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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46권 기본정보

구약성경46권 기본정보[8] 예언서⑤ 다니엘서

by 써니리버 2026. 4. 30.

▶다니엘서 들어가는 말
①다니엘서는 몇 가지 복잡한 문제를 안고 등장하는데, 우선 그리스말은 칠십인역과 테오도시온이라 불리는 두 개의 역본이 전해집니다. 그 일부는 제1경전에 속하고 나머지 부분은 제2경전에 속해있습니다. 언어문제 역시 복잡하게 얽혀져 있는데 하나의 책 안에 세 가지 언어(히브리어, 아람어, 그리스어)가 혼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제1경전에 해당되는 부분은 셈족 계열 언어인 히브리어와 아람어로 서술되어 있는 반면, 제2경전은 그리스어로 되어있습니다. 제1경전 역시 두 부분으로 구분되는데 처음과 끝부분(1,1-2, 4ㄱ과 8─12장)은 히브리어, 그 사이에 들어가 있는 부분(2,4ㄴ-7,28)은 아람어로 되어있습니다. 
②다니엘서가 배치되어있는 자리도 성경에 따라 다릅니다. 칠십인역에서는 다니엘서가 예언서에 자리하고 있지만, 히브리 성경은 다니엘서를 성문서로 분류하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서를 그리스말로 번역한 디아스포라 유다인들은 다니엘서를 예언서 그룹에 위치시켰지만, 본토의 유다인들은 이를 지혜문학과 가까운 성문서의 하나로 본 것입니다. 히브리 경전에서 성문서는 ‘율법’과 ‘예언서’에 이어서 나오는 세 번째 문서집입니다. 이 세 번째 모음집은 동일한 문학 유형으로 짜여 있지 않으며, 커투빔(Kethubim) 곧 ‘문서들’[聖文書]이라는 제명이 말해 주듯이 예언서나 역사서와 같이 특별한 이름을 부여받지 못한 문서들입니다. 다양한 그리스 말 수사본들과 교회의 성경 목록에서 커투빔에 속한 책들의 자리는 늘 그대로 유지되지는 않았습니다. 
③기원후 66-70년, 135년 두 번의 유다인항쟁이 있은 후에 랍비들은 무장항쟁을 부추길 수 있는 혁명적 작품들을 제거하기로 결정하게됩니다. 그와같은 동기에서 다니엘서는 히브리성경에서 성문서들 사이로 좌천 되었으나 그리스도교 성경에서는 이사야서 예레미아서 에제키엘서와 나란히 대예언서 네 권에 속합니다. 
④히브리어 성경은 토라(오경),느비임(예언서),케투빔(성문서)의 첫 글자를 따서 타낙(TaNaKh; תנ"ך)이라고 부릅니다.타낙의 다니엘서는 총 12장으로 히브리어(1,1-2,4; 8,1-12,13)와 아람어(2,4-7,28)로 쓰여 있습니다. 성경학자들은 아람어 작품(2─7장)에 히브리어로 쓰인 시작 글과 마지막 부분을 덧붙였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편집자가 이 자료들을 다시 다니엘과 하난야,미사엘,아자르야 네 유다 소년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첫째 단원(1─6장)과 다니엘이 혼자서 보는 환시들을 소개한 둘째 단원(7─12장)으로 구분했을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⑤그리스말 다니엘서에는 타낙의 히브리어와 아람어로 쓰인 내용뿐 아니라 그리스어로 쓰인 고유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스어로 쓰인 내용은 다니엘서 3장 24-90절의 기도문 곧 ‘아자르야의 노래’와 ‘세 젊은이의 노래’, 13장 수산나 이야기와 14장 벨 신상과 큰 뱀의 일화 내용입니다. 히브리 말 성경에는 이 첨가 부분들이 들어 있지 않습니다.예로니모는 수산나의 이야기(13장), 벨 신상과 큰 뱀의 일화(14장)는 부록으로 배치했습니다. 가톨릭교회는 그리스어로 쓰인 이 부분들을 제2 경전으로 인정해 제1 경전인 타낙 성경의 다니엘서와 함께 편집해 놓았습니다. 하지만 개신교는 이 제2 경전 부분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46-34. 다니엘서 DANIEL/ ΔΑΝΙΗΛ(약칭; 다니/Dn) 


1.책이름
다니엘(Daniel)이라는 이름의 어원은 히브리어로 심판,판단, 또는 판결을 뜻하는 단(dan)과 , '나의'를 뜻하는(-iy), 하느님을 뜻하는 엘(El)이 합쳐진 히브리어 이름 '다니옐(Daniyél)'에서 유래한 남성 이름으로서 ‘하느님은 나의 심판자이시다’는 뜻입니다. 
다니엘은 유다왕국  여호야킴 임금 재위 3년 때인 기원전 606년부터 페르시아 키루스 임금 재위 3년 때인 기원전 536년까지 활동했던 인물입니다. 다니엘서는 오랫동안 이 책의 주인공 다니엘의 작품으로 알려져 왔습니다. 당시의 임금 네부카드네자르가 처음부터 등장하기 때문인데 다니엘은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이지만, 다니엘서를 바탕으로 다니엘 예언자의 전기(傳記)를 말하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2.저자와 저작시기
다니엘서는 바빌론 유배 시대(BC 587-538년)에 활동하던 어떤 예언자의 작품으로 제시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이 실제 저술된 시기는 다니엘이 활동하던 때보다 400년 후인 기원전 2세기 셀레우코스 왕조의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 4세 때라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다니엘서 내용이 무엇보다도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 4세가 기원전 167년 예루살렘 성전을 모독한 사건을 매우 구체적으로 서술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니엘서 10─12장의 정치, 사회 상황이 기원전 2세기 중반 근동과 유다 지역 상황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기원전 134~63년 사이에 저술된 마카베오기 상권의 저자가 다니엘서를 알고 있습니다. 덧붙여 예로니모 성인도 저서 「다니엘서 주석」에서 포르피리의 증언을 인용, 다니엘서는 기원전 6세기의 작품이 아니라 기원전 2세기 작품이라고 밝혔습니다. 따라서 다니엘서는 다니엘 예언자가 아닌 권위 있는 그의 이름을 빌린 익명의 하시딤(Hasidim;하시드인들;광야로 들어간 경건한 유다인들)이 저술했고,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 4세가 죽기 직전인 기원전 164년 무렵 최종 편집됐을 것이라고 성서학자들은 봅니다. 

3.역사적 배경
다니엘서는 바빌론 유배 시대의 임금 네부카드네자르가 언급되지만 이 책이 실제 저술된 시기는 기원전 2세기 셀레우코스 왕조의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 4세 때라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다니엘서의 역사적시대는 헬레니즘시대입니다.
1)헬레니즘시대 
인류의 역사에 한 획을 긋는 헬레니즘은 헤브라이즘[이스라엘 고대문화를 일컫는 말로 고대 히브리 인의 사상, 문화 및 그 전통을 말한다]과 함께 유럽의 사상과 문화의 2대 원류(源流)입니다. 헬레니즘이라는 명칭은 독일의 역사가 드로이젠(Droysen, Johann Gustav 1808~1884 독일의 역사가, 정치가 헬레니즘의 개념 확립)이 1863년 그의 저서 헬레니즘史에서 처음 사용하였습니다. 현대에 이르러는 그리스적인 문화와 사상, 예술을 총칭하여 헬레니즘 문화라고 합니다. 유다인은 이즘(ism;主義)을 가지고 그리스 문명에 반대한 유일한 민족이었는데, 양자 사이의 영향은 그리스도교의 영향을 이해하는 데 대단히 중요합니다. 유다인 사회에서는 헬레니즘화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대중들로부터 배척되었는데,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 4세 치세하에서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회당을 가진 유다인 사회는 헬레니즘 사회의 곳곳에 존재했으며, 어떤 도시에서는 자치적인 정치단위로 승인되기도 했습니다.
 
2)프톨레마이오스와 셀레우코스
①알렉산드로스가 사망한 후 그의 측근이던 장교들이 알렉산드로스가 단시일에 이룬 그리스제국을 몇 갈레로 갈라놓았는데 그 중 대표적인 세력이 프톨레마이오스와 셀레우코스왕조인데 성경은 이 두 왕조와 관련됩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이집트 지배권을 장악하고 수도를 알렉산드리아로 삼았으며, 셀레우코스1세는 바빌로니아와 시리아지역을 지배했고 수도를 셀레우키아와 안티오키아로 삼았습니다. 이스라엘은 먼저 1세기가량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배를 받았고 이 시기에 알렉산드리아의 유다인이 증가하였고 히브리 성경의 그리스어 번역 작업 70인 역이 완성 되었습니다(BC 320-200). 
②셀레우코스 왕조의 안티오코스에피파네스 3세가 팔레스틴을 정복 하였으나(BC 200-198) BC 190년 로마에 패하여, 아들 안티오코스4세를 인질로 내어주었습니다. 안티오코스 3세는 로마에 지불할 돈을 마련하기 위해 엘람Elam 신전을 약탈하다가 살해되었고(BC 187), 셀레우코스 4세가 즉위하였으나(BC 187-175) 유다의 성전 기금을 탈취한 일과 관련되어 암살되었습니다.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4세(Antiochus EpiphanesⅣ. BC 175- 164)가 로마에서 귀환하여 유다를 다스리게 됩니다.

3)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 4세(Antiochus EpiphanesⅣ)治下의 유다인들 -  종교적위기와 항쟁
①에피파네스(Epiphanes)는 ‘신의 나타나심’이라는 뜻입니다. 신으로 등장한 그는 그리스의 문화를 선호 하였고 제우스神을 만들어 예루살렘 성전과 도시 곳곳에 세우면서 정책 수행에서 유다의 반발이 거세었으므로 박해는 불가피해졌습니다. 이 박해는 전대미문(前代未聞)의 가공할 박해였는데 이러한 상황의 전개에는 유다인 자신들의 책임도 없지는 않았습니다. 
②유다의 대사제는 오니아스3세였는데 그의 동생 야손 Jason(본디 여호수아Joshua라는 이름인데 야손이라는 그리스식이름으로 행세)은 거액을 주고 왕에게서 대사제직을 얻어냈고 그 조건으로 왕의 정책에 전폭적으로 지지한다는 약속을 하면서 경기장(김나지움 Gymnasium;그리스어 김나시온 γυμνάσιον ;라틴어 김나시움 gymnasium)과 청년 훈련소를 세울 권한을 받았습니다(2마카 4,8). 야손은 율법의 여러 제도를 없애고 예루살렘에 경기장이 세워졌는데 젊은 사제들은 본분을 망각하고 경기에 열중하였습니다(2마카 4,14).
③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4세는 율법 소지자를 家家戶戶 색출하고 할례를 준 부모는 그 자리에서 죽였으며 아이는 매달아 놓았습니다(1마카 1,63). 율법의 사본들은 파기해야했고, 안식일을 지키는 것도, 전통적 종교축제를 지내는 것도, 할례도 금지되었습니다. 이교의 제단이 도처에 세워지고 유다의 부정한 짐승들이 제물로 바쳐졌습니다. BC 167년 12월 제우스神의 제의(祭儀)가 예루살렘성전에 도입되었습니다. 제우스상이 세워졌고 유다인들에게 주신(酒神) 디오니소스祭(Dionysia; Dionysos, Bacchos)의 축제가 강요되었습니다. 유다가 무장봉기로 간 것은 불가피했습니다. 다니엘서가 집필되고 있었을 무렵 격노한 유다인들은 무력항쟁을 시도하였고 그들이 이러한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뛰어난 지도자를 만난 덕분이었습니다. 이 가공할 살육은 마카베오 형제의 출현으로 끝났습니다.

4.다니엘서의 문학유형                                 
총14장으로 되어있는 다니엘서는 구약성경 가운데 단권으로서는 문학 유형상 묵시문학으로 분류되는 유일한 책입니다. 다니엘서는 당시의 유다교 문학에서 애용되던 두 문학 유형, 곧 유다인들이 학가다(Haggada Midrash)라고 부르는 교훈적 이야기와[1⎯6장], 묵시 문학[7⎯12장]을 독창적으로 결합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부 교훈적 이야기 [1⎯6장]
교훈적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신학적, 도덕적, 또는 지혜 문학적 가르침을 주기 위하여 이용되는 교육 방식입니다. 이야기의 주인공, 그의 행동이나 시련 등은 독자에게 자기 시대의 영성적 필요성과 관련하여 교화, 위로, 신앙 등의 메시지를 끌어내게 합니다. 유다교는 헬레니즘 시대에 주변의 여러 이교적 문화와 대립됩니다. 그리스-시리아 제국이 강제로 그리스화를 추진하자, 유다 땅에 살던 이 신앙인들은 갈등과 곤경에 빠지게 됩니다. 일부 귀족들은 이미 그리스적 생활 방식을 받아들여 익숙해진 터였으나 다니엘과 그의 세 동료는 다른 이들도 따라야 하는 본보기로 칭송됩니다(1장, 3장, 6장). 다니엘서의 이야기는, 어떠한 역사적 사건에서 비롯되기는 하지만 역사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2부 묵시 문학 [7⎯12장]
다니엘의 환시.교훈적 이야기들이 실생활에 관한 권고로 끝을 맺는 반면, 묵시문학적인 이 지혜는 하느님의 은밀한 계획을 알려 주는데, 사람들의 실생활은 바로 이 하느님의 계획 안에서 전개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5.다니엘서의 구조 및 내용
[1부 1⎯6장]
1장 다니엘과 친구들
①1장은 6장까지 이어지는 이야기 부분의 서론 구실을 합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는 네 인물이 1장에 소개되는데, 곧 다니엘과 그의 세 동료로서, 이들은 충실한 유다인의 전형으로 나타납니다. 이 네 젊은이는 바빌론으로 유배 가서 왕궁에 들어간 다음에도 계속하여 율법을 충실히 지킵니다. 
②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 때 준수한 젊은이들이 왕실교육에 선발되는데 거기에 유다의 젊은이 네 명이 선발됩니다. 그들은 유다의 자손 다니엘, 하난야, 미사엘, 아자르야 입니다. 이렇게 선택된 젊은이들을 서기관 학교에서 따로 교육시키는 것은 고대 근동에 널리 퍼진 관습이었습니다. 내시장은 그들에게 다른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벨트사차르(다니엘)는 아카드 말로 ‘제후의(또는, 그의) 생명을 보호하여라.’를 뜻하고, 아벳 느고(아자르야)는 본디 아람 말인 아벳 나부(나부 신의 종)가 변형된 것입니다. 사드락(하난야)과 메삭(미사엘)의 뜻은 분명하지 않습니다. 이름을 바꾼다는 것은 이 젊은이들에 대한 내시장의 권위를 드러낼 뿐만 아니라, 그들의 운명이 바뀌었음도 의미합니다(2열왕 23,34 참조).
③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율법은 특별히 음식에 관한 금령으로서, 이 문제가 유다 땅에서는 상당히 심각한 문제가 됩니다. 2마카 6,18-31은 돼지고기를 끝까지 먹지 않아 순교한 엘아자르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다니엘서의 근본 성격도 드러납니다. 곧 독자들에게 율법에 반대되는 이교 관습을 용감히 배척하라고 격려하는 본보기인 것입니다. 사실 이러한 이야기는 다니엘서가 마지막으로 꼴을 갖추는 기원전 164/163년의 상황에 꼭 들어맞습니다. 
④저자는 다니엘과 그의 세 동료가 율법을 세세히 준수함으로써 하느님에게서 “지혜”를 받는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2장 이하의 이야기에서는 이 지혜의 여러 실례를 보여 줍니다.

2장 네부카드네자르의 꿈 해설
①저자는 예언적 메시지의 대변인이라고 할 수 있는 다니엘이 지닌 “지혜”의 첫 실례를 보여 줍니다. 고대에는 징조의 뜻을 지닌 꿈이 중시되었고, 그것을 해석하는 일이 점술의 중요한 부분이었습니다. 다니엘서의 저자가 부분적으로 영감을 받은 요셉 이야기에서처럼(창세 40─41), 여기에서도 이교 점술의 무능이 강조됩니다. 곧 시간과 역사의 주님이신 하느님 홀로 미래의 비밀을 아시고, 또 그것을 당신의 예언자들을 통하여 계시하신다는 것입니다. 
②2,28; 그러나 하늘에는 신비를 드러내시는 하느님께서 계십니다.
신약 성경에 나오게 될 “신비” 개념의 기원을 여기에서 보게 됩니다. 그것은 인간의 역사가 흐르면서 실현되고, 또 복음 선포를 통하여 계시된 하느님의 비밀들을 가리킵니다(마르 4,11; 로마 16,25; 1코린 2,7; 콜로 4,3; 에페 3,10).
③이교도 임금의 전형인 네부카드네자르의 통치라는 가상의 틀 안에서, 다니엘은 하느님의 계획과 그 최종적 실현을 드러냅니다. 머리는 금으로, 그 밑은 은, 청동, 쇠로, 또 발은 부서지기 쉬운 쇠와 진흙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상(像)으로써 하느님의 계획이 표현됩니다. 이러한 우의적(寓意的) 묘사에서, 7장에서 되풀이되는 관례적 도식에 따라, 고대 근동을 지배한 일련의 제국들을 알아보게 됩니다. 곧 바빌론(금), 메디아(은), 페르시아(청동), 그리고 알렉산드로스가 창건한 그리스 제국(쇠)입니다. 그리고 알렉산드로스가 죽은 뒤에는, 그의 제국이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와 시리아의 셀레우코스 왕조로 나뉩니다(쇠와 진흙). 이 모든 것은 인간적 제국의 권세에 종지부를 찍고 하느님 나라의 서막이 되는 그분의 심판으로 끝을 맺습니다. 이러한 묵시 문학적 전망 속에서, 예언자들의 옛 종말론이 형태를 달리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 문학 유형의 근본 법칙에 따라, 여기에서도 현재와 가까운 미래의 언급에 곧바로 역사의 종결이 이어집니다. 
④다른 한편으로, 2장의 역사적 배경은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 임금의 통치(기원전 175-164년) 이전인 것으로 여겨집니다. 또는 43절의 내용에 따르면, 안티오코스 3세 곧 기원전 194년 이후이거나, 기원전 3세기 중엽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되풀이하여 박해를 언급하는 것은 이 모든 것이 지속되는 현실임을 강조하려는 것입니다.

3장  불가마속에서 노래하는 세 젊은이의 이야기
①다니엘서 중에서 제일 많이 예로든  유명한 불가마 속에서 노래 부르는 세 소년의 이야기가 포함되어있고 3장의 이야기는 유다인들이 참하느님께 바쳐야 하는 충성심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유다인들은 설사 죽음의 위험에 빠진다 하더라도, 우상 숭배의 강요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다니엘의 세 동료가 보여 준 것입니다. 그들이 불가마에서 살아 나온 것은 이사 43,2ㄴ을 상기시킵니다. 이 3장에 사용된 자료는 페르시아 문화와 그리스 문화의 만남이 이루어진 메소포타미아에서 유래합니다(본문에 나오는 악기 이름들). 
②정치권력이 강요하는 우상 숭배는,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가 식민지로 다스리던 유다 지방의 유다인들에게 문제가 되었습니다.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사형에 처한다는 위협과 함께 우상 숭배가 강요된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의 제단 자리에 ‘혐오스러운 파멸의 우상’이 세워진 것이 바로 그때입니다(9,27; 11,31; 1마카 1,54). 
③우상 건립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3장의 이야기는, 바로 이러한 배경에서 그 가치가 드러납니다. 이러한 본문이 전승되는 과정에서, 전체적으로는 셈족 언어로(=히브리 말 또는 아람 말) 된 원문이 바탕을 이루면서도, 그리스 말 번역본들(칠십인역과 테오도시온)에만 보존되어 내려온 전례적 요소들이 보태집니다(24-90절). 3,24-35 아자르야(아벳느고)의 노래 /3,51-90 세 젊은이의 노래 등은 유다인들의 기도의 옛 형식이 어떠하였는지를 보여 주는 중요한 전거(典據)입니다. 그리스 말로 된 이 부분은 따로 떨어져서 독립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말 번역에서도 이 제2경전 부분을아람 말 본문에 곧바로 이어서 옮겼습니다(이전성경에는 성경목차에 제2경전이라 표기했으나 지금은 제2경전을 따로 표기하지 않는다). ④여기에 나오는 참회의 기도는(26-45절) 9,15 이하에 나오는 기도, 그리고 바룩서에(1,15─3,8) 나오는 기도와 비슷합니다. 또 아마 이보다 더 오래되었을 찬미가는(52-90절), 같은 내용을 되풀이하는 중첩법(重疊法)으로 이루어진 바로크풍의 시로서 돋보입니다. 세 젊은이가 죽음에서 살아 나오는 마지막 장면은, 부활의 비유적 표현으로서 상징적 의미를 지닐 수도 있습니다(12,1-3 참조). 아무튼 초대 교회의 예술에서는 그렇게 해석하였습니다.
⑤사형집행관들은 아벳 느고(아자르야) 사드락(하난야)과 메삭(미사엘)을 불가마에 넣으려다 가마의 열 때문에 죽고(3,22) 가마에 들어간 세 젊은이는 불가마 안에서 하느님을 찬미하며 불길 한 가운데를 거닐었습니다(3,24). 그리스 말로만 전해지는 3,24-90절은 원문을 더 잘 반영하는 테오도시온에 따라 번역되었습니다. 
⑥3,91 부터 다시 아람 말이 시작됩니다. 성경에 표기된 괄호 안의 숫자는 히브리 말 성경의 절을 가리킵니다. → 3,91(24)
3,91(24)그때에 네부카드네자르 임금이 깜짝 놀라 급히 일어서서 자문관들에게 물었다. “우리가 묶어서 불 속으로 던진 사람은 세 명이 아니더냐?”...92(25)임금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네 사람이 결박이 풀렸을 뿐만 아니라, 다친 곳 하나 없이 불 속을 거닐고 있다. 그리고 넷째 사람의 모습은 신의 아들 같구나.” 93(26)네부카드네자르는 타오르는 불가마 어귀로 다가가서 말하였다. “가장 높으신 하느님의 종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 느고야, 이리 나와라.” 96(29)...이처럼 구원을 베푸실 수 있는 신은 다시 없다.”
⑦사형집행관들은 가마에 세 젊은이들을 넣으려 다가 가마의 열로 죽습니다. 사실 곁에서 고통을 바라보는 사람이 더 힘들 때도 있습니다. 바라보는 사람은 그냥 힘들뿐 출구를 찾는 것은 고통 속에 있는 당사자의 몫입니다. 그는 출구를 찾아야 살아날 것입니다. 하느님을 찬미하는 세 젊은이에게 천사가 찾아옵니다. 그리고 천사와 함께 불가마를 거닙니다. 네부카드네자르는 이들을 살려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4장 네부카드네자르의 몰락에 관한 다니엘의 예언
①네부카드네자르는 두려운 꿈을 꾼 후 다니엘(벨트사차르)을 불러 꿈에 대해 묻고 다니엘은 네부카드네자르의 몰락을 예언합니다.
②4,7의 ‘우주적 나무’의 상징은 고대 근동의 문학에서 매우 흔하였습니다. 구약 성경에서는 이미 에제키엘이 파라오의 위대함과 그의 몰락을 상기시키려고 이 상징을 이용하였습니다(에제 31. 특히 3-9절 참조. 에제키엘서와 다니엘서에서는 같은 표현이 여럿 나온다). 이 ‘나무’가 여기 다니엘서에서는, 상징적 꿈이라는 틀 안에서, 교만에 빠진 인간의 권세를 꺾어 버리는 ‘하느님의 심판’을 그리는 데에 쓰입니다. 
③네부카드네자르 임금은 2장에서처럼 문학적 전형으로 제시되는 인물입니다. 꿈을 서술하고 설명하는 방식은 2장에서와 같은데, 다만 여기에서는 임금 자신이 자기의 꿈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그리고 점술가들의 무능력과(3-4절) 다니엘의 형안이 다시 한번 대비를 이룹니다.
④다니엘은 임금의 꿈을 해석하였고 그 꿈은 그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4,24“그러니 임금님, 저의 조언이 임금님께 받아들여지기를 바랍니다. 의로운 일을 하시어 죄를 벗으시고, 가난한 이들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불의를 벗으십시오. 그리하시면 임금님의 번영이 지속될지도 모릅니다.”

5장 벨사차르임금과 바빌론의 멸망에 관한 예언
①5장의 이야기는 2장, 4장과 함께, 하느님께서 다니엘에게 베푸신 예언자적 형안의 새로운 실례를 제시합니다. 이번에는 해몽이 아니라, 어떤 초자연적 손이 궁전 벽에 쓴 신비한 글자를 해독하는 것입니다. 
②바빌론 임금 벨사차르가 우상 숭배에는 애착을, 참하느님께는 멸시를 드러내는 신성 모독적인 잔치를 벌이는 중에 초자연적 손이 궁전 벽에 글씨를 쓰는 일이 벌어집니다. 다니엘은 전문 점술가들이 읽지도 못하는 문장을 해석합니다. 임금의 몰락이 임박하였음을 뜻하는 이 글은 하느님의 심판이 예고된 것임을 밝히는 것입니다. 
③메소포타미아의 전통에는 바빌론 제국의 마지막 임금 나보니두스의 아들이며 섭정인 벨 사르 우수르 곧 벨사차르에 관한 기억이 일부 보존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서에서는 그가 이교도 통치자의 문학적 전형인 네부카드네자르 임금의(3장 참조) 아들로 나옵니다. 
④다니엘서의 저자는 이 벨사차르 뒤로, 당시의 시리아 임금, 곧 기원전 167년 예루살렘 성전을 약탈하고 거기에 이교 경신례를 심어 그곳을 더럽힌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를 암시합니다(1마카 1,54.59; 2마카 6,2-4). 벨사차르의 잔치가 바로 이 신성 모독적인 행동을 가리킵니다.그래서 이 임금의 죽음은 문학적 이야기로서, 안티오코스의 운명을 예고하는 것입니다. 

⑤손가락이 궁전 벽에 쓴 신비한 글자  “므네 므네 트켈, 파르신”.  
5,24그리하여 하느님께서 손을 보내셔서 저 글자를 쓰게 하신 것입니다.25그렇게 쓰인 글자는 ‘므네 므네 트켈’, 그리고 ‘파르신’입니다.26그 뜻은 이렇습니다. ‘므네’는 하느님께서 임금님 나라의 날수를 헤아리시어 이 나라를 끝내셨다는 뜻입니다.27‘트켈’은 임금님을 저울에 달아 보니 무게가 모자랐다는 뜻입니다.28‘프레스’는 임금님의 나라가 둘로 갈라져서, 메디아인들과 페르시아인들에게 주어졌다는 뜻입니다.”
(므네μανή ;세다,헤아리다. 트켈θεκέλ;저울에달다. 파르신φάρες;나누다.) 
25 καὶ αὕτη ἡ γραφὴ ἐντεταγμένη· μανή, θεκέλ, φάρες. 
The writing reads;Mene Mene Tekel and Parsin.
⑥슈만(Schumann, Robert Alexander 1810~1856)의 가곡 벨사차르는 다니엘서 5장 전체를 하이네(Heinrich Heine 1797~1856)가 시로 구성한 것에 곡을 붙인 것입니다. 보통 연주보다는 바리톤으로 웅장하고 장엄하게 노래하는 바빌론의 멸망이라는 주제를 놓고 인간의 운명을 노래합니다. 벨사차르의 파티장에서 왕은 예루살렘의 성전에서 아버지가 가져온 금잔들을 모두 꺼내어 즐깁니다. 벽에 손가락이 글을 씁니다. 
“므네 므네 트켈, 파르신”.  
“내가 너의 인생을 셈한다. 내가 너를 측량한다. 그리고 나는 너를 나눈다.”

6장; 사자굴에 던져지는 다니엘
①6,1그리고 메디아 사람 다리우스가 그 나라를 이어받았다. 그의 나이 예순두 살이었다.
이 말은 기원전 539년의 바빌론 함락을 상기시키는데, 역사적 사실과는 일치하지 않습니다. “메디아 사람 다리우스”는 알려져 있지 않고 바빌론을 점령한 것은 페르시아의 키루스 임금으로, 그는 바빌론의 어떤 고관의 방조로 이 도시를 손쉽게 손에 넣게 됩니다. 그렇지만 바빌론 제국의 마지막 임금이 잔치를 벌이고 있을 때에 수도가 함락되고 그 임금이 죽었다는 것은, 일찍부터 근동의 전통이 되어, 그리스의 헤로도토스와 크세노폰도 이 사실을 언급합니다.
②다니엘이 모함을 받아(6,2-10) 사자 굴에 던져지지만 살아 나온다는(6,11-29) 이 이야기는, 불가마에 던져진 세 젊은이에 관한 3장의 이야기와 똑같은 주제로 이루어집니다. 곧 다니엘이 하느님에 대한 충성심 때문에 죽음에 직면하게 되지만 기적적으로 구원을 받고, 그를 모함한 자들은 벌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③이 일화에서 다리우스는 고대 근동의 일반적인 전제 군주와는 달리, 대신들의 요구에 쉬이 넘어가는 연약한 임금으로 나옵니다. 성경의 저자는 과거의 역사를 사실 그대로 상기시키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는 다만 간접적인 표현으로써, 박해를 받는 유다인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주고자 할 따름입니다. 
④기원전 167년에, 안티오코스 4세 임금은 유다와 같은 점령지를 포함한 자기 왕국의 모든 신민에게 바알 샤멤, 곧 그리스식으로는 올림피아의 제우스 신을 경배하도록 강요합니다. 안티오코스는 자신이 바로 지상에 나타난 이 신이라고 하면서, 자기 이름에 에피파네스(= 모습을 드러낸 신)라는 말을 덧붙입니다. 6장의 이야기는 이러한 역사적 틀 속에서 그 의미를 갖습니다. 신앙을 위해서라면 순교도 두려워하지 말고 또 희망을 잃지 말라는 권면인 것입니다. 사자 굴에서의 구원 역시 불가마에서의 구원처럼, 죽음에서의 구원 곧 부활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일 수 있습니다(12,1-3. 그리고 히브 11,33 참조). 초대 그리스도교 예술은 다니엘의 이 구원을 그리스도 부활의 예형으로 보게 됩니다.

[2부 7─12장; 다니엘의 환시]
▶다니엘서 2부 들어가는 말
①다니엘서는 구약성경 가운데 단권으로서는 문학 유형상 묵시문학(黙示文學)으로 분류되는 유일한 책입니다. 묵시문학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생겨난 독특한 문학 유형입니다. 묵시문학은 인접한 미래에서 그리고 저편에서 곧 전능한 하느님에게서 오는 개입으로부터 희망의 동기들을 찾으려합니다. 미래에는 사건들의 흐름이 바뀔 것이며 억압자들은 그들의 행위에 걸맞은 대가를 치를 것이고 억압받는 이들은 더 나은 때를 맞게 될 것을 희망합니다.
②유배이후 발전하기 시작한 유다교의 주요 특징으로는 율법을 지나치게 강조한 점과 하느님의 구원 목적이 달성되는 완성의 날이 임박했다는 종말론적인 사상에 몹시 열중했다는 점입니다. 그들의 주님의 날에 대한 기대는 다윗 신학과 연관되어 국가라는 체제가 지속되는 동안 꾸준히 지속되었는데 바빌론의 유배가 이 모든 희망에 종지부를 찍은 셈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본래 이스라엘의 희망이 다윗 왕조에 있지 않고 계약에서 근거했듯이 이스라엘은 유배지 예언자들의 말대로 새로운 하느님의 개입을 희망했는데 그것은 참으로 집요한 희망이었습니다. 구약시대의 종국이 가까운 무렵 종말론은 묵시(黙示;Ἀποκάλυψις;revelation)라는 새로운 형식을 띠게 되었고 유다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듭니다. 신학적 의미에서 이 문학이 발전한 주요원인은 그들의 미래 희망적 사고에 있습니다. 
③결단코 포기될 수 없는 하느님의 구원에 신뢰하여, 지금의 역사 시대에서의 구원이 아니라 역사가 끝난 다음의 영원한 구원에 점차 기대를 걸게 되었다고 추론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와 같은 희망을 표현하기 위해 새로운 형식들을 빌어 쓰는 가운데 묵시문학이 탄생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종교적 희망이  전혀 다른 前提들과 지금까지 아직 도달해 본적이 없는 정도의 넓은 전망(展望)으로 다시 한 번 확인된 그것이 묵시문학이라고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④묵시문학은 그 표현방법이 기이하기는 하지만 역사의 지존한 주님이신 하느님에 대한 유다인들의 신앙을 합당하게 표현한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묵시문학의 역사적인 시대를 BC 200년에서 AD 100년으로 보고 있습니다.
⑤다니엘서 7⎯12장의 환시들은 각각 연대순으로 배열됩니다. 그러나 이 연대는 문학적 발상으로서 이 작품의 저작 시기와는 무관합니다. 다니엘의 환시는 다른 모든 환시 사이에서 두드러지며 우리는 지금까지 예언문학에서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거대한 용어를 마주하게 됩니다. 그것은 신약성경에서 여러 차례 인용된 ‘사람의 아들’의 환시 입니다. 

7장 사람의 아들에 관한 환시
①다니엘과 그의 동료들에 관한 여러 이야기에 이어서, 이제 이 이야기들과 같은 연대순으로 분류된 환시들이 나옵니다. 7장의 환시는 서로 반대되는 의미를 지닌 두 개의 장면으로 펼쳐지는데 ‘네 마리 짐승의 환시(7,1-8)’와  ‘사람의 아들에 관한 환시(7,9-14)’입니다.
②첫째 환시는 상징적 꿈으로 제시되는데, 먼저 꿈이 서술되고(2-14절) 설명이 이어집니다(15-28절). 앞 장들에서는 다니엘이 직접 환시와 꿈을 설명하는 데 반하여, 여기에서는 다니엘이 하느님의 옥좌 곁에 서 있는 천사에게서(16절) 설명을 듣습니다. 해설가 구실을 하는 이러한 천사의 개입은 이미 에제키엘서와(40─42장) 즈카르야서에도(1,7─6,8) 나옵니다. 
③환시는 서로 반대되는 의미를 지닌 두 개의 연속 장면으로 펼쳐집니다. 첫째 장면에서는 바다에서 올라온 네 “짐승”이, 이미 2장에서 금 상의 상징에 깔려 있던 구상에 따라, 연이어지는 인간의 제국들을 상기시킵니다. 
❶첫째 제국은 당연히 신바빌론입니다(2,38: “금으로 된 머리”). 
❷둘째와 셋째 제국은 이미 (늦어도 기원후 250년대의) 시리아 말 역본이 밝히는 대로 메디아와(7,5) 페르시아입니다(7,6). 
❸넷째는 알렉산드로스가 창건한 그리스 제국입니다. 시리아 셀레우코스 왕조의 임금들은 바로 이 제국을 직접 이어받은 자들입니다. 
④저자는 여기에서 연이어지는 열 임금(짐승의 열 뿔)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열한 번째 임금이 등장하는데, 그의 통치 아래에서 악이 정점에 달합니다. 다른 세 뿔을 뒤집어 버리는 이 ‘열한 번째 뿔’(7,8)에서, 데메트리오스와 자기의 동기 안티오코스와 프톨레마이오스 필로메토르를 제거하는(11,21.25 참조)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 임금을 보게 됩니다. 
⑤이 7장에서 연이어 두 개의 편집 작업이 이루어졌을 가능성도 없지 않습니다. “열 뿔”을 알고 있던 첫째 편집 작업은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의 박해 이전에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열한 번째 뿔”과 관련된 모든 세부 사항을 첨가한 둘째 편집 작업은(8.11ㄱ.12.20ㄷ-22.24ㄷ-25절), 순교자들이 받을 영광의 전조가 되는(23-25절) ‘하느님의 심판’과 박해자의 죽음이 임박하였음을 예고함으로써, 박해를 받는 이들에게 희망을 북돋우고자 기존의 본문을 재현실화하였을 것입니다. 사정이 어떠하든, 이 안티오코스는 하느님의 백성에 대한 ‘악’의 마지막 공격을 뜻합니다. 
⑥유다교와 그리스도교 전통은 네 번째 ‘짐승’을 로마 제국으로 간주하게 됩니다. 지상의 이 ‘마지막 적’이 무너질 때에, ‘하느님 나라’의 수탁자들, 곧 ‘지극히 높으신 분의 백성’의 나라가 일어나게 됩니다.
⑦다니엘이본환시의 둘째장면에서 “연로하신분”의 모습으로 서술되는 하느님께서는, 앞의 짐승들과는 반대되는 모습을 지닌“사람의 아들 같은 이”의 천상 등극을 집행하십니다(9-10.13-14절). 
⑧짐승들과 마찬가지로 이 존재 역시 상징적 인물입니다. 그러나 후대의 유다교 전통은 이 인물을 다윗 집안의 메시아로 간주합니다. 이러한 전망을 구축하고자 저자가 사용한 자료들은, 부분적으로는 바빌론에서 신년 축제 때에 사람들이 낭송하던 창조 신화에서 유래합니다. 성경의 전통은 이미 그것들을 가나안의 신화에 더 가까운 형태로 이용한 바 있습니다. 그 목적은 하느님께서 혼돈의 세력들을 쳐부수신다고 말함으로써, 창조 신학을 표현하고(시편 74,13-14; 89,10-11. 그리고 창세 1,2 참조), 이집트 탈출의 역사를 서술하며(이사 51,9-10), 또 하느님의 종말론적 전투를 상기시키는 것입니다(이사 27,1). 
⑨다니엘서 7장을 바탕으로, 똑같은 표상이 요한 묵시록에서도 되풀이됩니다(묵시 13). 묵시록에서 바다에서 올라오는 두 짐승은 네로(AD 54~68)와 도미티안(AD51~96)으로 봅니다. 이 묵시록에서는 첫째 짐승에‘표범’과‘곰’과‘사자’의 모습을 결합시키고(묵시 13,1-10. 그리고 다니 7,4-6 참조), 거짓 예언자의 표상인 둘째 짐승을 도입합니다(묵시 13,11-18).(묵시13장은 본 블로그 sunny river 요한묵시록 3-3 참조) 
⑩7,13의 “사람의 아들”은 본디 그냥 ‘사람’을 뜻합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구체적으로 누구를 가리키는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가 구름과 함께 나타난다는 것은 그가 하느님의 영역과 관련이 있음을 뜻합니다. 반면에 짐승들은 ‘악’의 영역을 상징하는 바다에서 올라옵니다. 하느님께서 구름을 타고 나타나시는 것으로 서술되는 구약 성경의 현현 이야기들이 이 구절에 문학적 영향을 끼쳤음이 분명합니다(탈출 34,5; 레위 16,2; 민수 11,25 등 참조). 
⑪예수님께서는 여러번에 걸쳐서 사람의 아들이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고 말씀하십니다(마태 25,31; 마르 13,26과 병행구; 루카 17,22-30). 그리고 이것은 예수님께서 카야파에게 하신 답변을 바탕으로, 그분의 영광스러운 현현을 서술하는 고전적 표현이 됩니다(마르 14,62와 병행구; 사도 7,55-56; 묵시 1,13. 그리고 묵시 19,11-16 참조). 이로써 우리는 다니엘서 7장이 그리스도교 계시에서 큰 중요성을 지니고 있음을 엿볼 수 있게 됩니다.
⑫공관 복음서에서 볼 때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사람의 아들이라는 표현은 그분의 ⑴신적인 기원과 지상에서의 사명 ⑵당신의 수난과 죽음, 부활을 예고하실 때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⑶심판자요 구원자로서 다시 오시는 영광스러운 재림을 표현해 주고 그를 통해 예수님의 신적인 권위가 강조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세 가지는 ‘사람의 아들’이라는 표현 안에서 서로 긴밀한 연관성을 맺고 있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8장 안티오코스의 최종적 파멸을 선포하는 환시
이 장에서는 다시 한번 상징적 환시의 형태로, 흐르는 역사가 마치 벽화가 그려지듯 펼쳐집니다. 뿔이 두 개 달린 “숫양”(메디아와 페르시아)에 이어 커다란 뿔 하나가 달린 “숫염소”(알렉산드로스의 그리스 왕국)가 나타납니다. 이 뿔이 부러진(알렉산드로스의 죽음) 다음에는, 그 자리에 더 작은 뿔이 네 개 돋아납니다(알렉산드로스 제국을 이어받은 네 왕국). 마침내 그 가운데에서 조그마한 뿔이(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 생겨나는데, 그것은 교만해져서 하느님의 경신례를 폐지하고 그분의 백성을 박해함으로써 하느님께 대항하고 나섭니다. 기원전 167년에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4세는 유다 땅을 그리스화 한다는 법령을 공포한 다음, 예루살렘 성전에서 거행되는 유다인들의 경신례를 폐지하고 성전을 제우스 신에게 봉헌합니다.그러나 하느님의 뜻에 따라 그의 최종적 파멸이 장엄하게 선포됩니다. 묵시 문학의 기법에 따라, 먼저 환시가가 이 상징적 환시를 주시하고(8,2-14), 이어서 해설가-천사가 그에게 환시의 뜻을 설명합니다(8,15-26). 

9장 바빌론의 멸망에 대한 환시
①9장은 조국의 위기 앞에서 하느님께 드리는 다니엘의 기도인데 주로 하느님의 자비에 응답하지 못한 죄의 반성입니다. 
9,17;그러니 이제 저희의 하느님, 당신 종의 기도와 간청을 들어 주십시오. 주님, 당신 자신을 생각하시어 황폐한 당신의 성소에 당신 얼굴의 빛을 비추십시오. 19 주님, 들어 주십시오. 주님, 용서해 주십시오.
②환시와 꿈의 설명에 이어서, 9장에서는 새로운 형태의 묵시록적 메시지가 등장합니다. 이 메시지의 출발점이 이번에는 기존의 예레미야예언서 본문입니다. 그리고 예언서 본문은 일종의 암호로 된 메시지로 간주되는데, 사람들이 고대하는‘종말’의 모습을 하느님께서 그 안에 미리 기록해 두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현재 유다인들이 겪는 위기와 그 결말을 설명해 줄 빛을 예언서에서 찾게 됩니다. 
③예레 25,11-14의 신탁에 따르면(예레 29,10도 참조), 바빌론의 멸망과 이스라엘의 구원은 70년이라는 상징적 기간이 지난 다음에 일어납니다. 이 70은 단순히 일곱이 열 번이라는 뜻일 수도 있고, 안식년의 주기가 열 번이라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레위 25,2-7과 신명 15,1-11 참조). 역대기는 바로 이 안식년이라는 전망에서 바빌론 유배 기간을 해석합니다(2역대 36,21과 각주 참조). 그러나 다니엘서의 저자는 이 70년을‘70의 일곱 배 되는 햇수’로 이해합니다(24절). 이는‘49×10’으로서 희년의 주기 열 번을 뜻합니다(레위 25,8-18). 
④이 기간이 끝나면 마지막 위기와 함께 최종적 구원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이는 물론 안티오코스 4세의 박해가 가져오는 현실적 문제들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습니다. 그러나 해설가-천사인 가브리엘이 새로운 신탁의 형태로 제시하는 성경 본문의 설명은(24-27절) 전승 과정에서 많이 변형되어, 고대의 여러 번역본을 대조해 보아도 원문이 명확히 복구되지 않아, 번역하는 데에 어려움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9,24;너의 백성과 너의 거룩한 도성에 정해진 일흔 주간이(7년을 의미)지나야 악행이 그치고 죄가 끝나며 속죄가 이루어지리라. 또한 영원한 정의가 펼쳐지고 환시와 예언이 확증되며 가장 거룩한 곳에 기름이 부어지리라.
“가장 거룩한 곳”은 “가장 거룩한 이(분)”를 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가장 거룩한 곳” 곧 ‘성전’을 가리키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기원전 164년 12월 14일에 유다 마카베오가 예루살렘 성전을 정화하고 다시 봉헌한 일을 말하는 것입니다. 
9,27성전 날개에는 황폐를 부르는 혐오스러운 것이 세워져 황폐하게 만드는 그자에게 이미 결정된 멸망이 쏟아질 때까지 서 있으리라.”
❶“성전”은 내용상 덧붙인 말입니다. “날개”가 구체적으로 어디를 가리키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것들(희생 제물과 곡식 제물을 바치는 제단들)의 자리에는”으로 수정하여 옮기기도 합니다.
❷히브리 말로 “황폐를 부르는”은 머쇼멤, “황폐하게 만드는 자”는 쇼멤입니다. 여기에는 언어유희가 들어 있습니다. 안티오코스 4세가 예루살렘 성전에 자기가 섬기는 신의 상을 세우는데, 그 신의 이름이 바알 샤멤(하늘의 바알)입니다. 그래서 “황폐를 부르는 (자)”, “황폐하게 만드는 자”는 그리스의 제우스 신과 동일시되는 이 바알 샤멤을 가리킵니다. 이로써 성전이 정화될 때에(기원전 164년) 이 우상이 제거되리라는 것을 암시합니다. 그러나 이 명칭은 동시에 안티오코스 4세를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 이로써 그의 파멸도 멀지 않았음을 암시합니다.

10─12장 전망(展望)
①히브리 말로 된 다니엘서의 저자는 이 책을 끝맺으면서, 거대한 묵시록적 ‘벽화’를 그리듯 자기가 전하려는 메시지의 핵심을 펼쳐 보입니다(10─12장). 그리고 그러한 ‘벽화’를 당시의 관습에 따라 천사의 발현이라는 틀 안에 배치시킵니다(10,1─11,1). 해설가-천사는 환시가에게 하느님의 계획이 실현되는 역사가 어떻게 전개될지를 설명해 줍니다. 
②첫째 부분에서는(11,1-39), 페르시아 시대에서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 시대까지 이르는 고대 근동 전 역사의 큰 획이 그어집니다. 이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 시대는 유다인들의 역사에서 위기의 기간으로서, 이때가 바로 다니엘서 본문이 저술된 시기입니다. 이 시점에서부터 이제 미래에 관한 전망이 펼쳐집니다. 
③첫째 전망은 매우 일반적인 용어로 박해자의 종말을 서술합니다(11,40-45).이 폭군의 죽음과 함께, 하느님과 그분께 적대적인 세력 사이의 갈등도 끝나고, 이제 새로운 시대가 시작됩니다(12장). 역사적으로 안티오코스는 기원전 164년 가을에 엘람 땅에서 죽게 되는데, 그의 죽음과 관련된 세부 사항은 다니엘서가 저술될 당시에 저자에게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④둘째 전망은 의인들이 부활하고 보상을 받는 종말의 시간을 상기시킵니다(12,1-4). 마지막 단락에서는(12,4-13) 다시 환시의 틀로 들어가서, ‘종말의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상징적 날수를 제시합니다.
12,11 일일 번제가 폐지되고 황폐를 부르는 혐오스러운 것이 세워질 때부터,천이백구십 일이 흐를 것이다.12 행복하여라, 천삼백삼십오 일이 될 때까지 견디어 내는 이들! 
다니엘서는 종말까지 남은 기간을 네 번에 걸쳐 각각 다르게 제시합니다. 7,25와 12,7에서는 ‘삼년 반’, 8,14에서는 ‘천백오십 일’, 12,11에서는 ‘천이백구십 일’, 그리고 여기에서는 ‘천삼백삼십오 일’입니다. 여러 가지 설명이 제시되지만, 이 네 가지 수의 수수께끼는 아직도 완전히 풀리지 않았습니다.

13장 수산나 이야기
①히브리 말로 쓰인 다니엘서는 12장으로 끝납니다. 이어지는 13장의 수산나 이야기는 그리스 말 번역본들에서만 전승되는데, 그리스 말의 두 번역본인 칠십인역과 테오도시온에서도 이야기의 형태가 서로 상당히 다릅니다. 이 두 번역본은 본디 셈족 말(히브리 말 또는 아람 말)로 쓰인 원문이 있었고, 또 거기에서 출발한 전통이 두 줄기로 뻗어 나간 것 같습니다. 
②본래의 수산나 이야기는 다니엘서와 아무런 관련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칠십인역에서 볼 수 있듯이, 일차적으로 다니엘서의 부록처럼 뒷부분에 첨가됩니다. 본디의 이야기에는 무명의 “아주 젊은 사람”이 등장하는데, 그가 부차적으로 다니엘과 동일시되는 것입니다(45절). 그래서 칠십인역은 예컨대 다니엘에 대한 칭송이 아니라, 경건한 젊은이들에 대한 일반적인 칭송으로 끝납니다. 이 무명의 “젊은 사람”이 다니엘과 동일시될 수 있었던 것은, 다니엘이라는 이름이 ‘하느님께서 심판하신다’는 뜻을 지녀, 하느님을 대신하여 판결을 내리는 이 “젊은 사람”의 역할을 훌륭히 표현해 내기 때문입니다. 
③셈족 말로 쓰인 원문 전통의 두 번째 가지를 테오도시온에서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이제 어떤 “젊은 사람”이 아니라 다니엘이 주인공으로서 확정적인 위치를 차지합니다. 그리고 더 이상 부록이 아니라 다니엘 이야기의 한 부분이 되어, 그 첫 번째 일화로서 다니엘서의 첫머리에 자리 잡게 됩니다. 셈족 말 원문의 첫째 가지는 칠십인역 이전, 곧 기원전 145년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둘째 가지는 신약 성경 시대에 이루어졌는데, 테오도시온은 바로 이 둘째 본문을 본 것입니다. 짧은 형태를 취하는 칠십인역도 나름대로 가치를 지니고 있지만, 우리말성경은 테오도시온을 번역했습니다. 
④이 이야기의 목적은, 결국은 우연한 역할을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젊은 재판관의 지혜를 기리기보다, 하느님께서는 당신께 도움을 청하는 무죄한 이들을(42-43절과 60절) 결코 저버리지 않으신다는 점을 드러내는 데에 있습니다. 
⑤불의를 저지르는 두 노인과는 달리 배우자의 본분에 성실함으로써, 수산나는 젊은 유다 여자들의 본보기가 됩니다(22-23절과 63절). 저자는 또 이 기회를 이용하여, 모세의 율법이 유배지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사실을 기꺼운 마음으로 강조하기도 합니다(61-62절). 

◉두 사람 이상의 증언이 있으면 즉결에 넘겨지는데 이 여인은 아름답다는 죄로 음흉한 두 노인의 계략에 빠지게 되어있습니다. 본 사람은 하느님 뿐이니 살려주실 분도 하느님뿐이십니다. 이러한 일이 우리 인생 안에도 더러 발생했었습니다. 오해받은 채로 받아들여야하는 경우도 있고 생각지도 않은 시점에서 풀어져버릴 때도 있습니다. 풀어지지 않은 채로 받아들이는 상황도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것이 분명한 것이 어느날 돌연히 그 일이 나에게 득이 되어버렸으니 말입니다. 그러니 참으로 한치 앞도 모르는 인생의 길을 하느님께 의탁하는 것 밖에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우리가 미래에 다가올 일을 모조리 대처할 수도 없고 이미 일어난 일을 적절하게 처리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이 무얼 해주시느냐고 묻는 사람에게 그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나는 그렇게 그 징검다리를 건널 수 있었고 나는 기도하면서 그 불가마를 통과했었습니다. 
다니엘과 수산나 이야기는 부패했을 뿐 아니라 음흉하기까지 한  두 늙은 판사들에 맞서 정의를 수호한 젊은이와 수산나의 이야기입니다. 부패한 권력층 가운데에서 정의로운 젊은 세대를 드러내는 풍자 문학이라고 봅니다. 

14장 우상 숭배에 관한 논쟁
①이 단락은 구약 성경의 몇몇 풍자들과 맥락을 같이합니다(시편 115,5-8; 135,15-18; 이사 40,19-20; 41,6-7; 44,9-20; 예레 10,3-5; 바룩 6). 그러나 여기에서는 귀머거리이며 벙어리인 우상들에 관한 담론 대신, 우상 숭배 사제들의 사기 행각을 고발하는 생생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러한 풍자는 피상적일 수 있지만, 이교 의식에 관해서 유다인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잘 보여 줍니다. 잃어버린 셈족 말(히브리 말 또는 아람 말) 본문을 각각 그리스 말로 번역한 칠십인역과 테오도시온은 이 14장에서도 상당한 차이를 드러냅니다. 우리말성경은 여기에서도 테오도시온이 번역됩니다. 
②14,31에 다니엘이 사자 굴에서 살아 나온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6장의 이야기가 형식과 내용을 달리하여 여기에 다시 나옵니다. 전혀 다른 역사적 맥락 속에서 전개되는 이 이야기에는 하바쿡 예언자가 등장하는 반면에, 공적 박해에 관한 시사는 완전히 사라집니다. 이로써 이 이야기가 후대의 작품임이 드러납니다.
③하바쿡(Habakkuk ;ΑΒΒΑΚΟΎΜ) 예언자에 대해서는 알려진 내용이 없습니다. 히브리 말 성서의 다른 경전들은 물론, 하바쿡서 자체도 그의 생애나 인물에 대해서 확실한 것은 하나도 말하지 않습니다. 반면에 하바쿡이라는 이름으로 전해지는 이 예언서가 널리 퍼진 다음에는, 하바쿡이 이를테면 전설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사자 굴에 던져진 다니엘에 관한 장면에서(다니 14,33-39) 특정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나오기도 합니다.
 
6.다니엘서의 신학적 메시지
1) 신앙과 종교 생활의 근본 요소
다니엘서는 여러 이교 문화 앞에서, 이스라엘의 유일신론이 그 모습을 뚜렷이 드러냅니다. 그뿐만 아니라 특별히 생명을 잃는 위험까지도 감수해야 하는 신앙의 위대함을 찬양합니다. 다니엘서에는 삶의 갖가지 상황에 직접 관련되는 개인기도 외에도(13,42-43), 히브리/아람 말로 쓰인 본문과 그리스 말로 쓰인 첨가 부분에 두 개의 참회기도(3,25-45; 9,4-19)와 한 개의 찬미가(3,52-90)가 보존되어 있습니다. 
2) 역사 신학
하느님께서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당신의 신비한 계획을 실행하십니다. 이러한 사실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기 위하여, 다니엘서의 저자는 근동의 역사에서 꼬리를 물고 이어가는 제국들을 보여 줍니다.역사는 이미 여러 가지 상징으로 표현되는 마지막 심판을 향하여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심판의 예고는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임금의 통치가 빚어내는 비극적 상황과 직결되고 이러한 예언은 위기 때마다 항구한 현시성을 지니게 됩니다. 요한 묵시록은 같은 방식으로 로마 제국을 그려 냅니다. 기원후 70년 예루살렘이 파괴된 뒤 다니엘서에서 위로의 메시지를 얻기도 합니다. 역사신학적 전망에서 다니엘서의 업적은 크다고 봅니다. 다니엘을 중심으로 아시리야-바빌론-(메디아;후에 페르시아제국에 합병)-페르시아-그리스(셀레우코스왕조)-로마 등의 역사가 일목요연하게 전개되는데 그 역사의 큰 흐름 안에 하느님의 주도하심을 말하려는 저자의 깊은 의도를 알아채야할 것입니다. 
3) 희망의 메시지-부활사상
다니엘서에 이르러(12,1-3)이른 바 부활 사상이 나타났는데, 그러나 내세에 대한 믿음이 모든 사람에게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특별히 사두가이와 벤시라 같은 보수파는 이 신심을 반대했고 후대 바리사이파는 이 믿음을 선택하여 적극적으로 신봉하였습니다. 순교자들의 거룩한 희생을 숙고하는 것이 유다교 사상 안에서 내세에 관한 믿음을 정립하는데 크게 영향을 끼쳤음을 의심할 수 없겠습니다. 
계시의 최종적 발전은 이 교의를 단순히 확인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장차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이해할 수 있는 틀이 마련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다니엘서는 예언자들의 신학과 신약성서의 메시지를 결부시키는 데에 이바지합니다. 기원전 2세기 말에는 부활과 최후의 심판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졌고 신약에 이르러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결정적으로 확언 되어 그리스도교의 신조가 되었습니다. 
<다니엘예언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