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LD TESTAMENT Basic Information
역사서
①구약 성경의 역사서를 크게 신명기계 역사서, 역대기계 역사서, 교훈문학적 역사서, 후기 역사서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⑴신명기계 역사서; 여호수아記/판관기/1.2사무엘기/1.2열왕기
⑵역대기계 역사서; 1.2역대기/느헤미야기/에즈라기
⑶교훈문학적 역사서;토빗기/유딧기/에스테르기
⑷후기역사서; 1.2 마카베오기
②열왕기와 역대기는 같은 시대를 다루고 있으며 상호 보완적이기는 하지만 역사를 보고 평가하는 관점이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열왕기는 다윗과 솔로몬, 남북이스라엘의 흥망성쇠를 다루고 각 왕의 행적에 하느님의 뜻을 따른 임금은 좋은 왕이라는 신명기의 중심사상을 드러냅니다. 역대기는 인간의 창조에서 시작하여, 바빌론 유배 이후 기원전 5세기까지 이어지는 대역사를 다루면서 북이스라엘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다윗 왕조를 역대기의 중심에 놓았습니다.
46-13.역대기 상권 ;
CHRONICLES I / ΠΑΡΑΛΕΙΠΟΜΕΝΩΝ Α(1역대/1 Ch)
46-14.역대기 하권 ;
CHRONICLES II / ΠΑΡΑΛΕΙΠΟΜΕΝΩΝ Β(2역대/2 Ch)
①책의 이름
역대기의 히브리 말 성서에는 ‘나날의 말씀(행적)들’, 곧 ‘나날의 행적을 기록한 역사책’이라는 제목이 붙여져 있습니다. 예로니모는 이 책을 ‘하느님의 역사 전체의 연대기(年代記)’로 부르는 것이 타당하다고 여겼습니다. 우리말 이름 “역대기”는 예로니모 성인이 제안한 제목을 간단하게 줄인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리스말 칠십인역의 이름은 “파랄리포메논(ΠΑΡΑΛΕΙΠΟΜΕΝΩΝ )”인데, ‘옆에 놓아 둔 것, 곁들여 전해진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이 책의 내용이 사무엘서와 열왕기의 보충으로 여겨진 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1.2역대기는 본디 에즈라기/느헤미야기처럼 하나의 통일된 책이었고, 역대기 마지막 구절과(2역대 36,22-23) 에즈라기의 처음 구절은(에즈 1,1-3) 그 본문이 서로 겹친다는 점을 감안하여, 역대기-에즈라-느헤미야기를 하나로 묶어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고대 번역본들과 주요 현대 번역본들은 이 책들의 내용에 바탕을 둔 논리적 순서에 따라 역대기➜에즈라기➜느헤미야기 順입니다. 우리말 번역에서도 이 순서를 지키고 있습니다.
②역대기의 구조
역대기는 인간의 창조에서 시작하여, 바빌론 유배 이후 기원전 5세기 키루스의 해방령까지 이어지는 대(大)역사를 다룬 책이며 성서의 역사 문헌 가운데에서 역대기만큼 오랜 기간의 역사를 다룬 책은 없습니다. 역대기의 내용은 네 부분으로 나뉩니다. 역대기상권은 29장, 역대기하권은 36장으로 구성되어있습니다.
❶1역대 1―9장: 아담부터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거쳐 다윗에 이르는 조상들의 족보.
❷1역대 10―29장: 다윗의 통치. 사울의 죽음부터 다윗의 죽음까지.
❸2역대 1―9장: 솔로몬의 통치.
❹2역대 10―36장: 솔로몬의 죽음부터, 바빌론 유배와 예루살렘으로의 귀환 직전에 이르는 유다 왕국의 역사.
③저자와 집필 연대
❶역대기와 에즈라기, 느헤미야기는 익명의 저자, 곧 ‘역대기 저자’ 또는 ‘역대기 편집자’의 작품으로 봅니다. 역대기 저자의 책들 안에는 정확한 편집 시기를 결정할 만한 분명한 단서가 없기 때문에, 역대기 문헌들의 편집 시기는 기원전 330-250년으로 보는 것이 가장 적절합니다.
❷역대기 저자는 옛 역사에 대한 자기 나름의 지식에 바탕을 두고 이야기를 엮어 나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여러 문헌을 있는 그대로 충실히 옮겨 적었습니다. 때때로 자신의 역사 개념에 따라 내용을 수정하기도 했지만 가능한 한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려고 최대한 노력하였습니다.
❸역대기 저자가 역대기를 쓰는 데 이용하였다고 밝힌 사료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이러한 자료출처는 성경의 역사가 전체적으로 허구는 아니며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유다와 이스라엘 임금들의 실록(2역대 16,11)/이스라엘과 유다 임금들의 실록(2역대 27,7)/이스라엘 임금들의 (역사) 실록(1역대 9,1)/이스라엘 임금들의 실록(2역대 33,18)/임금들의 실록 주석서(2역대 24,27)/다윗 임금의 실록(1역대 27,24)/사무엘 선견자의 기록(1역대 29,29), 나탄 예언자의 기록(1역대 29,29), 가드 환시가의 기록(1역대 29,29), 스마야 예언자와 이또 환시가의 기록(2역대 12,15), 하나니의 아들 예후의 기록(2역대 20,34), 환시가들의 기록(2역대 33,19)/실로 사람 아히야의 예언서(2역대 9,29)/이또 환시가의 환시록(2역대 9,29), 아모츠의 아들 이사야 예언자의 환시록(2역대 32,32)/이또 예언자의 주석서(2역대 13,22)/아모츠의 아들 이사야 예언자가 쓴 기록(2역대 26,22)]
이 문헌들 가운데 상당수는 제목만 약간 다를 뿐 같은 문헌들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주석가들은 역대기 저자가 적어도 세 종류의 문헌을 이용하였다고 하는 데에는 대체로 동의합니다. 즉, 사무엘기와 열왕기,그다음으로, 그가 위 책들의 내용을 보충하려고 이용했을 다른 역사 문헌들(‘왕조 실록 주석’ 같은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④역대기 시대의 국제 정세
역대기는 열왕기와 동일한 시대에 동일한 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기술방법과 관점에서는 열왕기와 다릅니다. 역대기는 다윗왕국에서 갈라져나간 북이스라엘 왕국을 다루지 않고 다윗왕조중심으로 기술되었습니다. 역대기의 배경이 되는 당대의 국제정세를 보면 다윗 시대에 이집트, 아시리아 등 주변 국가들의 세력이 약화되어 이스라엘은 통일과 함께 번영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❶이집트 : 솔로몬시대에 이집트는 이스라엘과 동맹관계를 유지해야할 만큼 세력도 약화되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의 아들 르하브암 5년에 이집트는 예루살렘을 침공하여 성전과 왕궁의 보물을 약탈해 갔으며(1열왕 14,25이하), 솔로몬 때의 반란주모자 예로보암에게 망명처를 제공하기도 했습니다(1열왕11,40).
❷시리아 : 다윗과 솔로몬이 다스리던 일부 기간 동안 시리아(아람)는 이스라엘의 속국이었으나, 차츰 세력을 확장하여 북이스라엘 갈릴래아 지방을 초토화하기도 했습니다(878년경. 1열왕 15,20).
❸아시리아 : BC721년 북이스라엘은 아시리아에게 패망하였고 남유다도 아시리아의 속국이 되어 조공을 바치게 되었습니다. 이후 아시리아는 점차 세력이 약해지고 바빌론에게 멸망하여 역사에서 사라집니다.
❹바빌론 : 바빌론은 BC609년에 아시리아를 제압합니다. 네부카드네자르는 605년 카르크미스 전투에서 이집트의 느코에게 승리합니다. BC587년 마침내 유다는 바빌론제국에게 멸망합니다.
⑤역대기의 신학
❶다윗 왕조
역대기 저자는 다윗 왕국의 역사를 가장 중요하게 여겨 자기 책의 중심에 놓고 있습니다. 다윗 시대 이전의 모든 역사를 아담까지 올라가는 족보로 처리하였고(1역대 1─9) 그 다음, 사울에서 다윗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10장에만 짧게 나옵니다. 역대기 상권의 나머지 부분 전체는(11⎯29장) 다윗 왕국의 역사를 다룹니다. 역대기에는 다윗이 사울과의 갈등으로 쫓겨 다니던 몇 해 동안의 유랑 생활에 관한 이야기는 빠져 있을 뿐 아니라 다윗의 궁정에서 일어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사건들도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솔로몬 임금도 이상적인 인물로 나타납니다. 또한 역대기는 왕국의 분열 다음부터 북쪽 이스라엘 왕국의 역사에 관하여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습니다. 어떤 주석가들은 모세 오경의 사제계 전승 안에 그려진 모세의 모습과 역대기에 그려진 다윗의 모습이 닮았다고 주장합니다. 사실 두 인물은 비록 그들이 살던 시대는 다를지라도, 둘 다 백성의 수장이요 하느님의 위임을 받은 입법자라는 점에서 비슷합니다.
❷성전과 전례(聖殿과 典禮)
성전과 전례는 역대기 저자의 주요 관심사입니다. 다윗과 솔로몬의 후계자들의 역사는 성전에 집중되고, 성전의 재건이나 경신례의 개혁에 우선순위를 두는 임금들은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집니다. 아사와(2역대 14─16) 여호사팟(2역대 17─20), 특히 히즈키야와(2역대 29─32) 요시야가(2역대 34─35) 그런 임금들이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역대기 저자는 레위 지파에서 전례를 주관하는 이들을 특별히 선호합니다.
❸성소(聖所) 예루살렘
역대기 저자는 예루살렘 성전과 그 곳에서 거행되는 예배의 유일한 합법성을 강조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역대기 저자가 왕국의 분열 다음부터 북쪽 이스라엘 왕국의 역사에 관하여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는 이유도 설명이 가능합니다. 역대기 저자의 견해로는 다윗 왕조로 유지되는 유다 왕국만이 합법적입니다.
❹신정왕국(神政 王國)
역대기의 특이한 관점들과 신학관은 신정(神政)이라는 표현이 적절한 일종의 종합적 개념이라 하겠습니다. 저자에게 하느님 백성의 역사란 곧 유다 공동체 안에서 펼쳐지는 신정 왕국의 이상적 표상과 같습니다. 이 신정 왕국은 하느님께서 세우셨고, 그 머리에는 다윗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실제로 하느님만이 참 임금이시고 다윗은 그분의 왕좌 위에 앉아 그분을 대리할 따름입니다.
❺상선벌악(賞善罰惡)
하느님과 그분 백성의 지속적인 관계는 철저한 상선벌악의 개념에 바탕을 둡니다. 하느님의 정의에 따라 모든 충성, 특히 예루살렘 왕좌에 앉은 임금들의 충성은 당연히 하느님의 복을 받는 데에 반하여, 모든 잘못과 불순종, 특히 성전이나 전례와 관련된 잘못은 하느님의 징벌을 받습니다. 상선벌악 개념의 철저한 적용은 다윗을 계승하는 임금들의 긴 역사 전체에 걸쳐 나타납니다. 역대기 저자는 하느님의 상선벌악의 논리에 바탕을 둔 정의의 개념에 따라 모든 사건에 대한 신학적 정당성을 제시하려합니다.
❻과거의 이상화(理想化)
역대기 저자의 작품은 현실 안에서 백성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제시하기 위하여 과거를 이상화합니다. 저자는 유다인들에게 다윗 시대의 신정 왕국을 끊임없이 상기시킴으로써 전례는 어떻게 거행해야 하는지, 하느님의 율법에는 어떤 자세로 순종해야 하는지를 알려줍니다.
⑥이스라엘 왕정의 실패와 메시아 사상
❶왕정제도의 실패
문헌적으로 다윗왕조는 오경문헌전통인 탈출전통과 다윗전통의 큰 결부점이 되며 이 두 전통을 신학적으로 정립한 사람은 제2이사야입니다. 이스라엘의 일상생활에서 계약의 법은 그 정당성을 상실해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부를 찾아 도시로 이동하였고 부족의 연대는 그 뿌리가 흔들리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국가를 계약 동맹의 전통과 결합시키며 국가에 대한 충성이 신학적으로 뒷받침 되는 신정 왕국이 되게 했고 솔로몬은 성전을 세움으로써 이 정책을 밀고 나가기는 했지만, 계약의 성궤가 왕조의 신전에 안치 되었다는 것은 솔로몬의 지배하에 종교 공동체가 통합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던 것입니다.
❷메시아 전통
다윗은 성소를 위해 노력하며 제의의 질서를 마련합니다. 그는 거의 제2의 모세입니다. 역대기기자는 다윗에 의해 창건된 제의직의 합법화를 위해 기록했고 메시아전통의 수호자로서 다윗왕조를 서술했습니다. 다윗의 신정 왕국은 이스라엘 국민의 감정이 수도 예루살렘의 성전에 쏠리게 하였고 다윗 가문이 이스라엘 옛 체제의 합법적 계승자라는 생각을 굳히게 했습니다. 하느님의 선택이 다윗왕조로 옮겨졌던 것입니다. 왕권에 관한 공식 개념이 제의식에서 정기적으로 확인되고는 했으며 하느님께서 시온을 선택했고 다윗을 선정했다는 점이 성전례에서 늘 강조되었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신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결론들이 나왔는데 그것은 이스라엘의 모든 희망을 성도 예루살렘에 걸게 하고 장차 다윗 가문의 후예에서 위대한 메시아가 탄생하게 될 것이라는 희망이 뿌리를 내린 것입니다.
(역대기의 다윗왕조에 관한 상세내용은 본 블로그 sunny river<구약성경노트> 7.왕정시대 8.남북왕조시대 9.유다의마지막시대 10.바빌론유배시대 참조)
46-15. 에즈라기 ;EZRA;ΕΣΔΡΑΣ(에즈/Ezr)
46-16. 느헤미야기 ;NEHEMIAH;ΝΕΕΜΙΑΣ(느헤/Ne)
①책이름
에즈라와 느헤미야는 BC 5세기 중엽 바빌론 유배에서 귀환한 후, 국가 재건에 공헌한 두 인물의 이름으로서, 이 두인물의 시대적 상황을 기술한 책이 에즈라기 느헤미야기입니다. 에즈라기와 느헤미야기는 본디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리스 말 옛 번역본도 이 두 책이 하나로 묶여 번역되었는데 여기에는 히브리 말 성서의 에즈라기와는 상당히 다른 또 하나의 에즈라기가 들어 있습니다. 그리스 말 옛 번역본의 에즈라기는 가끔 제1 에즈라기라 불리고, 히브리 말의 에즈라&느헤미야기가 번역된 책은 제2 에즈라기라 불리며 우리가 사용하는 책입니다(EZRA ΙΙ/ΕΣΔΡΑΣ Β). AD15세기까지 이 둘은 히브리 말 성경에서 한 작품으로 나타나다가, 대중라틴말성서의 영향으로 에즈라기와 느헤미야기로 나뉘어집니다. 현대 성경 번역본에는 경전에 든 적이 없는 그리스 말 에즈라서1과 ‘에즈라의 묵시록’은 제외됩니다.
에즈라기와 느헤미야기는 유다인들이 기원전 538년에 바빌론 포로살이를 마치고 고향에 돌아온 뒤, 한 세기가 넘는 동안에 일어난 일들을 서술합니다. 그런데 이 책의 두 주인공 에즈라와 느헤미야의 활동이 구약성경 다른 곳에서는 한 번도 언급되지 않기 때문에 만일 이 두 책이 없었다면, 유배 이후 유다 종교와 사회의 복구를 알려 주는 사건들을 알기가 매우 어려웠을 것입니다.
②저자와 저작년도
에즈라기와 느헤미야기의 저자에 대해서는 어디에도 표시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역대기 상하권, 그리고 에즈라기와 느헤미야기까지 이어지는 방대한 역사의 종합은 한 저자에 의해서 편집되고 구성된 것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이러한 견해를 밑받침하는 가장 중요한 표지는 역대기 하권의 마지막 두 절(36,22-23)과 에즈라기의 첫 세 절(1,1-3)이 같다는 사실로서, 이는 한 이야기가 계속됨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이 두 책의 편집 연도는 역대기-에즈라기-느헤미야기 작품 전체를 함께 헤아려야 하기 때문에, 정확히 말하기가 쉽지 않으나 그 안에 표현된 종교적 생각, 저자의 출신 환경 등을 고려할 때, 이 방대한 역사 작품은 BC 4세기 말엽에서 3세기 중엽 사이에 그 최종 편집이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기는 이 두 책의 최종 편집에만 해당될 뿐, 거기에 사용된 문헌 사료들은 분명히 그 훨씬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③에즈라&느헤미야시대의 국제정세
❶바빌론의 패망과 페르시아제국 시대
고대 바빌로니아제국은 BC 1895년부터 1595년까지 약 300년간의 시대를 말합니다. (신)바빌론 제국의 이름은 수도 바빌론에서 유래하며 지금의 이란․이라크지역입니다. 고대 바빌론제국은 BC 1595년 히타이트에게 멸망하고 히타이트는 아시리아에 패망합니다. 바빌로니아의 칼데아인 나보폴라사르(Nabopolassar)가 아시리아에 대항해서 반란을 일으킵니다. BC 612 메디아(Medes)인과 함께, 수도 니네베를 파괴하여 아시리아 제국을 멸망시키면서 제국의 패권은 바빌로니아로 돌아오면서 신바빌론제국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유다는 BC 587년 바빌론의 네부카드네자르에게 멸망하고, 바빌론의 마지막 왕 나보니두스는 페르시아의 키루스에게 멸망하게 됩니다.
❷이스라엘민족의 바빌론 유배시대는 기원전 587년부터 약 50년간입니다. 기원전 722년 아시리아에게 먼저 멸망한 북부이스라엘 지역에는 사마리아를 중심으로 많은 이교인들이 정착하고 있었습니다. 바빌론으로 유배를 가지 않은 남왕국의 유다인들은 대부분 굶주렸거나 처형되어 죽었고, 지배국(바빌론)이 노예로 삼거나 필요에 의해 땅을 분배해주고 잔류시킨 남아있는 유다인들도 다수 있었습니다. 이 잔류민과 후에 유배에서 돌아온 자들 간의 재산분쟁은 귀향 후에 당면한 가장 큰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상당수의 사람들은 조국의 멸망 후 이집트로 갔는데 후에 안티오코스시대의(그리스) 대량 이주민과 합류하여 이집트 디아스포라(διασπορά)를 구성하였습니다. 바빌론으로 끌려간 유배자들은 사제,귀족,장인 등 귀족층이었으며 이들은 일정한 거주지를 배당 받은 것 같고 나름대로의 공동생활도 유지한 것으로 보이며(에즈 8,17) 유배지에서 이스라엘의 장래를 설계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유배기간 중에 전승들이 보존되고 사제 에즈라를 중심으로 성서 편찬이 진행 된 것으로 보입니다.
❸바빌론의 붕괴는 급격한 것이었습니다. 바빌론 내부에서도 나보니두스(Nabonidus BC 556-539)의 악정으로 이미 민심을 잃었고 539년 티그리스 강변에서 페르시아에게 결정적인 참패를 당했습니다.
❹키루스(Cyrus II; Κῦρος)의 포고령
BC 539년10월, 키루스는 해방자로서 바빌론에 입성하였고 정복민들에게 최대한의 아량을 베풀었습니다. 키루스 통치1년인 538년, 이집트에 이르기까지 서부 아시아 전지역이 키루스의 지배하에 들어갔고 팔레스티나의 유다인 공동체에게 포고령(布告令)이 내려졌습니다(에즈 1,1-11 : 6,3-5). 이 포고령은 성전을 재건할 것과, 그 비용은 왕실 금고에서 지출할 것을 규정하고, 건축의 설계명세서도 정했으며 네부카드네자르가 탈취한 성전의 기물도 제자리에 가져다 놓도록 지시하고 있습니다. 유다인에게는 귀향이 허락되었고 바빌론에 남아있기 원하는 자는 성전 건축에 경제적 기부를 하라고 지시했으며 이 업무가 세스바차르에게 주어졌습니다.
④에즈라&느헤미야기의 구조와 주요내용
에즈라기
에즈라기는 먼저, 바빌론을 점령한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의 칙령으로(기원전 538년) 예루살렘에 돌아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은 유배자들의 첫 귀환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이야기합니다(1⎯6장). 고향으로 돌아온 이들은 성전 건축 방해자들로 인하여 많은 난관에 부딪치는데(4장),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기 전에, 먼저 폐허가 된 옛 자리에 제단을 다시 쌓습니다. 우선 그 동안 중단되었던 경신례만이라도 거행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성전 자체는 20여 년이 지난 뒤 다리우스 임금 치세, 하까이와 즈카르야 시대에 완전히 재건됩니다(에즈 5,1-2; 6,13-22). 7⎯10장에 따르면, 첫 귀향이 있고 나서 수십년이 지난 뒤, 아르타크세르크세스(Arta Xerxes, BC 465-424)임금에게서 공적 임무를 부여받은 사제이며 율법 학자인 에즈라가 예루살렘에 도착합니다. 이 곳에서 그는 특히 유다인과 이방인 사이의 혼인으로 유다교 전통에 어긋나는 여러 상황이 벌어졌음을 보고 몹시 슬퍼합니다(9,1-15:유다인과 이민족 사이의 혼인과 에즈라의 참회 기도)그래서 그는 백성의 지지를 받으며(10,1-17:백성의 맹세와 이방 아내들의 축출), 이 문제와 관련하여 철저한 개혁을 단행하고, 이방인들을 유다 지방 경계 밖으로 내보냅니다.
1장: 바빌론 유배의 끝
2장: 돌아온 유배자들의 명단
3장: 경신례의 복구와 성전 건립의 시작
4,1-5: 유다의 적들의 성전 건축 방해
4,6-24: 성전 건축 방해자들과 두 임금 사이의 서신 교환
5장: 성전 건축의 재개
6,1-12: 키루스 칙령의 발견과 성전 건축 재개에 관한 다리우스의 명령
6,13-22: 성전 준공과 봉헌, 그리고 파스카 축제의 거행
7,1-10: 율법 학자 에즈라
7,11-28: 아르타크세르크세스 임금의 칙령과 에즈라의 찬양 기도
8,1-14: 에즈라와 함께 돌아온 이들의 명단
8,15-23: 성전 일꾼들의 모집과 에즈라의 청원 기도
8,24-30: 성전을 위한 예물
8,31-36: 에즈라의 예루살렘 도착
9,1-15: 유다인과 이민족 사이의 혼인과 에즈라의 참회 기도
10,1-17: 백성의 맹세와 이민족 아내들의 축출
10,18-44: 이민족 여자와 혼인한 자들의 명단
느헤미야기
느헤미야기의 전반부(1⎯7장)은, 아르타크세르크세스임금의 고위 관리인 느헤미야가 고국에서 온 동포들에게서 고향 소식을 듣고 슬픔에 빠진다는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느헤미야는 유다 지방의 수도 예루살렘을 시찰하고, 그 도시를 성벽부터 재건하는 허락과 권한을 임금에게서 부여받습니다. 예루살렘 성벽은 느헤미야의 지휘 아래 오십이일 만에 복구됩니다. 이렇게 빠른 시일 안에 끝낼 수 있었던 것은, 성벽 복구를 반대하고 나서는 적들과 싸우면서, 동시에 온 주민의 용기를 북돋우고 규율 준수를 촉구한 느헤미야의 열성 덕분이었습니다. 8⎯9장에서는 에즈라가 다시 전면에 나서서, 바빌론에서 가지고 온 모세의 율법에 상응하는 경신례와 축일 거행을 복원시킵니다. 그리하여 느헤미야서는 백성의 서약과 여러 가지 명단, 그리고 성벽 봉헌과 관련된 몇 개의 단락에 이어, 십여 년 뒤에 예루살렘에 두 번째로 머무르게 된 느헤미야가 수행한 일련의 개혁에 대한 이야기로 끝을 맺습니다(10⎯13장).
1장: 고향의 슬픈 소식을 들은 느헤미야의 기도
2장: 느헤미야의 예루살렘 도착, 그리고 성벽 시찰과 복구 결정
3,1-32: 작업 책임자들의 명단
3,33─4,17: 방해를 무릅쓰고 계속되는 작업
5장: 사회 불의에 대한 느헤미야의 개입과 욕심 없는 느헤미야
6장: 느헤미야에 대한 음모와 성벽 공사의 완료
7,1-72ㄱ: 예루살렘의 경비 조직과 귀환자들의 명단 및 수
7,72ㄴ─8,18: 율법의 봉독과 초막절의 거행
9장: 참회 예절
10장: 맹약 체결과 그 규정
11장: 예루살렘과 지방 주민의 분할
12,1-26: 사제들과 레위인들의 여러 가지 명단
12,27-43: 예루살렘 성벽의 봉헌
12,44-47: 성직자들에 대한 백성의 후원
13장: 이방인들의 분리와 느헤미야의 여러 개혁
⑤에즈라&느헤미야기의 몇 가지 문제
❶활동시기문제
두 인물의 활동시기 문제는 복잡합니다. 현재의 본문이 말하는 연대순은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에즈라가 아르타크세르크세스 제7년 BC 458년에 예루살렘에 도착해서(에즈 7,7) 개혁 활동을 합니다(에즈 8―10). 그 뒤 느헤미야는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0년 BC 445년에 등장해서(느헤 2,1) 예루살렘 성벽 건축 활동을 수행합니다(느헤 1―7). 그런데 느헤미야 8장에 에즈라가 갑자기 나타나 백성들 앞에서 율법을 장엄하게 봉독합니다(느헤 8―9). 에즈라와 느헤미야는 둘 다 같은 아르타크세르크세스 임금에게서 공적인 사명을 받고 예루살렘에서 활동합니다(에즈 7,11; 느헤 2,7-8). 느헤미야의 활동 전체를 에즈라의 활동 이전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설명이 제시되는데, 이것이 가장 그럴듯한 가설일 수 있습니다.성서상의 에즈라와 느헤미야의 시기는 많은 혼란을 줍니다. 연대상의 문제가 미해결인 체로 남아있으며 아직 어느 것도 확실하지 못합니다.
❷귀환자 명단 문제
유배에서 돌아온 유다인들의 명단이 에즈라기 2장에도 나오고 느헤미야기 7장에도 나옵니다. 똑같은 명단이 매우 다른 두 역사적 상황에 쓰인 것입니다. 에즈라 2장의 리스트는 BC 538년 키루스二世의 칙령에 이어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오만 명 이상 되는 유배자들의 첫 무리에 적용됩니다. 느헤미야 7장의 리스트는 거의 한 세기가 지난 다음, 곧 BC 445년경 예루살렘 성벽이 완성된 뒤에 느헤미야 시대에 실행된 인구 조사에 해당됩니다. 이렇게 두 곳에서 인용된 리스트는 귀환 직후에도, 느헤미야 시대에도 작성되지 않은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이 리스트는 귀향이 이루어지고 이십여 년이 지난 뒤, 적어도 성전 건축(BC 520-515) 이후에 수행된 귀환자들의 인구 조사를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❸성전재건공사 중단의 연대문제
성서 본문에 따르면 페르시아 임금 아르타크세르크세스(Arta Xerxes, BC 465-424)의 명으로 작업이 중단되는데(에즈 4,6-24) 연대적으로 가능하지가 않습니다. 성전 재건축이 속개된 것은 BC 520년 다리우스 제2년이고(에즈 4,24; 하까 1,15), 완료된 것은 같은 임금 제6년, 곧 BC 515년경입니다(에즈 6,15). 이로써 작업의 중단과 속개-완료의 시대순이 거꾸로 됩니다. 가장 그럴듯한 가설은 에즈 4,6-23에 들어 있는 문서들을 성전 건축이 아닌 다른 작업의 중단에 관한 것으로 보는 견해입니다. 즉, 다리우스 시대의 성전 건축 작업과 아르타크세르크세스시대의 성벽 건축 작업을 혼동하였을 수도 있다는 견해입니다. 정확한 답을 들을수는 없지만 같은 페르시아 임금의 명령으로 중단된 작업이기 때문에, 에즈라-느헤미야기가 편집될 때에 다리우스 시대의 성전 건축 작업과 아르타크세르크세스시대의 성벽 건축 작업을 혼동하였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⑥에즈라기와 느헤미야기의 종교적 전망
에즈라&느헤미야기는 엄격한 의미의 신학적 내용을 전개하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것들이 서술하는 매우 구체적인 사건들 속에서 그 주인공들을 이끄는 주된 신학적 사상들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이 두 책에서 분명하게 돋보이는 관심의 중심이 셋 있습니다. 곧 성전과 예루살렘 성읍, 그리고 하느님 백성의 공동체입니다.
⑦에즈라와 느헤미야의 신앙쇄신
느헤미야는 주로 유다인 공동체의 정치적 지위를 확고히 단행했고 에즈라는 공동체의 종교적 정신 생활을 재조직 하였습니다.
❶율법에 대한 충실성의 회복
❷혼합종교의 근절
❸에즈라의 내적개혁
에즈라 7⎯10장에 따르면 에즈라는 아르타크세르크세스임금에게서 율법의 사본과 율법을 시행하는 권한을 받아가지고 왔습니다(에즈 7,25). 그는 종교 질서를 바로잡아 시행할 수 있는 특수 사명을 받은 자로서 이 권한은 유다 뿐 아니라 팔레스티나 전역에 그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유다인이 에즈라의 법에 따르지 않는다면 황제의 법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아르타크세르크세스는 하느님의 법을 가르치는 선비 에즈라 사제에게 칙령을 내립니다(7,12-14).
에즈라의 과업은 율법을 중심으로 하는 이스라엘의 재조직이었습니다. 그들은 정치적으로는 페르시아의 속국이었지만 그들의 하느님의 법에 따라 스스로 내정 문제를 조정할 수 있는 공인 공동체를 형성하였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은 율법 공동체체로 전이 되었습니다.
⑧유다이즘의 형성 ; 율법에 의한 공동체
성전의 재건으로 이스라엘은 종교적 공동체로 집결되기는 했으나 그것이 이스라엘 존속 기반으로는 충분하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어떤 확고한 정체성을 심어줄 기본 요소를 찾아야만 했습니다. 그것이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율법이었습니다. 그들은 율법에 대단한 열의를 기울였습니다. 이것이 유배 전의 이스라엘과 구별되는 점입니다. 여기에서 유다교가 생겨났지만 전통으로부터 새로운 파생이 아니라 전통에 입각한 한편으로의 치우침이라는 이해가 옳을 것입니다. 이제 명확히 한계 지어지는 새로운 공동체가 에즈라에 의해 공표된 율법을 지키겠다고 선언함으로써 형태를 갖추게 된 것입니다. 이는 이스라엘 고대의 전통과의 결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말하자면 이스라엘 전통 신앙을 율법으로 확고히 했던 것입니다. 이 방향은 에즈라의 개혁과 활약으로 기원전 4세기에 출발하여 2세기 초에 이르러 본질적 형태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에즈라의 율법은 새로운 공동체의 성격을 규정하는 역할을 했으며 새 공동체는 율법에 의거하고 규제를 받았으며 율법에 최고의 지위가 부여되었습니다.
⑨초기 유다교 신학의 특성
❶배타적 유다이즘
더러는 자기 중심적 배타주의가 우세하였던 것이 사실일 것입니다. 그것은 유다의 본질에 속하는 것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레위기 신학에서 비롯된 ‘거룩하게 성별된 민족’에서 기인합니다.
❷율법주의
유다인들은 각자 율법에 충실함으로써 계약을 지켜나간다고 믿었고 끊임없이 하느님의 자비를 구했지만 실제적으로는 율법의 요구사항을 실행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유다교가 율법 존중 주의 즉, 하느님 앞에서의 인간의 지위는 전적으로 그 행위에 따라 결정된다는 율법주의로 전락할 위험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율법 존중자들은 하느님께서는 충실히 율법을 지키는 자에게 호의를 갖는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심지어는 선행이 하느님 앞에 업적이 된다는 관념도 나타났습니다. 결정적으로 이 사조가 죄의 본질과 율법의 요구를 이해하지 못했음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으나, 아무튼 객관적으로 의를 위한 형식적인 열성이 드러난 것은 분명한데 이것이 사도 바오로가 그들의 조상의 신앙과 결별한 이유일 것입니다(로마 9―11).
(상세내용은 본 블로그 sunny river<구약성경노트>11.페르시아제국시대① 에즈라와 느헤미야 참조)
<구약46권 기본정보③ 역대기계역사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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