날의 독자에게는 낯설고 번잡스럽게 여겨질 수도 있는 이러한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 나아가면, 마태오는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매우 강력히 말을 하게 됩니다.
③교회와 하느님나라
마태오 복음서는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완성하셨음을 전하는 복음서로서, 교회의 뿌리가 그 본원(本源)의 전통 속에 내려져 있음을 밝힙니다. 교회는 ‘새 이스라엘’이 아니라 ‘참 이스라엘’입니다. 교회는 예수님께 귀의(歸依)하지 않은 이스라엘이 이제라도 자신을 완성하기 위하여 나아가야 할 방향을 가리킵니다. 교회는 바로 이 이스라엘 안에서 자기의 뿌리를 알아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마태오는 교회를 하늘나라와 동일시하지 않음으로써, 오늘날의 교회에 그 참모습을 상기시킵니다. 예수님의 공동체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의심의 여지없이 제도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임시적인 성격을 지닙니다. 하느님의 나라만이 교회에 의미를 부여합니다. 이 하느님의 나라 또는 그분의 통치가 인간 역사 안에서 작용하면서, 교회가 하느님과 예수님에 대하여 어떠한 위치에 있는지 또는 있어야 하는지 가르쳐 줍니다.
④제자들이 사명
마태오 복음서 저자는 오늘날의 그리스도인에게 예수님 시대의 제자들의 자세를 본받으라고 권면합니다. 오늘날의 그리스도인은 바로 이들과 함께 자기의 전능하신 주님을 알아보고, 때로는 자기의 약한 믿음을 나무라시는 그분의 소리를 듣기도 하며, 또 ‘기쁜 소식’을 세상 끝까지 전파하라는 사명을 받기도 합니다. 이렇게 하여 믿는 이와 그의 주님이신 예수님 사이의 관계가 활발해집니다.
⑤현재의 그리스도인에게
부활하신 분께서는 변천하는 세상 속에 당신의 현존을 드러내시면서, 당신께서 지상 생활을 하실 때에 내리신 가르침으로 신앙인들이 끊임없이 되돌아갈 것을 촉구하십니다. 부활하신 이 그리스도께서 바로 복음서가 서술하는 나자렛 예수님과 동일한 분이시라는 것, 이것이 마태오가 전하는 증언의 핵심입니다.
마태오는 인간인 이 분 안에서 하느님의 신비를 매순간 깨닫게 하여, 16,15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고 물으실 때 즉시 대답하라고 쓴 것입니다. 그분이 나에게 누구인가? 훌륭한 위인인가? 아니면 생명인가? 어떻게 대답하느냐에 따라 내 인생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부자 청년에게 재물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고 나를 따르라고 하십니다. 재물이 필요 없기 때문이 아니라 삶의 초점을 어디에 두겠는가 즉, 선택을 말합니다. 그분이 나에게 누구인가에 따라 이것은 결정 되는 것입니다.
7.마태오 복음의 구성
마태오는 마르코 또는 루카와 공통된 원천을 바탕으로 작업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전반적으로는 유사성을 기본 틀로 하면서도, 마태오는 마르코와는 아주 다른 이야기를 제시합니다. 마태오만의 사료와 큐(Q)사료(예수 어록집), 마르코 원문을 마태오 특유의 기술로 자유롭게 인용하여 예수님의 말씀들을 같은 틀로(6,19와 6,21; 7,16과 7,20; 16,6과 16,12), 동의 병행(同意的 竝行法), 반의 병행(反意的 竝行法)을 교차 배열(交叉 配列法)로 사용하며(16,25), 상투 용어를 반복 사용하였으며(8,12; 22,13; 25,30의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 마르코의 특성이 사라지고, 대신에 간결하고 엄숙하기까지 한 교리교수적인 제시 방법이 들어섭니다.
마르코와 루카는 자료들을 단순히 나열하는 것으로 그치는데 반해, 마태오는 더욱 깊은 뜻에 따라 말씀과 이야기를 편집합니다. 그리고 비슷한 내용의 가르침을 한데 모아 놓습니다. 이렇게 하여 그는 ‘주님의 기도’(6,7-15)를 사전(事前)에 잘 배합된 틀(6,1-18) 속에 집어넣게 됩니다.
①다섯설교의 구분
무엇보다도 마태오 복음서에서는, 같은 문학적 구성의 순서 안에서도 예수님의 다섯 ‘설교’가 눈에 띕니다(=다섯 가르침). 이것들이 마태오 복음서의 뼈대를 이룹니다. 각각의 뼈대는 설교가 끝난 뒤에 배치된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다.’라는 말이나 그와 비슷한 문장으로도 드러납니다(11,1; 13,53; 19,1; 26,1 참조).
⑴하느님나라의 의로움 5-7장: 7,28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자
⑵하느님나라의 선포자들10장: 11,1 예수께서 열 두 제자에게 분부하시고
⑶하느님나라의 신비 13장: 13,53 예수께서는 이 비유들을 다 말씀하시고
⑷하느님나라의 자녀18장: 19,1 예수께서는 이 말씀을 마치시고
⑸하느님나라의 도래, 깨어있음 24-25장: 26,1 이 말씀을 모두 마치시고
②세 가지 구조에 따른 구분
⑴지리적 구조
⒜예수님의 갈릴래아 전도(4,12─13,58),
⒝갈릴래아와 인접한 여러 지방,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도중에 펼쳐지는 예수님의 활동(14,1─20,34),
⒞예루살렘에서 전개되는 그분의 가르침, 수난과 죽음과 부활(21,1─28,20).
⑵‘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다.’와 같은 결구(結句)로 나누어 놓은 다섯 ‘설교’(5─7장; 10장; 13장; 18장; 24─25장)에 따른 구조
⑶복음서 전체를 두 개의 큰 부분으로 나누는 구조
⒜첫째 부분(3,1─13,58)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드러내시면서 기쁜 소식을 선포하라고 제자들을 보내신다. 이제 사람들은 그분 쪽에 설지 반대쪽에 설지 선택 해야 한다. 곧 청중은 이미 일어난 기적들 또는 비유를 통한 새로운 가르침을 계기로 자기들 앞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아보도록 촉구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마침내 고향 사람들에게 배척을 받으신다(13,53-58).
⒝둘째 부분(14─28장)에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통하여 당신을 부활의 영광으로 이끄는 길을 걸어가신다. 예수님께서는 교의적(敎義的) 바탕 위에서 당신의 공동체에 특수한 가르침을 내릴 수 있도록 도와 주신다.
❶예수님께서는 그 곳으로 장엄하게 들어가셔서 성전을 ‘차지하신다’(21,1-22).
❷그분께서는 적대자들과 맞서신다. 곧 세 개의 비유로 하느님의 뜻을 드러내시고(21,28─22,14), 그들과 벌어진 논쟁을 승리로 끝내시고 그들의 함정도 훌륭히 벗어나신 다음(22,15-46),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위선을 책망하신다(23장). 또 온 세상이 받을 심판을 예고하신다(24─25장).
❸사람들이 당신을 재판하고 단죄하도록 내버려 두신다(26─27장).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다시 살리신다(28장).
마태오는 이렇게 극적인 사건들을 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다 백성에게 어떠한 유보도 없이 당신을 전적으로 추종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그리고 다른 민족들도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음을 공포하십니다. 하느님의 백성은 본디 이러한 다른 민족들과의 만남을 통하여 완성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거부함에 따라 그 만남이 분리, 가슴아픈 결별이 되고 맙니다. 이 때부터, 부활하신 예수님의 가르침에 충실한 제자들의 공동체가 진정한 하느님의 백성이 됩니다. 반란을 일으킨 소작인들의 손아귀를 벗어난 이 새 백성은 이제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21,43).
8.마태오복음서의 저자
그리스도교의 가장 오래 된 전통(2세기 전반부 히에라폴리스의 주교 파피아스)에 따르면 마태오-레위가 그 저자입니다. 많은 교부(오리게네스, 예로니모)도 이 의견에 동의합니다. 마태오의 복음서는 레위라는 이름의 세리 마태오가 유다교 출신 신도들을 위하여 저술하였다는 설이 받아들여집니다. 이 복음서에서는 회당을 중심으로 하는 바리사이들의 정통적인 유다교에 대한 논쟁도 엿볼 수 있는데 이러한 모습은 기원후 80년대에 얌니아에 있던 유다교 회당의 모임에서 드러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사실들을 바탕으로, 많은 학자가 이 첫 복음서의 저술 시기를 80-90년대의 안티오키아, 어쩌면 그보다 조금 더 이른 시기로 잡습니다. 40-50년경 작성한 아람말 원본이 있다고 하지만 확인은 불가합니다. 마태오는 수집된 어록과 문헌들을 유다인 사고방식대로 정리하여 가르치는데 탁월한 능력을 지녔습니다. 그는 구약성서와 유다인들의 전통에 정통한 이로서, 자기 민족의 종교 지도자들을 잘 알고 존경하지만 그들을 통박하기도 합니다. 또 청중을 가르치고 그들에게 예수님을 ‘이해시키는’ 기술에 능통한 이로서, 늘 자기 가르침의 실천적 결과를 강조합니다. 이러한 그는 그리스도인이 된 박식한 유다인, 곧 “자기 곳간에서 새것도 꺼내고 옛것도 꺼내는 집주인”(13,52) 같은 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Ⅱ.예수그리스도의 탄생
Greek is the <Greek New Testament> (Edited by Barbara Aland and Kurt Aland; J. Karavidopoulos; C.M.Martini; B.M.Metzger & Byzantine majority text, in use until now by Greek speaking Churches)
English version is <The Jerusalem Bibie> (The Jerusalem Bible 1966 First Edition Darton Longman & Todd Editor A Jones HC)
머리말 : 예수그리스도의 탄생과 유년기
마태오 복음의 서론인 1―2장은 ①예수님의 족보 ②성탄 ③동방박사의 사화 ④헤로데의 개입⑤이집트에서 나자렛으로 등의 다섯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이 구분자체가 외형상으로는 예수님의 유년사화라는 큰 틀의 단순한 형태를 띠고 있으나 이는 마태오복음서를 여는 예수님의 신비와 그리스도의 구세주로서의 사명에 관한 시작의 보고입니다.
영어 서문 제목; The birth and infancy of JESUS(예수의 탄생과 유년기)
그리스말 서문 제목; Βίβλος γενέσεως Ἰησοῦ Χριστοῦ(예수그리스도의 기원에 관한 책)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로부터 서서히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로 알아보게 됩니다. 그렇다면 그분은 언제부터 하느님의 아들이었는가? 세례 때부터인가? 탄생 때부터인가? 이와 같이 그리스도신자들은 예수님의 신비에 대한 질문을 철저하게 규명해 나갑니다. 이와 같은 질문을 통해 유년사화 및 바오로의 통찰, 요한의 깊이 있는 신학적 반성이 시작되었습니다.
1. 예수그리스도의 족보 1,1-17
“다윗의 자손이시며 아브라함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아브라함은 이사악을 낳고 이사악은 야곱을 낳았으며 야곱은 유다와 그 형제들을 낳았다. 유다는 타마르에게서....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즈를 낳고 보아즈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았다. 오벳은 이사이를 낳고 이사이는 다윗 임금을 낳았다.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1,1-16).
①족보의 그리스말 게네시스(Genesis;γένεσις)는 탄생, 기원, 혈통을 의미하며, 구약성경의 첫 번째 책의 이름이기도합니다. 본디 족보는 중요한 인물을 소개하는 그리스식 문학유형인데 창세기편의 사제계 P사료는 족보를 사용하여 인류역사의 위치를 정리하였습니다. 역사는 우연이 아니라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흘러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브라함으로부터 다윗가문 마리아의 남편 요셉에게까지 내려오는 마태오복음의 족보는 선택된 민족 이스라엘의 과거 역사가 예수님에게서 그 의미를 얻게 되었음을 뜻합니다. 루카복음의 족보는 다윗의 후손 요셉으로부터 첫 사람에게까지 소급되어 올라갑니다.
②아브라함의 후손이며 다윗의 자손인 예수님의 족보는 솔로몬이후부터는 南왕조사에만 해당하는 내용이며 1,17의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가 14대, 다윗부터 바빌론유배까지가 14대, 바빌론유배부터 그리스도까지가 14대 라는 14✕3代는 역사적 사실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인위적인 14✕3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설명이 제시되지만 정설이 없는 형편입니다. 확실한 것은 선택된 민족의 역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그 정점에 다다랐다는 사실과 하느님께서 그 역사를 당신께서 의도하신 목표로 이끄신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14대를 구분한 역사적인 의미는 다윗으로 구분되며, 다윗의 후손 예수님으로 매듭지으려는 저자의 의도가 돋보이는 부분입니다.
③아브라함 이삭을 낳고...의 반복 기술은 생명이 생명을 낳는다는 의미로, 약속과 구원의 역사가 어떻게 이어졌는지 보여주고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면면히 이어져오는 사랑과 생명의 흐름을 함축적으로 말해줍니다.
④족보에 있는 타마르(남편이 죽자 시아버지 유다는 고대 수숙혼 제도를 적용해주지 않았다. 남편의 동생이 클 때까지 친정에 가서 기다리라고 했는데 동생이 결혼 적령기가 지났는데도 부르지 않았다. 그래서 창녀로서 시아버지 유다에게 다가간다. 창세 38장), 라합(살몬의 아내, 여호수아기에 창녀로 알려진 이방여인. 예리코에 정탐온 이스라엘을 돕는다. 여호 2장), 룻(보아즈의 아내 룻은 모압 여인이다. 모압은 롯의 두 딸 즉 근친상간의 후예들이다;창세 19,30-38),우리야의 아내(다윗의 소실 밧세바)등은 비정상적인 아들을 낳았을 뿐 아니라 이방 여인들입니다. 이로써 구원의 보편성과 하느님의 은총을 부각시킵니다. 누구도 하느님의 구원에서 제외되지 않고 인간이 구분했던 장벽이 무너졌습니다.
⑴ ‘수숙혼(嫂叔婚)’은 ‘역연혼(逆緣婚)’이라고도 하는데 형이 자손을 남기지 못하고 죽었을 때 형수(兄嫂)가 남편의 형제 숙부(叔父)와 결혼하는 제도를 말합니다. 이 제도의 목적은 한 집안을 지속시키고 죽은 이에게 상속인을 마련해 주는 것입니다. 고대 아시리아에도 이런 관습이 있었습니다. 후에는 딸도 상속자가 될 수 있어서(민수 36장) 이 제도의 중요성이 부분적으로 줄어들었을 것입니다.
⑵보아즈의 아내 룻은 모압여인입니다. 모압은 근친상간의 후예들입니다. 히브리어 모압(Moab ; Μωάβ)의 의미는 from father(아버지에게서)입니다. 롯의 두 딸이 아버지의 아이를 가지게 되는데 맏딸의 아들은 모압, 작은딸의 아들은 벤암미 즉 암몬족의 조상이됩니다(창세 29-38).하느님께서 소돔성을 벌하실 때 롯을 살려주신 것은 하느님의 섭리와 관련되나 아버지를 통하여서라도 대를 잇고자하는 것은 인간적인 욕망이기에 죄가 됩니다. 모압족은 이스라엘의 축복에서 제외되었고 하느님 앞에 모이는 집회에 나올 수 없는 이들입니다(신명 23,3-6).
⑶밧 세바는 우리야의 아내인데 다윗이 우리야를 전장으로 내몰아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유명한 참회의 시51편은 밧 세바와 정을 통한 후 나탄의 질책을 받은 후 다윗이 지은 시편입니다. 다윗이 우리야를 죽이고 밧 세바를 차지하는 내용은 2사무 11장에 기록되어있습니다.
2. 예수 그리스도(Jesus Christ;Ἰησοῦ Χριστοῦ)의 탄생 1,18-25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탄생하셨다.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였는데, 그들이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1,18).
예수님의 족보는 요셉에서 끝이 나면서 사실 족보와 무관하게 태어나셨음을 또한 말하고 있습니다. 즉 마리아의 성령의 잉태를 강조합니다. 이 부분은 가톨릭이 아닌 기독교 사상에 있어 최대 난점인 동정녀 탄생 이라는 문제에 봉착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바와 같이 예수님은 매우 특별한 인물이었고 이 세상에 오심도 매우 특별한 방법이었다는 주장 또한 당연한 것이 됩니다. 동정녀 마리아에게의 잉태는 상황의 구체적인 기술이 모호하거나 이해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성령의 작용하심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1,19).
당시의 약혼은 법적 혼인관계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다만 약혼녀는 1년간 친정에 머무르는데 이 시기에 다른 남자와의 스캔들이 있으면 간통죄가 됩니다. 간통죄는 사형입니다. 요셉은 마리아가 임신한 사실을 알고 파혼을 결심합니다. 요셉이 어떠한 면에서 의로운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성서상의 의로움은 법을 충실히 지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관계의 충실함을 의미한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요셉은 마리아를 세상의 비난으로부터 구해주고자 합니다. 결국 의로운 요셉은 하느님과의 관계에 충실하여 그분의 뜻에 따름을 의미하게 됩니다.
‘요셉이 그렇게 하기로 생각을 굳혔을 때,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말하였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 곧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 하신 말씀이다.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1,20-23).
① 예수라는 사회법적 이름 - 요셉에서 끝나는 족보는 사회법적인 사람의 탄생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동정녀의 아들이 어떻게 다윗가문의 후손 요셉의 아들이 되었는지를 설명하려는 것입니다. 유다교의 법에 의하면 생물학적 혈통보다는 법적인 인정이 더 중요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요셉에게 ‘예수’라는 이름을 가진 아기의 사회적 신분을 부여해줄 것을 명하십니다. 요셉이 아기에게 이름을 부여함으로써 아기를 다윗 자손으로 받아들이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게 됨을 알려줍니다. 또한 요셉은 인간역사의 과정 속으로 하느님의 아들을 끌어들이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Jesus;Ἰησοῦ ’는 ‘주님께서 구원하신다’를 뜻하는 히브리말 여호슈아(yehosua)가 줄어서 된말 예슈아를 그리스 음역한 것입니다. 그리스도 Christ ;Χριστὸς는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그리스어이며 히브리어는 ‘메시아’입니다.
② 임마누엘 - 마태오는 예수님 생애가운데 중요한 사건들을 구약의 예언이 실현되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또 이러한 모든 인용을 같은 형식으로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와 같은 형식입니다. 이사야 예언에 의하면 동정녀가 잉태하여 낳은 아기 이름은 임마누엘이지만(Emmanuel, Ἐμμανουήλ;이사 7,14), 이 이름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후에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몸소 여러분에게 표징을 주실 것입니다.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이사 7,14).
젊은여인 : ‘히브리 말에서는 한 낱말로 되어 있으면서 앞에 정관사가 붙은 “젊은 여인”은 동정이냐 아니냐, 미혼이냐 기혼이냐의 명확한 구분 없이 아이를 가질 수 있는 여자를 가리키는 것으로 여겨진다. 많은 경우 ‘처녀’를 의미하기는 하지만(이러한 의미에서 ‘동정녀’를 뜻하기도 하지만) 젊은 기혼 여성을 배제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칠십인역은 이 “젊은 여인”을 “동정녀”로 번역하였는데, 이는 기원전 2세기(또는, 그 이전)부터 유다교 내의 어떤 전통이, 앞으로 일어나리라 고대되는 이 특이한 탄생을 동정녀 모친에게서 나오는 메시아의 탄생으로 이해했음을 뜻한다. 마태 1,23에 이어서 고대 그리스도교 전통은 이 신탁을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적용시켰다.’<주석성경>
“임마누엘은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를 뜻한다. 시편 46편에서 후렴 역할을 하는 구절 안에 이와 비슷한 표현이(“만군의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며”) 나오는 것으로 보아 임마누엘은 전례 중의 환호였던 것 같다(민수 23,21; 아모 5,14; 미카 3,11; 스바 3,15 등 참조). 사람 이름으로는 더 이상 구약 성경에 나타나지 않는 이 표현은 여기에서 상징적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7,3; 8,1-4.18 참조) 구원의 약속을 담고 있다. 이 아기는 8,8(8,10 참조)에서 유다의 승리에 대한 담보로 다시 등장한다.”<주석성경>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아내를 맞아들였다. 그러나 아내가 아들을 낳을 때까지 잠자리를 같이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들의 이름을 예수라고 하였다.”(1,24-25).
밤 새 고통스러운 고민 끝에 파혼하기로 결론을 내렸는데 이제 요셉은 더 어려워졌습니다. 인간적인 면에서 내가 좀 고통을 감당하거나 희생하면 되는데 이제 요셉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야하는 중대한 순간에 놓였습니다. 요셉이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였다는 것은 1년간의 약혼기간을 마치고 집으로 데려옴을 말합니다. 마태오의 관심은 예수님께서 탄생하셨을 때 마리아가 동정이었음을 곧, 하느님의 아들을 잉태하기에 보존된 몸이었음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마리아와 요셉의 받아들임으로 인류 구원의 역사가 시작 되었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자신들에게 닥쳐올 모든 것들을 끌어안으며 하느님의 아들을 인정한 인류사상 첫 신앙인입니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전혀 새로운 권력이 이 세상에 등장합니다.
◉새로운 약속의 시대를 여는 마리아와 요셉
1)성모 마리아(Mary;Μαρίας)의 신학적 위치
①공의회 이후 전체는 아니지만 성모마리아에 대한 평가를 격하시키는 경향이 있어왔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론과 상관없이 성모마리아에 지나치게 집중하여 사적 계시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게 되고 이러한 신심은 성서신학과의 불가피한 대립을 야기 시켜 많은 논쟁의 요소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와 다름없었던 한 인간이었지만 특별하게 선택되었던 마리아를 하느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통하여 보아야 합니다. 교회는 마리아를 평생동정녀, 특별히 복 받은 여인,하느님의 모친, 교회의 어머니로 여겨 왔습니다.
②마리아는 구원사에서 특이하고 중요한 위치에 서며, 구약과 신약 및 대망(待望)과 성취(成就)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마리아가 잉태되는 순간부터 특별한 은총을 주셨고(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無染始胎), 성령의 능력으로 잉태하여 구세주의 모친이 되게 하셨으며, 영혼과 육신을 하늘에 불러 올리셨습니다.(성모 몽소승천;蒙召昇天). 가브리엘천사는 마리아를 “은총이 가득한 이” 라고 부릅니다(루카 1,28-38 참조).
③마리아 공경은 본질상 진리와 생명, 은총과 덕행의 근원인 성자 그리스도께로 향하는 것인 만큼 어디까지나 그리스도 중심적 의미를 지닙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이면서 동시에 마리아의 아들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공생활을 시작하시기 전 전적으로 당신의 어머니에게 의존된 사람이었음을 기억해야합니다. 교회론 적으로 성모마리아는 그리스도를 위해 존재하셨고 순전히 그리스도와 관계 되어 존재하는 분이십니다. 성모마리아와 관련되어 선포된 교회의 축일들은 예수님의 신성과 인간성을 동시에 인정하는 가톨릭의 신학적 결과입니다.
④성모마리아에 대한 최초의 예언은 이사야서로 기원전 720년경입니다.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이사 7,14).
2) 다윗가문의 요셉(Joseph;Ἰωσήφ)
영국이 자랑하는 엘리자베스 여왕과 대처 수상의 공통점을 꼽으라면 빠지지 않는 것이 훌륭한 남편의 외조라고 말합니다. 오늘날 신자 가정의 성물 배열에서도 요셉 성인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결코 구세사 안에서 과소평가할 인물이 아닙니다. 요셉은 하느님의 구원역사의 협력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요셉의 모습에서 하느님의 말씀 안에서 한 가정을 지키는 가장의 모습을 보아야합니다. 요셉의 이야기는 바로 우리의 이야기이고, 인생 여정에서 어디서든 마주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신앙의 삶을 묵묵히 걸어가는 수없이 많은 요셉들이 지금 존재합니다.
①마태오복음서에서 요셉은 마리아의 성령잉태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파혼을 결심합니다(마태1,19). 그러나 요셉은 꿈을 통해 주신 말씀을 믿고 하느님의 구원사에 동참하게 됩니다. 현실적으로 불합리한 상태에서 요셉은, 마리아와 예수 아기의 울타리가 됩니다. 이러한 꿈은 요셉이 마리아에 대한 많은 고민이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②루카복음은 마리아의 성령잉태를 강조하고 마리아의 ‘이루어지소서’로서 마리아의 역할이 큽니다. 그러나 마태오에서는 요셉의 비중이 크게 기술되었습니다. 마태오에서는 아브라함부터 시작하는 이스라엘의 족보를 열거한 다음 마리아의 성령잉태를 기록합니다. 요셉에서 끝나는 족보는 사회법적인 사람의 탄생을 말하려는 것으로, 동정녀의 아들이 어떻게 다윗가문의 후손 요셉의 아들이 되었는지를 설명하려는 것입니다. 유다교의 법에 의하면 생물학적 혈통보다는 법적인 인정이 더 중요하였습니다.
③하느님께서는 요셉에게 ‘예수’라는 이름을 가진 아기의 사회적 신분을 부여해줄 것을 명하십니다. 요셉이 아기에게 이름을 부여함으로써 다윗 자손으로 받아들이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게 됨을 알려주는 것이며 또한 인간역사의 과정 속으로 하느님의 아들을 끌어들이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④‘예수’는 ‘주님께서 구원하신다’를 뜻하는 히브리말 여호슈아 yehosua가 줄어서 된말 ‘예슈아’를 그리스 음역한 것입니다. 이사야 예언에 의하면 동정녀가 잉태하여 낳은 아기 이름은 임마누엘 입니다(이사 7,14). 그러나 요셉은 임마누엘이라고 하지 않고 예수라고 합니다.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 -Emmanuel, Ἐμμανουήλ- 이 이름은 요셉이 지어주는 이름이 아니라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후에 이루어지는 이름이며 그리스도의 본질적 특성을 나타내는 이름입니다.
⑤성경은 요셉의 고뇌, 선택, 결단에 대해 짧게 기록하고 있으며, 요셉에 관하여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지 않지만 교회는 요셉성인을 임종하는 이의 수호자로 선포하고 우리가 세상의 삶을 마칠 때 우리를 위해서 하느님께 빌어주시기를 청하라고 가르칩니다. 성서상으로 요셉의 의로움은 법을 충실히 지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관계의 충실함을 의미한다고 봅니다. 결국 ‘의로운 요셉’은 하느님과의 관계에 충실하여 그분의 뜻에 따름을 의미합니다.
⑥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89년 8월 15일 성모승천 대축일에 발표한 사도적 권고 「구세주의 보호자」를 통해 「그리스도의 생애와 교회의 생활 안에서 성요셉의 인품과 사명」에 대해 강조하고‘요셉 성인은 마리아와 동일한 사랑의 보호자였으며 인간의 노동을 속량의 신비에 더욱 근접시켰다’고 천명했습니다.교황 요한 23세는 성요셉 이름을 미사전례에 포함시키고 제2차 바티칸공의회 보호자로 정하는 등(1961년) 성인에 대한 신뢰를 드러냈습니다. 성 요셉은 한국 교회의 수호성인이시기도 합니다.요셉은 어떻게 생을 마감했는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공생활 이전에 선종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크리스마스(Christmas) 풍습의 유래(由來)
①12월25일의 유래
이집트의 태양신 숭배의식 때 사람들은 12월 24일-25일로 넘어가는 밤에 태양의 출산을 기다리면서 ‘처녀가 빛을 낳았습니다!라고 외칩니다. 이집트의 태양신 숭배 사상과 신적출산에 관한이야기는 그리스사상과 유다인들 사이에 널리 퍼져있었습니다. 로마교회는 336년 이래 12월 25일을 성탄 축일로 지내고 있습니다. 274년 아우렐리아누스 황제가 12월 25일 ‘무적의 태양신 탄생 축일’을 지내도록 하였는데, 교회는 신자들이 퇴폐적인 태양신(Mithra)숭배에 빠져들지 않게 하려고 같은 날 예수 성탄 축일을 지내게 하였습니다. 336년, 성탄 축일을 12월 25일로 지키는 관습이 서방교회에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354년 로마의 리베리오 주교는 이날을 성탄으로 판정하여 그해 로마 축일표에 기록했고 5세기 초에 이 날을 예수성탄 축일로 정식 선포하였습니다.
②X-mas와 Christmas
크리스마스는 ‘그리스도 미사(Christus Missa)’에서 유래합니다. 영국에서는 크리스마스(Christmas), 프랑스는 노엘(Noël), 독일은 바이나흐텐(Weihnachten) 이탈리아에서는 나탈레(Natale)등으로 불립니다. ‘X-mas’는 ‘X’가 그리스어 ‘그리스도(Χριστοζ)’라는 단어의 첫 글자입니다. 따라서 ‘엑스마스’가 아니라 ‘크리스마스’로 읽어야 합니다.
③크리스마스 트리(Tree)
트리 만들기는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르나, 1600년경 성탄 때 독일 성당의 정원에서 낙원극을 공연하였는데, 이 때 생명나무(창세 1,9)를 상징하는 상록수에, 하얗고 둥그런 과자를 달고 나무 주위에는 촛불을 켜 빛나게 하였다고 합니다.
④크리스마스 카드(Card)
지금은 매우 예쁘게 인쇄된 카드를 주고받는 모습이 많이 사라졌지만 크리스마스카드의 유래는 1843년 영국 런던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의 헨리 콜 관장이, 화가 친구인 왕립 미술 아카데미 회원 존 호슬레이에게 의뢰하여 처음 그리게 되었고, 1천 장의 카드를 만들어 앞면에 축제 장면 삽화를 넣고 인사말을 인쇄하여 최초로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헨리 콜(1808~1882)경은 영국 산업 미술운동의 중심 인물로서 런던만국박람회를 기획하였고 크리스마스카드를 대중화하는 데에 힘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⑤크리스마스 캐럴(Carol)
성탄시즌에 듣는 크리스마스 캐럴은 그리스도교 초기부터 여러 나라에서 불려져 왔으나 본격적인 크리스마스캐럴의 시작은 1843년 찰스 디킨스가 발표한 중편 소설 ‘크리스마스 이야기’에서 유래한다고 합니다. 크리스마스 캐럴은 1843년 성탄절을 앞에 둔 12월 19일 세계 최초로 발표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캐럴 중 가장 유명한 곡이라면 <프란츠 자버 그루버(Franz Xaver Gruber, 1787~1863)>가 작곡하고 <조셉 모어(Josef Mohr, 1792~1848)>가 작사한 “Silent Night(Stille Nacht Heilige Nacht)”일 것입니다. 조셉 모어는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 근처 오베른도르프에 있는 ‘성 니콜라스 교회’의 젊은 보좌신부였고 자신이 쓴 시를 프란츠 자버 그루버에게 작곡을 의뢰하여 1818년 성탄절 미사에서 처음 불렀다고 합니다. 이 곡은 2011년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⑥구유(라틴어 praesepe 영어 manger)의 유래
성경은 예수님의 탄생 장면을 “너희는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이 너희를 위한 표징이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루카 2,12). 이러한 구유에 뉘어진 예수님의 탄생은 구전(口傳)으로 전해지다가 3세기에 걸친 박해시대에 이르러 그림이나 모자이크에서 표현되었습니다. 오늘날 카타콤바(catacomba)의 여러 곳에서 박해시대에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구유의 모습이 발견 됩니다. 마태오에는 말구유에 눕혀진 기사가 없습니다. 아기가 말구유에 눕혀졌다는 것은 인상적인 일인데 베들레헴의 집들은 석회암산 경사면에 세워졌고 집 밑에 석회암을 파고 그곳을 우마를 두는 마구간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이 곳에서 탄생하셨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 위에 콘스탄틴의 모후 헬레나가 성탄교회를 세웁니다.
⑦구유를 처음 만든 사람
구유를 만드는 풍속은 1223년, 이탈리아의 그레치오에서 은둔생활을 하던 아시시(Assisi)의 성 프란치스코가 성탄시기에 그레치오 성당에 베들레헴의 외양간을 본뜬 마구간을 만들었던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아기예수님이 탄생한 구유에 대한 신심이 증가 되었고, 작은 모형의 마구간을 만들어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는 풍속이 전 세계로 퍼져 나갔습니다. 오늘날 전 세계의 그리스도교인들은 이러한 토착화된 구유를 통하여 자기 민족과 그리스도 강생(降生)을 밀접하게 연관시키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12월 성탄이 가까워지면 성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각 본당을 중심으로 작은 모형의 마구간을 만들어 성탄전야에 아기 예수님의 상을 모시는 구유안치식과 구유예절을 가집니다.
그런데 마구간이 갈수록 화려하기 짝이 없는 모양으로 만들어지다가 최근에는 다시 옛 마구간 형식으로 간결 소박한 모습이 되었습니다.
⑧대림시기와 대림환(待臨環)
대림시기 (待臨, 라틴어 adventus) 는 다시 오시는 주님의 성탄을 맞이하기 위해 마음의 준비를 하는 성탄 전 4주간을 말합니다. 대림시기는 교회와 신자가 그리스도의 재림(再臨)을 준비하는 시기이지만, 교회는 기다림의 기쁨을 더욱 강조 합니다. 대림시기의 첫 주일은 교회력으로 한 해의 시작입니다. 전례복의 색은 보라색이며, 독서는 이사야 예언서와 요한 세례자의 경고를 낭독합니다. 대림시기에는 제대 앞에 녹색의 잎으로 장식한 네 개의 초를 꽂는 둥근 촛대인 대림환이 놓여있습니다. 대림환의 둥근 모양은 하느님께서는 시작도, 끝도 없는 영원한 분임을 상징합니다. 녹색의 환은 헬레니즘 시대에 승리의 월계관을 상징하고 요즈음에도 올림픽이나 국제 경기에서 우승하고 돌아온 선수들을 환영할 때 꽃으로 만든 둥근 관을 씌워 우승자인 선수를 환영합니다. 녹색의 환은 그리스도의 승리를 나타내면서 또한 녹색은 성장과 생명,희망과 미래를 나타냅니다.
대림환에는 네 개의 초가 꽂혀있습니다. 짙은 보라색부터 연보라, 분홍, 흰색인데 대림시기 첫 주간에는 진보라에 점화하고 둘째 주는 연보라에 점화하면서 점점 초의 색이 밝아집니다. 세 번 째 주의 분홍색은 기다림의 막바지 기쁨을 나타내며 사제의 제의색도 분홍입니다. 네 개의 초를 차례로 켬으로써 세상의 빛으로 오시는 예수그리스도를 맞이합니다. 또한 이 네 개의 초는 첫사람(아담)부터 세례자요한까지 메시아를 기다리는 구약의 4천 년을, 그리고 대림시기의 4주간을 의미합니다.
3. 동방 박사들의 방문 The visit of the Magi 2,1-2
‘예수님께서는 헤로데 임금 때에 유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다. 그러자 동방에서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하고 말하였다’(2,1-2).
마태오의 예수님께서는 헤로데 때 유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 이집트로 피난을 가시는데, 루카의 아기예수님은 나자렛에서 성령 잉태 후 유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십니다.
박사에 해당하는 메이자이(Magi)의 그리스말 마고(μάγοι)는 점성술에 능한 현자(賢者) 또는 사제를 가리키며 마술사의 뜻도 있습니다. 여기에서 ‘경배하다’는 단순한 인사의 의미보다 강한 ‘프로스퀴네오 (προσκυνέω)’‘무릎꿇다’ 또는 ‘부복하다’의 뜻으로 쓰였습니다.
Ⅲ.나자렛 사람 예수
1.헤로데의 개입 2,3-12
‘헤로데는 백성의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을 모두 모아 놓고, 메시아가 태어날 곳이 어디인지 물어보았다. 그들이 헤로데에게 말하였다. “유다 베들레헴입니다. 사실 예언자가 이렇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유다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의 주요 고을 가운데 결코 가장 작은 고을이 아니다. 너에게서 통치자가 나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보살피리라.’”(2,4-6)
헤로데(Herod;Ἡρῴδης)는 백성들의 종교생활에 대해서 공적으로 책임이 있는 자들을 모두 소집합니다. 수석사제들은 대사제가문에 속한 사람들을 말하는데 그리스말에서 대사제와 수석사제 들이 같은 낱말 아르키에류스(ἀρχιερεύς. 문자적으로는 대사제, 복수로 사용 될 때는 대사제 가문에 속한 수석사제)로 표현됩니다. 영어에서는 대사제를 ‘high priest’ 수석 사제를 ‘chief priests’로 옮깁니다. 율법학자들은 정식자격을 갖춘 율법해설가들입니다. 이 종교지도자들은 예언서를 통독한 사람들로서 메시아의 출생과 그 소명도 압니다. 성경에 예고된 메시아가 탄생하는 베들레헴은 미카 5,1입니다. 하느님의 아들은 베들레헴 다윗가문에서 태어나기로 예고되어있었습니다. 베들레헴은 다윗의 고향이며 다윗이 사울에게 기름부음 받은 곳입니다(1사무 16,1-13).
그러나 이들은 무관심한 반응을 보일 뿐 아니라 예수님의 생애동안 결정적인 적수들이 됩니다. 성탄의 기쁨을 표하는 사람들은 목자들과 이방인들입니다. 이로서 이사 60,1-4의 예언이 성취됩니다.“일어나 비추어라. 너의 빛이 왔다. 주님의 영광이 네 위에 떠올랐다”(이사 60,1).
왕과 사제와 율법학자들은 시작부터 백성들을 바로 인도하지 못한 책임이 큽니다. 이 지도자들은 성탄의 기쁜 소식이 혹 실현된다면 성경을 연구하는 자신들이 모를 리가 없기 때문에 반응이 시큰둥한 것입니다.
‘그때에 헤로데는 박사들을 몰래 불러 별이 나타난 시간을 정확히 알아내고서는, 그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내면서 말하였다. “가서 그 아기에 관하여 잘 알아보시오. 그리고 그 아기를 찾거든 나에게 알려 주시오. 나도 가서 경배하겠소.”그들은 임금의 말을 듣고 길을 떠났다. 그러자 동방에서 본 별이 그들을 앞서 가다가, 아기가 있는 곳 위에 이르러 멈추었다. 그들은 그 별을 보고 더없이 기뻐하였다. 그리고 그 집에 들어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였다. 또 보물 상자를 열고 아기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 그들은 꿈에 헤로데에게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고, 다른 길로 자기 고장에 돌아갔다’(2,7-12).
①헤로데(BC73-4) - 여기에서 말하는 헤로데 임금은 대(大)헤로데를 말합니다. 헤로데는 이두메아 즉, 에사오의 후손이라는 뜻의 에도마이트의 후손으로 야곱의 자손들에게 정통 유다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대대로 홀대를 받았습니다. 이 임금은 유다의 대사제 히르카노스 2세의 시종장 안티파테르의 아들로서 기원전 73년경에 태어났습니다. 그는 우여곡절 끝에 기원전 41년 유다의 영주가 되고, 이듬해에는 로마의 원로원으로부터 유다 임금으로 임명을 받게됩니다. 그리고 기원전 4년에 죽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적어도 기원전 4년 이전에 탄생하셨습니다. 마태오는 당신 백성의 참임금이시며 구원자이신 분께서(1,21; 2,2) 불러일으키시게 될 권력자들과의 갈등을 예고합니다. 마태오가 내세우는 또 다른 주제는, 선택된 민족의 권력자들이 배척한 분을 이방의 박사들, 곧 다른 민족들이 경배한다는 것입니다.
❋호구조사와 예수님 탄생년도(AD)
로마史에 의하면 첫 호구조사는 기원전 8년으로 기록되어있고 몇 년씩 계속되므로 예수님의 탄생 년도는 불확실합니다. 그러나 마태오복음에서 전해지는 아기를 쫓던 헤로데의 죽음은(마태 2,19) 기원전 4년입니다(요세프스 유다고대사).
세계사를 공부할 때나 성경자료를 볼 때의 연도에 ‘AD’와 ‘BC’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AD’는 라틴어 ‘Anno Domini’의 약자로, ‘주님의 기원’을 의미하며,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준으로 하는 서기연도 계산법입니다. ‘BC’는 ‘Before Christ’의 약자로, ‘그리스도 탄생 이전’의 시간을 나타냅니다.
AD 1년 바로 전 해는 BC 1년으로 표기됩니다. 기원전 즉 BC 63년 폼페이우스가 예루살렘을 정복하였고 大헤로데가(마태 2,1) 기원전(BC) 37년에서 BC4년까지 다스립니다. 그가 죽자 세 아들 중 헤로데 안티파스가 BC4~AD39년 세례자 요한을 죽이고(마르 6,17-29)예수님께서 재판을 받으실 때에 일정한 구실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BC 587 예루살렘이 함락 되어 바빌론유배가 시작되었고 다윗시대는 BC 1010-970년, 탈출년대는 이집트19왕조 세토스 1세 때인 BC 1305-1290부터 라므세스 2세 때인 BC 1290- 1224 무렵 어느 시기일 것입니다.
예수님 탄생원년 AD연도계산은 5세기 디오니시우스가 로마건국 기원을 기준으로 책정하였는데 이 계산에 따르면 예수님의 출생연도는 AD 1년이 되는데, 후대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예수님 탄생원년이 4-5년 정도 늦게 책정되었다는 설이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루카복음서 3,23에 예수님께서는 나이 서른살 무렵에 전도를 시작하신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당신 기원(AD)보다 4년 전에 출생하여 37,8세 정도에 수난하셨을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에는 종교적의미의 AD/BC 연도 표기대신 공통기원(共通紀元, Common Era; CE)과 공통 기원전(Before the Common Era; BCE)연도 표기법을 사용합니다. 두 표기법은 숫자적으로 동일합니다. 즉, "2024 CE"와 "AD 2024"는 각각 현재 연도를 설명합니다. "400 BCE"와 "400 BC"는 같은 연도입니다. 종교적 배경을 고려하여 사용하고자 하는 데에서 비롯되었으나 여전히 AD와 BC가 보편적 연도 표기법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②동방박사(三王)
동방박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된 최초의 이방인으로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고(마태 2,1-12 참조), 별에 인도되어 동방에서 베들레헴으로 아기 예수님께 드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가지고 왔습니다. 세 명의 동방 박사는 이방인의 출현에 그 의미를 둡니다. 동방박사들이 드린 선물 황금은 왕권을, 유향은 신성을, 몰약은 수난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이들은 신약성경에서 현인(賢人)으로 언급 됩니다.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us)는 이들이 그리스도교 전통에 나타난 최초의 왕일 것이라 했고, 오리게네스(Origenes)는 세 가지 선물로 미루어 세 사람이라 했으며 이것이 일반적인 전통이 되었습니다. 6세기에 삼왕의 이름은 가스파르(Gaspar), 멜키오르(Melchior), 발타사르(Balthasar)로 언급되며 중세에는 성인(聖人)으로 공경되었습니다. 삼왕에 대한 공경은 일찍부터 미술 작품 제작에 인기 있는 소재가 되어 왔습니다. 주님 공현 대축일(公顯大祝日 라틴어 Sollemnitas in Epiphania Domini 영어Solemnity of Epiphany)은 아기 예수님이 동방박사들을 통하여 자신이 메시아임을 드러낸 사건을 기념하는 대축일입니다. 이방인들은 왕을 알아보고 경배하러 찾아오지만 그분의 백성은 예수님께서 바로 이방인들의 왕이라는 이유로 로마인에게 넘겨버립니다.
헤로데는 박사들이 위대한 탄생 알리는 특별한 별을 찾아오자 사제들과 율법학자들 모두 소집, 탄생 예언의 기록을 묻고 위대한 탄생을 사전 차단합니다. 일부의 사람들은 헤로데가 무죄한 아기들을 살해했다는 사실을 가지고 하느님이 오시기 위해 아기들을 죽일 수 있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헤로데나 카이사르나 파라오는 아기만 죽인 것이 아니고, 자기 세상을 유지하기 위해 갖은 방법으로 수많은 사람을 죽이던 인물들입니다. 사제, 율법교사들은 베들레헴으로 즉시 달려가 구유 누운 아기에게 경배하지 않았습니다.
5. 이집트에서 나자렛으로 2,13-23
‘그때에 헤로데는 박사들에게 속은 것을 알고 크게 화를 내었다. 그리고 사람들을 보내어, 박사들에게서 정확히 알아낸 시간을 기준으로, 베들레헴과 그 온 일대에 사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다. 그리하여 예레미야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라마에서 소리가 들린다. 울음소리와 애끊는 통곡 소리. 라헬이 자식들을 잃고 운다. 자식들이 없으니 위로도 마다한다.”’(2,16-18)
유다왕 헤로데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기를 두려워합니다. 성서 이외에는 아기학살에 관한 기록이 없는데, 유다의 왕은 자기 하나로 족했으므로 위대한 왕의 출생에 위협을 느낀 헤로데가 그즈음의 출생한 아기들을 학살한 것은 가능한 일입니다. 유다인들의 모세전승기에 의하면 이집트의 파라오 라므세스는 히브리 아이가 이집트를 지배한다는 예언을 듣고 히브리아기들을 학살합니다. 라므세스나 헤로데는 임기도중 아기뿐 아니라 다른 학살도 감행했습니다.
18절의 인용구는 예레 31,15의 히브리 말 본문을 조금 자유롭게 번역한 것입니다. 라헬은 야곱의 부인이며 요셉과 벤야민의 어머니로서, 북 이스라엘인들의 조상으로 추앙받습니다. 베들레헴은 전통적으로 이 라헬의 무덤이 있다고 여기던 곳이고, 라마는 유배로 끌려가는 이들의 집합 장소였습니다(예레 40,1).
‘헤로데가 죽자, 꿈에 주님의 천사가 이집트에 있는 요셉에게 나타나서 말하였다.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거라. 아기의 목숨을 노리던 자들이 죽었다.” 요셉은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아르켈라오스가 아버지 헤로데를 이어 유다를 다스린다는 말을 듣고, 그곳으로 가기를 두려워하였다. 그러다가 꿈에 지시를 받고 갈릴래아 지방으로 떠나, 나자렛이라고 하는 고을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이로써 예언자들을 통하여 “그는 나자렛 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2,19-23)
①이집트를 떠난 요셉과 마리아는 갈릴래아 나자렛으로 갑니다. 아르켈라오스는 기원전 4년에서 기원후 6년까지 유다와 사마리아와 이두매아를 다스렸던 헤로데의 아들입니다.갈릴래아는 이방인의 왕래가 잦아 신앙의 정통성이 의심된다는 이유로 유다인들이 멸시하던 곳입니다(마태 4,15; 이사 8,23).
“그는 나자렛 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이 말씀이 구약 성경의 어떠한 구절 또는 어떠한 예언을 인용한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사도행전에서도 예수님을 “나자렛 사람”이라고 부릅니다(사도 2,22).
기원과 의미가 분명하지 않은 “나자렛 사람”이라는 명칭은(마태 2,23) 사도행전에서 자주 예수님을 가리키는 데에 사용됩니다(2,22; 3,6; 4,10; 6,14; 22,8; 24,5; 26,9. 그리고 루카 18,37)
마태오가 이 이름으로 나지르인(판관 13,5.7; 16,17 참조) 곧 ‘하느님께 봉헌된 이’, 더 나아가서 ‘하느님의 거룩한 이 그 자체’를 가리키고 싶어 하였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비슷한 다른 말은 이사 11,1 ‘이사이 뿌리에서 새싹이 움트리라’의 ‘새싹’이 ‘가지’라는 뜻의 히브리말 나체르입니다.
②이사 8,23(9,1;칠십인역과 대중 라틴 말 성경에서는 여기에서 9,1이 시작된다.)
“옛날에는 즈불룬 땅과 납탈리 땅이 천대를 받았으나 앞으로는 바다로 가는 길과 요르단 건너편과 이민족들의 지역이 영화롭게 되리이다”(이사 8,23).
“지역”에 해당하는 히브리 말 갈릴은 후대에 와서 갈릴래아라는 고유 명사가 됩니다. 변방 지역에다 이민족들이 사는 거주지라는 중요한 특성 때문에 “이민족들의 지역”이라 불리게 된 것입니다. 이방인의 도시라고 천대 받던 땅 멸시 받는 죄인, 병이 죄라고 자학하는 슬픈 사람들, 경제적으로 결핍되어 힘이 없는 사람들, 지적 능력의 부족으로 소외되는 사람들, 그 모든 사람에게로 예수님은 이집트에서 갈릴래아로 돌아오십니다.
③저자는 예수님을 유다의 위대한 선조 모세와 비교하며 복음서를 기술한 것 같습니다. 그들이 잘 아는 모세의 역사적 사건과 비교하는 것입니다. 모세는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지 못했지만 예수님께서는 죽음의 사막을 통과하고, 강을 건너 갈릴래아로 돌아오십니다. 갈릴래아는 모든 민족들을 향하여 제자들을 파견하시는 장소입니다(28,16).
▶금줄과 은줄의 전설
요셉과 마리아의 이집트 피난길에서 어떤 전설은 헤로데의 군사 중 한 사람이 아기예수님을 발견하였는데 차마 죽이지 않고 돌아서면서 당신이 이다음 왕이되면 나를 기억해달라고 했다고 한, 그 군사가 십자가의 예수님 옆에서 자신의 최후를 의탁했던 오른편의 죄수라는 전설이 있다.
요셉과 마리아가 헤로데를 피해 동굴에 피신하였는데, 거미가 동굴 입구에 거미줄을 쳐서 그 동굴은 헤로데의 군사가 찾아보지 않았다는 전설이 있다. 크리스마스나무에 금줄 은줄을 두르는 것은 거미줄의 전설이라고 한다. 신심 깊은 가정은 한 달 전 성탄나무를 세워놓고 그분께 드리는 선물로 한 가지 선행마다 금줄과 은줄을 장식한다고 한다. 아기 예수께 드리는 최고의 선물이다. 아기는 세상에 오셨을 때 사람의 도움을 받았어야했다. 그리고 이 보답을 인류에게 한 것 같다. 참으로 과분하게도 당신의 죽음으로.
<마태오복음서 [10]-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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