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LD TESTAMENT Basic Information
[역사서 분류]
⑴신명기계 역사서; 여호수아記/판관기/1.2사무엘기/1.2열왕기
⑵역대기계 역사서; 1.2역대기/느헤미야기/에즈라기
⑶교훈문학적 역사서;토빗기/유딧기/에스테르기
⑷후기역사서; 마카베오기 상권/마카베오기 하권
[마카베오기 시대의 배경]
1)헬레니즘세계에 직면한 이스라엘
마카베오기는 헬레니즘의 영향을 거슬러 자신들의 신앙과 문화를 옹호하기 위한 유다인들의 투쟁을 묘사합니다.이스라엘은 이즘(ism;主義)을 가지고 헬레니즘에 반대한 유일한 민족이었는데, 양자 사이의 영향은 초대그리스도교에 끼친 영향을 이해하는 데도 중요합니다.
2)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4세(Antiochus EpiphanesⅣ. BC 175- 164)의 지배와 마카베오 항쟁
①프톨레마이오스; 알렉산드로스 사후 그의 측근 장교들이 알렉산드로스 제국을 몇 갈레로 갈라놓았는데 그 중 두 큰 세력 중 하나인 프톨레마이오스는 이집트 지배권을 장악하고 수도를 알렉산드리아로 삼았습니다. 이스라엘은 먼저 1세기가량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배를 받았고 이 시기에 알렉산드리아의 유다인이 증가하였습니다.
②셀레우코스왕조; 바빌로니아와 시리아지역을 지배했고 수도를 셀레우키아와 안티오키아로 삼았습니다.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 3세가 팔레스티나를 정복 하였으나 BC 190년 로마에 패하여 아들 안티오코스4세를 인질로 내어주었습니다.
❶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4세가 로마에서 귀환하여 팔레스티나지역을 다스리게됩니다. 그는 제우스神을 만들어 예루살렘 성전과 도시 곳곳에 세우면서 정책 수행에서 유다의 반발이 거세었으므로 박해는 불가피해졌습니다.
❷마카베오기 상권 1장에 안티오코스의 박해당시 유다인들의 처참한 상황이 적나라하게 기록 되어있습니다. BC 167년 12월 제우스神의 제의(祭儀)가 예루살렘성전에 도입되어 제우스象이 세워졌고 주신(酒神) 디오니소스의 축제가 강요되었습니다. 유다인들은 무력항쟁을 시도하였고 이러한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뛰어난 지도자를 만난 덕분이었습니다.
[마카베오기 소개]
마카베오기는 헬레니즘 시대, 선택된 민족 이스라엘의 역사를 알려 주는 유일한 책입니다. 그러나 그중에서 셀레우코스 4세 통치 말기인 기원전 176년부터 유다의 대사제 요한 히르카노스가 즉위하는 기원전 134년까지 반세기가량의 역사만을 다룹니다. 마카베오기 상권과 하권은 주제가 비슷하지만 저자, 언어, 저작의 관점이 다른 독립된 작품입니다. 유다 마카베오와 그 형제들이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유다 민족의 자주독립을 되찾고,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4세가 말살하려던 종교의 자유를 되찾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두 책은 서로 독립적이면서, 다루는 시기에도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마카베오기 상권과 하권은 모두 그리스 말로 전해집니다. 그리고 하권은 본디부터 그리스 말로 쓰였습니다.
마카베오기는 유다교 경전에 들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로니모 성인은 이 책을 외경으로 여겼고 나중에 개신교에서도 그렇게 분류하였습니다. 그렇다고 교부들이 마카베오기를 낮게 평가한 것은 아닙니다. 이 책은 4세기 말에서야 경전 목록에 나타나는데, 가톨릭 교회에서 이 책에 대한 경전여부의 논란이 끝난 것은 16세기 트리엔트 공의회 때였습니다.
46-20. 마카베오기 상권
1 MACCABEES / ΜΑΚΚΑΒΑΙΟΙ Ι(1마카/1M)
①책이름
마카베오는 모데인의 사제 마타티아스의 다섯 아들 중 마카베오라고도 부르는 유다의 이름입니다. 마카베오의 뜻은 분명하지 않습니다. ‘망치, 망치 같은 이, 망치질하는 이’ 또는 ‘주님의 표지’ 등으로 이해합니다. 아무튼 이 이름이 장차 이 집안 전체의 이름이 되고 책 이름이 됩니다.
마타티아스는 ‘주님의 선물’을 뜻하는 히브리 말 이름 마티트야 또는 마티트야후를 그리스 말식으로 음역한 것입니다. 유다역사가 요세푸스는 마타티아스를 하스모네오스라고 부르는데, 여기에서 ‘하스몬 왕조’의 이름이 유래합니다.
②내용
마카베오기 상권은 16장으로 구성되어있는데 유다 마카베오, 그리고 그의 두 형제 요나탄과 시몬의 무용담을 차례로 엮은 삼부작입니다. 시몬은 유다 땅에 하스몬 왕조를 창시한 사람입니다.
◉1부 유다 마카베오 [1-9,22]
❶도입부(1─2장)는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그 후계자들, 특히 유다 지방에 그리스 관습과 문화를 강요하려고 했던 안티오코스에피파네스의 시도를 입문으로 간략하게 소개한 다음(1장), 마타티아스 사제와 그 아들들의 반란 이야기로 들어갑니다(2장). 마카베오 형제들의 아버지인 마타티아스는 3개월 후 죽고 그 아들 중 유다마카베오에 의해 이 봉기는 시작 되었습니다.
❷3,1-9,22는 유다 마카베오의 전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 봉기는 독립 투쟁이 되었고 독립투쟁은 생각한 것보다 큰 결과를 이스라엘민족에게 안겨주었습니다. 유다 마카베오는 기원전 166년부터 160년까지 여섯 해 동안 독립 투쟁을 지휘합니다(3장-9,22).
❸마카베오기 상권은 유다 마카베오가 안티오코스에피파네스가 더럽힌 성전을 정화시키고 주변 민족들을 굴복시킨 사실과(4,36─5장) 에피파네스의 죽음을 알려줍니다(6,1-17). 같은 내용을 마카베오기 하권도 전하는데, 먼저 9장에서 에피파네스의 죽음을, 그리고 10장에서 성전 정화를 이야기하는 이 하권의 순서가 더 맞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하권에도 순서의 혼동이 없지는 않습니다.
❹유다 마카베오는 예루살렘으로 진격하여 안티오코스가 성전을 약탈한 지 삼 년 만인 기원전 165년에, 성전을 정화하고 등불을 밝히며 재봉헌하였습니다(4,36-5장).이 사건을 기념하여, 유다인들은 지금도“빛의 축제”(봉헌절;하누카hanukkah;히브리 말로 ‘하느님께 드림’의 뜻)를 지냅니다.
❺160년 봄 4월에서 5월, 다시 침공해 온 시리아대군 앞에서, 유다의 부하들은 두려움에 달아납니다. 수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 유다마카베오는 패배를 직감했지만, 도망을 거부하고 치열한 전투 끝에, 장렬한 죽음을 맞았습니다. 9,1-22는 그렇게 유다 마카베오가 명예롭게 전사한다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2부 요나탄 [9,23-12장]
유다 마카베오가 전사 한 후 요나탄이(기원전 160-143년) 등장합니다(9,23─12장).트리폰은 먼저 알렉산드로스의 어린 아들 안티오코스 6세의 이름으로 나라를 다스리다가, 나중에는 자기가 직접 다스립니다. 알렉산드로스가 기원전 152년에 대사제로 임명한 요나탄은 트리폰과 동맹을 맺지만, 트리폰이 배신하는 바람에 붙잡혀 포로가 되고 맙니다. 트리폰이 시리아로 돌아가기 직전에 요나탄을 처형하는데(기원전 143년 말. 13,23-24) 시몬은 이 일을 막지 못합니다. 요나탄이 죽고 시몬이 요나탄의 뒤를 잇게 됩니다.
◉3부 시몬 [13⎯16]
❶대사제이며 영주인 시몬의(기원전 143-134년) 업적을 다루는 3부 (13─16장)의 시대는 비교적 평온한 때였습니다. 시몬은 유다의 성읍들을 튼튼하게 하고 야포와 가자라, 그리고 예루살렘 성채를 점령합니다(기원전 141년 6월. 13,51). 시몬은 아들 요한 히르카노스에게 전권을 이양합니다.
❷예리코의 사령관이었던 시몬의 사위 프톨레마이오스는 시몬과 두 처남을 초대하여 연회를 베풀고는 그들을 잔인하게 살해하였습니다(16,16). 시몬의 아들 요한 히르카노스는 자기까지 죽이려는 프톨레마이오스의 흉계를 미리 알아차려 암살자들을 처단하고 정권을 장악합니다(16,11-24).
❸시몬은 로마의 도움으로 유다 대표회의에서 제사와 군대, 민정을 통괄하는 지도자로 선출되는데 이것이 하스몬 왕조(기원전 140-63년)의 시작입니다.로마는 그리스 세력을 약화하기 위해 하스몬 왕조의 시몬을 지지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때부터 왕과 제관이 겸직 되는 세습 왕조인 하스몬 왕조가 탄생했고 이에 실망한 경건한 자들이 광야로 떠났습니다.
③저자와 저작시기
이 책은 이스라엘을 수호(守護)한 마카베오 일가를 찬양하며 메시아의 왕국을 현세적 번영으로 이해하는 사두가이적 입장에서 서술하였습니다. 저자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마카베오기 상권의 저자는 이 책을 끝맺으면서, 요한 히르카노스의 나머지 행적과 업적은 대사제 실록에 기록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이는 그가 기원전 104년 히르카노스가 죽은 뒤에 이 사료를 이용하였음을 시사합니다. 아마도 그가 이 책을 쓴 때는 기원전 100년경일 것입니다. 기원전 63년에 로마의 폼페이우스가 예루살렘을 점령하는데, 마카베오기 상권이 이 시점 이후에 집필되었다면, 8장의 로마인들에 대한 찬사가 이상하게 들릴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④신학적 전망
❶마카베오 시대에 예언 운동은 끝났고 종말론적, 그리고 메시아적인 전망들도 나타나지 않는데 이 시기에는 대중적이고 묵시적인 문학이 발견됩니다.
❷마카베오 하권이 성전에 관심을 기울이는 데에 반하여, 상권은 계약과 분리될 수 없는 율법에 대한 끊임없는 고심과 염려를 드러냅니다. 유다인들이 하느님과 맺은 계약의 혜택을 받는 것은 율법을 지키고, 또 목숨을 걸고서라도 이교 풍습을 거부함으로써 가능합니다. 이 책에서는 경외심 때문에 하느님의 이름을 직접 부르지는 않지만, 승리가 오는 곳은 “하늘”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합니다.
❸하스몬 가문의 지지자인 마카베오 상권의 저자는 철저한 율법 준수를 요구하면서도, 바리사이들과 사두가이들 및 권력층 사이에 일어난 갈등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특별한 신심그룹과 거리를 두는 것은 옛 계약의 영구적 가치를 드러내는 진정한 증언 구실을 하는 것입니다.
⑤현대인에게 주는 메시지
❶유다 마카베오의 이야기는 전투 장면이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이러한 마카베오서는 정통 유다인들의 눈에 불온 문서로 보여 정경(正經)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중대한 의미를 담고 있는 성경입니다. 마케도니아 왕 알렉산드로스의 정복 물결에 따라 들어온 그리스 문화의 침범으로 야기된 유다이즘과 헬레니즘 사이의 투쟁을 보여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❷그리스의 언어, 예술, 풍속, 사상 등이 도처에 번져 나갔습니다. 예루살렘에서도 바로 성전 근처에 운동장이 세워져, 사제들마저 운동 경기에 휩쓸려 제사를 게을리 하게 되었습니다(2마카 4,14). 시리아의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는 유다인의 경신례를 이교도 예배로 대체시키고자 시도하였고(1마카 1,41-42) 이것이 마카베오혁명의 동기였습니다.
❸마카베오기는 유다이즘과 헬레니즘 사이의 극에 달한 대립상을 보여 주고 있으며, 이 두 문화는 한층 더 높은 그리스도교 계시 안으로 흡수됩니다. 또한 마카베오기가 제시하는 순교의 이상, 민중의 구원을 위하여 자신의 몸과 마음을 희생 제물로 삼아 하느님께 온전히 바치는 그 이상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실현됩니다.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말씀은 그 수난과 부활을 통하여 유다이즘과 헬레니즘이 추구하는 궁극의 목적을 성취하신 것입니다.
46-21.마카베오기 하권
2 MACCABEES; ΜΑΚΚΑΒΑΙΟΙ ΙΙ(2마카/2M)
①소개
마카베오기 하권은 상권과 같은 시대의 이야기를 담은 것이지만 상권의 연속이 아닙니다. 하권은 성전에 주안점을 두고 성전 봉헌 축제를 지키라는 서신으로 시작하여 종교적 주제를 다루었고, 저자는 그 서론(1,1-2,18)으로서, 이집트에 사는 유다인들에게 성전 봉헌절(하누카)의 축제를 지내라고 권장하는 예루살렘에서 보낸 두 가지 편지를 수록하고 있습니다. 상권이 정치적인 관점에서 접근하였다면, 하권은 유다마카베오의 업적보다는 하느님의 영광과 성전의 존귀함을 중요시하는 종교적인 관점을 더욱 부각시킵니다. 또한 역사 안에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권능과 다가올 메시아 왕국이 부각됩니다.
②저자와 저작년대
저자는 자신의 작품이 키레네 출신 야손이 마카베오 항쟁에 관하여 기록한 다섯 권의 책을 요약한 것이라고 밝힙니다. 하권은 안티오코스 4세의 즉위 직전의 사건에서 시작하여 유다 마카베오의 죽음 직전까지, 즉 기원전 175년에서 161년 사이에 일어난 사건들을 다룹니다.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그리스어로 쓰였으며 기원전 160년경에 야손이 다섯 권으로 펴낸 것을, 기원전 124년에 야손과 마찬가지로 잘 알려지지 않은 바리사이 계열의 어떤 사람이 두 가지 문학 기법을 동시에 이용하여 야손의 책을 요약합니다. 그는 예루살렘, 셀레우코스왕국의 행정, 그 관리들과 그들의 칭호를 잘 알고 있었고 그리스식 교육을 철저히 받았으면서도 믿음이 매우 깊은 유다인이었습니다.
이 하권의 본문에서는 어느 것이 야손의 글이고 어느 것이 요약자의 손에서 나온 글인지 분간하기 어렵습니다. 이 책 본문에 삽입된 일곱 편지 가운데 처음 두 편지도 이 요약자가 아람 말이나 히브리 말에서 그리스 말로 옮겼을 것으로 보입니다. 마카베오기 하권의 시작 부분에 배치된 이 두 편지는 책 전체의 중심을 이루는 ‘성전 봉헌’(10,1-8)을 기리는 구실을 합니다. 두 편지 가운데 더 나중에 쓰인 편지의 연대가 기원전 124년에 상응하기 때문에, 마카베오기 하권은 이보다 조금 늦게 저술되었을 것입니다.
③신학적 개념
마카베오기 하권이 전해주는 신학적 주제는 다양합니다. 우선, 고통에 대한 신학적 입장을 제시합니다.마카베오기 하권의 저자는 역사를 목적론적 신학의 관점에서 바라봅니다. 그는 모든 사건을 하느님 뜻의 결과로 해석합니다. 박해자들과 배반자들에게 내리는 징벌과 사악한 원수들이 당하는 패배뿐 아니라, 유다인들을 올바른 길로 돌려놓는 사건들도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저자에게 유다 마카베오의 승리는, 순교자들의 수난 공로로 하느님께서 다시 호의를 베푸신다는 표징입니다. 또한 의로운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하느님의 축복이 돌아온다는 사실을 강조하여 고통 중에 있는 이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줍니다(3,1-3; 5,18-20). 이러한 맥락 안에서 순교자 엘아자르(6,18-31), 일곱 아들과 그들의 어머니(7장), 예루살렘의 원로 라지스(14,37-46)의 이야기를 마카베오기 하권은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④주요내용
마카베오기하권은 전체 15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❶경신례 거행에 관한 편지
1장에는 경신례와 관련한 두 개의 편지가 수록되어있습니다(첫째편지 1,1-10, 둘째편지 1,10-2,18).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사건들을 한데 모아 놓으려는 의도를 드러내는데 이와 관련하여 이 책 앞부분에 자리 잡은 둘째 편지가(1,10─2,18) 특히 중요합니다. 이 편지는 틀림없이 유다 마카베오와 같은 시대에 살았던, 옛 문헌에 정통한 한 사제가 이집트에 사는 유다인 공동체의 학자 아리스토불로스에게 썼을 것입니다. 이 편지의 구체적인 목적은 마카베오와 팔레스티나 유다인들의 이름으로, 이집트의 유다교인들에게 자기들과 함께 성전 정결 예식을 거행하라고 권면하면서, 제148년 키슬레우 달 스무닷샛날로(기원전 164년 12월 14일) 확정된 이 축제의 거행 방식을 상세히 기술하는 것입니다.
❷대사제의 매관매직에 대한 보도
안티오코스 4세의 종교박해가 이루어지기 전에 일어났던 대사제직의 매관매직에 대해서도 보도합니다.(2마카 4장 참조).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4세 때 대사제는 오니아스3세였는데 그의 동생 야손(여호수아의 그리스식 이름)은 거액을 주고 왕에게서 대사제직을 얻어냈고 그 조건으로 왕의 정책에 전폭적으로 지지한다는 약속을 하면서 경기장과 청년 훈련소를 세울 권한을 받았습니다(2마카 4,8). 야손은 율법의 여러 제도를 없애고 예루살렘에 체육관이 세워졌는데 젊은 사제들은 본분을 망각하고 경기에 열중하였습니다(2마카 4,14).
❸성전
종교적 관점에서 접근하다 보니 하권의 중심에는 성전이 있습니다. 성전을 탈환하기 위해서 노력했던 유다 마카베오를 하느님의 도구로 바라보면서 성전을 이야기 전체의 중심에 놓은 것입니다.여기에는 하느님이 등장하며, 주인공들의 기도도 자주 언급됩니다. 그리고 엘아자르의 순교(2마카 6,18-31)와 일곱 아들과 그 어머니의 순교(2마카 7,1-42) 이야기를 통하여 종교적 전통에 충실하기 위해 죽음도 불사할 수 있는 영웅적인 신심을 강조합니다. 이 이야기 안에 구약성경에서는 처음으로 죽은 이들의 부활에 대한 신앙이 명시적으로 언급됩니다.(2마카 7,10-11 참조) 마카베오기 하권은 유다 마카베오의 항전과 성전 정화, 그리고 그가 유다 총독인 니카노르와 싸워 승리한 이야기로 끝납니다.
❹창조관
마카베오기 하권보다 상당히 늦게 저술된 지혜서는, 태초의 혼돈의 창조에 관한 언급 없이, 하느님께서 세상을 무형의 물질로 창조하셨다고 말합니다(지혜 11,17-18). 마카베오 하권의 저자는 일곱 순교자 어머니의 입을 빌려,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 그리고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무에서 만드셨다고 밝힙니다(2마카 7,28). 이로써 저자는 창세 1,1의 전통으로 거슬러 올라가 창조의 근본 문제를 더욱 명확히 하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창조에 관한 신약성경의 말씀을 예고합니다(콜로 1,15-20; 요한 1,3 참조).
❺부활사상
마카베오기 하권에서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은 바로 부활 사상입니다.구약의 전통적 가르침은 신명기적 사고입니다. 즉, 상선벌악의 가르침이었습니다. 하지만, 마카베오기 하권은 이러한 전통의 가르침과는 달리 내세의 삶에 대한 인정과 희망을 들려줍니다(7,9.11.14.23; 12,44; 14,46). 물론 신약성경의 부활 사상과는 차이를 보이지만, 죽음이 마지막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들려주는 것입니다. 단! 여기에서의 부활은 의인들에게만 주어진 특권입니다.
❻중개기도
마카베오기 하권에서는 기도에 관한 발전된 신학이 등장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전구라고 하는 ‘중개기도’입니다. 죽은 이들을 위한 살아 있는 이들의 전구(12,42)와 살아 있는 이들을 위한 죽은 이들의 중개기도(15,14)가 그것입니다. 곧 죽은 이들의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산 이들이 바치는 기도와 제사가 효력을 지니고(2마카 12,40-45), 또 반대로 오니아스와 예레미야처럼 죽은 의인들이 산 이들을 위하여 중개 기도를 해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15,11-16). 히브리서 7,25에서 말하는 것처럼, 신약성서의 저자들에게는 예수님만이 유일한 중개자이십니다. 동방과 서방 그리스도교의 역사에서 성인들의 중개 기도는 큰 역할을 해 왔습니다. 트리엔트 공의회에서는, 모든 은총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어진다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동시에 이러한 성인들의 중개 역할을 인정합니다. 죽은 이들을 위한 산 이들의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⑤일곱 형제의 순교와 그들에 대한 공경
7장의 이 이야기의 비장한 문체는 일곱 형제에 대한 야손과 요약자의 감동에 찬 관심을 드러냅니다. 일곱 형제의 순교에 대한 이야기는 역사적 사건임이 분명합니다(1마카 1,62-63 참조). 그러나 이 이야기가 마카베오 하권에 자리잡기 이전에, 일곱이라는 상징적 수라든가, 임금이 직접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이라든가, 형벌의 잔혹성같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설화의 특징적 표지와 더불어 이미 하나의 민간 전승이 되어 있었습니다. 저자는 순교의 장소와 일곱 형제의 이름에 관하여 어떠한 구체적 단서도 제시하지 않는데 마카베오 하권을 바탕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형벌의 장소가 유다 땅에 있었으리라는 것이 전부입니다(2마카 6,8-11 참조). 안티오키아 전승은 오랫동안 전해 온 안티오키아를 그들의 순교지로 내세웁니다. 유다 땅에서 박해가 벌어질 때에 에피파네스 임금이 안티오키아에 있었기 때문에, 일곱 형제를 처형하기 위하여 안티오키아로 이송하였으리라는 것입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안티오키아에서 일곱 순교자들에 관하여 설교하면서, 이 도시 부근의 성소에 보전된 그들의 유해를 언급합니다. 아우구스티노는 어떤 설교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안티오키아에 세운 마카베오 성인들의 대성당을 상기시킵니다. 이 순교자들에 대한 공경은 안티오키아에서 서방으로 전해졌습니다. 4세기부터 갈리아에서는 「마카베오 성인들의 수난」이라는 제목으로 제4마카베오서의 라틴 말 의역본(意譯本)이 나와 널리 유포되었습니다. 이들의 유해는 밀라노와 쾰른으로 옮겨지고, 로마와 리옹과 빈에는 그들의 기념 성당들이 들어섰습니다.
⑥유다교의 종파
마카베오항쟁 이후 하스몬왕조가 이스라엘을 다스리면서(BC135-104) 유다는 잠시 독립국가였으나 이후 폼페이우스가 팔레스티나를 정복하여(BC 63) 유다공동체는 다시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습니다. 로마제국치하에서 유다의 두 차례 대 혁명(AD 66-70, 132-135)이 있었는데 이 혁명으로 유다 공동체는 말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기원 이전 2세기에 유다교는 여러 종파를 형성하였습니다. 마카베오기 시대에는 사두가이와 바리사이-이 두 큰 경향이 일반적으로 공적 유다교(유다이즘)라고 불리는 현상을 구성합니다.(유다교에 대해서는 본블로그sunny river 구약성경노트⑪ 에즈라느헤미야 - Ⅲ. 유다이즘 참조)
❶사두가이파(Sadducees,Σαδδουκαῖοι)
⑴사두가이는 고위 제관들과 귀족계급으로 기원전 2세기에서 기원후 1세기경에 있었던 유다교의 한 종파입니다. 그들은 솔로몬 시대 제사장 차독의 후예이며 보수적 현실주의적인 상류 계급으로서(1열왕 2, 35참조) 마카베오기 시대에 헬레니즘에 동화되었던 계층입니다. 사제들은 대사제의 권위 아래 엄격히 조직되어 있었으며 대사제는 유다인들의 민사와 종교 문제를 다루는 최고의회의 의장직도 맡았습니다.
⑵어떤 의미에서 사두가이들은 보수주의자들인데 토라의 권위만 인정하고 율법학자들이 발전시킨 구전 전승은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부활, 사후의 상선벌악, 마귀, 천사, 묵시문학적 사고 등 새로운 개념을 믿지 않았습니다. 에즈라의 개혁이후 마카베오시대로부터 기원후 1세기까지 유다인들의 삶의 구심점은 예루살렘 성전이었습니다. 사두가이는 성전과 제의(祭儀)를 우선으로하며 유지하기 위해 융통성 있게 대처했으므로 세속의 통치자들에게도 기꺼이 협력하였고 질서 교란을 가장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들이 생각할 때 유다인의 나아갈 길이란 모세오경의 율법에 따라 성직자들이 다스리는 제의 공동체를 변함없이 유지해 나가는 것 뿐 이었습니다.
⑶기원후 70년 성전이 파괴되자, 전적으로 성전에 종속되었던 사두가이들도 자연히 몰락하게 되었고 이 때부터 공적 유다교는 바리사이적 경향으로만 나타나게 됩니다.
❷바리사이파(Pharisees, Φαρισαῖοι)
⑴기원전 2세기에 부상한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율법 수행에 있어 지나칠 만큼 엄격하였습니다. 바리사이는 귀족도 제관 그룹도 아니었고 도덕적으로도 성실하였기 때문에 백성들에게 신망을 얻고 존경을 받았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유다교의 정신적 지도자들이었고 유다교의 기조를 잡았으며 가장 두드러지게 사두가이와 반대의 입장을 취한 그룹입니다.
⑵바리사이는 마카베오 시대의 하시딤(Hasidim;경건한자)의 전통을 답습하였으며 열성적으로 율법을 지키며 헬레니즘과의 어떤 타협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하시딤들은 종교의 자유를 위해 민족 투쟁에 참여한 사람들이기도 하지만(1마카 2,29-43) 마카베오 항쟁이 하스몬 왕조를 낳게 되자 물러났습니다.
⑶바리사이는 헬레니즘화에 대항하던 투쟁에서 형성된 평신도 운동이었고 이들의 지도자들이 율법학자들입니다. 전 지역을 통하여 그들은 경건한 평신도로서 결속력을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일정한 수습기간을 거쳐 신성한 의무를 준수할 것을 서약 하는데 십일조 준수와 정결례 규정의 준수는 의무이며 그밖에 선행,하루 세 번 시간기도의 엄수, 주 2회 금식 등을 지킬 것을 서약합니다.
⑷바이사이는 종교 문제에 있어서는 엄격했지만 보수파는 아니었으므로 모세오경 외에 성경의 다른 전승도 인정했고 율법 해석을 위해 발전하게 된 구전율법도 받아들였습니다. 바로 이들에 의해 구전 율법이 대대로 전승되고 확대해 나아가 마침내 미슈나라는 별도의 율법서가 편찬되고 그 후의 탈무드가 집대성되었습니다.
⑸서기 67년 발생한 1차유다 혁명은 70년 티투스의 예루살렘성전 포위공격 및 초토화로 끝났습니다(유다의 두 차례 혁명;66-70, 132-135). 성전이 사라진 이후 사두가이는 사라지고 바리사이만이 남았습니다. 이들은 90년 얌니야에서 유다교를 재건하였고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파문당하여 유다교 회당에서 추방되었습니다. 율법준수는 더욱 강력해졌습니다. 그 후 유다는 탄나임 시대에 접어들게 됩니다.
❸탄나임 (Tannaim)
탄나임은 ‘전달하는 자’라는 뜻으로 기원후 200년 까지 토라의 주석과 해석 작업에 종사하며 유다교 구전전승의 유지와 보급에 기여해온 율법학자 또는 랍비들을 탄나임이라 부르고, 그들이 활동하던 시대를 탄나임시대라고 합니다. 탄나임시대에 두 학파가 있었는데 힐렐(hillel)과 샴마이(shammai)입니다. 힐렐 학파가 비교적 자유로운 면이 있는 반면 샴마이는 매우 엄격하고 완고했다고 합니다. 사도 5,34의 율법교사 가말리엘이 힐렐학파였다고 전해집니다. 사도바오로가 힐렐파 가말리엘의 제자로 전해지는데 일부 성경학자들은 개종전의 사도바오로가 샴마이의 사상이었다고 주장합니다.
❹혁명당(Zelotes, Ζηλωτήν)
투쟁적인 민족주의자들의 그룹인 이들이 마카베오 항쟁의 주요 역할을 했고 민족의 독립을 위한 전면전을 감행했습니다.이들이 신약 시대에 이르러 반 로마감정으로 조직화된 통상 ‘열혈당’이라고 불리는 zealots ‘열광자들’이라는 혁명당원 이었습니다.이 과격파들이 끊임없이 유다혁명을 주도하고 AD 66-70, AD 132-135의 두 번의 반란으로 유다 공동체를 끝장낸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율법을 지키면서 무작정 기다리지는 않았습니다.
❺에세네(The Essenes,Ἐσσηνοί)
⑴신약성경에서는 에세네파가 한 번도 언급되지 않으나 최초의 그리스도교가 이 사상의 일부를 받아들여, 에세네적인 사고와 행동 방식이 예루살렘 초창기 그리스도교 공동체 안에서 적어도 한때 지배적이었을 가능성이 없지 않습니다.
⑵필로(Philo Judaeus), 플라비우스 요셉(Flavius Josephus), 플리니(Elder Pliny)에 의해 이 파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기원전 2세기경에 시작되어 기원후 2세기경에 소멸하였으며 팔레스티나지방 밖으로는 확산되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 시대에는 4,000명가량이 이 파에 속했으며 엄격하게 조직되어 극단적으로 금욕적인 공동체생활을 하였습니다.
⑶많은 학자들이 에세네파를 ‘사해문서’에 나타난 공동체와 동일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들은 유달리 종파의식이 강하고 배타적이었으며 종말론적 기대를 안고 임박한 성취의 날을 기다리며 유다의 광야에 있는 쿰란(Wadi Qumran) 동굴에서 자리 잡고 살았던 집단으로 봅니다.
⑷엣세네도 하시딤의 전통을 이어받은 것 같습니다. 이들은 하스몬가의 왕과 제관의 겸직을 혐오하였고 기원전 2세기말에 그들은 예루살렘도 혐오하며 성전의 제의에 참여하는 것도 거부하여 광야로 들어갔습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임박한 종말을 기다리며 공동생활을 했던 것 같고 이들을 통해 묵시문학이 발전하였을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만이 새로운 계약의 백성임을 자처했습니다. 그들은 엄격한 규율을 지킬 것을 서약하고 종말을 기다렸습니다. 쿰란에서 성서를 주석하였고 항아리에 넣어 땅에 묻고 2차 봉기 때 도주하였으나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구약46권 기본정보⑤ 후기역사서 마카베오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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