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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46권 기본정보

구약성경46권 기본정보[8] 예언서③ 애가.바룩서

by 써니리버 2026. 4. 18.

애가와 바룩서는 小예언서에 속하지만 예레미야와 관련되어 성경목록 예레미야서 다음에 위치합니다. 구약성경의 예언서는 18권입니다. 이중 4권의 大예언서는 이사야서.예레미야서.에제키엘서.다니엘서입니다. 애가(哀歌)는 예레미야가 유다 임금 요시아의 죽음을 애도하는 조가를 지었다고 전하는 2역대 35,25에 기인하지만 예레미야의 작품은 아니며 저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고 저작시기도 불분명합니다. 바룩서의 저자가 예레미아의 비서요 친구이며, 동시에 유다 왕궁의 서기관이었던 바룩과 같은 인물일 가능성은 적다고 봅니다. 大예언서에 이어지는 성경목록은 소(小)예언서 호세아서,요엘서,아모스서,오바드야서,요나서,미카서, 나훔서,하바쿡서,스바니야서,하까이서,즈카르야서,말라키서 등 열두 권입니다.(예언서입문은 본블로그 sunny river 구약성경46권 기본정보[8] 예언서① 입문참조)

46-31. 애가(哀歌;LAMENTATIONS; ΘΡΗΝΟΙ;약칭 애가/Lm) 
예레미야의 애가(LAMENTATIONS OF JEREMIAH ; ΘΡΗΝΟΙ ΙΕΡΕΜΙΟΥ)

1.책 이름
①애가(哀歌)라 부르는 책의 히브리 이름은 첫 낱말에 따라 “에카(아!; 또는, 어찌하여!)”입니다. 이 책은 다섯 개의 장이 다섯 개의 노래로 이루어져있고 둘째와 넷째 노래도 이 “에카!”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그리스말 번역에서는 책의 내용에 따라 “트레노이(애가;ΘΡΗΝΟΙ)”로 불리는데, 탈무드에 따르면 히브리말에서도 본디 ‘輓歌(만가;죽음을 애도하는 시)’의 뜻을 지닌 “키노트”라는 명칭을 사용하였습니다. 이 애가 또는 만가 유형은, 장례식 때 불린 조가(2사무 1,17-27 참조)와 더불어, 국가적 환난에도 적용될 수 있었습니다. 
②유다인들은 ‘아브’라 불리는 기념일에 이 책을 봉독했습니다. 유다인들은 아브 달(파스카로 시작되는 한 해의 다섯 번째 달)  9일에 이 책을 읽었는데, 이날은 기이하게도 기원전 587년의 사건만이 아니라 기원후 70년 로마인들이 예루살렘 제2성전을 파괴한 사건까지 기념하게 되었습니다.히브리 성서에서 애가는 주요 축제 때 봉독되었던 룻기/아가/코헬렛서/에스테르서와 함께 메길로트(megillōt) ‘축제 두루마리’ 곧 축제 오경의 일부를 이룹니다.

2.저자와 저작시기
①칠십인역은 유다인들의 어떤 전통에 따라 이 책을 예언자 예레미야의 작품으로 전하는데 현재의 우리말성경과 불가타, 그리고 현대의 많은 번역 성서에서는 예레미야서 다음에 자리하고, 이에 따라 ‘예레미야의 애가’라는 명칭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이는 예레미야가 유다의 임금 요시야의 죽음을 애도하는 조가를 지었다고 전하는 2역대 35,25에 기인하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애가는 예레미야의 작품은 아닙니다. 애가에 담긴 다섯 개의 시들이 서로 다른 문학 양식과 내용을 보이고 있어, 그 출처가 다르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②애가의 익명성과 다양성은 저작 시기에 대한 문제를 제기합니다. 애가가 일정한 순서에 따라 구성된 작품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하더라도, 애가에 담긴 모든 시가 기원전 538년 유배 시대가 끝나기 이전에 지어졌다는 사실과, 상당한 자료들이 기원전 587년 바빌론의 임금 네부카드네자르가 예루살렘을 함락하고 성전을 파괴한 역사적 사건들과 가깝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합니다. 첫째 시는 기원전 598년의 제1차 유배 때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작품으로 추정됩니다. 

3. 문학 양식
①다섯 개의 노래로 이루어진 애가의 처음 네 개는 ‘알파벳 노래’로서 각 절은 22자에 달하는 히브리 알파벳의 철자 순서에 따라 시작하고 5장은 비록 알파벳 노래는 아니지만 알파벳의 자수와 절수를 일치시키는 형식에 부분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알파벳 시 형식은 암기를 수월하게 하고, ‘A에서 Z까지’라든가 ‘처음부터 끝까지’라고 말하는 바와 같이, 주제가 충분히 다루어졌음을 시사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②첫째와 둘째, 그리고 넷째 애가에 ‘정치적 조가(弔歌)’라는 유형의 이름을 붙이기도 하는데, 이 노래들은 개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조가의 형식으로 시온을 한 여인으로 묘사합니다. 이러한 형식 속에 성전과 수도의 파괴, 그리고 국가의 멸망이라는 정치적 내용이 전개됩니다. 다섯째 노래는 시편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공동 탄원기도 유형에 속합니다. 
③개인적인 애가라 할 셋째 시에서는 한 남자가 나오는데 이 사람의 모습은 고통받는 예레미야를 연상시킵니다. 물론 이 사람 안에서, 곧 자기 민족이 겪는 고통을 대신 짊어진 예언자의 모습을 통하여, 온 백성을 대표하는 모습을 볼 수도 있습니다. 이 셋째 시는 어떻게 보면 다른 네 개의 시들을 해설하는 가장 오래된 주해라 할 수 있으며, 이런 의미에서 민족적 애가 한가운데에 자리하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4. 내용
①예루살렘에 대한 비탄
전체5장의 애가는 예루살렘이 겪고 있는 비탄의 상황을 애도합니다(1,1.4; 2,8; 5,16). 이 도성은 눈물(1,2.16; 2,11.18; 3,48-51), 탄식(1,4.8.11.21.22), 고뇌(1,5.12; 3,32), 벌거벗김과(1,8) 굶주림으로(1,11.19; 2,12.19; 4,4.5.8-9; 5,6.10) 무너져 폐허가 되어 버렸습니다(1,4.13.16; 4,5; 5,18).이 도성은 도성의 가장 귀한 존재들, 곧 아이들(1,5.20; 2,4.11.19.20.22; 4,4.10), 처녀들(1,4.18; 2,10.21; 5,11), 총각들(1,15.18; 2,21; 5,13.14), 원로들(1,19; 2,10; 4,16; 5,12.14), 사제들(1,4.19; 2,6.20; 4,16), 예언자들(2,9.20), 그리고 임금들과 고관들이(1,6; 2,2.6.9; 4,20; 5,12) 처해 있는 상황으로 상처 받고 있습니다. 도성의 가장 신성한 실체들, 곧 성전과(1,4.10; 2,1.4.6.7.20) 하느님을 만나는 축제가(1,4.10; 2,6.7.22) 더럽혀졌습니다.
②하느님의 진노와 회개
고통 속에서, 그리고 이 고통 덕분에,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은 주님에 대한 반항(1,5.14.22; 3,42), 불순종(1,18.20; 3,42), 잘못(1,8; 3,39; 4,6.13.22; 5,7.16), 패륜과(2,14; 4,6.13.22; 5,7) 같은 죄를 의식하고 이를 고백합니다(3,42; 5,7.16). 주님께서는 도성을 당신의 손으로 무겁게 내리누르십니다. (본문에서 스무 번 이상 언급되는) 이 손은 물론 적들의 손이지만, 근본적으로는 하느님의 손입니다(1,14).사실 하느님께서는 진노(1,12; 2,1.3.6.21.22; 3,43.66; 4,11), 분노(2,4; 4,11), 격노(2,2; 3,1), 무시무시한 불꽃(1,13; 2,3-4; 4,11) 등으로 표현되는 모든 악을 단호히 배격하신다는 점을 분명히 드러내십니다. 그분께서는 죄인들에게 적대자의 모습으로 나타나셔서는(2,4-5; 3,1-18.43-45), 고통을 내리시고(1,5.12) 먹구름으로 뒤덮으시며(2,1), 사정없이 쳐부수시고 도살하십니다(2,1-8). 그래서 그분께서는 멀리 계신 분으로 여겨지지만(1,16), 항상 가까이 계시면서(3,57) 들으시고(3,56.61) 보시며(1,9.11.20; 2,20; 3,50.59-
60.63; 5,1) 기억하시는 분이십니다(5,1).
③은총
인간은 그분께 의지할 수 있습니다. 그분은 의로우시고(1,18; 3,34-36) 전능하시며(3,37-38; 5,19), 진실하시고(3,32) 구원을 베푸시며(3,26), 생명을 구해 주시고(3,58) 위로해 주시며(1,16), 한없이 좋으셔서(3,25) 당신의 마음속, 곧 당신의 모성적 자비를 아침마다 새롭게 드러내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3,22-23). 죄의 결과인 불행은 지고의 은총이 되기도 합니다. 불행은 겸손한 고백으로, 결국에 가서는 회개로, 그러나 인간이 자기의 힘으로 이루겠다고 장담할 수 있는 회개가 아니라(3,40), 하느님만이 인간 안에 이루실 수 있는 회개로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주님, 저희를 당신께 되돌리소서, 저희가 돌아가오리다”(5,21).

◉정치적이며 종교적인 환난으로 비롯된 육체적 정신적 불행 속에서 겪어야 했던 슬픔,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멸망시키실 수밖에 없도록 이끈 죄 많은 행실에 대한 뉘우침, 역사의 주인이신 주님에 대한 믿음으로 가능한 희망 등은 이 책에 비극적인 아름다움을 선사했으며, 이와 같은 특수한 상황에 연계되어 있으면서도 모든 시대를 초월하는 메시지를 전해 주고 있습니다.

46-32. 바룩서 BARUCH; ΒΑΡΟΥΧ(약칭;바룩/Ba) 

1. 책이름과 저자
①이 책의 저자로 불린 히브리말로 󰡒축복받은 이󰡓라는 이름의 바룩은 예레미야 예언자의 비서요 친구이며, 동시에 유다 왕궁의 서기관이었습니다.예레미야의 비서로서의 활동 년도는 605-587년입니다. 바룩은 유다의 명문 출신으로서 마흐세야의 손자이며 네리야의 아들로서 바빌론에서 이 책을 기록했습니다(바룩 1,1). 바룩은 예레미야가 예루살렘 파괴에 관하여 전한 신탁을 글로 적어 유다 임금 여호야킴에게 전달하였으나 여호야킴이 그 두루마리를 칼로 베어 불에 살라버리자 그 내용을 더 늘린 신탁의 두루마리를 새로 만듭니다(예레 36,1-21;36,27-32). 그 후 바룩은 친바빌론파로 몰려 예레미야와 함께 이집트로 끌려갔고(예레 43,1-7), 그뒤 바룩의 행적은 알려지지 않습니다.
②바룩서의 저자가 예레미야서의 바룩과 같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바룩서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예레미야의 ‘비서’인 바룩은 바빌론에서 유배 생활을 하는 가운데 예루살렘에 남은 공동체를 염두에 두고 이 책을 저술한 것처럼 보입니다.그러나 바빌론의 예루살렘 점령과 유배에 관한 그 당시 문헌의 기록과 바룩서 자체의 기록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어서 이 책의 저자를 바룩으로 여기기 어렵기 때문입니다(1,1.2.8.10.12.14). 
③예레미야서에 따르면 바룩은 바빌론에 가지 않고 이집트로 끌려갔습니다. 따라서 이 책은 가명 작품으로 보아야 합니다.가명 작품은 저자의 이름이 실제 저자의 이름과 다를 뿐 아니라 작품과 실제의 상황이나 그 대상도 본문의 진술과 다릅니다. 바로 이 점이 우리가 바룩서를 읽어 나가면서 부딪히는 가장 큰 어려움이 되겠습니다. 바룩서는 기원전 587년 네부카드네자르의 예루살렘 점령과 유배 기간에 관한 이야기를 소재로 하지만, 이 소재를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 맞추려고 적지 않은 수정을 하고 있습니다.
 
2.바룩서의 저작시기
①바룩서는 그리스 말 칠십인역본을 통해서 우리에게 전해진 작품입니다. 성 예로니모는 ‘히브리인들이 바룩서를 읽지도 않고 지니지도 않았다.’는 이유로 라틴 말로 옮기지 않아, 대중 라틴 말 성경(Vulgata)에 수록된 바룩서 번역은 예로니모의 번역이 아니라 고대 라틴 말 역본(Vetus Latina)입니다. 
②칠십인역에서 바룩서는 예레미야서와 애가 사이에 있고, ‘예레미야의 편지’는 애가와 에제키엘서 사이에 있습니다. 우리말 번역에서는 불가타 전통에 따라 ‘예레미야의 편지’를 따로 놓지 않고 바룩서의 마지막 장인 6장에 소개하고 있습니다. 
③바룩서는, 예루살렘 출신 유다인들에게 참회 전례를 거행하도록 독려하는 디아스포라 유다 공동체가 남긴 기록입니다. 가장 오래된 처음 두 부분은 기원전 164년의 사건들과 같은 시대에 또는 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작성된 작품으로서, 메넬라오스파와 마카베오파 사이에서 정치적으로 중도 입장을 취한 디아스포라 공동체에서 유래한 것 같습니다. 이와는 달리 이 두 부분에 덧붙여진 네 번째 부분은 유다의 독립으로 일어난 시대적 분위기(마카베오시대)에서 나왔을 것으로 보입니다. 
④지혜에 관한 명상을 내용으로 하는 세 번째 부분은 그 출처를 밝히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문체, 특히 화자가 동일한 데서 오는 일관된 문체를 근거로 이 부분을 기꺼이 ‘예루살렘을 위한 권고’에 연결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현재의 바룩서는 하느님과 당신 백성 사이에 생긴 단절을 공인하는 내용으로 시작하여 둘 사이의 화해로 끝납니다. 단절에서 화해로 나아가는 과정은 죄에 관한 반성에 이어 율법과 동일시되는 지혜에 관한 명상으로 진행되는데, 이것이 작품의 전체적인 흐름을 이룹니다. 바룩서는 전체적으로 기원전 2세기 후반에 최종적 틀을 갖춘 듯합니다.
⑤바룩서의 통일성은 그 전례적 기능에서도 발견됩니다. 바룩서는 아마도 참회를 위한 단식일의 안내서처럼 읽혔을 것입니다. 이 책이 실제로 현실에 적용될 수 있는 전례서로 자리 잡은 것은 기원전 2세기 이후일 것이며, 특히 기원후 70년의 예루살렘 성전 파괴를 애도하려고 단식일에 읽었을 법합니다. 유다 전승, 그 가운데서도 플라비우스 요세푸스와 미쉬나는 기원전 587년과 기원후 70년의 예루살렘 파괴가 똑같이 다섯째 달에 일어났다고 적고 있으며, 라삐 문헌들은 즈카 7,3과 8,19가 암시하는 단식을 예로 들어 기원후 70년 이후에 참회를 위한 단식이 거행되었다고 언급하고, ‘사도 헌장’(V, 20,3)도 유다인들이 예루살렘 성전 파괴 기념일에 바룩서를 읽었다고 증언합니다. 이러한 기록들은 바룩서가 성전 파괴를 애도하는 단식일에 읽혔다는 가설을 뒷받침해 줍니다. 
⑥가톨릭 교회의 전례에서도 바룩서의 몇몇 구절들을 봉독합니다. 특히 바룩 3,9-15; 3,32─4,4는 부활 성야 독서의 일부를 이룹니다.

◉70인 역(譯) ;북 이스라엘왕국과 남 유다왕국이 차례로 멸망하면서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근동의 각 지역에 흩어져 살게 되었는데 이들을 디아스포라(διασπορά그리스어 ‘분산’의 의미)라고 부른다. 디아스포라는 물론, 헬레니즘 권에서 성장한 유다 민족의 후손들 중에는 히브리어를 모르는 젊은이들이 많았으므로 그리스어 성서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어 디아스포라의 영향력이 컸던 이스라엘의 집결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유다 학자들 72인이 모여 처음으로 히브리어 성서를 그리스어로 번역하였는데 이것을 70인역(譯,LXX;Septuaginta)이라고 한다. 이 들은 12지파에서 각 각 6명을 뽑은 것으로 알려져 있고 이 시기는 대략 BC 250년경이다.

3. 바룩서의 구조
바룩서를 읽어 나가면서 우리는 혼합적인 작품의 구조로 말미암아 또 하나의 어려운 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바룩서는 동일한 저자나 동일한 시대의 것으로 볼 수 없는 이질적인 네 부분, 즉 역사적 서문과 참회 기도와 지혜에 관한 명상과 예루살렘을 향한 권고로 짜여 있기 때문입니다. 이 네 단편은 각 단편이 구사하는 본디 언어만이 아니라 문학 유형과 사상 면에서도 서로 차이를 보입니다.6장으로 되어있는 바룩서는 성격이 다른 네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 네 부분은 전혀 다른 저자의 손과 시대를 거쳐 나왔습니다. 
①역사적 서문(1,1-14) 
이 부분은 바룩서가 어떤 역사적 상황과 의도에서 쓰였는지를 밝혀 줍니다. 이 서문은 칠십인역에 친숙한 저자가 그리스 말로 직접 쓴 것인가? 아니면 본디 셈족 말을 사용하던 저자가 작성한 것인가? 이 두 가지 가설이 서로 맞서 왔으나 후자가 좀 더 믿을 만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 서문은 바로 이어지는 기도의 머리글 구실을 합니다. 참회 기도를 언제 그리고 왜 바쳐야 하는지와, 이 기도가 어떤 전례의 틀 안에 있는지를 잘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②참회기도(1,15─3,8)
❶이 부분은 고백과(1,15─2,10) 간청으로(2,11─3,8) 나눌 수 있습니다. 여러 성경 구절들을 짜깁기해 놓은 이 기도의 그리스 말 본문은 본디 히브리 말로 쓰인 기도문을 번역한 것 같습니다. 참회 기도는 민족적 고백 기도로 비교적 잘 알려진 문학 유형에 속합니다. 이 유형은 쿰란 문헌, 특히 제4동굴에서 발견된 ‘빛의 말씀’이라는 제목의 전례 문헌에서도 발견됩니다.
❷기도의 시작 부분은(1,15─2,19) 다니엘의 기도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예루살렘과 그 무너진 성소에 관련된 다니엘서의 구절들을(다니 9,16.17ㄴ.18ㄴ.19) 생략하는 대신 유배살이 하는 백성의 상황에 관해 좀 더 자세한 기록을 덧붙입니다. 이 같은 변화는 바룩의 참회 기도가, 예루살렘 성전을 더 이상 향유할 수 없거나 아니면 다니엘서에 묘사된 상황처럼 비극적인 상황에 처했던 디아스포라 유다 공동체에서 나왔음을 시사합니다. 연대적인 관점에서 바룩서가 다니엘서의 기도를 직접 빌려 왔다고 한다면, 당연히 다니엘서의 기도가 바룩서의 기도보다 시대적으로 앞섭니다. 이 경우 두 작품의 저자는 같은 자료를 독자적인 방법에 따라 끼워 넣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❸바룩서의 첫 번째와 두 번째 부분에서 확인할 수 있는 전례적 기능과 저술 일자와 장소에 대한 정보, 이를테면 단식과 애도, 성전에서 하느님께 바치는 제물, 민족적 고백 등은 이 두 부분의 틀을 이루는 전례가 어떤 국가적 재앙이 지나간 뒤에 백성을 하느님과 화해시킬 목적으로 거행된 참회 전례임을 가리킵니다. 
❹매우 혼란스러웠던 몇몇 시대를 고려해 볼 수도 있습니다. 안티오코스 4세(에피파네스) 치세에 발생했던 기원전 169년의 사건과 이후 수년간, 기원전 63년 폼페이우스의 예루살렘 점령, 또 기원후 70년 티투스의 예루살렘 함락 등이 그런 시대들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들 가운데 기원전 169년에 안티오코스 4세가 예루살렘 성전을 약탈하고 그로부터 5년 뒤인 164년에 유다 마카베오가 성전의 경신례를 정상화시킨 시대적 상황이(1,2.8 참조) 바룩서의 이 두 부분에 사용된 유형들의 현저한 차이를 가장 잘 설명해 주는 듯합니다. 바룩서의 이 두 부분이 저술된 공동체는 안티오코스 4세 치하에 있던 디아스포라 유다 공동체였을 것입니다. 
③지혜에 관한 명상(3,9─4,4)
❶참회 기도 다음에 지혜에 관한 명상이 이어집니다. 이 대목은 유배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이 겪는 불행의 이유를 묻는 질문으로 시작되는데, 그 대답은 지혜 문학 작품에 고유한 어휘를 토대로 펼쳐집니다.
이 지혜에 관한 명상은 유다 지혜 문학 사상사(思想史)의 전환기에 자리합니다. 범세계적으로 보편화되어 있는 지혜 개념은 하느님에 대한 경외심으로 정의되는데(욥 28,28; 시편 111,10; 잠언 1,7; 9,10; 15,33), 이는 선민 이스라엘만이 유일하게 받은 율법과 동일시되거나(4,1; 집회 24,8-12), 하느님의 창조 사업에 동참하는 존재(잠언 8,22-30; 집회 24,9;바룩 3,32-35) 또는 사람들 사이에 사는 존재로 설명됩니다(잠언 8,31). 
❷‘사람들 사이에 사는 존재’개념은 신학적으로 발전하여 지혜를 메시아와 동일시하기에 이릅니다(1코린 1,24; 2,6-9; 요한 1,14). 지혜를 율법과 동일시하는 사상은 그리스 말 본문에서 더욱 뚜렷하게 제시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지혜를 메시아와 동일시하는 사상도 그리스 말 본문에 함께 나타나지만, 이 사상은 특히 바룩 3,38의 라틴 말 역본에 더 잘 드러납니다. 고대 라틴 말 역본에 따르면, 하느님께서 지혜를 야곱에게 맡기신 뒤에야 “땅 위에 그가 나타나 사람들과 어울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스 말 본문은 “그”를 지혜를 가리키는 여성 단수 3인칭으로 표기하고 있는데, 라틴 말 본문은 남성 단수 3인칭으로 표현합니다. 라틴 말 본문의 이 경미한 수정 작업은, 지혜와 율법을 동일시하는 경향에서 지혜를 메시아와 동일시하는 경향으로 조심스럽게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 전체를 한꺼번에 매듭짓기에 충분합니다. 그리하여 교부들도 이 구절을, 그리스도의 강생을 암시하는 것으로 해석하였습니다. 바오로 사도도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 처음 두 장에서 바룩서의 이 부분을 다시 이용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❸바룩서의 지혜에 관한 명상이 집회서와 교의적으로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이 부분의 저술 연대를 기원전 2세기로 어림잡을 수 있으나, 그 이상의 정확한 연대를 밝히기는 어렵습니다. 
④예루살렘을 위한 권고와 위로(4,5─5,9)
바룩서의 마지막 부분은 또 다른 문학 유형에 속하는 작품입니다. 이 부분은 격려와 위로의 시로 짜여 있는데, 그 문체가 제2이사야서와 매우 가깝습니다. 시대적 배경을 유배 생활 초기로 잡고 이민족과의 화평 정책을 권장하는 역사적 서문이나 참회 기도와는 달리, 이 부분은 이민족에 대해 노골적인 적대감을 드러내고, 흩어진 이스라엘 백성이 곧 돌아올 것임을 전제합니다. 따라서 이 부분은 처음의 두 부분과 전혀 다른 시대적 상황과 세계를 배경으로 하며, 기원전 63년 이전, 아마도 기원전 2세기 후반에, 하스몬 가문의 정치적, 군사적 성공으로 용기를 얻게 된 디아스포라 유다 공동체가 저술했으리라 봅니다. 한편 예루살렘을 위한 이 권고는 별 어려움 없이 참회 전례의 틀 안으로 들어오게 된 것 같습니다. 이 부분은 결국 이스라엘의 민족적 탄원에 대하여 하느님께서 신탁 형식으로 주신 응답을 담고 있는 작품입니다.
⑤6장 예레미야의 편지

4. 예레미야의 편지 
EPISTLE OF JEREMIAH / ΕΠΙΣΤΟΛΗ ΙΕΡΕΜΙΟΥ
예레미야의 편지는 번역본에 따라 애가 다음에 나오기도 하고 바룩서 다음에 나오기도 합니다. 이 편지는 바룩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지만, 대중 라틴 말 성경에서는 바룩서 6장에 있습니다. 오리게네스에 따르면 ‘애가와 예레미야의 편지를 포함한 예레미야서’는 히브리 말 경전 22권 가운데 하나입니다(에우세비우스, 교회사, VI, 25 참조). 이와는 달리 예로니모는 이 편지를 외경으로 여겨 번역하지 않았고 대중 라틴 말 성경(불가타 Vulgata; 예로니모의 라틴어 번역본)에는 이 편지의 고대 라틴 말 번역(Vetus Latina)이 수록됩니다. 
①본문의 구조와 내용
본문의 서두는 이 글이 예레미야가 저자로 되어 있는 편지의 사본이며, 편지의 수신인들은 바빌론으로 유배를 떠나려는 사람들임을 밝힙니다. 문학 유형상 서간보다는 설교에 속하는 이 글은 일반적으로 우상 숭배에 대한 경계심을 촉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이는 예레미야서와 제2이사야서와 맥을 같이하면서 이후 지혜서와(13─15장) 바오로 서간과(로마 1,18-32) 같은 작품에서 펼쳐질 신학적 사상을 준비시켜 줍니다. 도입 부분에(1-6절) 이어 나오는 첫 번째 단락은 우상들을 무기력하고 썩어 없어질 피조물로(7-26절), 경멸해야 할 예식의 대상으로(27-32절), 무능한 존재로(33-39절) 단죄합니다. 두 번째 단락은 같은 논지를 순서를 바꾸어 우상 숭배(40-44절), 우상들의 속성(45-51절), 그것들의 무력함(52-57절) 순으로 소개합니다. 끝으로 우상들이 실용적인 물건이나 자연 현상 또는 야생 동물들에 비해 훨씬 못난 것들임을 강조한 다음(58-68절), 본문은 이 우상들을 허수아비와 가시덤불과 주검과 비교하면서 쓸모없고 무기력하며 썩어 없어질 것들이라고 결론짓습니다(69-71절).
②친저성과 원문의 언어
예레미야서의 정보들과 이 편지의 몇몇 자료들 사이에는 차이점이 발견되며, 이 편지가 예레미야 예언자 이후의 작품들을 분명하게 인용하고 있고 히브리 말 경전에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 등은 이 편지를 예레미야의 작품으로 생각하려는 친저성 시도를 어렵게 만드는 이유가 됩니다. 셈족 말 원문이 있었다면 이 원문의 그리스 말 번역은 기원전 1세기 이전에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사실 이 편지의 그리스 말 단편이 쿰란 제7동굴에서 발견되었는데(43-44절 참조), 이 단편은 ‘예레미야의 편지’의 가장 오래된 증거이며 기원전 100년경에 필사된 작품으로 추정합니다.
③역사적 배경과 저작년대
❶우상들에 대한 고고학적인 묘사, 경신례와 사제직에 관련된 기록 등은 사태를 피상적으로만 보고 조직적인 적대감을 드러낸 어떤 사람의 작품인 듯합니다. 그러나 몇몇 기록들은 현장을 직접 목격하고 작성한 것처럼 보입니다. 비교적 상세한 이런 기록들은 특정한 경신례 분위기를 전하는데, 어떤 주석가들은 이 기록들이 그리스의 셀레우코스왕조 시대에 부흥된 바빌론의 경신례를 전제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❷바빌론의 지고의 신 벨은 므로닥을 말합니다. 치유의 신인 므로닥은 또한 정의의 신(13절), 전쟁의 신(14절), 행운의 신(34절), 비의 신이기도(52절) 합니다. 신년 축제에서 므로닥과 그의 하급 신의 신상들은 수레에 얹혀 신전 구내에서 나와 도성 밖으로 행렬을 이루며 나아갑니다. 신이 도성에서 사라짐은 고통의 상황을 뜻하지만, 개선하여 돌아오면 그 고통은 끝납니다. 또 다른 기록들, 특히 여사제직이나(28-29절) 신전 매음과(10절과 42-43절) 관련된 요소들은 전쟁과 사랑의 여신 이쉬타르 숭배를 시사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예레미야의 편지에서는 사랑의 여신으로서 이쉬타르 숭배만 부각됩니다. 
❸이 첫 번째 가설에 따르면, 이 편지의 셈족 말 원문은 바빌론의 디아스포라 유다 공동체가 당시 부흥하던 바빌론 종교와 어떠한 형태의 타협도 하지 않도록 경계시키기 위해서 보내졌을 것입니다.두 번째 가설에 의하면 이 편지는 시리아나 페니키아의 예배를 거슬러 논쟁을 펼치고 있다는 가설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하닷과 아스타롯 숭배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수레 행렬은 특별히 옛 시리아 동전에서 자주 나타납니다. 또한 더 후대의 사모아 루치안의 증언에 따르면(시리아 여신, 6), 죽었다가 소생하는 아도니스를 기념하는 예식들이 비블로스의 아프로디테 신전에서 집전되었으며, 이 예식들은 죽음을 애도할 때에도 거행되었습니다.이 두 번째 가설은 이 편지가 그리스 시대에 시리아나 페니키아의 몇몇 유다 공동체들을 수신자로 작성되었음을 전제합니다. 
❹여러 가지를 고려하여 이 편지의 작성 연대를 기원전 4세기 말에서 기원전 2세기 초반 사이로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예언서③ 애가.바룩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