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서입문
1.예언서의 배열
①구약성경 전체 46권중 예언서는 열여덟 권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성경의 예언서 목차는 히브리 성경에서 대(大)예언서로 구분되는 이사야,예레미야,에제키엘,다니엘예언서 순으로 배열되어있는데 예레미야와 관련된 책들인 애가와 바룩서는 예레미야서 뒤에 두고, 다니엘서는 책의 분량과 年代를 고려해 에제키엘서 다음에 놓았습니다.
②大예언서에 이어지는 성경목록은 소(小)예언서 호세아서,요엘서,아모스서,오바드야서,요나서,미카서, 나훔서,하바쿡서,스바니야서,하까이서,즈카르야서,말라키서 등 열두 권입니다. 이렇게 구약 성경 안에 예언자의 이름으로 전해지는 예언서들은 하느님께 받은 말씀을 글로 기록하여 후대에 남긴 것으로 이 책의 저자를 통상 저술(著述)예언자 또는 문서예언자라고 합니다. 엘리야와 엘리사는 이스라엘에 강력한 인상을 남기고 그 영향력도 큰 예언자들이지만 저술이 없으므로 성경목록에는 없습니다.
③후기예언서
후기예언서에 속하는 책들은 예언자들이 하느님께 받은 말씀을 글로 기록하여 후대에 남긴 문서집들로서 통상 저술(著述)예언자라고 부르게 된 ②에 언급한 예언서들입니다. 이 기록은 예언자들의 제자집단에서 전승된 것으로 봅니다. 엘리야로부터 말라키에 이르기까지 예언서의 특징은 신탁(神託)입니다. “...께서 말씀하신다”는 예언자들의 고정적인 선포방식으로서 위협적인 경고의 신탁에는 하느님의 책망이, 약속의 신탁에는 하느님의 권고가 틀림없이 따릅니다. 이러한 신탁들은 예언자의 영적교감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③전기예언서
우리성경에 역사서로 분류되는 책들 여호수아기, 판관기, 사무엘기 상·하권, 열왕기 상·하권을 유다교에서는 전통적으로 ‘전기 예언서’라 부르는데, 이렇게 부르는 이유는 무엇보다 유다교의 전통에서는 ‘역사서’의 대부분을 예언자들이 쓴 것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이 판관기와 사무엘기 일부를 썼고, 가드 예언자가 사무엘기를 완성하였으며, 예레미야 예언자는 열왕기의 저자라고 여깁니다. 여호수아기는 여호수아가 직접 쓴 것으로 간주되는데, 그는 집회 46,1에서 예언자로 소개됩니다. 열왕기의 절반 가까이는 예언자들에 관한 이야기로 채워져 있습니다(47장 가운데에서 22장이 할애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역사서 안에서 예언자들은 이스라엘 역사의 중요한 시점에 늘 등장하여 정치에 관여하였고 이들이 사건의 향방을 좌우하기도 했습니다.
예언서 18권 순서 /한국어;영어;그리스어/ ( )는 한글,영어약칭
①이사야서 ;Isaiah ; ΗΣΑΙΑΣ (이사/Is)
②예레미야서 ;Jeremiah; ΙΕΡΕΜΙΑΣ (예레/Jr)
③애가 ;Lamentations; ΘΡΗΝΟΙ (애가/Lm)
④바룩서 ;Baruch; ΒΑΡΟΥΧ (바룩/Ba)
⑤에제키엘서 ;Ezekiel; ΙΕΖΕΚΙΗΛ (에제/Ezk)
⑥다니엘서 ;Daniel ;ΔΑΝΙΗΛ (다니/Dn)
⑦호세아서 ;Hosea ;ΩΣΗΕ (호세/Ho)
⑧요엘서 ;Joel ;ΙΩΗΛ (요엘/Jl)
⑨아모스서 ;Amos ;ΑΜΟΣ (아모/Am)
⑩오바드야서 ;Obadiah ;ΑΒΔΙΑΣ (오바/Ob)
⑪요나서 ;Jonah ;ΙΩΝΑΣ (요나/Jon)
⑫미카서 ;Micah ;ΜΙΧΑΙΑΣ (미카/Mi)
⑬나훔서 ;Nahum;ΝΑΟΥΜ (나훔/Na)
⑭하바쿡서 ;Habakkuk ;ΑΒΒΑΚΟΎΜ (하바/Hab)
⑮스바니야서 ;Zephaniah;ΣΟΦΟΝΙΑΣ (스바/Zp)
⑯하까이서 ;Haggai;ΑΓΓΑΙΟΣ (하까/Hg)
⑰즈카르야서 ;Zechariah;ΖΑΧΑΡΙΑΣ (즈카/Zc)
⑱말라키서 ;Malachi;ΜΑΛΑΧΊΑΣ (말라/Ml)
2. 예언서 전승(傳承)
①예언자들의 말씀은 발설되는 대로 모아졌는데 예언서 안에서 수신인을 명기한 작은 단위의 모음들이 발견된다는 사실 자체가 이와 같은 점진적인 작품 구성을 확인시켜 주는 표지가 됩니다(이사 2,1; 13,1; 예레 14,1; 21,1 등 참조). 그러나 예언서 발간 작업이 특히 유배 시대와 유배 시대 이후에 이루어졌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예루살렘 성전과 함께 여타 제도들이 사라지자 이스라엘 공동체는 신앙과 종교 의식에 관한 권위 있는 규범으로서 글로 기록된 문헌에 더더욱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고 또한 당시에 일어난 역사적 사건들은, 예언자들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은 것이 얼마나 잘못된 일이었는지를 일깨워 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 말씀들을 취합하여 거기에서 지나간 일들에 대한 교훈을 이끌어 내었습니다.
②이러한 작업을 위해 두 가지 원칙이 중시되었는데 우선 Ⓐ연대순에 따라 예언자들의 말씀을 규합하려고 노력하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이스라엘 백성과 이민족들에 대한 심판을 예고했던 신탁들과 구원의 약속을 담고 있던 신탁들을 규합하면서 여기에 Ⓑ체계적인 질서를 더해 나갔습니다. 그러나 연대순과 체계화라는 이 두 가지 원칙의 적용이 독자를 혼란 속에 빠뜨려 자주 당황케 하였고, 이 혼란은 문학적 분석으로도 모든 수수께끼들을 말끔히 해결하지 못해 더욱 두드러지기만 하였습니다(예를 들어 이사야서에서 1─39장과 전혀 다른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40장 이후의 복구와 구원에 관한 본문).
③이사야서가 예언서 첫머리에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 작품이 기원전 8세기의 예언자 이사야를 저자로 하는 신탁들과(이사 1─39), 유배로부터의 귀환 시대에 관련된 또 다른 신탁들을(이사 40─66) 한권의 책에 규합하고 있다는 사실로 설명될 수 있고 또한 호세아서로 열리는 ‘열두 소예언서’의 예언자들이 활동한 기간 전체를 (이사야서가)정확하게 포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곧 예언자 호세아는 이사야처럼 아시리아의 지배 아래에 있던 시기에 활동하였고, ‘열두 소예언서’의 마지막 세 예언자 하까이와 즈카르야와 말라키의 신탁들은 (특히 하까이와 즈카르야의 경우) 이사 40장 이하에 기술되는 페르시아 제국 시대 초기에 발설된 신탁들이기 때문입니다.
④열두 소예언서는 여러 단계에 걸쳐 정리되었습니다(그리스 말 역본과 비교해 보면 예언서들이 약간 다른 순서로 배열되어 있다). 이 예언서들은 처음에는, 신명기계 역사서들을 저술했고 그 신학과 문체를 호세아서와 아모스서와 미카서와 스바니야서에서도 적용한 몇몇 신명기계 편집자들이 발간한 것 같습니다. 예레미야서 역시 신명기계 문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여러 편집 특징들을 지니고 있습니다.
⑤하까이서와 즈카르야서 1─8장은 나훔서와 하바쿡서와 마찬가지로 ‘열두 소예언서’에 편입되기 이전에 독립적인 소규모의 모음집을 이루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페르시아 시대 말엽이나 그리스 시대 초엽에 상이한 책들과 모음집이 규합되면서, 동시에 참된 예언 말씀은 문서를 매개로 할 때 비로소 접근이 가능하다는 생각이 확산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율법 학자들이 예언 전승의 수호자가 됩니다.
⑥애가는 히브리 말 성경에서 룻기, 아가, 코헬렛, 에스테르기와 함께 ‘축제 오경’을 이루면서 예루살렘 함락을 애도할 때 읽혔으나, 칠십인역은 예레미야의 작품으로 전하는데 이는 예레미야가 유다의 임금 요시야의 죽음을 애도하는 조가를 지었다고 전하는 전승에 따른 것입니다(2역대 35,25 참조). 칠십인역을 통해서 우리에게 전해진 바룩서는 다양한 시대를 배경으로 예루살렘 출신 유다인들에게 참회 예식을 거행하도록 격려하는 디아스포라 유다 공동체의 기록으로 보입니다.
⑦문학 유형상 구약 성경에서 독특한 다니엘서는 바빌론 유배 시대에 활동하던 어떤 예언자의 작품으로 제시되나, 실은 시리아 셀레우코스 왕조의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의 종교 박해에 직면해서 이를 극복하도록 신앙의 모범을 제공하고자 탄생한 작품입니다.
2.예언자(Nabi)
①예언자의 히브리말 나비(Nabi)는 아카디아어 동사 나부(nabu)즉 “부르다”, “선포하다”를 어원으로 하며, “신에 의해 부름 받은 자”, “꿰뚫어 보는 자” “대변자”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탈출기의 아론은 모세의 입을 대신하는 대변인(Nabi)으로서 이 말이 사용되었습니다.
✽아카디아어는 대체로 중동 지역에서 발원한 한 셈족계 언어입니다. 셈어에 속한 언어로는 고대와 현대 아카드어(Akkadian),아랍어(Arabic), 아람어(Aramaic),히브리어(Hebrew) 등입니다.
②그리스어는 프로페테스(προΦητηs; prophetes), 영어 프러핏(prophet), 라틴어 프로페따(propheta). 프로(προ)는 ‘앞’ ‘앞서서’라는 뜻도 있습니다. 여기서의 ‘앞’은 시간적인 ‘앞’도 될 수 있고 장소적인 ‘앞’도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예언자는 사람들 앞에서 또는 사람들의 생각에 앞서서 하느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대변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③예언자가 부름 받을 때는 하느님께로부터 당신“말씀”을 입에 담아주겠다는 약속을 받습니다(예레 1,9). 예언자들의 신탁神託의 핵심은 하느님께 대한 순명과 사랑에 기초를 둔 진실한 마음의 종교 즉, 우상숭배의 단절과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위한 자비와 정의의 실행이었습니다. 예언자들은 아주 극단적인 또는 왜곡적인 표현들까지도 겁내지 않습니다. 그들은 정리된 케뤼그마(kerygma, κήρυγμα)가 아니라 특별한 상황에서 하느님 앞에 서있는 특정한 사람들에게 하느님에 관한 소식을 선포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언자들의 이 대화 상대자들은 항상 똑같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예언자의 선포는 최소한의 기본사상들에서 솟아나서 각각의 상대에게 적절히 대합니다. 이 유례없는 내적인 유연성과 적응성은 놀라울 뿐이기에 그들은 분명 하느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④예언자들에게는 확고부동한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 하나는 이스라엘을 위한 하느님의 새로운 소식인데 이것은 하느님께서 예언자들을 통해 세계사의 차원에서 이해하게 한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선택전통(選擇傳統)인데 예언자는 이 전통 안에서 그의 청중과 더불어 서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언자의 선포는 ⑴이스라엘을 위한 하느님의 새로운 종말론적인 말씀과 ⑵전래된 선택전통, ⑶예언자의 말 상대가 된 사람들의 개인적인 상황에서 일어납니다.
3.예언자의 특징
예언자들은 확실히 이스라엘남북왕조의 어느 왕보다도 역사적으로 중요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사야, 예레미야,에제키엘 등 3대 예언서는 예언서의 크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스라엘에 끼친 영향 때문이기도 합니다. 예언자는 미래를 예고하는 자가 아니라 하느님의 이름으로 하느님의 뜻을 전달하기 위해 파견된 사람입니다. 예언자가 미래를 예고하는 일에 그치는 인물이라면 그다지 중요한 일도, 인상에 남지도 권위도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실 미래를 점치는 예언자들은 그 시대에 많이 있었습니다. 예언자의 말이 권위를 띄는 것은 그를 보내신 하느님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메시지는 왕보다 더 권위가 있었습니다. 물론 예언자들이 하느님께서 당신의 의도대로 사건을 이끌어 나가신다는 확신 때문에 미래를 예고하는 일도 종종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들을 향한 다가오는 영적인 미래인 것입니다. 예언자는 무엇보다 신앙인들의 현재에 관심을 두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언자들이 처음 등장할 때부터 예언과 정치는 밀접한 관계가 있었습니다. 예언자들의 신탁의 핵심은 하느님께 대한 순명과 사랑에 기초를 둔 진실한 마음의 종교 즉, 우상숭배의 단절과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위한 자비와 정의의 실행이었습니다. 이 시대에는 오로지 예언자들만이 권력과 맞설 수 있었습니다.
46-29. 이사야서(ISAIAH ; ΗΣΑΙΑΣ) 약자표기 (이사/Is)
이사야서 제1부[1⎯39장]
1.제1이사야 인물소개
①이사야의 이름과 활동시대
이사야서의 저자 이사야라는 이름은 ‘하느님께서 구원 하신다’ ‘하느님은 구원이시다’의 뜻으로, 이 비범한 인물은 기원전 740년 비교적 젊은 나이에 예언하도록 부름을 받았고, 그의 활동은 적어도 40년에 달하는 기간에 걸쳐 전개됩니다. 곧 우찌야임금 시대부터 히즈키야와 그 아들 므나쎄 임금시대, 그리고 기원전 681년 아시리아의 산헤립이 죽던 때까지 활동하였습니다.
②이사야의 정치무대
유다임금 아하즈(735-716)는 자진해서 아시리아 임금의 보호 아래 들어가는 것이 최선의 해결 방안이라고 믿었고 친아시리아 정책을 계속합니다. 734년을 전후하여 이사야는 자의로든 타의로든 공적인 생활에서 물러났다가 716년 히즈키야 임금이 아하즈를 계승할 때, 다시 정치 무대의 전면에 나타납니다. 이사야는 종교적인 이유로 이집트 및 인근 민족들과 동맹을 반대합니다. 이사야는 아시리아가 하느님의 도구임을 점점 선명하게 보게 됩니다. 701년에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있던 아시리아의 산헤립의 군대가 퇴각하게 되는데, 이는 이사야 예언자에 의해서 예고되었던 바이고, 이 사건을 끝으로 제1이사야는 사라집니다. 이사야의 선포는 전 구약성서에서 가장 거대한 신학적 현상입니다. 그의 표상세계의 광활한 폭에는 다른 어떤 예언자도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③이사야의 출신과 순교
예언자 이사야를 왕족이라고 추측할 수 있는 여지가 있기도 하지만 그러나 그의 권위는 무엇보다도 먼저 예언자로서 그의 사명에서 유래합니다. 종교 지도자들 곧 사제와 예언자들은 그의 말을 듣지 않았으며, 그에게 야유를 퍼붓기까지 하였습니다. 이사야가 순교하였다는 전통은 분명히 외경에 속합니다(‘이사야의 승천’과 에녹서 11,37). 이사야서의 머리글에(1,1) 따르면 이사야가 박해자 므나쎄 임금 시대에는 이미 살고 있지 않은 것이 확실하지만, 이사야 순교의 전설에는, 모든 예언자의 삶이 인간적으로는 실패였다는 견해가 반향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④이사야의 언어
이사야의 근본적인 자질들 곧 그의 권위와 고귀함, 그리고 하느님에 대한 믿음과 자기 민족에 대한 열정은 그의 언사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예언 신탁들이 지니고 있던 일정한 전통적 규칙들에 부합하면서도, 그는 그때까지 볼 수 없던 수사학(修辭學) 기술들을 자기 예언에 적용시킵니다. 이따금 해학으로 가득한 언어유희, 동일한 자음 또는 모음을 되풀이하는 자음운과 모음운, 풍부한 의미를 담고 있는 은유 등이 그것입니다. 그를 교육했던 현인들에게서처럼 그에게도 현실은 의미가 가득합니다. 자연의 요소들 곧 불, 땅, 물, 바람 등은 그에게 삶과 죽음의 세력이라는 이중적 모습으로 나타나고, 우리 주변의 현실처럼 피해 갈 수 없는 하느님의 양면성을 표현합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놀라울 정도로 간결하게 말합니다. 그는 불필요한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이사야서에서 평범하고 장황하게 표현된 일정한 문장들을 예언자 자신의 말과 구분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언어가 표현의 능력만이 아니라 창조력을 지니고 있다면, 성경에서 그 대표적인 예증을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이사야서입니다.
2.이사야서의 저자와 저작년대
①이사야서는 66개의 장이 결집되어있는데, 이들이 모두 동일한 시대의 것들은 아니라는 사실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제1부 1─39; 제2부 40─55; 제3부 56─66).
②구약 성경에서 어떤 책의 저자가 여럿이라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구약 성경의 적지 않은 책들이 다수의 저자들에게서 쓰인 편집물임을 드러냅니다. 그런데 이 저자들은 일반적으로 무명인 데 반하여, 이사야서는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뚜렷이 드러나는 한 시대를 살았던 특정 인물의 이름 아래 전해집니다(1,1). 많은 사람들은 이사야서 전체가 이 한 사람에게서 유래한다고 믿었고, 또 아직도 그런 주장들이 있기는 합니다. 그런데 저자가 여럿이라는 사실이 이 예언서의 통일성을 말하는 데에 저해(沮害)가 되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 통일성은 몇 세기를 걸쳐 펼쳐지는 지속성 속에서, 그리고 특정 주제들의 항구성 안에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③제1부(1─39장)는 이사야 본인의 글로 전해지며 남북왕조시대가 배경입니다. 이사야서1부의 핵심은 주로 자서전적인 요소들 특히 자기의 소명과 예언자로서의 사명 수행에 대해서 예언자 자신이 들려준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6장). 예언자 자신이 직접 기록을 했다는 사실이 8,1.16과 30,8 같은 본문들에서 밝혀지기는 하지만, 그가 선포한 신탁은 많은 부분 그가 직접 기록하지 않고, 그의 지시에 따라서 또는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에 그가 선포한 말과 사건들의 일치를 드러내고자 그의 제자들이 기록하였을 것입니다. 이사야의 제자단은 먼저 그의 가족들, 곧 상징적인 이름을 주어 자기의 사명 수행에 참여시킨 아들들과(7,3 스아르 야숩;남은자가 돌아올것이다의 뜻. 이하 상징적 이름 성경참조), 8,3에서 여예언자로 불리는 그의 아내로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후 확대된 제자단은(어떤 이들은 이 집단이 진정한 의미의 ‘이사야 학파’라고 한다.) 스승의 신탁들에서 출발하여 문학적 활동을 펼치게 됩니다. 이들은 또한 기원전 587년에 일어난 예루살렘 함락과 성전의 파괴 그리고 유배라는 대환난 이후, 하느님의 새로운 백성의 핵심이 되는 충실한 “남은 자들”을 이루었음에, 또는 적어도 그들을 예시했음에 틀림없습니다.
④저자가 여럿이라는 가장 명백한 증거는 이른바 제2이사야의 작품(40─55장)이 시작되는 40장의 첫머리에 나타납니다. 분명하게 어떤 중간 과정도 없이 그 배경이 기원전 8세기에서 갑자기 기원전 6세기의 유배 시대 한가운데로 옮겨 가는 것입니다. 이사야는 홀연히 사라지고, 아시리아는 바빌론으로 바뀌어 이후 이 바빌론만이 자주 언급됩니다. 그리고 바빌론을 정복하고 유다인들이 귀향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한 장본인인 메디아와 페르시아의 임금 키루스가 여러 번 직간접적으로 언급됩니다(41,2; 44,28; 45,1). 이러한 사실들을 종합할 때, 40장과 함께 새로운 책이 시작된다는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⑤40─66장이 이렇듯 분명하게 구분되기는 하지만, 제2부 모든 부분이 명백히 제1이사야 시대 이후에 생겨난 것은 아닙니다. 36─39장이, 물론 여러 중요한 변형들도 있지만, 열왕기 안에 들어 있는 역사적인 이야기를 되풀이하고 있음을 알 수 있고(2열왕 18,13─20,19) 그중 34─35장은 유배 시대의 특징을 드러내고 있으며 제2이사야의 작품과 유사합니다. 끝으로 통상 ‘이사야의 묵시록’이라 불리는 제1부의 24─27장은 기원전 8세기 사람들의 사고와 표현 방식과는 거리가 멀다고 봅니다. 그리고 예사로 예언자 자신과 결부되는 본문들 안에서도(1─12; 13─23; 28─33장), 주석가들은 일정한 분량의 단편들이 예언자보다 후대의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저자의 단일성을 인위적으로 증명하려고 하기보다는, 이사야서가 합성물임을 수긍하는 것이 좋습니다.
⑥계속해서 새로운 부분이 첨가되는 과정이 끝나지 않는 열린 책이었던 이사야서는 비유적으로 도서관, 어쩌면 예언서들의 도서관 그 자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편집자들은 흩어져 있는 조각들만이 아니라 이미 문집이라 할 수 있는 자료들까지 가지고 있었습니다. 선집(選集)이라는 바로 이 사실은 예언자 이사야가 생애 중에 그리고 사후에 백성의 기억 속에 남아 수행한 그의 본질적인 역할을 분명하게 드러내 보여 줍니다.
⑦이사야서의 완성은 56─66장이 전제하는 바와 같이 유배 시대 이후, 그리고 귀향 이후에 이루어집니다. 유배에서 돌아온 후 BC500-400년 사이에 이사야서3부가 먼저 편집되고, 이사야서를 포함한 예언서 전체는 BC 2세기말까지 최종 편집 되었습니다.
3.이사야예언서의 역사적 배경
①예언자 이사야는 기원전 740년 비교적 젊은 나이에 예언자로서 부름을 받았고, 그의 활동은 적어도 40년 동안에 걸쳐 전개됩니다. 그가 역사의 무대 위로 등장한 때는, 아자르야라고 불리기도 한 우찌야 임금의(2열왕 15,1-7 참조) 오랜 치세 아래 유다가 누렸던 번영의 시대와 일치합니다. 그러나 번영은 사치의 팽배, 모든 토지들을 독점하는 지주 계급의 출현, 그리고 가난한 이들에 대한 억압 등 부작용을 낳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언자는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정의에 반대된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단죄하고, 그에 대한 하느님의 진노를 선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사야보다 몇 년 앞서 아모스 예언자가 북이스라엘의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똑같은 말을 선포하기도 했었습니다.
②이사야가 정치 활동의 전면에 나타난 것은 이스라엘남북왕조시대의 유다왕국 아하즈 임금 치세 초기의 일입니다(2열왕 16,1-20). 당시, 다마스쿠스를 수도로 하는 아람 왕국과 사마리아를 수도로 하는 이스라엘 왕국은 점점 위협이 되는 아시리아의 세력에 대항하려고 시도하는 반면, 유다 왕국의 아하즈는 자진해서 아시리아 임금의 보호 아래 들어가는 것이 최선의 해결 방안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아하즈는 자신을 강제로 끌어들여 연합 전선을 이루려는 이 두 이웃 나라에 대항하여(반아시리아연합군), 아시리아 임금에게 징벌군을 보내 줄 것을 요청합니다. 이 원정은 실패로 끝나지만 아하즈는 자기의 친아시리아 정책을 계속 유지합니다. 기원전 734년을 전후하여 이 일이 일어난 뒤, 이사야는 자의든 타의든 십여 년 동안을 공적인 생활에서 물러나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여러 지방에서도 실감하는 아시리아 세력의 점진적인 확장을 무력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아시리아는 기원전 722년 이스라엘을 침공하여 북이스라엘왕국은 멸망하게 됩니다.
③기원전 716년 히즈키야 임금이 아하즈를 계승할 때(2열왕 18─20), 이사야는 다시 정치 무대의 전면에 나타납니다. 그러나 히즈키야는 주님께 충실하면서도, 국정 수행에서는 예언자의 조언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사야는 종교적인 이유 때문에, 비록 아시리아에 대항하기 위한 방편이라 할지라도 유다가 이집트나 그 밖의 인근 민족들과 동맹을 맺는 것을 계속 반대합니다. 어떠한 당위성이 있다 하더라도 이러한 연합 전선의 구축은 허용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정치적 기회주의에 대항하여 이사야는 주님에 대한 충실성을 요구합니다. 그는 바로 이 하느님에 대한 충실성이라는 관점에서, 주님에게 반항하고 그럼으로써 그분에게 일종의 적이 되어 그 교만에 대한 벌을 받지 않을 수 없게 된 백성을 책벌하시려는 하느님의 진노의 막대가 바로 아시리아임을 점점 선명하게 보게 됩니다.
④기원전 701년에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있던 아시리아 임금 산헤립의 군대가 퇴각하게 되는데, 이는 이미 이사야 예언자가 예고하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일어난 사건의 원인과 결과에 대하여 예언자와 정치 지도자들이 근본적인 의견 차이를 나타내기는 하였지만, 이 사건은 분명 이사야의 권위를 높여 주었습니다.
4.성경 전통 속의 이사야서
①마침내 이사야서는, 이사야서를 구성하는 모든 부분들을 통틀어 유일한 작품으로서 예언서들의 경전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 뒤 이 책은 새로운 역사를 겪게 됩니다. 쿰란(에세네파 유다공동체지역)에서 이사야서의 여러 단편들과 이사야서 전체의 두루마리가 발견되는데, 여기에서 우리는 자신들을 참다운 이스라엘, 그리고 충실한 “남은 자들”로 여겼던 에세네파 공동체의 구성원들에게 이사야서 전체가 하나의 기획서였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게 됩니다. 이 쿰란의 주요 수사본과 함께 가장 오래된 성경 수사본이 복구되는데, 이는 유다인 성경 전승가들에게서 전해진 마소라 본문보다 천 년 이전의 것이었습니다. 이사야서가 유다인들에게 불러일으켰던 관심은 칠십인역이라 불리는 그리스 말 역본에도 나타납니다. 이 역본에는 가끔 번역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번안이라고 해야 할 정도로 히브리 말 본문과는 다른 본문들이 나타납나다. 그러면서도 칠십인역은, 번역 원본인 히브리 말 본문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을 하나 열어 주고, 이 번역본이 만들어진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살던 유다 공동체가 수행한 이사야서의 재독(再讀)에 대하여 여러 가지를 증언해 준다는 면에서 유익합니다.
②이사야서 특히 제2부와 제3부는(40─66장) 시편과 함께 신약 성경에서 가장 자주 인용됩니다. 그 가운데 일부는 명백한 직접 인용문들이고 나머지는 쉽사리 알아볼 수 있는 차용문들입니다. 임마누엘의 탄생을 예고하는 7,14가 마태 1,22-23에서 되풀이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6,10의 본문을 상기시키는 내용은 복음서 저자들이(마태 13,14; 마르 4,12) 중요하게 사용한 구절이며 포도밭이나 모퉁잇돌과 같은 이사야서의 중요한 이미지들은 신약 성경에도 자주 나옵니다. 또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순종에 반대되는 것으로서 입술만으로 하는 예배(마태 15,8과 이사 29,13), 종말의 시간을 묘사하는 그림에 나오는 것으로서 천체들이 빛을 잃는다는 것(마태 24,29와 이사 13,10), 그리고 가지와 그루터기, 특히 주님의 종과 관련된 주제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이사야서로부터 출발해서 그리스도를 이해하고, 새로운 약속들과 임박한 심판 앞에 놓여 있는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자신들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주었습니다.
③이사야서가 성화(聖畵)와 그리스도교 찬미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겠습니다. 여러 대성당의 정면 현관, 신앙 서적 속에 들어 있는 삽화들, 그리고 많은 성가들이 각자 제 나름대로 이사야서를 되풀이하여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역사상, 이사야서라는 이 하느님의 특별한 증인보다 계시를 더 적절하게 표현하고 신앙을 더 많이 불러일으킨 책도 그리 많지 않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④예언자들을 말하지 않고는 이스라엘 역사(歷史)는 불완전한 역사가 됩니다. 이 예언자들은 확실히 유다의 어느 왕보다도 역사적으로 중요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스라엘이 그들의 전역사를 통하여 배출한 인물 가운데 이사야만한 위대한 인물은 없습니다. 이사야는 시종일관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무기를 가지고 권력과 맞섰으며 그가 다른 사람과 분명히 다른 점은 이 세상을 지배하는 자가 누구인지를 통찰했다는 것입니다. 이사야서는 탈출전통과 다윗전통의 뿌리를 합류시켜 구약 전체의 일관된 흐름인 하느님의 사랑과 구원이라는 새 신학을 이루었습니다.
5.제1이사야서 구성과 내용[1―39장]
이사야서 안으로 들어간 문집들의 수와 규모에 대해서는 추측만을 할 수 있을 따름입니다. 함께 모아진 모든 신탁들과 역사 이야기들은 대부분의 다른 예언서들, 특히 예레미야서와 에제키엘서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다음과 같이 세 부분을 포함하는 전통적인 도식 속으로 삽입되었습니다.
⑴이스라엘에 내려지는 심판에 대한 예언
⑵이민족들의 불행에 대한 예언
⑶주로 이스라엘에 대한 구원의 약속
그런데 여러 문집들이 이사야서에 받아들여질 때에, 종종 이미 위와 똑같은 도식으로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편집할 당시에 이들을 다시 분류해 이 전체적인 틀 속으로 집어넣기에는 어려움도 있었을 것입니다. 어쨌든 1─39장은 다음과 같이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1장] 책 전체의 도입 부분으로서, 여러 시대의 신탁들 가운데에서 선별한 것들로 이루어졌으며, 예언자의 선포 내용을 요약하여 제시하고자 하는 의도를 지니고 있습니다.
[2―12장] 이스라엘과 유다에 관한 예언으로 이사야예언서에서 가장 오래 된 것들입니다.
①5,1-7의 ‘포도밭노래’의 포도밭은 이스라엘을 가리키는데 백성에게 적용된 포도밭 이미지는 구악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용어이고 신약성경에나타나는 선한 포도밭 주인은 하느님이십니다. 이 이미지는 하느님과 백성사이의 계약을 잘 표현해 줄뿐 아니라 이 포도밭은 임시초막이 아닌 돌로 탑을 세우고, 울타리를 치고, 포도 확도 만들고, 돌을 골라낸 기름진 땅의 포도밭으로서 포도밭 자체가 주인의 정성이 깃든 사랑의 상징입니다.
②6장은 이사야가 예언자로서 소명을 받는 부분입니다. 6,2의 ‘사랍’은 히브리말의 ‘타오르는’을 뜻하는데 이 말은 본디 사막의 무서운 뱀을 가리키는데 사용됩니다. 여기에서는 주님을 모시고 있으면서 동시에 그분 앞에서 얼굴을 가려야하는 혼합적인 존재들을 서술하고자 사용됩니다. 고대의 어떤 표현들에 의하면 사랍들은 날개와 사람의 얼굴과 손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아무튼 사랍들은 하느님을 섬기는 천상적인존재가 된 것입니다. 사랍들의 ‘거룩하시다’의 세 번 반복은 이사야 이전의 전례에 사용되던 환호였을 것입니다. 이 환호는 이사야가 선포하는 메시지의 핵심이 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 앞에서 취해야할 자세를 결정하는 신학의 근본적인 표현이 됩니다.
③6,9-10은 마태 13,13-15;마르 4,12;루카 8,9;요한 12,40에서 중요하게 인용됩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가서 저 백성에게 말하여라. ‘너희는 듣고 또 들어라. 그러나 깨닫지는 마라. 너희는 보고 또 보아라. 그러나 깨치지는 마라.’ 너는 저 백성의 마음을 무디게 하고 그 귀를 어둡게 하며 그 눈을 들어붙게 하여라.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서는 돌아와 치유되는 일이 없게 하여라.”’
❶하느님께서는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고 그의 눈을 멀게 함으로써, 듣지만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게, 보아도 아무것도 파악하지 못하게(6,9)하는 것이 예언자의 과제임을 알게 했습니다. 즉,이사야의 과제는 듣지 않는 사람들에게 말해야한다는 것입니다.
❷하느님께서는 이사야를 보내시면서 그의 메시지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거라고 하셨으므로 이사야는 언제까지 그렇겠느냐고 물었습니다. 하느님의 대답은 그들이 바빌론의 포로가 되고 예루살렘이 패망 할 때까지라고 답하십니다. 이사야는 무척 실망했을 것이고 그때까지 살지도 못했으니 그는 살아있는 동안 내내 고약하고 완고한 백성들 앞에 서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죽기 전까지 조국의 멸망과 반항하는 민족을 바라보아야 했습니다.
❸이 표상은 신앙인들의 일반적인 모습이기도합니다. 이사야는 이스라엘에서 아직 들어보지 못한 것을 확언 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하느님에 의해서 멸망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각 시대뿐 아니라 인간들 자신의 마음 가장 은밀한 영역에서도 심판을 일으킵니다. 사람이 하느님의 부름을 거부한다는 완미(頑迷;무디고, 둔하고, 완고함에 빠지다 또는 열중하다)함이 이사야에게서 폭로된 것입니다.사람이 하느님의 부름에 무디고 둔한까닭에 하느님께서 그의 얼굴을 숨기셨다는 것입니다. 이 수수께끼는 이사야의 전 활동을 일관합니다(29,9-14).
④7장 임마누엘 예고
7,14의 70인역은 이 ‘젊은여인’을 동정녀로 번역하였는데 이는 기원전 2세기부터 유다교내의 어떤 전통이, 고대되는 특이한 탄생을 동정녀모친에게서 나오는 메시아의 탄생으로 이해했음을 뜻합니다. 마태 1,23에 이어 고대 그리스도교 전통은 이 신탁을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적용시켰습니다. 임마누엘(Emmanuel, Ἐμμανουήλ)은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를 뜻하는데 사람의 이름으로는 더 이상 구약성경에 나타나지 않는 이 표현은 상징적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구원의 약속을 담고 있습니다.
⑤8,17 얼굴을 감추시는 하느님
이사야는 자신의 활동의 결과를 규정했는데, 하느님께서 그의 얼굴을 숨기셨다는 것입니다(8,17). 그러나 이것은 이사야활동의 한계를 진술한 것이 아닙니다. 이 수수께끼는 이사야의 전 활동을 일관하기 때문입니다(29,9-14). 그런데, 예언자는 그의 소망이 바로 얼굴을 숨기신 하느님에게 있음을 고백합니다(8,17;그리고 주님을 기다리리라. 야곱 집안에서 당신 얼굴을 감추신 분, 나는 그분을 고대하리라).이사야의 하느님관은 참으로 투철한 것이었습니다. 이사야의 경우 모든 것은 미래를 향한 하느님의 지시였습니다. 얼굴을 감추신 분을 고대한다는 것은 곧 하느님을 향한 신뢰입니다. 하느님은 함께 계시지만 때때로 얼굴을 감추십니다. 그것이 우리는 고통스럽지만 이사야는 바로 그 하느님을 고대한다는 것입니다.
[13―23장] 이방 민족들에 대한 신탁들입니다.
[24―27장] 주석가들이 이사야의 묵시록이라 부르는 네 개의 장입니다.묵시문학적 문체로 선포와 탄원, 감사의 기도가 일정한 순서 없이 이어집니다. 묵시문학은 200~100년까지 널리 퍼진 유다문학의 사조입니다(이사야의 묵시록은 전술된 내용 2-⑤참조. 묵시문학에 대해서는 블로그 sunny river 요한묵시록 참조).
[28―33장] 북이스라엘과 유다에 대한 약속과 위협을 담은 다양한 신탁들입니다.
[34―35장] 또 다른 묵시록적 단편들이며 ‘이사야의 小묵시록’으로 불립니다.
[36―39장]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공격할 당시 이사야의 활동에 대한 내용이 기록되어있습니다(2열왕 18,13-20,19).
6.제1이사야 선포의 핵심주제
①‘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 ‘이스라엘의 남은자’
❶이사야 신탁과 선포의 핵심은 계약의 공동체로서 하느님과의 관계를 상기시키고 백성을 견책하며 하느님의 계획을 위해 진실한 자들을 남겨두셨음을 중시합니다.‘이스라엘의 남은자’, ‘하느님은 거룩하신 분’ 이라는 용어는 이사야 학파의 특징입니다.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이라는 표현은 이사야서 밖에서는 매우 드물게 나옵니다. 그래서 이를 이사야 학파 신학의 특성으로 간주할 수 있습니다.
❷하느님의 이 거룩함은 종교적 차원에서건 정치적 차원에서건 우상들과 공유되는 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하느님 계획의 지상권을 강하게 확신하면서도, 예언자는 인간의 활동과 또한 그의 자발성에 커다란 중요성을 부여합니다. 인간은 결코 이것들과 반대되는 형태로 구원받거나 단죄 받지 않습니다.
❸6,2의 사랍(히브리말의 ‘타오르는’을 뜻하는 이 말은 하느님을 섬기는 존재)들의 ‘거룩하시다’의 세 번 반복 환호는 이사야가 선포하는 메시지의 핵심이 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 앞에서 취해야할 자세를 결정하는 신학의 근본적인 표현이 됩니다.
②시온(예루살렘)
❶시온성은 예루살렘에 있던 여부스족의 성읍이었는데, 다윗이 이곳을 점령하였고 솔로몬이 시온성에 성전을 지었습니다. 시온은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을 가리키나 곧 예루살렘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❷이사 14,24-27에 의하면 아시리아는 전멸할 것이며 그 중심에 시온이 있습니다. 그리고 시온으로부터 모든 민족들을 향하여 펼쳐지는 하느님의 손을 보게됩니다. 그러나 결국 시온은 수호되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실패에도 불구하고 예언자의 선포가 기록되고 전해졌다는 것입니다.
❸이사야에 의하면 구원은 심판과 함께 옵니다(29,2.4;28,21). 이사야예언서의 핵심은 하느님께 대한 신뢰였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멸망은 하느님의 약속이 신실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백성들이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사야의 말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고난을 하느님의 공의로운 징벌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어떠한 비극도 그들의 희망을 사라지게 하지 못했습니다.
❹히즈키야,요시아의 개혁이 일시적이었던 반면 이사야의 글과 정신은 오래도록 이스라엘의 정신이 되었고 시대를 통하여 개인에게 변화의 의지를 주었습니다. 희망이 그렇듯 확고하였으므로 나라가 망한 후에도 희망은 남을 수 있었습니다.
“주님을 기다리리라. 야곱 집안에서 당신 얼굴을 감추신 분! 나는 그분을 고대하리라.”(이사 8,17).
③메시아사상
다윗과 예루살렘은 이사야가 선포하는 메시지의 주요 주제로서, 그는 자기의 청중들에게 이것을 끊임없이 상기시켰습니다. 이렇게 해서 메시아사상은 장차 예루살렘이 세계 중심적이고 보편적인 구실을 수행하리라는 내용과 함께 이사야서의 제2부와(40―55) 제3부에서도(56―66) 계속 그 중심부에 남아있게 됩니다. 이사야서를 통한 메시아사상은 다음과 같습니다.
❶메시아의 탄생 7,14
❷메시아의 왕국 11,1-9
❸메시아의 수난 52,13-53,12
❹메시아의 영원한 나라 66,22
④메시아의 왕국 11,1-9
11,1-9는 메시아가 실현할 평화의 왕국 모습에 관한 내용입니다. 정의가 그의 허리를 두르는 띠가 되고 신의가 그의 몸을 두르는 띠가 되어 힘없는 이들이 정당한 재판을 받을 수 있고 사람과 짐승 사이의 평화도 정의와 함께 이루어집니다. 11,1-9의 메시아는 성령의 은사들로 무장되어(지혜,슬기,경륜,용맹,지식,경외), 이 기름부음 받은 자의 나라는 질서를 바로잡고 평화를 준다는 파라다이스적 표상으로서 이사야는 이사이의 뿌리에서 나올 미래의 메시아와 결부시킵니다. 구약성경 중 이처럼 평화를 눈에 보이게 말한 구절은 없습니다.
“이사이의 그루터기에서 햇순이 돋아나고 그 뿌리에서 새싹이 움트리라.그 위에 주님의 영이 머무르리니 지혜와 슬기의 영 경륜과 용맹의 영 지식의 영과 주님을 경외함이다.”(11,1-2)
⑴이사이는 다윗의 아버지입니다(1사무 16). “그루터기”는 여기에서 그 본디 의미로, 46개의 성읍들과 그 인근 지역이 아스돗과 에크론과 가자 왕국에 편입된 기원전 701년 산헤립 침공 이후의 예루살렘 왕조의 상태를 암시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⑵움트다는 본디 ‘비옥하다’를 뜻하는 동사이지만, 고대 번역본들처럼 히브리 말에서 이와 꼴이 거의 비슷한 ‘움트다’를 뜻하는 말로 읽는 것이 합당합니다. ‘임마누엘의 책’, 특히 7,14-17과 9,1-6에 나오는 신탁들과는 달리 이 신탁은 미래의 임금 곧 새로운 다윗을 직접 목표로 하는 듯합니다.
⑶주님의 영이 머무르다; 다윗에게(1사무 16,13-14 참조) 주님의 영이 머무르는데, 여기에서는 그것이 결정적인 형태로 이루어집니다. 여기에서 거론되는 “영”의 여섯 가지 속성은 잠언 8,12-14에서 의인화된 지혜의 속성들에 상응합니다. 이들은 (잠언 8,15-20에도 나오는) 임금의 왕위 특히 정의로운 통치의 수행을 가능하게 합니다. 이 여섯 가지 속성에 칠십인역과 대중 라틴 말 성경은 일곱 번째로 ‘공경의 영’을 덧붙입니다. 이로써 가톨릭 교회 신학에서 말하는 ‘성령의 일곱 가지 은사’ 목록이 이루어집니다.
⑷견진성사 예식 때 11,2에 근거하는 성령의 일곱 은혜를 청합니다. 일곱이라는 숫자는 성서상 숫자의 상징적인 의미를 존중하여 2절의 여섯 가지 속성에 칠십인역과 대중 라틴 말 성경에 따라 일곱 번째로 ‘공경의 영’을 덧붙여 만든 것입니다. 성령의 7은은 개인의 신앙생활 전반에 걸쳐 작용하면서 영성 생활을 주도하는 특별한 은혜로 그것을 받는 사람들의 덕을 보충하고 완전하게 합니다.
❶인간의 지성과 관련한 은사
⑴지혜;슬기(sapientia,wisdom)하느님의 사랑을 아는 지혜
⑵통찰;깨달음(intellectus, insight) 하느님 구원의 진리를 인간 지력 의 한계 내에서 이해 하도록 도와 주는 직관력.
⑶의견;일깨움(consilium,counsel) 카운슬,행동의 결심,조언 충고. 선악에 대한 올바른 판단을 돕는 것.
⑷지식;앎(scientia,knowledge)영원한 생명과 인생의 참된 의미깨닫기 위하여 믿을 것과 믿지 말아야 할 것 식별하는 지식.
❷인간의 의지와 관련한 은사
⑸용기;굳셈(fortitude, power)신앙 생활에 수반하는 장애를 극복 하는 힘을 주는 것으로 결단을 내리고 유혹에 저항하는 힘.
⑹공경;받듦(pietas,piety) 하느님께 대한 자녀다운 사랑.
⑺경외;두려워함(timor, fear of Yahweh) 하느님을 두려워함. 인간의 감각적 무절제를 피하게 하여 절 제의 덕을 실천 하게한다.
제2이사야서 [40─55장]
에제키엘과 동시대에 또 한 사람의 위대한 예언자가 유배자들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알 수 없고, 그의 글이 이사야서에 함께 기록되었으므로 그를 제2이사야라고 부릅니다. 이 비범한 무명의 인물 제2이사야는 유배지의 동포가운데 깨어있었던 자로서 이스라엘이 체험하게 될 구원사상을 우주적인 시야로 이끌어낸 인물입니다. 이 메시지는 무엇보다도 기진맥진해 있는 그의 동포들에 대한 위로의 메시지였습니다.
1.제2이사야서의 시대적배경
①이사야서 2부 40─55장의 메시지의 연대는 페르시아의 승리, 바빌론인들의 쇠퇴, 유배 중인 이스라엘인들의 임박한 해방을 선포하게 되는 BC 550~539년 사이, 페르시아의 키루스2세 대왕이 메대 왕국의 아스티아즈와(550년) 리디아 왕국의 크레수스를(546년) 제압한 다음(이사 41,2-3 참조), 바빌론을 침공하기 전에(이사 45─48) 바빌론 유배지에서 제2이사야가 선포한 내용입니다. 바빌론제국은 539년 키루스에게 제국을 넘겨줍니다.
②페르시아제국의 키루스 2세는 기원전 539년에, 바빌론의 마지막 임금 나보니두스가 통치를 잘못하여 백성 대부분이 반대하고 일어선 것에 힘입어, 전투를 할 필요도 없이 해방자로 환영을 받으면서 바빌론으로 입성합니다. 나보니두스 임금에게 명백하게 반기를 들던 칼데아의 사제들은 페르시아 임금의 이 승리를 그들의 최고신인 므로닥과(예레 50,2 참조) 그 시종들인 벨 신과 느보 신의(46,1 참조) 덕택으로 돌립니다. 이 영향으로 이스라엘인들의 거주지에서도 몇몇 사람들이 이 일련의 사건들 안에서 거짓 신들의 개입을 인정하려고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2이사야는 유배 온 동포들에게 세상의 유일한 주인은 주님뿐이심을 주지시킵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말한다는 확신 속에서(48,16), 그는 구원 곧 바빌론의 억압에서의 해방, 자기들의 거룩한 땅으로의 귀환 그리고 예루살렘의 복구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③해방은 ‘칠 년에 일곱을 곱한 햇수’ 동안의 유배 기간에 종말을 고하는 것입니다(기원전 587-538년). 이민족 출신이면서도 이스라엘의 하느님의 기름부음 받은 이, 곧 메시아라 불리는 키루스를 통해서 당혹스럽기까지 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이 해방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굴욕에서 영광으로 건너가게 만듭니다.
④이스라엘이 거룩한 땅으로 돌아가는 것은 옛날의 이집트 탈출을 능가하는 새로운 탈출이 될 것입니다. 예언자는 이집트에서의 탈출을 상기시키면서, 당신의 계획에 대한 하느님의 진실성을 강조합니다. 그는 여기서 이집트 탈출을 넘어서는 것으로서, 하느님의 일관된 계획, 곧 온 세상을 포괄하는 그분의 보편적인 왕국의 결정적인 실현을 엿보게 합니다(52,7-10). 이 왕국이 예루살렘에서부터 창건되어, 이 거룩한 도성은 이제 화려한 복구를 체험하게 됩니다. 바로 이 예루살렘으로 말미암아 하느님께서 이루신 구원이 모든 인간들에게 예외 없이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2.제2이사야서의 구성
이 책에서 구원은 세 가지 요소로 설명됩니다. 이스라엘인들이 체험하는 구원의 첫째 차원, 곧 바빌론의 멸망과 키루스가 선포한 해방은 무엇보다도 40─48장에서 다루어지고, 그 구원의 둘째 차원, 곧 새로운 탈출은 40장에서 55장에 이르는 제2이사야서 전체에 걸쳐서 되풀이됩니다. 그리고 셋째 차원, 곧 시온의 재건과 보편적인 구원의 강조는 무엇보다도 49─55장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이렇게 볼 때 제2이사야 예언자의 활동은 두 단계로 이루어졌으리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제1부 40─48]
전체적으로 구원을 선포하면서 예언자는 네 가지 오류를 시정하며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❶주님을 탓하면서 용기를 잃은 자들에게(40,27-29) 예언자는 희망을 가질 수 있는 두 가지 이유를 말합니다. ⑴주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으며 그분의 권능은 온 세상에 빛난다는 것이고, ⑵주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셨고 그분의 성실성은 역사에 빛난다는 것입니다.
❷자기들의 정성에도 불구하고 고마워할 줄 모르신다고 주님을 탓하는 자들에게 불행의 원인을 밝혀줍니다(43,24-28).
❸바빌론의 멸망과 키루스에 의한 해방에 심기가 불편한 자들에게(45,8-10) 제2이사야는 창조주에 대한 피조물로서 그들이 품고 있는 교만을 지적합니다(45,9-13).
❹인류의 미래를 이끄시는 참 하느님과(42,16-17), 바빌론에서의 해방과 귀향을 선포합니다.( 48,20-22).
바로 이것이 첫째 단계의 목적입니다. 48장의 마지막 단락에서 제2이사야서의 중간 지점에 도달하게 되는데, 여기에서 우리는 이 예언자의 생애 가운데에 일어나는 하나의 전환점을 예감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말해 왔던 주제들은 물러나고 이제 새로운 주제들이 등장합니다. 또한 그의 선포는 이스라엘 정예 계층의 사람들에게만 향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제 2 부(49─55)]
❶시온성의 재건과 보편적 구원이 강조되어 있고 성실한 남은자에 대한 예언자의 메시지가 선포됩니다.
⑴상황은 극적으로 반전될 것이다. 곧 예언자처럼(50,4-11) 박해받는 이들은(51,7) 위로를 받고(51,1-8), 억압받는 이들은 구원을 받을 것이다.
⑵구원은 하느님의 정의로써 이루어진다(51,1-8).
⑶예루살렘의 복구에 대한 경축과 찬미(49,14-26).
⑷온 인류가 하느님으로부터 변화하게 될 것이다(49,6).
❷제2부 부분에서는 하느님에 대한 민족들의 회개가 점점 더 강조됩니다. 이 민족들은 점차 하느님에 의해서 이루어진 구원에 경탄하고(49,7; 52,10;40,5),하느님 앞에 무릎을 꿇고 그분을 알기를 갈망하며(49,23; 55,5; 45,14-15.23-25), 온 세상에 대한 진실한 신앙의 증인인 주님의 참다운 종에 의해서 계몽되고 변화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49,2.6; 53,11).
3.제2이사야서의 신학
2이사야는 이스라엘 신앙의 고유 개념인 약속을 범세계적인 시야를 갖도록 이끌었고 이스라엘 신앙의 실재적인 관념에도 넓은 시야를 부여했으니 이스라엘은 이미 막중한 책임을 부여 받은 선민이었던 것입니다. 하느님 구원의 새로운 출발에 있어 그 도구는 당연히 이스라엘 자신이었습니다.
1) 새 이스라엘
① 창조전통
❶제2이사야는 이스라엘 신앙에 함축 되어온 유일신 사상을 가장 명확하고 조리 있게 표현했습니다. 구약성경과 예언서의 두드러진 세 선택전통(탈출전통,다윗전통,시온전통=예루살렘)이 모두 제2이사야에 의해 재구성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미래관 전체에 견주어 볼 때 탈출전통이 전면에 드러나 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미래의 구원도 일종의 탈출로서 구원사건의 중심에 세워졌습니다.
❷또 다른 한 전통은 지금까지 어떤 예언자도 인용한 일이 없는 창조전통입니다. 제2이사야는 창조의 이 구원론적 파악에 관한 결정적 증언을 ⒜세계의 창조자하느님으로, ⒝이스라엘의 창조자하느님으로 전합니다. 창조와 해방(또는 선택 44,1)은 제2이사야에서 동의어로 사용되는데 하느님께서 이 백성을 선택하고 해방시켰다는 의미에서 그렇습니다. 그가 하느님을 이스라엘의 창조자와 해방자로 생각했다면 그것은 분리된 두 행동이 아니라 한 행위 즉, 탈출의 구원사적 해방에 기인하는 것입니다. 또한 구원이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미래적인 것의 전형이며 표본이기 때문에 여전히 같은 의미로 거론될 수 있습니다.
그는 구원전통에 대하여 매우 자유롭게 사상을 펼칩니다. 제2이사야는 사실 이미 지나간 예언자의 말과의 연결 관계를 향한 것으로 세계사의 모든 사건을 관찰합니다. 그러한 가운데 역사적으로 바빌론의 신들이 하느님보다 더 강하지않은가? 라는 회의에 강력하게 대처한 것입니다. 창조전통이 돌연 예언자의 선포에 삽입된 이유는 이스라엘이 처한 새로운 처지에 의해 설명될 수 있습니다. 대국들의 세력과의 대결에서 하느님의 권능에 의존하는 일은 제2이사야에게 있어서 더욱 상세하게 설명되어야했을 것입니다.
즉, 하느님 이외에 그 어떤 神도 인간의 운명과 세계사의 미래를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방의 신들은 그에게 단지 바람이요 헛것일 뿐입니다(41,29).
②새로운 이스라엘-새로운 탈출
하느님 구원의 새로운 출발에 있어 그 도구는 당연히 이스라엘 자신이었습니다. 제2이사야가 희망한 것은 이스라엘의 귀향과 단순한 의미의 재건이 아닙니다. 그는 몇 번이고 되풀이하여 새로운 일이 시작됨을 선언합니다(42,9; 43,19; 48,3; 48,6-8). 성경은 이 부분을 새로운 탈출이라는 소제목으로 전해줍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그분은 바다 가운데에 길을 내시고 거센 물속에 큰길을 내신 분, 병거와 병마 군대와 용사들을 함께 나오게 하신 분. 그들은 쓰러져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고 꺼져 가는 심지처럼 사그라졌다. 예전의 일들을 기억하지 말고 옛날의 일들을 생각하지 마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하려 한다. 이미 드러나고 있는데 너희는 그것을 알지 못하느냐? 정녕 나는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리라.”(43,16-19).
그 는 다가오는 해방을 새로운 탈출로 이해하였으며 이 구원사건으로, 탈출뿐 아니라 천지창조에까지 거슬러 올라가 하느님 구속의 절정을 선언합니다. 이것은 명백히 옛 질서의 단순한 회복이 아니라 역사의 대전환이었습니다. 새로운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영을 받아 그분에 대한 신앙을 자랑스럽게 고백할 것입니다. 이는 유다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온 세상을 향할 것입니다. 물론 이스라엘이 이 구원 경륜에 특별한 지위를 차지할 것이고 사실이 그렇게 되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의 유일신은 이방인에게도 승복을 촉구합니다. 이리하여 폭 넓은 사상이 이스라엘 신앙의 본질 속으로 스며들게 되었습니다. 아직은 희미하지만 그 흐름은 깊은 것이었습니다. 후에 배타적 민족주의 신앙에서 이방인들을 받아들이려는 노력을 기울인 자들이 그 안에서 자라났기 때문입니다.
2)제2이사야의 하느님
①창조주이신 하느님
❶나보니두스 임금에게 반기를 들던 갈대아의 사제들은 페르시아 임금의 승리를 그들의 최고신인 마르둑(예레 50,2 참조)과 그의 시종들인 벨神 및 느보神의(이사 46,1 참조) 덕택으로 돌립니다(키루스는 마르둑신을 섬겼다). 이스라엘은 새로운 제국 페르시아의 강력한 등장을 보면서 자신들의 하느님이 탁월한 구원 경륜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유일신이며 권능을 가진 神인가?를 자문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에 제2이사야의 유일신이며 창조주이신 하느님 선포가 강렬하게 이어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신앙에 함축 되어온 유일신 사상을 가장 명확하고 조리 있게 표현한 것이 이 사람 이사야입니다.
❷제2이사야에 의하면 하느님은 처음이요 마지막이며 오직 한 분의 신이고 그분 외에는 다른 어떤 신도 없습니다(44,6-8). 이와 같은 신학을 선포함으로써 하느님께서 역사를 절대적으로 주재한다는 것을 동포들에게 확신시켜 주었습니다.
❸대담하게도 제2이사야는 이스라엘의 하느님의기름부음받은이, 곧 메시아라 불리는 키루스를 하느님의 계획을 실현하는 도구로 환영함으로써 백성이 안고 있는 강력한 신이 누구인가?라는 의혹에 답을 내렸습니다. 키루스는 다름아닌 하느님께서 이 일을 위하여 특별히 선임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페르시아가 강국이어서도 아니고 그들의 마르둑인가 벨신인가가 힘을 써서가 아니고 단지 하느님의 거대한 섭리라는 것입니다. 또한 하느님께서는 영원하시기 때문에 그분 이전에 또 그분 이후에 어떤 존재도 있을 수가 없습니다(43,10; 44,6). 토마스아퀴나스의 신의 본성증명가운데 無始無終,無窮無盡 모든 것 이전에 또 모든 것의 원천에 그분은 존재하시고, 토마스아퀴나스의 신의 존재증명 가운데 제 1원인의 증명 그대로 하느님 홀로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44,24).
❹하느님의 행동에만 유보된 이 창조하다라는 동사는 구약성경 전체에서 모두 44번 나오는데, 제2이사야서에만 16번 쓰입니다. 이 밖에도 예언자는 이스라엘 백성이 다시 일어서는 것을 창조로 규정함으로써 이 용어를 갱신하고(43,1.7.15), 또한 새로운 탈출과 관련해서도 창조를 이야기합니다(41,20; 48,7). 이 구원이 이스라엘 민족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민족들을 위한 것이기에 더더욱 그러합니다. 이스라엘을 창조하시기 전에 하느님께서는 인류를 창조하셨습니다(45,12).거룩하신 분께서는(40,25) 동시에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제2이사야서에서 모두 12번). 진실하신 하느님께서 모든 이들에 의해서 받아들여진다면, 이는 특별히 선택과 부름을 받고 세상에 파견된 증인인 민족 안에서 더욱 그러합니다(43,10-12; 44,8).
②구원하시는 하느님
❶주님께서 당신의 구원계획을 실현시키면서 보여주시는 항구성은 제2이사야에게서 매우 특별한 명칭으로 불리게 됩니다. 그것은 '정의'로서 모두 28번 나오는데, 거의 모두가 공정성 이상의 것을 의미합니다. 이 정의는 당신의 구원 약속을 지키시는 하느님의 자비로운 성실성이기 때문에, 구원과 거의 동의어가 될 수 있습니다(45,8,21; 46,13; 51,5.6.8).
❷제2이사야서에 22번 나오는 말마디로서'하느님께서 구원하신다'(이사야 Isaiah는 ‘하느님께서 구원 하신다’ ‘하느님은 구원이시다’의 뜻)는 그분의 성실한 사랑은 물론 그분의 항구한 정성을 드러내 보여줍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되풀이 되는 죄라 할지라도, 그것을 없애주시고(43,25; 44,22) 완전히 용서해주시며(55,7) 참고 극복하는 사랑이십니다.
❸‘그런데 시온은 “주님께서 나를 버리셨다. 나의 주님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고 말하였지. 여인이 제 젖먹이를 잊을 수 있느냐? 제 몸에서 난 아기를 가엾이 여기지 않을 수 있느냐?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 보라, 나는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은 늘 내 앞에 서 있다.’(49,14-16).
극심했던 수난과 모멸감으로 나라 잃은 백성들의 마음은 상처를 받았습니다. 어떻게 이 상처받은 백성들 마음에 하느님께서 너를 잊지 않으셨다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을까? 그리고 사실 강대국들에게 휘둘리는 동안 하느님께서는 침묵하시지 않았던가? 그러면 하느님의 손바닥에 새긴 사랑은 무엇인가? 그것은 하느님께서 이 백성을 용서하셨기 때문이라고 제2이사야는 이해한 것입니다.
❹그리하여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구원은 두 가지 면을 나타내는데 ⒜구원자로서의 구원(41,14을 비롯하여 모두 17번)과 ⒝위로와 격려로서의 구원입니다. ‘위로’는 제2이사야서를 시작하는 첫번째 낱말(40,1)로서 9번 되풀이되는데'위로하다'라는 동사는, 흔히 '위로의 책'이라 불리는 이 예언서의 어조를 결정짓는 구실을 합니다.
③하느님의 영광
(하느님의) ‘광채'는 ‘영광’으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이 낱말은 히브리말에서 본디'무게'를 뜻합니다. “이스라엘에게 당신 영광을 드러내셨습니다"(44,23), "이스라엘아, 너에게서 내 영광이 드러나리라."(49,3) 등 제2이사야서에서 5번에 걸쳐 '영광'이라는 낱말로 옮겨집니다.
창조주이신 하느님,구원하시는 하느님, 영광의 하느님 이것이 제2이사야가 보여주는 하느님의 모습입니다. 이 하느님을 받아들이고 감사드리도록 이사야는 사람들을 부릅니다. 주님에게 되돌아오도록(44,22; 55,7 등), 그분을 찾고(51,1) 만나뵙도록(55,6), 그분의 말씀을 듣고(48장 등) 그분의 계시를 향유하도록. 또한 하느님을 위하여 노래하도록(42,10), 그분 안에서 기뻐 뛰도록(41,16과 그외 6번), 그분에게 환성을 올리고(42,11과 그외 11번) 기뻐 소리치도록(49,13), 즐거워하도록(54,1), '기쁨과 즐거움'을 증거 하도록(51,3.11) 권유하는 열렬한 부름을 되풀이하는 것입니다.
3) 주님의 종
제2이사야의 ‘주님의 종’의 노래(첫째노래 42,1-9 ;둘째노래 49,1-7 ;셋째노래 50,4-11 ;넷째노래 52,13-53,12)는 이스라엘의 숙명적 사명과 수난을 가장 심오하게 해석한 문장입니다. 구약성경 전체를 통해 이 주님의 종에 관한 개념보다 더 심오하고 난해하며 그러면서도 감동적인 구절은 없습니다.
이 메시지를 선포하는 과정에서 제2이사야는 모두 21번에 걸쳐 “종”이라는 낱말을 사용합니다. 그 가운데 딱 한 번이 복수로 쓰입니다(54,17). 그리고 노예가 되었다는 경멸의 뜻으로 한 번 쓰이고(49,7), 나머지 19번은 주님의 종에게 유리한 의미로 쓰입니다. 그 가운데 14번은 이 종이 본연의 이름 곧 이스라엘 또는 야곱으로 불리는데, 이는 일차적으로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가리킵니다. 나머지 5번의 경우에 이 종은 무명으로 남는데, 문맥에 따라서 이 칭호로 불린 이가 누구인가를 물어야 합니다(42,1; 44,26; 50,10; 52,13; 53,11). 주님의 종은 과연 계속 이스라엘 민족을 가리키는가? 한 인물로 대표되는 이스라엘 민족 내의 작은 집단인가? 아니면 한 개인을 가리키는가? 제2이사야서 안의 주님의 종은 항상 같은 인물은 아닙니다. 누구를 의미하는지 구체적으로 밝히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제2 이사야서의 본문에 충실한 해석으로 다음과 같이 그 인물의 의미를 찾을 수 있으나 유일한 가능성은 아닙니다.
① 민족 전체로서 주님의 종인 이스라엘
41장에서 48장까지 이스라엘 민족은 실제로 주님의 종이라 불립니다. 이사야서의 이 구절들 외에는 드물게 그리고 후대의 본문들에서만 이에 상응하는 명칭이 이스라엘에게 적용됨을 볼 수 있습니다(예레 30,10; 시편 136,22). 예언자는 이스라엘에게 이 칭호를 부여함으로써, 선택된 민족이 이집트에서의 종살이에서 해방된 후 하느님을 섬기기 시작했음을 강조합니다.
② 소수의 뽑힌 이들로서 주님의 종인 이스라엘
하느님의 백성 가운데에는 선별된 사람들이 활약합니다(49,3). 이들은 축소된 이스라엘, 정선된 사람들, 남은 자들입니다(46,3). 49,5-6에 의하면 이들의 첫 번째 임무는 전체 이스라엘인들 가운데에서 살아남은 자들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이고, 그들의 주 임무는 민족들에게 빛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③ 제2이사야 자신
예언자 자신이 정선된 이스라엘인들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유배지의 동포들을 위로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하느님에게서 위로를 받아야만 했습니다. 그는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이를 전달하였으나 사람들의 회의와 적대감에 부딪치게 됩니다. 그러나 하느님에게 계속 충실함으로써 자기를 박해하는 자들을 무력하게 만들고, 자기에게 동의하는 이들을 강화할 수 있다고 확신하면서 활동을 계속합니다(50,4-11).
④ 주님의 종인 키루스
제2이사야는 하느님의'기름부음받은이'곧 메시아라 불리는 키루스를 하느님의 계획을 실현하는 도구로 환영합니다. 네부카드네자르 후 바빌론 세력은 급격히 약화되었고 바빌론의 마지막 왕 나보니드(나보니두스 556-539)의 악정으로 백성들이 해방자를 고대하던 중에 바빌론은 티그리스 강변에서 페르시아에게 결정적인 참패를 당했습니다. 기원전 539년10월, 페르시아는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바빌론을 점령하였고 키루스는 해방자로서 바빌론에 입성합니다. 하느님께서 키루스에게 세계사의 지배권을 넘겨주신 것이라고 제2이사야는 확신합니다. 키루스가 이스라엘을 귀환시킬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2이사야의 메시지를 인정하는 사람들은(많은 이들에게 거슬리는 것이 되기도 하지만)키루스의 사명에 대한 예언자의 선포 내용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 페르샤 임금도 참으로 하느님의 종입니다. 키루스는 이스라엘을 복구시킴으로써, 사람들을 당신의 빛으로 비추시고 그들을 당신의 계약으로 결집시키시려는 하느님 계획의 전개를 촉진시킵니다(42,1-7).
❋고대 페르시아 아케메네스왕조 캄비세스1세의 아들이 키루스. 키루스는 정복민들에게 최대한의 아량을 베풀었습니다. 관용은 키루스의 특성이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는 군대에게 지시하여 주민들의 종교적 감정을 존중하도록 하고 공포감을 주지 말라고 명령했습니다. 키루스는 고대에 있어서 개화한 통치자로서 무자비한 아시리아 혹은 바빌론과는 다른, 말 그대로 제국의 대왕이었습니다. 키루스는 점유지민족의 기존의 성전례를 보호 육성하고 토착 군주들에게 행정 책임을 맡겼습니다. 키루스는 유다와 다른 민족의 귀향을 허락했습니다. 그로부터 200년 후 페르시아를 넘겨받은 약관의 알렉산드로스는 페르시아문화와 그리스문화를 혼합한 헬레니즘문화를 시작하고 뿌리내렸습니다. 이 헬레니즘은 기원후 그리스도교에 적지 않게 영향을 미치게됩니다.
⑤ 예수 그리스도
❶주님의 종과 관련해서 위와같은 설명들이 제안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들은 다소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모두 본문들을 존중하면서 얻어진 것들입니다. 그러나 위의 네 인물이 유일한 가능성은 아닙니다. 구약성경 아람어로 된 주석서인 타르굼은 하느님의 종에 대하여 말하는 신탁들과 관련해서 여러 가지 설명을 내놓습니다.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지만 그리스도교 시대의 도래 이후에 편집된 타르굼의 많은 단락들 가운데, 주님의 종의 고통에 대하여 말하는 부분에서는 이스라엘의 고난을 읽어내고, 종의 영광에 대하여 말하는 부분에서는 장차 올 메시아의 승리를 이끌어내고자 하는 경향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❷신약성경에서는 제2이사야의 많은 본문들이 예수님의 인물 및 업적과 직접적으로 관련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죽음이 죄사함의 제물로서 하느님에게 기꺼이 받아들여지고(53,10) 죽음을 넘어서는 강력하고 생산적인 삶이 약속된(53,9-12) 완전히 의로운 종인 것입니다(50,9; 53,9). ‘주님의 종’의 넷째 노래(52,13-15 ; 53,1-12)의 종은 높이 들리울 것이며 영광으로 이어지는 고난을 감수할 것이고 이 죽음으로 남은 자들이 구원될 것을 강조하며 마지막으로 항구한 정성으로 구원하시는 하느님을 선포하고 있습니다(55,6-8).
❸주님의 종 넷째 노래는 가장 많이 알려진 부분이고 많은 부분이 신약성경에 인용되고 있습니다(로마 15,21 ; 요한 12,38 ; 로마 10,16 ; 마태 8,17 ; 사도 8,32 ; 루카 22,37 ; 1베드 2,22).
4)시온
‘얼마나 아름다운가, 산 위에 서서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의 저 발! 평화를 선포하고 기쁜 소식을 전하며 구원을 선포하는구나. “너의 하느님은 임금님이시다.” 하고 시온에게 말하는구나. 들어 보아라. 너의 파수꾼들이 목소리를 높인다. 다 함께 환성을 올린다. 주님께서 시온으로 돌아오심을 그들은 직접 눈으로 본다.’(52,7-8).
제2이사야의 이해에 의하면 이것이 곧 하느님의 왕권을 선포하는 복음선포자(εὐαγγελιζόμενος 에우안겔리조메노스)입니다. 제2이사야는 승리를 전달하는 이 직책을 시온에 위탁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시온의 이름으로 만민을 부르실 것이며 다윗에 대한 약속은 그 백성들 안에서 실현될 것입니다. 역사의 모든 사건들은 이미 예언되었던 것이고 그리고 모두 예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시온은 이것을 만방에 알리게 될 것입니다.
예언자 제2 이사야
미래의 구원계획을 향해 이스라엘백성들을 움직이고 그들을 위로하며 신학적 논증의 모든 방법으로 그들의 회의를 극복하도록 부름받은 사람이 제2이사야였습니다. 이 시대의 예언자 중 그 누구도 제2이사야처럼 그렇게 총체적으로, 그렇게 역사론적으로 옛 것과 새것, 가는 것과 오는 것 사이의 구분을 명확하게 하지 못했습니다. 제2이사야가 말한 선명한 구분이란, 새 것은 옛 것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옛 것은 반복됩니다. 옛 것은, 새 것에서 지금 유효한 것과 제거된 것의 기묘한 변증법으로 현재화합니다. 새로운 언약과 새로운 탈출은 처음보다 더 영광스럽게 일어날 것이고 그 때문에 더 좋은 것이고, 그러기에 종말론적 하느님의 종은 모세보다 더욱 고난을 겪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 그 영향력은 대단히 클 것입니다. 이사야서는 탈출전통과 다윗전통의 뿌리를 합류시켜 구약 전체의 일관된 흐름인 하느님의 사랑과 구원이라는 새롭고도 완벽한 새 신학을 이루었습니다. 그는 하느님의 침묵에 우리자신을 대신한 인물이었으며 불의와 고통에 대하여 기도하던 비범했던 인물로 믿음의 거장이었습니다.
제3이사야서 [56─66장]
1.이사야서 제3부의 저자
고향 땅에 돌아와 재 입주하는 문제에 봉착한 제2이사야의 영감을 받아 편집된 글이라 여겨지는 제3이사야는 BC 537-520년 경에 등장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사야서 40─55장에서 56─66장으로 넘어가 보면, 이 둘 사이에는 사고와 어휘의 유사점뿐만 아니라, 동시에 어조와 표현의 차이점들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또 한편 이사야서의 이 마지막 부분 안에서도 이를 구성하는 서로 다른 본문들의 다양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와 관련하여 주석가들은 서로 다른 세 가지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⑴56─66장을 일종의 편집물, 곧 저자나 생성 연대와 관련해서 각기 다양한 단편들의 인위적인 집합으로 여깁니다. 이러한 설명은 이 작은 책에 들어 있는 시들 사이에 일정한 부조화가 있음을 전제합니다. 사실 모든 것을 동일한 한 저자의 것이라 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⑵56─66장 역시 유배에서 돌아와 고향 땅에 다시 정착하는 문제에 봉착한 제2이사야에게서 유래한다고 평가합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이 두 작품들 사이의 차이점이 유사점보다 더 중요하게 드러남을 부정할 수도 없습니다.
⑶이사야서의 마지막 11개 장이 전부는 아니더라도 대부분이 제2이사야에게서 영감을 받아, 유배가 끝난 뒤 20여 년 동안 예루살렘에서 자기의 사명을 수행한 동일한 한 예언자의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간략하게 정리하면 우선은 매우 일관성이 있는 60─62장을 이 제3이사야의 작품으로 볼 수 있고
⒜이사 56─66장을 각기 다양한 단편들의 인위적인 집합으로 여긴다
⒝귀향 후의 문제를 다룬 56─66장을 제2이사야에게서 유래한다고 본다
⒞전부는 아니더라도 대부분이 제2이사야에게서 영감을 받아 유배가 끝난 뒤 20여 년 동안 예루살렘에서 활동한 한 예언자의 작품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2.제3이사야의 신탁
1) 유배이후의 공동체
①유배자들의 첫 무리가, 본디 유다의 제후였다가 나중에 지방관으로 임명된 세스바차르의 지휘 아래 귀향합니다(에즈 1,8-11; 5,14; 1역대 3,18의 칠십인역 본문). 그는 성전을 재건하기 위한 기초를 놓기는 하였지만(에즈 5,16), 곧바로 대내외적인 여러 어려움으로 해서 작업이 중단됩니다. 그래서 약식의 제의나마 속개하기 위해서는 제단만이라도 세우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에즈 3).
②다른 유배자들의 집단들이 되돌아오는데, 그 가운데에는 대사제 예수아와 유다 왕국이 망하기 전의 마지막 임금 여호야킨의 손자로서, 페르시아 정부로부터 권리를 위임받은 고등 판무관인 세스바차르를 계승한 즈루빠벨도 들어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의 권위 아래 예루살렘과 이 거룩한 도성 주변을 재건하려고 노력한 공동체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부류로 혼합된 집단이었습니다.
❶유배에서 돌아온 유다인들(에즈 2; 느헤 7). 이들은 주로 유다와 시메온과 벤야민 지파 사람들로서 이들 가운데에는 사제들도 많았습니다. 이들은 노략질로 황폐해진 지역에 다시 정착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❷바빌론 정복 시 본국에 남아 있던 유다인들. 이들 가운데에는 이스라엘의 신앙에 충실한 사람들도 분명히 있었지만, 귀향자들의 종교적인 열성을 이해하지 못했던 우상 숭배자들도 있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유배떠난 자들의 땅에 자리를 잡고 살았지만, 귀향한 그들에게 재산권을 양도할 용의는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종교적이고 사회적인 분열을 제3이사야서의 많은 구절에서 볼 수 있습니다.
❸이방인들. 유배 기간 동안에 많은 이방인들이 유다 땅에 정주할 수 있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일자리를 찾아오기도하고(60,10; 61,5 참조), 어떤 이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시온으로 귀향할 때 따라오기도 하였습니다(60,9; 66,20 참조). 점점 수가 많아진 이 이방인들이 하느님의 백성과 얼마나 동화될 수 있었는가가 문제였습니다.
❹디아스포라에 남아 있는 유다인들. 이들이 멀리 떨어져 있기는 하지만(57,19 참조) 이들을 위해서도 귀향길이 준비되어야 했습니다(57,14; 62,10). 그리고 이들은, 주님께서 이미 모아들이심으로써 특권을 받은 이들 외에, 그분께서 다시 모아들이시고자 원하시는 이들입니다(56,8).
❋디아스포라; 북 이스라엘왕국과 남 유다왕국이 차례로 멸망하면서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근동의 각 지역에 흩어져 살게 되었는데 이들을 디아스포라(διασπορά그리스어 ‘분산’의 의미)라고 부릅니다.
③예언자는 이렇게 상이한 부류의 사람들에게서 출발하여 거룩하고 일치된 백성을 다시 이루어 내고자 합니다. 그러나 그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큰 난관에 부딪힙니다.
❶늦어지는 구원 때문에 야기된 희망의 위기
❷끈질기게 계속되는 타락, 곧 우상 숭배
❸여러 정황들 때문에 발생한 분열, 곧 동포들 사이의 미움
❹상이한 부류들의 결합으로 증가된 위험, 곧 이방인들에 대한 멸시
2) 제3이사야의 신탁
①하느님의 진실성에 대한 확인
희망의 위기는 귀향자들이 절감했던 실망감에서 왔습니다. 예루살렘 성벽은 파괴된 채로 남아 있어야 했습니다. 그것은 느헤미야 시대에 가서야 재건됩니다(기원전 445-432년). 성전은 공사 초안만 잡혀 있을 뿐이었고, 예전의 성전보다 그나마 덜 아름답게라도 지어진 것은 시간이 더 흐른 뒤인 기원전 520년에서 515년 사이였습니다. 안팎의 곤경으로, 곧 외적으로는 일종의 경쟁 관계에 있던 사마리아인들 때문에, 내적으로는 고국에 남아 있던 사람들의 방해 때문에, 생활 여건도 좋지 않았습니다. 남아있던 자들과 돌아온 귀향민의 사이가 좋지 않은데다가 귀향자들은 전혀 움직이지 않으시는(것 같은)하느님을 끊임없이 비난하기에 이릅니다. 이러한 불평을 잠재우려고 제3이사야는 일면 구원의 도래에 방해가 되는 죄악을 드러내 보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 구원의 틀림없는 원천인 하느님의 진실성을 재확인합니다.
②우상숭배자들의 회개를 권고
유다 땅에 남아있던 자들과 일부 이에 동조하는 우상숭배자들은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것, 성전 매춘, 부정한 동물들을 제의에 사용하는 것(65,4; 66,3.17), 멜렉-몰록 신(57,9),갓과 므니와 같은 신들을 경배하는(65,11)타락한 종교 의식에 빠져있었습니다. 이러한 탈선을 바로잡으려고 예언자는 두 가지 증거를 들어 위협합니다. 곧 구원을 베풀 수 없는 거짓 신들의 무능과, 그 심판을 피할 수 없는 참되신 하느님의 권능입니다.
③주민들을 수탈하는 자들에 대하여
주민들을 수탈하는 지배자들(56,8─57,1) 이웃을 약탈하는 자들, 상호부조의 거절과 폭력, 정의의 거부와 임의로 동포를 제명하는 행위 등도 보게 됩니다. 예언자는 이러한 중죄들을 엄하게 고발하고, 이것들이 참다운 경신례와 부합하지 않음을 드러냅니다(58장 등). 이들은 하느님과의 계약을 파기하는 동시에 자기 동포들과의 계약도 깨는 자입니다. 그래서 이 유다인들 사이에 실제로 분열이 일어난 것입니다.
④외국인들과 관련하여
비유다인들은 자기들이 격리될 것을 두려워하지만(56,3), 56─66장의 신탁들은 비유다인들에게 매우 밝은 전망을 펼쳐보입니다. 이스라엘의 자손들은 곤경에 빠진 어떠한 유랑민이라도 도와주어야 할 뿐만 아니라(58,7), 이 밖에도 회개한 이방인들을 성전으로 맞아들여야 합니다(56,3-7). 하느님께서는 언어가 다른 모든 사람들을 모으실 것이며 그들 가운데에 더러는 사제로, 더러는 레위인으로 삼으실 것입니다(66,21).
3.제3이사야서의 하느님
①창조주이신 하느님
제2이사야에 이어 제3이사야도 주님께서는 비교할 수 없는 분이시며(64,3) 영원한 분이심을(57,15) 상기시킵니다. 그분께서 창조주이심을 이 예언자는 되풀이하지만 제2이사야보다는 드물게 말합니다.그는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음을 알고 있으며(66,2) 나아가, 민족과 언어가 다른 모든 이들도 거룩한 산 시온으로 데려와, 이스라엘과 함께 새로운 하늘과 새로운 땅을 창조하실 것임을 덧붙입니다(66,22).
그는 또 다른 구절들에서, 하느님께서 회개자들의 마음에서 찬미가(57,19) 흘러나오게 하시고(이 역시 하느님의 창조 행위이다.), 새로운 예루살렘을(65,18) 창조하신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②이스라엘의 하느님
모든 이스라엘 자손들이 선택된 백성에 소속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써 확실하게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인이라는 사실 자체만으로 구원에 대한 확실한 보장을 받지 못한다면, 이스라엘인이 아니라는 사실도 더 이상 그 구원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장애 요인이 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을 당신에게로 부르십니다(66,18). 사랑에 성실하시고 구원에 능하시며 심판에 틀림이 없으신 이러한 하느님 앞에서 인간들은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하느님을 받아들임은 열성적인 순종도 전제로 합니다. 만물의 창조주로서 주님은 만물의 하느님이십니다. 그러나 모든 민족들이 모여 오는 것은, 아직도 그 특권이 존속하는 이스라엘의 도움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절대적으로 “거룩하신 분”(57,15)은 계속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60,9.14)으로 남아 계십니다. 야곱과 유다의 후손들이고(65,9) 모세가 인도한 민족이며(63,11-12) 전 세계 종교의 중심이 되도록 예정된 예루살렘을 수도로 한 하느님의 민족, 그리고 그분의 몫이요 그분의 상속자인 민족에 대한 하느님의 우선적인 애정을 상기시킵니다.
③의로우신 하느님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에게 온 세상을 향한 사명 수행을 준비시키시면서, 유일하고 참된 아버지로서(63,8.16; 64,7) 절대적으로 진실한 당신의 사랑과(65,16) 한결같이 모성적인 당신의 애정을(66,13) 증언하십니다. 동정으로 가득하신(63,9) 하느님께서는 백성이 저지른 죄악을 잊어 주시고 그들을 낫게 해 주시며 용서까지 해 주십니다(57,16-18; 64,8). 당신의 벗들에게 구원을 베푸시려고 그들에게 당신의 영광과 영화를 주시면서, 하느님께서는 “구원자”로서 그들에게 도움을 주시고 그들을 격려하고 위로하며 다시 모아들이십니다. 이 일을 하시면서 그분께서는 당신의 “의로움”, 곧 인간들의 죄에도 흔들림 없이 지켜 오신 당신의 약속들에 대한 절대적인 성실성을 드러내십니다. 이미 제2이사야서에서 보았던 이러한 주제들에 대해 제3이사야는, 이민족들이나 이스라엘인을 막론하고, 악인들에게는 어김없이 불리하고 선인들에게는 유리하게 수행되는 하느님의 심판을 덧붙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민족들을 심판하시는 그분의 보편적인 판결은 결정적이고 최종적인 것이 됩니다(66,16.24).
4. 선택
사랑에 진실하시고 구원에 능하시며 심판에 틀림이 없으신 이러한 하느님 앞에서 인간들은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그분을 배척하면 불행을, 그분을 받아들이면 행복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받아들임은 회개와 기쁨에 찬 찬미만이 아니라, 동시에 열성적인 순종도 전제로 합니다. 제2이사야가 주님에 대한 “경외”를 단 한 번만 말하는 데 반하여(50,10), 제3이사야는 이를 세 번 또는 네 번에 걸쳐 되풀이합니다(57,11; 59,19; 63,17). 에즈라기와만 공유하는 독창적인 특징으로서, 예언자는 하느님의 말씀을 황송하여 떨리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라고 자기의 청중들에게 촉구합니다(66,2-5). 이렇게 하느님을 섬김은 도덕적으로 선한 품행을 자아내고 또한 커다란 경신례적 성실성을 요구하게 됩니다. 제3이사야서에서 ‘성전’은 12번, ‘거룩한 산’은 5번 언급되고, 이 밖에도 경신례적 행동들을 가리키는 용어들이 매우 많이 나옵니다(‘안식일’, ‘사제직’, ‘제단’, ‘희생 제물’, ‘단식’ 등). 제3이사야에 따르면 도덕과 종교는 불가분의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자기 이웃을 사랑한다고, 그리고 자기 이웃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주장함은 공허한 것이 될 뿐입니다.
<이사야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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