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LD TESTAMENT Basic Information
역사서
①구약 성경의 역사서를 크게 신명기계 역사서, 역대기계 역사서, 교훈문학적 역사서, 후기 역사서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⑴신명기계 역사서; 여호수아記/판관기/1.2사무엘기/1.2열왕기
⑵역대기계 역사서; 1.2역대기/느헤미야기/에즈라기
⑶교훈문학적 역사서;토빗기/유딧기/에스테르기
⑷후기역사서; 1.2 마카베오기
②신명기계 역사서와 역대기계 역사서는 상호 보완적이기는 하지만 역사를 보고 평가하는 관점이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열왕기 곧 신명기계는 다윗과 솔로몬, 남북이스라엘의 흥망성쇠를 다루고 각 왕의 행적에 하느님의 뜻을 따른 임금은 좋은 왕이라는 신명기의 중심사상을 드러냅니다. 역대기는 인간의 창조에서 시작하여, 바빌론 유배 이후 기원전 5세기까지 이어지는 대역사를 다룹니다. 다윗 왕국의 역사를 가장 중요하게 여겨 역대기의 중심에 놓았습니다. 신명기의 주제 약속의 땅에 진입 → 정착 → 왕정 → 몰락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는 뒤이어 등장하는 역사서에서 계속 반복됩니다. 신명기는 오경의 결론이 되면서 동시에 역사서 서론의 역할을 수행합니다.
③유다교에서는 전통적으로 여호수아기, 판관기, 사무엘기 상·하권, 열왕기 상·하권을 ‘전기 예언서’라 부르는데 유다교의 전통에서는 ‘역사서’의 대부분을 예언자들이 쓴 것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이 판관기와 사무엘기 일부를 썼고, 예레미야는 열왕기의 저자라고 여기며 여호수아기는 여호수아가 직접 쓴 것으로 간주되는데, 그는 집회 46,1에서 예언자로 소개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역사서 안에서 예언자들은 왕정이 시작할 때(사무엘), 두 왕국이 분열될 때(아히야), 아합 임금 치하에서 이스라엘 종교가 혼합주의의 위협을 받을 때(엘리야), 아시리아인들의 침공을 받을 때(이사야), 요시야 임금 치하에서 법전이 발견되었을 때와 같이 이스라엘 역사의 중요한 시점에 늘 등장하여(바빌론유배 예레미야) 정치에 관여하였고 이들이 사건의 향방을 좌우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책들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연속적으로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문학 유형상 ‘역사서’로 분류하는 것이 더 타당합니다.
46-6.여호수아기
①책이름 Joshua ; ΙΗΣΟΥΣ ΝΑΥΗΣ (여호/Jos)
❶여호수아기는 일반적으로 ‘역사서’라 불리는 성경의 새로운 장을 엽니다.여호수아記라는 명칭은 여호수아가 이 책을 썼다는 탈무드의 전통에서 유래하고 있지만 익명의 신명기계 학자들일 것입니다. 히브리 성경은 ‘예언자 여호수아’라는 책 이름처럼 전기 예언서로 분류하지만 가톨릭성경은 역사서로 분류합니다.
❷민수 13,16에 따르면 에프라임 지파 소속 눈의 아들 호세아(Hoshea)에서 ‘주님께서 구원해 주신다’를 뜻하는 이름의 여호수아(yehosua)로 모세가 그의 이름을 바꾸어 줍니다. 신약성서 시대에 와서 그리스 말을 하는 유다인들에게는 이 이름이 “예수”라고 불리게 되는데 예수는 흔한 유다인의 이름으로 ‘예수아’ 또는 ‘예호수아’로 발음됩니다. 그리스어 이에수스(Ιησουs), 라틴어 Josue, 우리나라말 ‘예수’입니다.
②구성과 주요내용
❶총 24장으로 구성된 여호수아기는 신명기가 끝난 다음의 역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고(1─12장과 13─21장), 여기에 각각 맺음말이라고 부를 수 있는 세 개의 장이(22; 23; 24장) 이어집니다. 1⎯12장에서는 가나안 땅의 정복에 관한 이야기를, 13⎯21장에서는 정복한 땅을 열 두 지파에게 분배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마지막으로 22⎯24장에서는 전체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맺음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❷이 책의 중심인물인 여호수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약속의 땅입니다. 하느님의 약속이 이제 여호수아기에서 실현됩니다. 땅의 정복 기사는 서론(1장), 예리코의 정탐(2,1-24), 요르단 강 도하(渡河)(3─5), 예리코 점령(6장), 아이성의 패배(7장), 아이성의 정복(8장), 기브온과의 조약(9장), 가나안 동맹군에게 승리(10, 1-26), 여호수아의 승리(10,28-12장)의 큰 사건으로 분류됩니다. 23장은 모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남긴 마지막 유언을 담고 있습니다. 24장은, 여호수아가 ‘스켐 집회’를 소집하고,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만 섬긴다는 내용의 계약을 백성과 함께 맺었다고 전하고 여호수아의 죽음으로 맺습니다.
❸땅의 정복과 헤렘의 법
“너희는 완전 봉헌물에 손을 대지 않도록 단단히 조심하여라....그리고 남자와 여자, 어른과 아이, 소와 양과 나귀 할 것 없이, 성읍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칼로 쳐서 완전 봉헌물로 바쳤다.”(여호 6,16-21)
완전 봉헌물은 헤렘의 법이라고 하는데 헤렘(herem)은 히브리말로 바친다, 근절하다, 금한다, 제외하다의 뜻으로 헤렘의 법은 성전(聖戰)에서 취할 행위를 규정한 성스러운 법을 말합니다. 하느님께 속하는 성전(聖戰)의 맥락에서, 인간은 아무것도 자기 것으로 차지할 수 없고, 사람이든 물건이든 모두 철저히 파괴함으로써 모든 것을 진정한 정복자(하느님)께 봉헌해야 합니다. 헤렘은 고대의 거룩한 전쟁의식(聖戰儀式)의 일종이었습니다. 모압 인들과 암몬 인들, 그리고 몇 세기 후에 아시리아 인들도 모두 이런 관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민족도 이러한 의식을 받아들인 것 같지만 이 완전 봉헌이 철저하게 실행된 예는 드물었고 때때로 전리품을 취한 왕들도 있었는데 이스라엘의 초대임금 사울은 이 문제로 사무엘에게 버림받게 됩니다.
③역사적 배경
여호수아의 가나안 진입 시기는 BC 1230-1220입니다. 여호수아기가 이야기하는 사건들이 일어난 때( BC 13세기말경)와 이 책이 최종 편집된 시기 사이에는 여러 세기의 간격이 있습니다. 가나안정복기에도 몇 가지 모순이 존재하는데 이스라엘 12지파로 이루어진 연맹 전체가 가나안 땅 전부를 정복하였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가나안 땅은 다윗시대(BC 10세기)에 완전히 정복됩니다. 가나안 인들은 전멸되지 않았고 이스라엘인들과 공존하여 살았습니다. 가나안땅으로 진입할 수 있었던 것은 가나안 인들이 분열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좁은 지역에 31명의 독립적인 왕들이 있었고 분열된 가나안 군소(群小) 도시국가들은 오랜 광야 생활로 단련되고 열정적인 신앙으로 모인 이스라엘을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④저자와 저작시기
신명기 ‘학파’에 속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편집자들은 이스라엘의 과거 역사를 기원전 6세기의 체험에 비추어 여호수아서의 자료들을 재해석하여 계약에 충실할 때 축복을 받게 된다는 일관된 주제를 가지고 여호수아 당시의 가나안 정복 사건을 회고하며 재구성하였습니다. 여호수아기는 바빌론 유배가 끝나갈 무렵인 기원전 6세기 중반 이후 신명기와 예레미야 예언자의 활동을 이어받은 이른바 신명기계 학파가 모세 시대부터 자신들이 살던 시대, 곧 기원전 550년경까지의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를 한데 묶어 정리한 것입니다.
(상세내용은 본 블로그 sunny river <구약성경노트> ⑤여호수아 참조)
46-7.판관기
①책이름 JUDGES; ΔΙΚΑΣΤΈΣ (판관/Jg)
판관(判官)이란 재판을 집행하는 자, 돕는 자, 통치자라는 히브리어의 쇼페팀(sofetim)에서 나온 이름입니다. 구약에서 말하는 판관이란 재판정에서 법을 판결하는 법관의 직무 수행만을 뜻하는 말이 아니고 사회적, 정치적 지도와 통치까지도 내포합니다. 판관은 특은을 받은 지도자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위기에 처했을 때에 백성들을 인도하도록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사람들이었습니다. 왕정 이전의 시기를 판관 시대라고 부르는 것은 성서의 전통에서 잘 알려져 있습니다(2사무 7,11; 2열왕 23,22; 룻 1,1).
이 판관기에서 무공(武功)을 전해 주는 이들이 모두 실제적으로 이 직책을 가졌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판관’이라고 부르는 이들의 업적을 서술하는 또 다른 용어, 곧 ‘구원하다’라는 동사가 있기 때문인데 오트니엘과 에훗이 바로 “구원자”로 불립니다(3,9.15). 하느님께서는 어떤 사람을 선택하셔서 당신의 구원을 실현시키십니다(3,9; 6,36-37; 7,7; 10,13). 이로써 ‘구원자 인간’과 ‘구원자 하느님’이라는 표현의 이원성을 보게 됩니다.
②구성과 주요내용
총21장으로 구성된 판관기의 약 180년에 걸친 역사는 이스라엘이 부족사회에서 왕정시대로 들어가는 대전환기의 역사입니다. 여호수아기의 성전(聖戰)과 가나안 땅의 분배 스켐전례를 통한 계약갱신에 이어, 판관시대에는 카리스마적 인물이 성전을 지휘합니다. 판관시대는 이스라엘 지파들의 역사 가운데에서 특별히 이 시기가 지니는 종교적 뜻을 밝히고 있습니다. 판관기가 말해주는 네 단계로 된 종교적 논리는 곧, 죄➜벌➜회개➜구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죄악은 하느님의 징벌을 불러오지만, 곤경에 빠진 이스라엘의 회심은 구원자의 파견을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이 책의 편집자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계약을 위반하고 불순종할 때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벌하셨으며, 그들이 잘못을 뉘우치고 돌아서면 용서해주고 판관들을 선택하여 이스라엘을 구원하셨다는 기본사상을 바탕으로 이 책을 편집하였고, 12명의 판관들을 12지파에 연관시켜 소개합니다.
❶서문 [1장]
이스라엘 지파들이 성공도 하고 실패도 하면서 가나안 땅에 정착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지파들은 공동으로 보조를 맞추어 서로 협조하면서 자리를 잡아가기보다는, 저마다 따로 행동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❷본론 [2,6-16,31]
모세에 이어서 이스라엘 민족을 이끈 여호수아의 시대는 하느님의 백성이 주님께 충성을 다한 시대였지만, 판관 시대는 한마디로 불충의 시대로 묘사됩니다. 이러한 내용의 서문에 이어, 판관들의 행적을 전하는 단편적인 이야기들이 펼쳐집니다. 전체 판관 수는 열둘인데 설화의 길이에 따라 대판관(6명) 소판관(6명)으로 구분합니다.
대판관 : 오트니엘, 에훗, 드보라, 기드온, 입타, 삼손
소판관 : 삼가르, 톨라, 야이르, 입찬, 엘론, 압돈
판관 오트니엘은 아람임금 쿠산 리스아타임으로부터(3,8) 이스라엘을 구원하고(3,7-11), 왼손잡이 에훗은 모압 임금 에글론을 죽여 이스라엘을 해방시키며(3,12-30), 여예언자 드보라는 가나안 임금 야빈에 대한 저항의 불꽃을 타오르게 합니다(4,1─5,31). 이 뒤에 힘센 장사 기드온을 통한 이스라엘의 구원(6,1─8,35), 판관 입타의 인도 아래 동쪽 암몬족과의 싸움에서 거둔 승리(10,6─12,7), 그리고 삼손이 서쪽 필리스티아족에 대항하여 싸운 업적이(13,1─16,31) 소개됩니다. 대판관들로 불리는 이들 6인들은 소판관들인 삼가르(3,31), 톨라(10,1-2), 야이르(10,3-5), 입찬(12,8-10), 엘론(12,11-12), 압돈(12,13-15) 6인을 사이에 두고 중요하게 다루어집니다.
❸부록 [17⎯21장]
판관기는 왕정이 수립되기 전에 이스라엘에 팽배해 있던 무질서와 혼란을 보여 주는 두 개의 부록과 함께 끝을 맺습니다. 첫째 부록은 단 지파의 이주와 단 성소의 기원을 이야기합니다(17─18장). 그리고 둘째 부록은 기브아 주민이 저지른 악행을 서술하고, 이어서 범죄자들의 처벌을 거부하는 벤야민 지파와 그러한 벤야민인들을 징벌하려는 다른 지파들 사이의 전쟁을 이야기합니다(19─21장).
③역사적 배경
판관기는 판관들의 시대, 즉 여호수아의 죽음 직후부터 왕국 건립 직전까지(BC 1200-1020) 180년간의 이스라엘 역사를 말합니다. 이스라엘은 지파마다 영토를 나누어 받았지만, 그 안에는 가나안人들이 성읍을 중심으로 살고 있었고 가나안 성읍들은 그 지역의 고유한 관습과 문화들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이스라엘은 이 안에서 영향을 받게 됩니다. 토착 가나안은 물질문명에서 이스라엘보다는 분명 앞서 있었으므로 이교의식을 배제하기 쉽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신앙을 정리한 것이, 하느님께서 땅을 주셨고 바알은 풍작을 해 주는 추수의 神이라고 믿음으로서 종교 혼합주의(Syncretism)를 초래합니다. 혼합주의(混合主義)는 본질적으로 상이한 성격을 가진 여러 믿음을 조화롭게 공존시키고 다양한 사상들을 융합하는 것을 가리키는데 특히 종교적 영역에서 근본이 전혀 다른 전통을 하나로 합하고 조화시키려는(습합;習合)시도로 흔히 나타납니다.
④저자와 저작시기
❶판관기 영웅 설화들의 일부는 각 지파별로 구전으로 전해지다가 고대의 다른 일화, 정복사, 민담, 설화가 덧붙여지면서 이스라엘의 영웅 설화로 발전되었고 이러한 구두 전승의 지역 영웅설화, 민담 등이 다윗-솔로몬시대에 ‘구원자들의 책’이라는 형태로 기록 발전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문서화된 사료들은 신명기적 역사가들에 의해 집성 편집되면서 기원전 5세기경에 현재와 같은 판관기로 완성되었을 것입니다.
❷판관기는 카리스마적인 12명의 판관들이 정치, 군사의 지도자로서 활약하는 영웅담을 전하는 가운데 어떠한 역사적 연대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각 판관의 직무 수행 기간만 제시합니다. 각 판관이 활동하였다는 햇수를 합치면 410년이 되는데, 이 수치는 이스라엘 역사의 다른 연대 사료와 들어맞지 않습니다. 판관 시대의 연대는 왕정시작인 1020년과 탈출년도 및 가나안 땅에 들어온 시기를 함께 고려하면, 판관기에서 전해지는 전통들은 모두 기원전 1200년과 1020년 사이에 자리잡아야합니다.
❸판관기의 역사성에는 문제점도 있는 반면, 가나안 정착 초기의 정치적, 종교적 상황에 관해 유일하게 정보를 제공해 주는 비중을 지닌 책이기도 합니다. 판관기를 통해서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을 완전히 정복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이미 철로 된 무기나 생활 기구를 사용하는 주변국의 문화적 혜택도 받았으며 그로 인해 우상숭배의 위험도 클 수밖에 없었다는 상황도 인식하게 됩니다.
(상세내용은 본 블로그 sunny river <구약성경노트> ⑥판관시대 2-1참조)
46-8.룻기
①책이름 ; RUTH; ΡΟΥΘ (룻/Rt)
룻기는 여성의 이름을 따서 지은 책입니다. 룻은 그 어원이 확실하지는 않지만, 전통적으로 ‘여자 친구’로 이해되어 왔고 요즈음에는 (수동형 분사로서) ‘원기가 회복된 여자’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이름은 ‘애정’ 또는 ‘원기 회복’을 시사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판관시대와 이스라엘 왕정시대를 시작하는 사무엘기 사이에 룻기가 놓여있습니다. 히브리 성서에서 룻의 이야기는 ‘커투빔(성문서)’ 안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리스말 번역본인 칠십인역과 라틴말 성서가 룻기를 판관기 다음에 배열하는 것은 “판관들이 다스리던 시대”라는 역사적 배경에 관한 언급 때문일 것입니다. 유다의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는 룻기를 고대의 히브리어로 된 정경 중 판관기의 한 부분으로 봅니다.
②구성과 주요 내용
❶전체 4장으로 구성된 룻기는 그 내용이 한 가족의 이야기에 한정된 듯 보이지만, 폭넓게는 하느님의 섭리(攝理; providence) 그리고 보편주의(普遍主義) 라는 큰 주제가 이 책에 등장하는 룻,나오미,보아즈 세 명의 인물을 중심으로 펼쳐집니다. 이 책들은 보통 전통에 근거하는 역사소설로 간주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하가다 미드라쉬(Haggada Midrash;교화에 목적을 둔 설교집) 문학형식에 가깝다고 봅니다.
❷추후에 첨가된 것으로 여겨지는 4,18-22의 족보(1역대 2,5-15에 다시 나온다)를 빼고서는, 이 책의 문학적 통일성은 흠이 없는 것으로 드러납니다. 이야기는 완전한 조화와 균형을 이루면서 전개됩니다. 이렇게 예술적인 룻기의 구체적인 구성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다음과 같이 그 구성을 짜 맞추어 볼 수 있겠습니다. 룻기는 네 개의 장(場)으로 되어있고 도입 부분과(1,1-5),결론 부분이 첨부됩니다(4,13-17). 네 개의 장들 사이에는 세 개의 짧은 에피소드가 연결 고리 구실을 합니다(1,19-22; 2,18-23; 3,16-18).
❸룻기는 두 가지 관점으로 볼 수 있는데 그 하나는 교훈적 측면이고 둘째는 신학적인 내용들입니다.
교훈적 측면에서는
⑴가족에 대한 룻의 성실함과 이에 대한 하느님의 보답
⑵일상 안에서의 하느님의 섭리하심
⑶보아즈를 통한 자비의 실행
⑷결혼의 신성한 의무
신학적측면의 두 가지 흐름을 보면
⑴구원의 보편성과 ⑵나오미의 인생을 섭리하시는 하느님이십니다. 그러한 구원의 보편성과 섭리 안에서 나오미, 룻, 보아즈의 서로에 대한 자비의 실행이 중심을 이루며 전개됩니다.
❹마지막 계보 부분(4,8-22)은 룻기 전체와 비교해 볼 때 그 문체가 독특해 후대에 첨가된 부분이라면, 보아즈와 룻의 아들 오벳이 다윗의 조상임을 밝히는 4,17이 원래의 끝 절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부분 역시 후에 다윗의 계보가 삽입될 때에 부분적으로 변형되었을 것입니다.
③역사적 배경
룻기는 “판관들이 다스리던 시대에....”(룻기 1,1)로 시작합니다. 룻기의 역사적 배경은 판관시대입니다. 판관시대는 대략 BC 1200-1020까지 180년간의 이스라엘 역사를 말합니다.
④저자와 저작시기
❶탈무드 전승은 저자를 사무엘이라고 하나 저자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밝혀진 것이 없습니다. 판관시대 말기의 일화로 구전되어 오던 것을 유배시대 이후 유다공동체의 폐쇄적인 민족주의 정신을 힐책하기 위해 편집했다고 봅니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작 시기에 대해서는 아직도 많은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❷솔로몬시대의 작품이라는 주장도 있으나 기원전 587년에 일어난 유다 왕국의 멸망 그리고 예루살렘과 성전의 파괴에 이은 바빌론 유배 이전에 저작되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이 책에서 서술되는 법적 관습들은(‘구원자’의 권리와 의무, ‘역연혼’(逆緣婚)은 신명기 법전 이전의 입법을 반영하고(신명 25,5-10 참조), 이 이야기의 문체는 구약 성경의 고전적 산문에 가까우며, 아울러 사람 이름들에 대한 연구는 이 작품이 오래된 것임을 시사한다는 것입니다.
❸이 책의 신학은(보편주의, 보상에 관한 개념과 고통의 의미) 유배 이후 시대의 환경에서 더 잘 이해됩니다. 에즈라서 9장과 느헤미야서 13장에서 볼 수 있는 철저한 개혁에 반대하여, 외국인들과의 혼인에 호의적인 이 룻의 이야기에는 에즈라와 느헤미야 시대가 적합하다고 추측하기도 합니다.
(상세내용은 본 블로그 sunny river <구약성경노트> ⑥판관시대 2-2 룻기 참조)
46-9. 사무엘기상권 ;
1Samuel; ΒΑΣΙΛΈΩΝ Α ́ (ΣΑΜΟΥΉΛ Α ́) (1사무/1 S)
46-10.사무엘기하권 ;
2Samuel; ΒΑΣΙΛΈΩΝ Β ́ (ΣΑΜΟΥΉΛ Β ́) (2사무/2 S)
✻히브리성경은 1.2사무엘기/ 1.2열왕기로 되어있는데 70인譯(LXX;Septuaginta)은 사무엘기부터 열왕기까지를 합하여 왕국기 I.Ⅱ.Ⅲ.Ⅳ(ΒΑΣΙΛΕΙΩΝ; KINGS I.Ⅱ.Ⅲ.Ⅳ)로 편집하였습니다. 그리스말 번역자들은 사무엘기를 두 개의 두루마리에 옮기면서 제1 왕국기(ΒΑΣΙΛΕΙΩΝ Ⅰ;KINGSⅠ)와 제2 왕국기(ΒΑΣΙΛΕΙΩΝ Ⅱ;KINGSⅡ)라는 이름을 붙였고, 우리가 열왕기 상권과 하권으로 부르는 책들은 각각 제3 왕국기와 제4 왕국기라고 합니다.
①책이름
사무엘記는 예언자이며 이스라엘 마지막 판관인 사무엘의 이름으로, 사무엘기 상.하권의 주요인물이며 출생시기는 대략 BC 1120년입니다. 사무엘기라는 책 제목은 이 책의 저자를 사무엘 예언자로 돌린 옛 랍비 전승을 반영합니다. 후대의 랍비들은 1역대 29,29-30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여(“다윗 임금의 행적은 처음부터 끝까지 사무엘 선견자의 기록과 나탄 예언자의 기록과 가드 환시가의 기록에 쓰여 있는데...”) 사무엘의 위업이 그가 죽은 다음에 나탄 예언자와 가드 예언자를 통하여 지속되었다고 여겼습니다. 사무엘서의 본 내용인 다윗 왕가의 이야기는 이 왕가의 급변하는 내부 사정을 다루는데 솔로몬의 즉위에 관한 보고로 끝을 맺습니다.
②사무엘기의 구성과 주요 내용
❶사무엘기 상권은 전체 31장, 사무엘기 하권은 24장으로 구성되어있습니다. 일종의 “부록”인 2사무 21─24장을 떼어 놓고 보면 현재의 사무엘기는 대체로 연대순으로 이어져 있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⑴첫째 부분은(1사무 1─7장) 사무엘이 태어나서 예언자로 부르심을 받을 때부터 이스라엘의 구원자, 대판관이 되기까지 그의 생애를 들려줍니다. 이야기의 배경은 실로에 있는 계약 궤의 운명과 관련이 있는 필리스티아인들과의 전쟁입니다.
⑵둘째 부분(1사무 8─12장)은 필리스티아의 위협으로 불안해진 백성들이 사무엘을 찾아와 임금을 세워 줄 것을 요구합니다. 신정(神政) 제도를 옹호하는 사무엘 예언자는 이러한 움직임에 반대합니다. 그런데도 사무엘은 이스라엘 원로들의 간청을 받아들여 사울을 임금으로 세우고 물러납니다. 왕정에 대한 논란과 사울에 관한 이야기들이 둘째부분의 내용입니다.
⑶셋째 부분은(1사무 13─15) 사울이 필리스티아인들과 아말렉족과 벌인 전쟁들을 다룹니다. 사울이 전쟁들에서 승리를 거두기는 하지만, 그에게는 이미 어둠이 드리우기 시작합니다. 그는 하느님의 뜻에 불순종하는 두 가지 죄를 범하고, 이 때문에 사무엘은 그에게 암시적인 말로 왕좌에서 쫓겨나고 다윗이 그 뒤를 이으리라고 알려 줍니다.
⑷넷째 부분은(1사무 16장─2사무 5장) 다윗이 사울 앞에 소개된 때부터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성별될 때까지의 이야기인데 이른바 “다윗의 왕위 등극사”입니다. 다윗은 어릴 때 사무엘에게 성별되어 사울을 섬기다가 필리스티아의 거인장수 골리앗을 이기면서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합니다. 그는 전쟁에서 뛰어난 전공을 쌓아 사람들과 사울의 아들인 요나탄의 마음을 사로잡게 됩니다. 그러나 이 때문에 사울은 병적인 시기심에 사로잡혀 여러 차례에 걸쳐 다윗을 제거하려 하지만 번번이 실패합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쫓기자 결국 방랑 생활을 하면서 필리스티아인들을 섬기게 되지만 군대를 이끌고 동족을 치는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사울과 요나탄이 길보아에서 전하고 사울의 집안은 갈수록 약해집니다.
⑸다섯째 부분은(2사무 6─8) 사무엘기에서 다윗의 이야기를 다루는 2부작의 연결 부분입니다. 다윗은 예루살렘에 계약 궤를 안치하는데, 이는 자신이 점령한 성읍을 왕국의 수도로 성별하는 행위입니다. 또한 나탄의 예언은 다윗 왕조가 왕국의 중심이 되도록 뒷받침해 줍니다. 8장의 기록은 예루살렘 왕국의 창시자가 실제 왕국의 정복자였음을 상기시킵니다.
❷2부작의 후반부(2사무 9─20장)는 1열왕 1─2장으로 이어집니다. 여기에는 여러 사건들이 얽혀 있는데, 결국에는 솔로몬의 등극으로 끝을 맺습니다. 솔로몬의 탄생과 이를 둘러싼 여러 상황들, 그리고 솔로몬의 등극에 장애가 되었던 다윗의 아들들, 곧 암논, 압살롬, 아도니야 등이 어떻게 제거되었는지를 들려줍니다.
❸2사무 21─24장 은 “다윗의 왕위 계승사” 가 잠시 중단되고 두 편의 시가와 여러 인물들에 관한 기록, 그리고 두 가지 자연재해와 그 액땜에 관한 이야기를 모아 놓았습니다. 이 이야기들은 역사적, 종교적 면에서 중요한데도 앞 장들에서는 이에 대한 언급을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③사무엘기의 이스라엘 왕정시대 요약
이스라엘 왕정시대➜ 마지막판관 사무엘(판관시대는 왕정 시작인 기원전 1020년까지 약 180년간)➜사울(대략 BC 1020-1010)➜다윗(BC 1010-971) ➜솔로몬(BC 972-933).
❶이스라엘이 판관시대를 마감하게 되는 이유는 필리스티아의 위협이었습니다. BC 1050년에 필리스티아와의 결정적인 전투에서 이스라엘은 계약궤를 싸움터로 옮겨(에벤에제르;도움의 바위)하느님의 현존이 승리를 가져다 줄 것을 믿었지만 계약궤를 빼앗깁니다. 그러나 필리스티아에 전염병이 만연하자 필리스티아는 계약궤를 이스라엘 땅으로 돌려 보냈고(1사무 5―7), 계약궤는 다윗이 찾을 때까지 50여년 키르얏 여아림에 있었습니다.
❷다윗은 예루살렘으로 들어가 여부스인들의 시온 산성을 점령하고(2사무 5,6) 그곳을 ‘다윗 성’이라하였습니다(2사무 5,9). 이 “산성”은 시온산 위, 키드론 골짜기와 티로페온 골짜기 사이에 자리 잡았는데 나중에 다윗은 그곳의 정상 남쪽에 제단을 쌓았고(24,18-25), 솔로몬은 그곳에 성전을 짓게됩니다(1열왕 6). 다윗은 키르얏 여아림에 있던 계약 궤를 예루살렘 다윗성에 안치하고(2사무 6장) 차독과 에브야타르를 새 사제로 임명하였습니다. 계약 궤를 통해 그는 새로 창건된 국가를 이스라엘 옛 질서의 정통적 질서와 연결시키고 또한 신생국가가 과거의 성스러운 제도들의 보호자라는 것을 세상에 알리고자 했습니다.
❸다윗은 곧 자신의 궁전을 세웠는데(2사무 5,11) 계약 궤를 안장할 성전은 세우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계약의 궤는 원래 운반할 수 있게 만들어졌기 때문이고(탈출 37,1-9;민수 10,3), 왕실에 영구적인 성전을 세운다면 전통과의 단절을 가져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새 수도는 지파간의 질투심을 벗어나 중앙 정부의 권위를 높이며 발전하였고 메시아 사상이 태동한 곳이 예루살렘입니다.
새로운 이스라엘은 다윗 자신이었고 새 수도는 다윗 개인의 영지였으며, 이스라엘에 합병된 가나안 부족들은 지파의 소속이 아니라 다윗의 신하였던 것입니다. 이방 제국들과의 승전도 12지파의 소집에 의한 군대가 아니라 다윗 개인의 군대였으며 굴복 된 모든 나라들은 다윗에게 충성할 의무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그는 계약 궤가 안치되어 있는 성소를 국가의 공식적인 기구로 육성하였습니다. 종교문제는 두 명의 사제에게 일임했고 다윗은 성전례를 아낌없이 후원하고 음악에 힘을 기울였습니다. 그러나 가지각색의 아내들과 자녀들 가운데 다윗왕국의 후계자를 향한 질투와 음모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❹이제 하느님의 역사가 이스라엘에 개입한 위대한 사건은 탈출사건에 이어 다윗왕조가 됩니다. 다윗은 예루살렘에 계약 궤를 안치시킴으로써 자신이 정복한 이 성읍을 왕국의 수도로 성별합니다. 2사무9⎯20장의 다윗왕위의 계승에 관한 이야기는 1열왕 1―2장까지 이어집니다.
➃사무엘기의 다윗설화 요약
❶다윗의 등극과 사울의 몰락(1사무 16장―2사무 5장)
[다윗의 왕위 등극 설화 전반부]
다윗은 소년 시절에 사무엘에게서 성별을 받고 사울을 섬기게 되는데, 필리스티아의 골리앗을 쓰러뜨리면서 주목을 받게됩니다. 그는 사울의 아들 요나탄을 비롯하여 모든 이의 호감과 애정을 얻습니다. 그러나 그의 성공은 사울에게 병적인 시기심을 불러일으켰으며 다윗은 자신을 해치려는 사울을 피하여 방랑생활을 시작합니다. 사울과 요나탄이 길보아 전투에서 필리스티아인들에게 패하여 죽은 다음, 다윗은 사울의 추종자들과 계속해서 싸움을 벌이고 승리에 승리를 거듭합니다.
❷계약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다(2사무 6―8)
[다윗의 왕위등극 설화 후반부]
다윗은 예루살렘에 계약궤를 안치시킴으로써 자신이 정복한 이 성읍을 왕국의 수도로 성별합니다. 나탄의 예언은 다윗 왕조에게 호의를 보이며 이 왕조를 왕정 계승의 핵으로 확고히 다집니다.
❸다윗의 인구조사(2사무 24,11-14).
다윗이 실시한 인구조사는 하나의 거대한 획기적 사건이었습니다. 즉 하느님께서 주도하시는 옛성전(聖戰)에서 전력(戰力)적인 전쟁으로 넘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윗은 확실한 군대의 수를 손에 쥐고 싶어 했고 왕으로서는 필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성전을 주도하시는 하느님을 믿는 하느님의 기름부음은자로서는 죄가 되었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다윗에게 세가지벌 중 하나를 택하라고 합니다. 다윗은 사람에게가 아니라 하느님의 징벌을 요청합니다.
❹다윗왕(2사무 9―20장; 1열왕 1―2장)
열왕기상권 2장까지 이어지는 다윗왕의 여러 사건들이 나오는데 솔로몬의 등극에 귀결됩니다. 솔로몬의 탄생에 얽힌 이야기와, 솔로몬의 왕위 계승에 장애가 되는 다윗의 두 아들, 암논과 압살롬(그리고 아도니야)이 제거되는 이야기가 이 후반부에 속합니다.
➄사무엘기의 다윗왕국 요약(대략 기원전1010-971년)
❶헤브론의 왕 다윗
사울과 요나탄의 길보아 전투 패배로 이스라엘은 필리스티아의 손에 맡겨지게 되었으나 그들은 다시 일어났고 몇 해 안에 팔레스티나와 시리아 지역의 일급 강국으로 부상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다윗의 업적이었습니다. 사울 가문의 살아남은 아들 이스 보셋은 트란스요르단 마하나임에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옹립 되었는데(2사무 2,8)일종의 망명 정부였던 것 같습니다. 다윗은 헤브론에서 유다왕이 되었습니다(2사무 2,1-4).다윗은 그의 개인적 군대의 승리로 사유 영지를 소유한 왕이었기 때문에 왕이 될 때 솔로몬의 아들 르하브암처럼 다른 지파들의 동의를 얻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스 보셋은 무력했고 백성들은 다윗에게 희망을 걸기 시작했습니다(2사무 3,17).
❷통일 이스라엘의 왕 다윗
백성들은 헤브론의 다윗에게 몰려가 이스라엘의 왕으로 옹립하였습니다(2사무 5,1-3). 이스라엘의 원로들이 다윗을 왕으로 옹립한 결정적인 요인은, 백성들이 다윗을 하느님의 영이 내린 카리스마적인 인물로 보았다는 것입니다. 결국 필리스티아는 이스라엘의 우위를 인정하게 되었고 다윗은 드디어 필리스티아와의 전쟁을 종결했습니다. 다윗의 세력 기반이 부족 동맹 체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지파의 체제는 이미 눈에 띄지도 않았고, 남부 헤브론에서 다윗에 의해 통치되던 나라와, 이스 보셋의 북부가 다윗을 중심으로 하는 막강한 나라로 통합된 것입니다.
❸다윗 왕국
다윗은 자신의 개인 군대를 거느리고 예루살렘에 있는 여부스인들의 시온 산성을 점령하였고(2사무 5,6), 그곳을 스스로 ‘다윗 성’이라 칭하였습니다(2사무 5,9). 그는 계약 궤를 예루살렘에 안치하고(2사무 6장) 차독과 에브야타르를 새 사제로 임명하였습니다. 계약 궤를 통해 그는 새로 창건된 국가를 이스라엘 옛 질서의 정통적 질서와 연결시키고 또한 신생국가가 과거의 성스러운 제도들의 보호자라는 것을 세상에 알리고자 했습니다. 다윗은 예루살렘을 수도로 삼고 공적인 국가의 성소에 계약의 궤를 안치하였습니다. 이러한 조치는 각 지파의 민심을 예루살렘으로 쏠리게 하는 큰 역할을 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지파의 원로들이 옹립한 지도자에 의해서가 아니라 왕권의 지배 하에 조직적으로 다스려지는 제국 안에 있었습니다.
❹압살롬과 아도니야의 반란
통일 왕국 이스라엘은 오로지 다윗의 업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다윗의 아들 중 누군가가 왕위를 계승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습니다. 다윗왕좌를 계승하려는 음모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다윗 자신은 이 음모를 종식시킬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으므로 다윗의 애매모호한 태도는 압살롬에 이어 아도니야에게 원인 제공을 하였고(1열왕 1,5-6),아도니야는 엔로겔 샘터의 조헬렛 바위에 자기 형제들과 고관들을 부르고 스스로 왕이 되었습니다. 압살롬은 4년 동안 거사를 준비하여 헤브론으로 가 스스로 왕이 되었으며, 상당한 병력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진격하였습니다. 반란은 평정되고 압살롬은 요압에 의해 죽게됩니다(2사무 19,9). 이러한 상황에서 솔로몬 파는 다윗에게 결정을 요구하였고 다윗은 즉시 솔로몬을 왕으로 명하였습니다. 솔로몬은 기혼으로 인도 되어 다윗 군대의 호위를 받으며 차독에게 기름부음을 받고 왕으로 즉위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이제 하느님의 영이 내린 카리스마적 인물이 아닌 세습 왕 솔로몬을 왕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으니 옛 원칙은 무너졌던 것입니다.
➅사무엘기의 역사적 배경
기원전 10세기 초에 다윗 왕국이 건설된 시기는 이집트와 아시리아가 방어적 처지에 놓여 있을 때였고, 이 시기에 이스라엘은 그 세력이 지중해와 홍해에까지 미쳤습니다. 사무엘기는 이스라엘 역사의 오랜 기간을 다루는데, 그 마지막 시기 다윗의 노년기, 곧 기원전 970년에 솔로몬이 즉위하기 몇 해 전까지의 기록은 비교적 정확하다고 봅니다. 초기의 일화들은 그 연대를 분명히 밝혀내기가 쉽지 않지만 사무엘기의 전승들 중 필리스티아의 지배에 관한 정보, 특히 필리스티아인들이 독점했던 철기류 제조에 관한 기록(1사무 13,19-21), 구체적이고 신빙성 있는 장소들을 많이 언급하는 전쟁 이야기들(1사무 13; 17; 31), 도망 다니던 다윗에 관한 일화 등은 역사적으로 논란의 여지가 없습니다. 다윗과 사울 집안 사이에 얽힌 이야기와 압살롬의 반역 이야기에서 드러나는 이스라엘과 유다 사이의 갈등은 한층 역사적 근거가 분명한 전승입니다. 반면에 사무엘기에서 왕정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사울의 즉위와 사울 통치에 관한 기록을 정확하게 알아내기는 어렵습니다.
➆저자와 저작시기
사무엘기는 사건들을 연대순으로 엮어놓은 기록이 아닙니다. 이 책은 서로 다른 자료들을 한데 모은 문학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사울과 다윗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구두 전승들을 모아 놓고 있지만, 이 전승들이 기록되기 이전에 본디 그 원초적 사료가 어떠했는지를 밝혀낼 수는 없습니다. 이 책은 아마도 솔로몬의 치세 아래 편집되고, 587년 유다왕국이 무너진 다음 신명기 계열이라 불리는 역사학파의 손에서 수정과 보충을 거쳐 재편집되었을 것입니다.
(상세내용은 본 블로그 sunny river <구약성경노트> 7.왕정시대의 인물①②③ 참조)
46-11.열왕기 상권 ;1KINGS; ΒΑΣΙΛΈΩΝ Γ ́(1열왕/1 K)
46-12.열왕기 하권 ;2Kings; ΒΑΣΙΛΈΩΝ Δ ́(2열왕/2 K)
①책이름
열왕기 상권, 하권은 사무엘기부터 열왕기까지 왕국기 1.2.3.4로 편집한 70인역본에 따라 왕국기 3.4가 됩니다. 영어는 KINGS III.IV ; 그리스말성경은 바실레이온 ΒΑΣΙΛΕΙΩΝ 감마Γ 델타Δ입니다.
(KINGS III: ΒΑΣΙΛΕΙΩΝ Γ/ KINGS IV: ΒΑΣΙΛΕΙΩΝ Δ)
열왕기(列王記)는 책이름 그대로 왕들의 업적을 열거한 기록인데, 단순한 이스라엘의 역사기록이라기 보다는 이스라엘 임금들이 통치하던 역사의 일정기간에 관한 신학적 반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②열왕기의 전체 구성과 주요내용
다윗의 후계자 솔로몬의 이야기로 열왕기가 시작됩니다. 다윗은 1열왕 2,10 다윗성에 묻힙니다.
열왕기 상권은 22장, 열왕기 하권은 25장으로 구성되어있고 크게 구분하면
⑴다윗의 통치 말년과 솔로몬의 통치(1열왕 1─11)
⑵왕국의 분열에서 북 왕국 이스라엘의 마지막까지(1열왕 12─2열왕 17)
⑶이스라엘 왕국의 마지막에서 유다 왕국의 마지막까지(2열왕 18─25) 이렇게 구분할 수 있습니다.
③저자와 저작년대
열왕기집필자에 대한 대다수 주석가들의 견해를 종합하면 먼저 하나의 통일된 작품으로서 여호수아기와 판관기와 사무엘기가 있었습니다(어떤 학자들은 신명기도 포함시킨다). 첫 번째 편집자가 1열왕 1장에서 2열왕 20장을 저술하였을 것입니다. 그는 유다와 이스라엘 임금들의 실록을 담은 문헌과 구전 전승의 요소들도 이용하였고, 나아가 기원전 587년(바빌론유배) 예루살렘의 파괴를 직접 목격한 증인으로서 그 사건을 묘사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기원전 550년경(귀향후) 두 번째 편집자는 자기가 입수한 다른 일화들과 전승들을 이용하여 선임자의 작품을 보완하였을 것입니다. 그가 첨가한 내용으로는 다윗과 그의 후계에 관련된 이야기와(1열왕 1,1-2,11에 계속되는 2사무의 왕위 계승 대목), 예루살렘 포위를 다루는 본문을 들 수 있습니다. 스바 여왕의 방문에 얽힌 전승도 그가 이 책 안에 집어넣은 것으로 보입니다. 예언자들과 모세 율법이 그의 편집 안에서 중요하게 연결되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이 두 번째 편집자를 예언자들의 집단에 속한 인물, 좀더 구체적으로 예레미야의 제자가 아니었나 추측합니다.
④열왕기시대의 국제 정세
왕국 분열에서 유다 왕국 멸망까지가 1열왕 12장 이하부터 2열왕 25장까지의 내용입니다. 열왕기의 배경이 되는 당대의 국제정세를 보면 다윗 시대에 이집트, 아시리아 등 주변 국가들의 세력이 약화되어 이스라엘은 통일과 함께 번영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❶이집트 : 솔로몬시대에 이집트는 이스라엘과 동맹관계를 유지해야할 만큼 세력도 약화되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의 아들 르하브암 5년에 이집트는 예루살렘을 침공하여 성전과 왕궁의 보물을 약탈해 갔으며(1열왕 14,25이하), 솔로몬 때의 반란주모자 예로보암에게 망명처를 제공하기도 했습니다(1열왕11,40).
❷시리아 : 다윗과 솔로몬이 다스리던 일부 기간 동안 시리아(아람)는 이스라엘의 속국이었으나, 차츰 세력을 확장하여 북이스라엘 갈릴래아 지방을 초토화하기도 했습니다(878년경. 1열왕 15,20).
❸아시리아 : BC721년 북이스라엘은 아시리아에게 패망하였고 남유다도 아시리아의 속국이 되어 조공을 바치게 되었습니다. 이후 아시리아는 점차 세력이 약해지고 바빌론에게 멸망하여 역사에서 사라집니다.
❹바빌론 : 바빌론은 BC609년에 아시리아를 제압합니다. 네부카드네자르는 605년 카르크미스 전투에서 이집트의 느코에게 승리합니다. BC587년 마침내 유다는 바빌론제국에게 멸망합니다.
⑤열왕기의 연대문제
❶열왕기는 이스라엘 역사의 긴 기간을 다루고 있습니다. 다윗의 말년 기원전 972년경부터 기원전 561년 여호야킨 임금이 바빌론 임금의 특전을 받은 일까지가 열왕기의 기록입니다(2열왕 25,27-30). 열왕기에 나오는 연대는 어려운 문제를 안고 있으며 정확하게 정립할 수 없습니다. 유다 임금들의 통치 연대는 이스라엘(북왕국) 임금들의 통치 연대와 함께 언급되고, 북왕국 임금을 말할 때는 유다임금의 통치연대를 함께 언급하기 때문에 이것이 서로 모순되는 연대 체계를 끌어들이는 원인이 됩니다.
❷연대불일치의 이유로는 필경사들의 오류를 들 수 있는데, 그들은 원래의 문헌에 나오는 숫자를 뒤바꾸어 놓거나 다른 숫자와 혼동하기도 하였습니다. 더구나 왕자들이 선왕과 함께 나라를 통치하게 되는 경우, 임금들의 통치 연대를 정확하게 나누어 배치하기가 어렵게 됩니다.
❸마지막으로 연대 측정이 어려운 원인은 열왕기 안에 서로 겹치는 여러 연대 체계 때문입니다. 이 다양한 연대 체계는 저마다 다른 사료들에서 나왔습니다. 이 연대측정들로 세 가지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⑴유다의 통치에 근거한 연대, ⑵북왕국의 통치에 근거한 연대, ⑶둘을 조화시켜 얻은 연대입니다. 예를 들어 왕국 분열에서 아합 통치의 끝에 이르는(기원전 933-853년) 기간을 우리는 80년으로 보는데, 유다의 연대로는 84년, 북왕국 연대로는 78년, 그리고 둘을 조화시켜 얻은 연대는 75년입니다.
⑥열왕기의 역사신학
열왕기의 저자는 이스라엘백성들의 예배를 예루살렘 성전으로 집중시키며, 우상숭배가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산당들의 폐쇄를 강력하게 주장합니다. 따라서 열왕기저자의 평가도 왕들이 예루살렘 성전을 유일하고 합법적인 제의 장소로 인정 하는가 아닌가에 따라서 선한 왕과 악한 왕으로 구분됩니다. 열왕기 저자는 다윗왕조를 중심으로 다루는 역대기와 달리 남⸳북왕조를 함께 다루며 계약의 순명이라는 기준에 따라 남북왕조 모두 엄격하게 비판합니다.
❶범죄 : 열왕기의 인물들은 오로지 인간들에게서 드러나는 세속적인 삶을 삽니다. 성궤는 안치되었지만 더 이상 제의적으로 인도되지 않습니다. 이 책은 역사의 일정 기간에 관한 신학적 반성이며 임금과 백성들의 거대한 범죄고백입니다. 그것을 위해 남⸳북이스라엘의 전 왕들이 집결되었고 이 역사가의 관점에서는 하느님께서 모든 것에 속속들이 지배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❷예언의 성취 : 다윗의 왕좌는 나탄예언의 성취(2사무 7,1-17; 내가 한 집안을 일으키리라)를 말하는 것이지만 약속의 성취방법은 이스라엘이 기대하지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개입은 다윗왕국의 불운한 일들과 더불어 복된 일들 가운데서 직접 인지됩니다.
❸합법적 제의장소 : 열왕기는(신명기계역사서) 합법적인 제의장소에서만 하느님을 예배할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합법적 성전례를 거행하지 않은 왕은 모두 하느님의 눈 밖에 난 왕들이었습니다. 열왕기는 정치적 업적도 신학적으로 평가됩니다. 그러므로 정치적 업적보다는 종교적 문제에 의해 좋은 왕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열왕기에 의하면 예컨대 에로보암1세나 아합왕처럼 정치 잘해도 악한 임금이라고 기록됩니다.
❹두 전통의 합류 : 다윗은 법궤를 예루살렘에 안치함으로써 계약전통을 예루살렘으로 이식시켰습니다. 모세의 율법과 다윗의 왕권, 이것은 구체적인 역사의 세력이었습니다. 이 열왕기의 흐름에 예언자적소명이 제시됩니다. 왕위 계승사에 예언자들의 소명이 들어가면서 신학적 주제가 시작 되는데 그것은 하느님께 돌아가는 회개였습니다.
⑦열왕기의 내용 요약
[다윗의 죽음에서 솔로몬의 죽음까지]
❶2사무 9⎯20장의 다윗왕위의 계승에 관한 이야기는 1열왕 1―2장까지 이어지면서 솔로몬의 등극에 귀결되는 여러 이야기가 나옵니다. 즉, 솔로몬의 탄생, 다윗의 왕자들이 어떻게 하나씩 왕위에서 멀어졌는지를 밝힙니다. 여기에서 다윗은 궁 안에 거처하면서 이불을 덮어도 몸이 춥고, 전장에 나가지 않고 정원을 거닐면서 우리야의 아내를 탐하는 나이든 임금이 되어있습니다.
❷다윗의 통치 말년과 솔로몬의 통치(1열왕 1―11장)
다윗과 수넴처녀(1,1-4);솔로몬이 다윗의 명을 받아 임금이 되다 (1열왕 1,1-53)➜다윗이 죽다(1열왕 2,1-12) ➜아도니야가 죽다(1열왕 2,13-46) ➜솔로몬이 파라오의 딸과 혼인하다;솔로몬이 기브온에서 꿈을 꾸다;솔로몬의 판결(1열왕 3)➜솔로몬의 대신들; 솔로몬의 통치 아래 왕국이 굳건해지다; 솔로몬이 이름을 떨치다(1열왕 4,1-5,14)➜솔로몬이 성전 건축을 준비하다(1열왕 5,15-32)➜ 솔로몬이 성전을 짓다; 솔로몬이 자기 궁전을 짓다; 청동 기술공 히람을 데려오다(1열왕 6―7)➜계약궤를 성전에 모시다; 솔로몬의 기도; 솔로몬이 백성에게 축복하고 권고하다; 성전을 봉헌하다; 하느님께서 솔로몬에게 다시 나타나시다(1열왕 8-9,9)➜솔로몬의 건축 활동; 솔로몬의 무역 활동(1열왕 9,10-28) ➜스바 여왕이 솔로몬을 찾아오다; 솔로몬의 영화; 솔로몬의 병거대(1열왕 10)➜솔로몬이 하느님에게서 돌아서다➜예로보암의 반란을 예고하다; 솔로몬이 죽다(1열왕 11).
❸솔로몬의 황금시대(BC 972-933)
⑴솔로몬의 정책 : 솔로몬은 기원전 972년 왕위에 올라 40 여년 이스라엘을 평화와 번영으로 이끌었습니다. 솔로몬의 정책은 이방과 내부의 신하들과 우호를 유지하며 이스라엘의 평화적 발전을 도모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동맹 정책에 의해 이 가능성을 실현하려 했고 그의 이 정책은 많은 이방 여인들과의 결혼으로 입증됩니다. 그의 통상관계의 사업은 다양했고 교역은 대부분 왕실에서 독점하였으므로 국가에 막대한 부를 가져다주었습니다. 이것은 비단 왕실 뿐 아니라 나라 전체의 생활수준도 급격히 상승시켰는데 많은 사람에게 취업의 기회를 주고 사기업에도 눈을 뜨게 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성서가 전하는 대로 전에도 그리고 이후에도 꿈꿀 수 없는 번영기를 맞았습니다.
⑵솔로몬의 성전 : 예루살렘성전공사는 솔로몬 4년(968년. 솔로몬의 연대는 거의 입증된 것이나 학자에 따라 10년의 차이가 있다)에 기공되어 7년 후 완공되었습니다(1열왕 6,1-38).이 성전은 400 여년 이스라엘의 중심이 되었는데 기원전 586/7년 바빌론의 네브카드네자르의 예루살렘 침입 때 파괴되었습니다. 그 후 즈루빠벨을 중심으로 폐허 된 성전 위에 재건하여 기원전 516년에 완공하였으나 기원전 63년 로마에 의해 재 파괴되었습니다. 재파괴된 성전을 헤로데가 기원전 37년 재건을 시작하여 50 여년의 개축, 증축 등을 거쳐 헤로데 성전을 완공하였으나 이 또한 기원후 70년 로마에 의해 다시 파괴되었습니다. 그 후 옛 성전의 자리에는 회교사원이 세워졌고 통곡의 벽은 헤로데 성전의 일부로 현재까지 남아있습니다. 이 성전은 솔로몬자신이 주도한 성대한 의식을 거쳐 봉헌되었습니다(1열왕 8장).
⑶문화의 개화기 : 솔로몬 시대는 물질적인 풍요 뿐 아니라 문화의 개화기이기도 했습니다. 그들의 가장 빛나는 산문은 ‘다윗왕조사’인데 솔로몬의 통치 시대에 쓰인 것이 분명하고 우리가 왕정시대에 관하여 알게 된 지식의 대부분은 여기에서 얻은 것입니다. 솔로몬은 새로운 성전에 자신의 재력을 아낌없이 사용했고 음악과 聖靈歌도 발전하였습니다. 솔로몬은 매우 뛰어난 현자로 성서에 묘사되어 있고 수많은 잠언들의 작자로 기록되어있습니다(1열왕 5,9-14).솔로몬 자신의 글이 어느 것인지 성서를 통해서 확실히 구분되어 있지는 않지만 이스라엘 지혜, 교훈의 전통이 이 시기에 시작된 것만은 확실합니다.
❹왕국 분열의 요인
이스라엘의 황금시대가 모든 면에서 뛰어난 것은 아니었습니다.이스라엘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 만성 적자에 시달리게 되었는데 성전례 지원, 건축사업, 군대유지, 그리고 솔로몬의 무절제한 사생활의 사치 등이 그것입니다. 이제 국가는 대규모의 관료제도를 필요로했고 징세를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 국토를 12개 행정구역으로 재편성하고 각 지역에 지방장관 한 사람씩을 두었습니다(1열왕 4,7-19). 이로써 솔로몬은 지파제를 약화시키고 가나안 족 주민들을 국가 조직 안에 통합하여 모든 권력을 자신의 손 안에서 확고히 굳히려했습니다. 이것은 12지파제가 실질적으로 폐지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더구나 솔로몬은 재정상의 곤경과 건축사업을 위해 백성의 분노를 유발시킨 자국민에 대한 강제노역을 시작하였습니다(1열왕 11,28). 다윗과 솔로몬은 여러모로 훌륭했음에도 불구하고 왕정의 근본 문제인 지파들의 자주성과 중앙 집권과의 즉, 부족 전통과 새 질서의 간격을 메우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❺분열 왕국의 형편
이제 남⸳북 이스라엘은 내정 문제로 제국을 지탱할 힘이 없게 되었고 두 나라는 이류 국가로 전락하였습니다. 조공 받는 것이 불가해졌고 무역도 불가능해졌습니다. 경제적인 파탄이 왔습니다.
유다와 벤야민 지파를 차지한 르하브암은 북부이스라엘의 복귀를 위해 노력하지 않았는데 이것은 스마야의 신탁 ‘저마다 집으로 돌아가거라’, 원문대로 하면 ‘그들을 가게 내버려 두어라’(1열왕 12,21-24; 2역대11,1-4 참조) 사상 때문이기도 하지만 부친솔로몬과 손자 아사의 개혁정치를 볼 때 아쉬운 면이 많이 보이는 유다왕국의 초대임금이었습니다. 국경을 낀 남북전쟁이 산발적으로 계속되는 가운데 남부 유다왕국은 영토는 작았지만 확고한 다윗왕조전통과 종교 제의의 전통이 안정되어 있었고 동질의 족속이었으므로 내란은 없었으나, 예로보암이 초대왕으로 등극한 북이스라엘왕국은 불안정한 상태였습니다.
⑧열왕기의 내용요약
[왕국분열에서 북왕국 이스라엘 멸망까지](1열왕 12-2열왕 17)
북쪽 지파들이 반기를 들다; 남북이 갈라지다(1열왕 12) ➜베텔의 제단이 무너지다; 베텔의 늙은 예언자(1열왕 13) ➜예로보암의 아들이 죽다; 예로보암이 죽다(1열왕 14,1-20) ➜르하브암의 유다 통치; 아비얌의 유다 통치; 아사의 유다 통치 (1열왕 14,21-15,24) ➜나답의 이스라엘 통치; 바아사의 이스라엘 통치; 엘라의 이스라엘 통치; 지므리의 이스라엘 통치; 오므리의 이스라엘 통치; 아합의 통치 시작(1열왕 15,25-16,34) ➜엘리야가 가뭄을 예언하다; 엘리야와 까마귀; 엘리야가 사렙타 과부에게 기적을 베풀다; 엘리야와 오바드야; 엘리야가 아합을 만나다; 엘리야가 카르멜산에서 바알 예언자들과 대결하다; 엘리야가 호렙산으로 가다; 엘리야가 하느님을 만나다; 엘리야가 엘리사를 부르다(1열왕 17―19) ➜벤-하닷이 사마리아를 공격하다; 이스라엘이 승리하다; 아람군이 다시 쳐들어오다; 한 예언자가 아합을 저주하다(1열왕 20) ➜아합이 나봇의 포도밭을 빼앗다; 아합이 뉘우치다(1열왕 21) ➜아합이 라못-길앗을 되찾으려 하다; 미카야가 아합의 패전을 예언; 아합이 라못-길앗에서 전사(1열왕 22,1-40) ➜여호사팟의 유다 통치(1열왕 22,41-51) ➜아하즈야의 이스라엘 통치(1열왕 22,52-54) ➜엘리야와 아하즈야 임금; 엘리야의 승천과 그의 뒤를 잇는 엘리사; 엘리사가 두 가지 기적을 일으키다(2열왕 1―2) ➜요람의 이스라엘 통치(2열왕 3,1-3) ➜이스라엘과 유다 동맹군이 모압과 싸우다; 과부의 기름병; 엘리사가 나아만을 고쳐주다; 엘리사가 아람 군대를 사로잡다; 포위된 사마리아가 기아에 빠지다; 엘리사가 자객들이 오는 것을 미리 말하다; 아람군이 진지를 두고 달아나다; 수넴 여자 이야기의 마무리; 엘리사와 아람 임금(2열왕 3,4-8,15) ➜여호람의 유다 통치; 아하즈야의 유다 통치(2열왕 8,16-29) ➜엘리사의 제자가 예후에게 기름부어 임금으로 세우다(2열왕 9,1-13) ➜예후가 이스라엘 임금 요람을 죽이다; 예후가 유다 임금 아하즈야를 죽이다; 예후가 이제벨을 죽이다; 예후가 아합의 아들들을 죽이다; 예후가 유다 임금 아하즈야의 형제들을 죽이다; 예후와 여호나답; 예후가 바알 숭배를 없애다; 예후의 죄; 예후의 마지막(2열왕 9,14-10,36) ➜아탈야의 유다 통치; 여호야다 사제의 개혁(2열왕 11) ➜요아스의 유다 통치; 아람의 침입과 유다 임금 요아스의 시해(2열왕 12) ➜여호아하즈의 이스라엘 통치; 여호아스의 이스라엘 통치(2열왕 13,1-13) ➜엘리사가 죽다; 이스라엘과 아람의 전쟁(2열왕 13,14-25) ➜아마츠야의 유다 통치; 유다 임금 아마츠야가 죽다(2열왕 14,1-22) ➜예로보암 2세의 이스라엘 통치(2열왕 14,23-29) ➜아자르야의 유다 통치(2열왕 15,1-7) ➜즈카르야의 이스라엘 통치; 살룸의 이스라엘 통치; 므나헴의 이스라엘 통치; 프가흐야의 이스라엘 통치; 페가의 이스라엘 통치(2열왕 15,8-31)➜요탐의 유다 통치; 아하즈의 유다 통치(2열왕 15,32-16) ➜이스라엘의 마지막 임금 호세아; 북왕국 이스라엘의 몰락에 대한 반성; 사마리아인의 기원(2열왕 17)
⑨열왕기의 내용요약
[사마리아멸망 후 유다의 바빌론 유배까지]
히즈키야의 유다 통치; 사마리아가 함락되다; 아시리아 임금 산헤립이 유다를 치다; 히즈키야가 이사야에게 문의하다; 아시리아가 다시 위협하다; 히즈키야의 기도; 산헤립을 두고 하신 주님의 말씀; 히즈키야에게 내린 주님의 징표; 산헤립의 말로(2열왕 18⎯19) ➜히즈키야의 발병과 치유; 바빌론 사절단; 히즈키야가 죽다(2열왕 20) ➜므나쎄의 유다 통치; 아몬의 유다 통치(2열왕 21) ➜요시야의 등극과 종교 개혁; 주님의 율법책을 발견하다; 요시야가 계약책을 봉독하고 계약을 맺다; 요시야의 종교 개혁; 요시야가 파스카 축제를 지내다; 요시야의 나머지 개혁; 요시야가 죽다(2열왕 22,1 - 23,30) ➜여호아하즈의 유다 통치; 여호야킴의 유다 통치; 여호야킨의 유다 통치; 유다인들의 첫 번째 바빌론 유배(2열왕 23,31-24,17)➜치드키야의 유다 통치; 예루살렘이 함락되다; 성전이 파괴되다(2열왕 24,18-25,21) ➜네부카드네자르가 그달야를 유다 총독으로 임명하다(2열왕 25,22-26) ➜여호야긴이 바빌론 임금에게 은전을 입다(2열왕 25,27-30)
[유다왕국의 마지막 150년](2열왕 18⎯25)
❶8세기 후반 아시리아가 본격적으로 제국을 형성하던 시기에 약소국들을 나뭇잎처럼 쓸어버리는 일진강풍이 불었습니다. 북왕국은 그 타격에 이미 무너졌고 남왕국 유다는 풍전등화의 처지였으나 이집트,아시리아,신진세력 바빌론 등 강대국사이에서 한 세기 반 동안 더 존속했습니다. 북왕국은 해체되고, 유다왕 아하즈는 친아시리아 정책 덕으로 국가적 재난은 모면했으나 아시리아의 속국이 되는데 이는 유다의 종교생활전반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❷호세아임금 9년 기원전722년 멸망한 북이스라엘의 동포들은 아시리아의 각 지역에 포로로 유배되어 있었습니다. 이 시기에 많은 군소(群小) 국가들이 연합하여 아시리아 세력에 대항하였는데 반 아시리아 동맹국인 이집트,에티오피아와 북부이스라엘의 저항군 등이 가담하였습니다.
❸요시야는 BC609년 므기또에서 전사하고 아들 여호아하즈가 등극하였으나 3개월 만에 이집트의 파라오 느코에게 죽고, 느코는 요시야의 아들 엘야킴을 임금으로 세우고 이름을 여호야킴(609-598)으로 바꾸게 합니다(2열왕 23,31-34).
❹바빌론은 칼데아 왕조에 의해 세력을 확장하여 BC612년 신바빌론으로 급부상하였고 609년 아시리아를 제압하였습니다. 바빌론의 네부카드네자르는 BC605년 근동 전역의 운명을 결정짓는 카르크미스 전투에서 이집트의 느코에게 승리하였고 605년 예루살렘을 침공합니다. 이시기의 저술예언자는 제1이사야, 미카, 등이 있고 유다의 마지막시대에 나훔,예레미아, 스바니야, 하바쿡 등이 존재했습니다. 예레미아는 요시아왕 13년인 BC627년부터 존재했으나 요시아시대에는 뒤로 물러나 관망한 것으로 보입니다. 예레미아는 유다의 마지막 임금 치드키야와 운명을 함께합니다.
❺유다왕국은 597/596의 1차 바빌론유배, 587/586의 2차 바빌론유배를 거치면서 성전은 파괴되었고 유다왕국은 다시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이후 페르시아제국,그리스,로마제국을거치면서 기원전 2-1세기 잠시 하스몬왕조에 의한 이스라엘독립을 찾기는 했으나 성전을 중심으로 하는 종교적영역의 자치권을 누리는 제국의 속주로서 이스라엘을 유지하게 됩니다.
⑩남북왕조의 통치년대
❶남왕국 유다임금의 통치년대 (BC)
르하브암 933-916➜아비야 915-913➜아사 912-871➜여호사팟 870-848➜여호람 848-841➜아하즈야 841➜아탈야 841-835➜요아스 835-796➜아마츠야 796-782➜아자르야(우찌야) 781-740➜요탐 740-735➜아하즈(예언자: 미카)735-716➜히즈키야(예언자: 이사야,나훔)716-687➜므나쎄 687-642➜아몬 642-640➜요시야 (예언자: 예레미야, 스바니야,하바쿡) 640-609➜여호아하즈 609➜여호야킴 609-598➜여호야킨(예언자;예레미아,바룩)598-597➜치드키야 (예언자: 예레미아. 오바드야) 597-587➜유배시대 BC 587~538 유배지의 예언자➜에제키엘; BC 597-571➜제2이사야(이사야서 제2부 40⎯55장) 582➜제3 이사야 538
❷북왕국 이스라엘 임금의 통치년대 (BC)(초대왕 예로보암1세부터 북왕국 멸망까지)
예로보암 1세 933-911➜나답 911-910➜바아사 910-887➜엘라 887-886➜지므리 7일간➜오므리 886-875➜아합 (예언자:엘리야) 875-853➜아하즈야 853-852➜요람 852-841➜예후(예언자: 엘리사) 841-814➜여호아하즈 814-798➜여호아스 798-783➜예로보암2세 (예언자: 아모스) 783-743➜즈카르야 743➜샬룸 743-746➜므나헴 746-738➜프가흐야 738-737➜페카 737-732➜호세아(예언자: 호세아) 732-724➜호세아임금9년 사마리아멸망 722/721
(열왕기 상세내용은 본 블로그 sunny river<구약성경노트> 7.왕정시대 8.남북왕조시대 9.유다의마지막시대 10.바빌론유배시대 참조)
<구약46권 기본정보② 신명기계역사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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