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호세아 예언서부터 통상 ‘저술 예언자’라고 부르는 소예언서를 시작합니다. 년대별로는 아모스서가 먼저이지만 히브리 말 성경과 대중 라틴 말 성경, 그리스 말 칠십인역에서도 열두 소예언서 첫머리에 호세아서가 자리잡습니다. 구약 성경 안에 예언자의 이름으로 전해지는 예언서를 남긴 이들을 통상 저술(著述)예언자 또는 문서 예언자라고 부르는데 이처럼 책 제목으로 나오는 이들만 예언자로 활동한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다른 예언자들과 구분하기 위해서 이 예언자들을 저술예언자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호세아예언자는 아모스예언자 보다 10년쯤 후에 등장하였습니다. 정의의 예언자라불리는 아모스는 주로 지도층의 부정부패를 고발하였고 호세아는 이스라엘백성들의 우상 숭배로 인한 타락을 신랄하게 고발합니다.
②구약성경 전통은 예언서들을 전기예언서와 후기예언서로 나눕니다. 후기예언서에 속하는 책들은 예언자들이 하느님께 받은 말씀을 글로 기록하여 후대에 남긴 문서집들로서 통상 저술예언자라고 부르게된 예언서들입니다. 이러한 기록은 주로 예언자들의 제자집단에서 전승된 것으로 봅니다. 엘리야로부터 말라키에 이르기까지 예언서의 특징은 신탁(神託)입니다. “...께서 말씀하신다”는 예언자들의 고정적인 선포방식으로서 위협적인 경고의 신탁에는 하느님의 책망이, 약속의 신탁에는 하느님의 권고가 틀림없이 따릅니다. 이러한 신탁들은 예언자의 영적교감(靈的交感)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전기예언서
유다교에서는 전통적으로 여호수아기, 판관기, 사무엘기 상·하권, 열왕기 상·하권을 ‘전기 예언서’라 부르는데, 이렇게 부르는 이유는 무엇보다 유다교의 전통에서는 ‘역사서’의 대부분을 예언자들이 쓴 것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이 판관기와 사무엘기 일부를 썼고, 가드 예언자가 사무엘기를 완성하였으며, 예레미야 예언자는 열왕기의 저자라고 여깁니다. 여호수아기는 여호수아가 직접 쓴 것으로 간주되는데, 그는 집회 46,1에서 예언자로 소개됩니다. 또한 많은 예언자들이 이 역사서들 안에 등장합니다. 열왕기의 절반 가까이는 예언자들에 관한 이야기로 채워져 있습니다(47장 가운데에서 22장이 할애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역사서 안에서 예언자들은 이스라엘 역사의 중요한 시점에 늘 등장하여 정치에 관여하였습니다.
▶후기예언서
46-35. 호세아서 ;Hosea ;ΩΣΗΕ (호세/Ho)
46-36. 요엘서 ;Joel ;ΙΩΗΛ (요엘/Jl)
46-37. 아모스서 ;Amos ;ΑΜΟΣ (아모/Am)
46-38. 오바드야서 ;Obadiah ;ΑΒΔΙΑΣ (오바/Ob)
46-39. 요나서 ;Jonah ;ΙΩΝΑΣ (요나/Jon)
46-40. 미카서 ;Micah ;ΜΙΧΑΙΑΣ (미카/Mi)
46-41. 나훔서 ;Nahum;ΝΑΟΥΜ (나훔/Na)
46-42. 하바쿡서 ;Habakkuk ;ΑΒΒΑΚΟΎΜ (하바/Hab)
46-43. 스바니야서 ;Zephaniah;ΣΟΦΟΝΙΑΣ (스바/Zp)
46-44. 하까이서 ;Haggai;ΑΓΓΑΙΟΣ (하까/Hg)
46-45. 즈카르야서 ;Zechariah;ΖΑΧΑΡΙΑΣ (즈카/Zc)
46-46. 말라키서 ;Malachi;ΜΑΛΑΧΊΑΣ (말라/Ml)
▶기원전 8세기 중엽에 북 왕국 이스라엘에서 아모스와 호세아가, 남 왕국 유다에서 제1이사야(이사 1─39장)와 미카가 활동합니다. 유다왕국의 마지막시기에 스바니야, 나훔, 하바쿡, 예레미야, 오바드야가 등장합니다(기원전7세기). 에제키엘과 제2이사야(이사 40─55장)는 바빌론 유배지에서(기원전 6세기) 활동한 예언자입니다. 귀향 후 5세기에 하까이, 즈카르야, 제3이사야(56─66장), 4세기에 말라키, 요나, 요엘, 2세기에 다니엘서의 말씀이 선포됩니다.
46-35.호세아서 ;Hosea / ΩΣΗΕ (호세/Ho)
1.호세아의 이름
호세아(Hoshea)는 ‘하느님께서 구원하신다’는 의미의 이름입니다. 민수 13,16에 따르면 모세는 에브라임 지파 소속 눈의 아들 호세아에게 ‘주님께서 구원해 주신다’를 뜻하는 여호수아(yehosua)로 이름을 바꾸어줍니다. 호세아(Hoshea)는 ‘구원’ 이라는 의미를 가진 히브리말인데 ‘주님(= 야훼)께서 구원하신다’‘주님께서 구원해 주신다’를 뜻하는 여호수아(yehosua)라는 이름 안에는 야훼라는 하느님의 이름이 준말 형태로 분명하게 들어가 있습니다. 이 이름이 그리스 말을 하는 유다인들에게는 “예수”라고 불리게 되는데 유다인들은 이 이름을 ‘예수아’ 또는 ‘예호수아’로 부르기도 합니다. 호세아는 기원전 8세기 중후반기에, 에프라임이라고 불리는 북 왕국, 곧 이스라엘에 살면서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였습니다.
✻북왕국을 에프라임이라고 부른 것은 통일이스라엘이 분열된 후 북왕국의 초대임금이 에프라임 지파 느밧의 아들 예로보암이었기 때문입니다.
2.호세아서의 역사적 배경
1)북왕조 이스라엘 역사
①1,1에는 이스라엘 왕국의 임금이 한 사람만 소개되는데 바로 예로보암입니다. 예후 왕조에 속하는 이 예로보암 2세 치하에서 이스라엘은 상당 기간 번영을 누립니다. 그러나 예로보암 다음 임금이 등극한 뒤에 얼마 지탱하지 못하고 끝이 납니다. 호세아는 1,4에서 바로 이 왕조의 멸망을 예고합니다.(호세아 예언자가 활동하던 시대에 이스라엘과 유다 왕국을 다스린 임금들과 그들의 통치에 관한 이야기는 2열왕 14,23─17,23에 전해진다).
②북 왕국의 불안한 국내 정치 상황은 국제 정세의 여러 불안정한 조건을 그대로 반영합니다. 이 시기는 아시리아가 근동의 패자로 부상하던 때입니다. 티글랏 필에세르 3세와 그의 후계자들인 살만에세르 5세와 사르곤 2세는, 여러 차례에 걸쳐 서부 지역 원정을 단행합니다. 그리하여 시리아의 여러 아람 왕국, 페니키아의 도시 국가들, 이스라엘 왕국, 그리고 필리스티아 도시 국가들이 이 강력한 팽창주의의 파고 속에 휘말리고 맙니다. 유다 왕국도 화를 완전히 면하지는 못하지만(호세아와 거의 같은 시기에 활동한 이사야의 가장 오래된 신탁들에서 이 극적인 사건의 반향을 볼 수 있다.), 형제 나라이면서 동시에 적국인 북 왕국보다 한 세기 이상 더 지탱합니다. 이 시기에 근동의 또 다른 강대국 이집트는 쇠약한 가운데에서도, 아시리아가 정복한 여러 지역의 봉기를 선동하면서 연맹을 주도합니다.
③호세아 예언서는, 이스라엘 왕국이 아시리아와 이집트 이 두 강대국 사이에서 계속 균형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7,11). 그러나 그 균형은 깨질 수밖에 없는 것으로서, 호세아는 그러한 노력의 비극적 결말을 날카롭게 직시합니다. 지금 평온한 것은 아시리아라는 거대한 물결이 들이닥치기 직전의 평온일 따름이라는 것입니다.
④북왕국임금 치세 년표
다윗왕조의 솔로몬 사후 통일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열(933)➜북왕국의 초대임금 예로보암1세 933-911➜나답 911-910➜바아사 910-887➜엘라 887-886➜[엘라의 장교 지므리 7일간]➜오므리 886-875➜아합 (예언자:엘리야) 875-853➜아하즈야 853-852 ➜요람 852-841➜예후(예언자: 엘리사) 841-814➜여호아하즈 814-798 ➜여호아스 798-783➜ 예로보암2세(Jeroboam;Ἱεροβοὰμ)783-743(예언자:아모스)➜즈카르야 743(6개월) ➜샬룸 743(747)-746 ➜므나헴746-738 ➜프가흐야 738-737 ➜ 페카 737-732 ➜ 호세아732-724 (예언자: 호세아) ➜ 호세아임금9년 사마리아멸망 722/721
2)북왕국 마지막임금 호세아(732-724)
①호세아는 페카를 암살하고 북 왕국의 마지막 왕이 되었습니다. 호세아는 아시리아의 강력한 티그랏 필에세르가 죽고 살만에세르 5세가 즉위한 후 이집트의 도움으로 반 아시리아정책을 폈으나 실패하였고 호세아 9년 살만에세르 5세에게 멸망합니다.
②현명한 지도자가 있는 강대국이라 해도 존속이 불가능했던 시기에 북부 이스라엘은 일종의 무정부상태로서 국가의 기능이 마비된 상태였습니다. 예로보암2세가 죽은 뒤 10년 미만의 시기에 왕이 다섯 번 바뀌었습니다. 예로보암 2세는(2열왕 14,23-29)샬룸의 반란으로 죽고(그 사이에 6개월간 그의 아들 즈카르야가 즉위했으나 암살 되었다), 샬룸은 1개월 후 므나헴에게 죽고 그 아들 프가흐야가 즉위했으나 부관 페카의 반역으로 암살됩니다(이 혼란기의 임금연대는 오차가 존재하는데 여기에서는 영역본예루살렘바이블 연대를 기본으로하였다). 페카 즉위 후 호세아왕이 반란을 일으켜 호세아는 페카를 암살하여, 732년 북 왕국의 마지막 왕이 되었습니다.
③호세아임금은 이스라엘의 마지막 땅이라도 구하기 위하여 아시리아에 굴복했지만 때가 되면 돌아설 속셈이었는데 티그랏 필에세르가 죽고 살만에세르 5세가 즉위한 후 호세아는 결단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이집트에 원조를 청하면서 아시리아에 조공을 바치지 않았습니다. 호세아가 교섭한 이집트왕 소(So)는(2열왕 17,4) 무력한 왕이었고 실상 원조는 오지 않았습니다.
④호세아의 왕위 등극 9년 후, 북 왕국은 아시리아의 티그랏 필에세르의 아들 살만에세르 5세에게 722년 멸망하였습니다. 북왕국 주민들은 아시리아에 의해 강제 추방되었습니다(아시리아에 의한 2차 유배로 아시리아 임금 실록에 의하면 사르곤2세 722-705에 의해 실행되었다).
3) 종교적 위기
①윤리적 타락
❶임금호세아와 같은 이름으로 이 시기에 등장한 예언자호세아가 강력하게 공격한 이교신앙은, 그들이 종교라는 이름아래 행하던 추태, 방탕, 음행들이 민족의 특성을 좀먹으면서 표면화된 것이었습니다. 내부의 단결력도, 신학적 기조도 없이 집권자가 바뀔 때마다 배는 암초를 향하여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더욱이 수많은 가나안족들이 흡수됨으로써 이교신앙문제가 대두되었고 계약의 법은 실제적으로 무의미하게 되었습니다. 지방의 산당들 중에는 확실히 공공연하게 이교적 색채를 띤 것이 많았던 것으로 보이며(호세 1─3장), 공식적인 예배에도 이교에서 기원하는 의식들이 흡수된 것 같습니다(아모 2,8;5,26). 성직자들은 이러한 풍조에 비난도 조장도 하지 않았고(아모 7,10-13) 예언자집단의 항의도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스라엘은 아직 그 규범적 신앙의 본질적 특성들 곧 선택, 계약, 약속 등에 집착하고는 있었지만 하느님신앙은 이교와 다름없는 종교로 변질될 위험에 처해있었습니다.
❷호세아는 이스라엘의 깊은 도덕적 타락, 곧 온갖 사회 정의의 부재와 그것에 따른 지도층의 책임을 고발합니다. 그는 바로 종교적 불충이 온갖 부패의 뿌리이고 모든 불행의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호세아가 맨 먼저 이스라엘인들에 대한 하느님 요구의 순수성과 절대성을 강조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예컨대 엘리야 시대와 비교해 볼 때(1열왕 18) 호세아가 직면한 상황은 더 많은 위험을 안고 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②종교혼합주의의 위험
❶가장 위험한 것은 가나안 신들에 대한 유혹입니다. 사람들은 이 신들을 자기들의 하느님이신 주님의 자리까지는 아니라 할지라도, 최소한 그분 곁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마음이 끌리게됩니다. 가나안의 신들은 자연의 힘 곧 비와 뇌우, 그리고 땅의 풍요 다산을 관장함으로써, 농경 생활의 여러 가지 필요를 채워 주는 전문가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조상들의 하느님을 버리지 않는 모든 예방책을 강구한다면, 이 가나안 지방 신들의 호의도 동시에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❷이스라엘사람들은 바알과 하느님을 조화시키려 했고 자신들의 신앙을 정리한 것이, 하느님께서 땅을 주셨고 바알은 풍작을 해 주는 추수의 神이라고 믿음으로서 종교 혼합주의(Syncretism)를 초래합니다. 혼합주의(混合主義)는 본질적으로 상이한 성격을 가진 여러 믿음을 조화롭게 공존시키고 다양한 사상들을 융합하는 것을 가리키는데 특히 종교적 영역에서 근본이 전혀 다른 전통을 하나로 합하고 조화시키려는(습합;習合)시도로 흔히 나타납니다. 결실의 神이라고 믿는 바알의 결실은 바알과 아세라 여신 사이의 성행위에 의한 것으로 믿는 것이라서, 사뭇 퇴폐적인 이교적 종교 의식으로 인하여 하느님 신앙의 위기는 위험수위에 도달한 것입니다.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에게 이와 같은 종교적 타협은, 예전에 조상들이 스켐에서 계약을 맺을 때에 그만두었지만(여호 24) 그 뿌리가 여전히 남아 있던 옛 관습으로 돌아가는 것일 따름이었기에 타협이 쉽게 이루어진 것입니다.
❸사람들은 가나안의 신들이 여러 특권을 가졌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호세아는 가나안의 종교 의식뿐만 아니라, 그 어휘 그리고 상징과 관련해서도 결코 타협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 널리 퍼져 있는 관습을 사정없이 배척합니다. 곧 바알이라는 용어의 사용입니다. ‘주인’을 뜻하는 이 낱말은 본디 가나안의 어떤 신의 이름입니다. 또 이 낱말은 아내가 남편을 가리키는 명칭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에서는 주 하느님을 지칭하는 데에도 이 바알을 쓰는 관례가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호세아는 이 바알이라는 말을 소리 내는 것조차 싫어합니다(2,19). 이렇게 다른 신들을 가리키는 이 이름이 바로 주님을 가리키는 데에도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2,18).
❹신상(神像)을 세우는 것을 절대적으로 배척한 데에도 이와 유사한 요인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물론 사람들은 신상이 신 자체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신의 상징일 따름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인들은 북 왕국의 성소들에 있는 황소들도(호세아는 조롱조로 “송아지”라고 부른다.) 신의 재현이 아니라 그의 상징으로 내세우려고 하였습니다. 가나안에서는 신들을 어떤 짐승 위에 선 인간의 모습으로 재현하곤 하였습니다. 그래서 보이지 않으시는 하느님은 그대로 두고 주님의 초월성에 맞갖은 존경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친숙한 상징들을 사용함으로써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종교적 언어로 말하는 것이라고 자신들의 태도를 정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언자는 이 점에 대해서 매우 강경한 자세를 보입니다. 바로 그러한 관습이 종교적 타협의 표지가 되기 때문입니다(호세아의 이러한 태도는 1코린 8─10장에서 바오로 사도가 희생 제물로 바친 짐승 고기와 관련해서 보인 태도에 비길 수 있다).
4) 사회적 위기
북이스라엘은 속수무책으로 침몰하는 배와도 같았습니다. 갖가지 음모와 반대 계략들 또한 한 파벌이 지나면 다음 파벌이 나타나 국가를 이리저리 꿰어 맞추는 혼란(호세 5,13;7,11;21,1),법과 질서가 완전히 무너져 생명도 재산도 안전하게 지키지 못했던 어지러운 세태(4,13;7,1)등, 공공연히 자행된 사회범죄는 사회구조를 분열시키고 형제간, 계급간 비극을 만들어 마침내 이스라엘은 극한상황에 이르렀습니다. 북이스라엘사회의 두드러진 병폐는 언어도단(言語道斷)의 부정불의(不正不義)와 극단적인 빈부(貧富)의 격차였습니다. 고대 사회의 체제자체가 가혹했지만 부자들의 탐욕으로 더욱 가혹해졌으며 부자들은 자기의 재산을 늘리기 위해 가난한자들의 곤경을 무자비하게 이용했고 교활한 사기수단으로 富를 이루는 목적을 달성했습니다. 재판관들 역시 뇌물을 받아 매수되어 공정한 재판이란 불가능했으므로 가난한자들을 위한 구제책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재산을 강탈당하고 자기 땅에서 쫓겨나는 자의 수가 늘어났습니다. 이 무렵 이스라엘의 사회구조가 체질변화를 겪은 것은 사실입니다. 이들은 본디 부족공동체였으나 王政이 시작되면서 조직화된 사회 안에서 특권계급이 생겨나고 계약의 백성을 결속시켜주던 부족의 유대는 약화되었으며 연대적(連帶的) 단결은 파괴되었습니다. 북이스라엘은 다윗왕조의 왕정을 거부하고 부족연맹을 유지하기 위해 남유다와 결별 하였으나 부족연대가 붕괴된 것입니다.
5)새로운 관계
①호세아가 단죄하는 것은 제의(祭儀)나 제사 자체가 아니라, 그러한 종교 생활을 이끄는 정신, 곧 의식을 정확히 거행하면 하느님의 호의를 자동적으로 획득할 수 있다는 확신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사랑과 진리가 들어 있지 않은 신심 행위만으로 불러올 수 있는 분이 아니십니다(5,6그들이 양 떼와 소 떼를 거느리고 주님을 찾아가도 찾아내지 못하리니 주님이 그들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분께서는 진정한 회개의 표현과, 일상의 행동들을 통해서 자신을 내놓는 사랑의 증거를 바라십니다. 죄인인 인간이 마침내 이러한 사랑의 진리를 생활화하게 해 주실 수 있는 분은 하느님뿐이십니다. 2,20-22가 이러한 사실을 선포합니다.
②주님께서는 옛 계약에서 요구되는 정의와 공정에 애정과 자비를 보태실 것입니다. 또 당신과 당신 백성 사이에 새로운 형태의 관계를 정립하실 것입니다. 이는 진리, 그리고 애정 어린 친교의 표상들로 표현되는 관계, 온전히 내적 성실성 안에서 이루어지는 관계입니다. 호세아에게서 큰 영향을 받은 예레미야는 이것이 바로 새 계약이며, 이러한 계약을 세우기 위해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마음을 바꾸시리라고 말하게 됩니다(예레 31,31-34).
③호세아의 메시지는 질타와 위협으로 그득합니다. 그러나 거기에 주의를 촉구하는 또 하나의 대조가 있습니다. 바닥 깊은 데에서는 호세아의 메시지가 자애와 희망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역사적 정황과 사람들의 태도는 어두운 모습만을 만들어 냅니다. 그러나 주님의 이름으로 선포되는 질타는(이것은 실망한 사랑의 질타이기 때문에 그만큼 격렬할 수밖에 없다.) 홀연히 그 무엇도 좌절시킬 수 없는 사랑의 토로로 바뀌게 됩니다. 시작이 사랑이었던 만큼(9,10; 11,1) 끝도 사랑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하여 사랑은 분노를 이길 뿐만 아니라(11,6-9) 죄까지 없애 버릴 것입니다(14,5).
6)북왕국 이스라엘의 몰락에 대한 반성(2열왕 17)
①사마리아인의 기원
기원전 722년, 북 왕국은 아시리아에게 멸망합니다. 살만에세르가 죽고 즉위한 사르곤2세는 722/1년 이스라엘인들을 사마리아에서 추방하였고 사마리아에는 아시리아, 바빌론, 쿠타, 아와, 하맛, 그밖의 지방에서 끌려온 사람들을 정착시켰습니다(2열왕 17,24). 아시리아인들은 정착하는 곳마다 자신들이 각자 가지고 온 신을 섬기는 사원을 짓고 이스라엘이 사용하는 산당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신을 숭배하였습니다. 사마리아에 남아있던 사람들은 그들의 방식을 유지했고 이스라엘이라는 특별함은 사라졌으니 이것은 오랫동안 계속되었습니다. 그후에도 이곳으로 온 다른 종족과 함께 이스라엘 잔류주민들과 뒤섞이어 후대에 이들의 후손을 사마리아인이라 부릅니다. 사마리아인들에 대한 멸시, 에즈라의 축출 등은 이러한 인종혼합에서 비롯되었습니다.
②반성 (2열왕 17,7-23)
북 왕국은 사라졌습니다. 왕국 설립 후 200년 만의 일입니다. 이 본문은 북왕국 몰락의 배경이 비통한 심경으로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들은 사람이 사는 곳이면 어디에나 산당을 세웠고, 높은 언덕과 우거진 나무 그늘에 바알 석상과 아세라 목상을 세우고, 이교의 온갖 퇴폐적인 행위를 일삼았으며, 자신의 아이들을 불살라 바쳤고, 점쟁이나 술객에게 운수를 보면서 살았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자유를 잃은 노예 신세가 되어 하느님의 뜻을 저버리고 생명을 잃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언자들을 보내어 회개와 순종을 시도하였으나 예언자들의 경고를 무시했습니다. 그들은 헛되고 무가치한 그들의 우상을 닮아서 살았으며 모세의 염려대로 계약에 불순종했습니다. 예로보암은 자신의 왕국을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 우상을 만들어 백성들에게 바알숭배의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유능한 왕이었으면서도 북왕국의 이교화에 앞장선 아합왕, 자만과 무절제로서 축복의 기회를 잃은 예후는 그렇게 신생왕국 북이스라엘을 멸망으로 이끌었던 것입니다.
7)예언자의 등장
이와 같은 중차대한 시기에 이후 연이어 나타나는 이른바 후기예언자들로 분류되는 저술예언자 두 사람이 이스라엘의 역사에 등장하는데 그들이 아모스와 호세아입니다. 이들은 결코 같은 성격의 인물은 아니나 독특한 방법으로 당대의 악습을 공격하였습니다. 아모스와 호세아 이 두 사람은 이스라엘 역사 전 과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혁신가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전통을 시대 상황에 적응시킨 인물들입니다.
3.예언자호세아의 활동시기
①예언자호세아는 북왕국의 유일한 저술 예언자로서 성경에 처음 등장하는 인물이며 기원전 8세기 후반기에, 에프라임이라고 불리는 북이스라엘에 살면서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였습니다.
②예후 왕조에 속하는 예로보암 2세 치하에서 이스라엘은 상당 기간 번영을 누립니다(787-747년). 그러나 이 예후 왕조는 얼마 지탱하지 못하고 끝을 고합니다. 호세아는 1,4에서 바로 이 왕조의 멸망을 예고합니다. 호세아 예언자가 활동하던 시대에 이스라엘과 유다 왕국을 다스린 임금들과 그들의 통치에 관한 이야기는 2열왕 14,23─17,23에 전해집니다. 호세아의 신탁은 예로보암 2세에 시작되었으나 아모스 보다는 10년 정도 후에 활동합니다.
③호세아서의 연대는 기원전 8세기의 3/4분기에 해당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이집트와 아시리아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려는 이스라엘의 노력에 대한 수많은 암시, 그리고 무엇보다도 왕위 계승을 끊임없이 뒤집어 놓는 왕궁 내의 음모에 대한 신랄한 비난(이를 전하는 7장)등이 또한 이 책 전체를 같은 시대에 연결시키는 표지들입니다.
④이미 여러 학자가 말한 대로, 호세아서의 첫 절은 사마리아의 멸망 뒤에 유다 땅에서 쓰여진 것이 거의 틀림없을 것입니다. 이 밖에도 호세아서 전체에 걸쳐 이 책이 유다에서 편집되었다는 표시들을 볼 수 있습니다. 글자로 기록된 이 예언자의 메시지 전체에 대한 반향이라고 할 수 있는 마지막 절 역시 편집자가 쓴 것으로 여겨집니다.
❋성경편찬 1단계는 [오경과 역사서]로서 5세기후반 히브리어 구약성경 율법서, 역사서가 편집 되었는데 BC500-400년 사이에 편집된 이사야서3부, 하까이서,즈카르야서,말라카서,오바드야,역대기,요엘서,요나서 등이 있고 바빌론에서 에즈라가 편집하고 귀향 후 봉독한 오경이 있다. 성경편찬2단계는 [대·소예언서전체]로서 BC400-300 2세기말까지 예언서 전체가 편집 되었다. BC 300-200 구약성경 편집의 세 번째 단계에서 미드라쉬교훈서(토빗,유딧,에스테르),지혜문학과 시편 등이 수집 편집 되었다. 다니엘서,마카베오기 등이 160-100년 편집되었고 기원전 2세기를 전후하여 구약성경의 정경화 작업이 마무리된 것으로 본다.
4.호세아서의 화법
①호세아가 말씀들을 직접 기록한 것은 일부분이라 할지라도, 그것들이 충실히 전해졌다는 점은 충분히 인정할 수 있습니다. 매우 개인적인 성격의 언어와 문체가 이 사실을 강하게 뒷받침해 줍니다. 그의 문체는 열정적이고 격렬하며, 그의 언어는 강력하고 힘이 넘칩니다. 표현의 간결성, 축약성, 부조화 등은 매혹적인 시의 모습을 부여하면서도, 또한 이것들은 호세아서를 히브리 말 구약성서에서 가장 난해한 책 가운데 하나로 만듭니다. 따라서 호세아서는 본문 비판과 관련해서 추측에 따른 수정이 가장 많이 이루어지는 책이기도 합니다.
②북왕국의 마지막 수년동안 호세아가 이스라엘 왕국에 살며 활동했다는 것을 확실한 것으로 보는 학자들도 있지만, 호세아가 사마리아의 파멸을 가리키는 표지들은, 호세아의 말을 책으로 만들기 위해 자료를 수집할 당시의 유다 왕국 출신 편집자가 덧붙인 것으로 추정하기도합니다. 호세아는 사실 북왕국의 유일한 저술예언자입니다. 이 말은 곧 우리에게 비교 가능성이 없다는 것과, 호세아신탁의 특수성을 인정해야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③형식상으로 호세아는 동시대의 아모스나 이사야,미카와는 구별됩니다. 또한 그의 화법에서 즉시 받는 인상은 비상(非常)한 정열입니다. 호세아가 이 정열을 하느님의 말씀에 결부시킨 것으로 또는 하느님께서 호세아를 하느님자신의 열정에 끌어들이신 것으로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호세아에게 어떤 뜨거운, 불타오르는 것을 경험하게 하는데 이것은 호세아예언자의 소식에만 들어있는 특수성입니다.
5.호세아의 결혼과 상징
①호세아는 근본적으로 깨어진 하느님에 대한 이스라엘의 이 관계를 자신의 혼인에 비교하여 묘사하고 하느님의 분노와 그 백성의 배신에 관한 소식을 이 혼인에서 생긴 아이들의 상징적인 이름으로 선포했습니다. 1,4-9의 첫 아들 ‘이즈르엘’은 이스라엘 땅을 가리키면서 동시에 이스라엘 정변(政變)역사에 뿌리를 둡니다. 두 번째 딸의 이름 ‘로 루하마’는 ‘가엾이 여김을 받지 못하는 여자’ 세 번째 아들 ‘로 암미’는 ‘나의 백성이 아니다’라는 뜻입니다.
②호세아의 혼인 생활이 정확히 어떠하였든 간에 (그리고 더 정확히 말해서, 3장이 그의 두 번째 혼인을 말하든, 아니면 아내와 헤어졌다가 재결합하는 것을 말하든 간에) 그것이 그 자체로서, 또는 단순히 호세아와 그의 부정한 아내 사이의 일로 소개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그분께서 당신 백성으로 선택하신 민족 사이에 맺어진 관계의 상징으로 제시된다는 사실에 주목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자녀들의 상징적인 이름, 그리고 끊임없이 2인칭에서 3인칭으로, 단수에서 복수로 오가는 변화, 똑같은 질책을 하면서 그 대상을 어미에서 자식들로, 또 자식들에서 어미로 바꾸어 가는 의도적인 혼동 등, 이 모든 것은 호세아의 혼인과 관련된 이 비통한 이야기가 단순히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청중 또는 독자에게 ‘교훈을 주기 위한 것’(1코린 10,11)임을 뜻합니다(호세 14,10 참조).
③호세아가 “창녀”와 혼인 생활을 한다는 1─3장의 이야기는, 성경 해석에서 지속적으로 가장 많은 논란을 일으켜 온 문제 가운데 하나입니다. 호세아 혼인 이야기의 일화(逸話)적인 측면이 이 예언자가 전하는 메시지와 비교할 때에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호세아가 실제로 자기의 혼인 생활에서 극적인 체험을 하였고, 그러면서도 그 자신은 다른 이들에게 어떠한 의미를 전달하는 표상으로서만 행동하였을 가능성이 전혀 없지 않다는 점은, 결코 간과해 버릴 수 없는 사실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호세아의 혼인 생활은 꾸며 낸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사실입니다. 호세아의 아이들은 상징적인 이름을 가지는 데 반해서, 아이들의 어머니 고메르는 그렇지 않습니다. 만일 혼인 이야기가 단순한 허구에 불과하다면, 이 은유의 무게 중심이 바로 호세아의 아내 고메르에게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여자의 이름 역시 평범한 고메르가 아니라 상징적 의미를 지녀야 할 것입니다.
④호세아의 혼인은 허구가 아닙니다. 그것은 실제이면서, 그러나 동시에 하나의 상징입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이 일화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밝혀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뿐더러 별 소용이 없는 일입니다. 이 혼인은 예언자들이 흔히 하는 것과 같은 예언적 행동으로서(이사 20,1-6; 사도 21,10-14 참조), 행동 그 자체에서 의미가 흘러나옵니다. 호세아서의 경우에는 책 전체가 1─3장에 서술된 이 예언적 행동에 대한 해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⑤3장이 호세아의 새로운 혼인, 고메르가 아닌 다른 여자와의 새로운 생활을 이야기하는지에 대해서 그동안에 많은 토론이 있어 왔으나(번역상의 문제도 존재하고) 3장이 계속 고메르와 관련될 가능성이 더 큰 것으로 여겨집니다. 여기에서 고메르에 대한 호세아의 사랑, 곧 당신 백성에 대한 주님 사랑의 심화를 볼 수 있습니다.
⑥호세아는 자기 아내가 그냥 단순히 부정(不貞)한 것이 아니라, 절망적일 정도로 부정하다는 사실까지 알고 있습니다. 1,2에서 “창녀”를 가리키는 일반 명칭이 아니라 ‘창녀짓’이라는 흔하지 않은 표현을 사용한다는 것이 상징적입니다. 고메르는 일반 창녀가 아니라, 가나안인들에게서 유래하는 ‘풍요 다산의 제의(祭儀)’와 깊은 관련이 있는 여자로서, 그것의 감각적이고 성적인 의식에 참여한 것이 거의 틀림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이 사실을 암시하는 2,4.15; 4,13-14 등 참조).
⑦이러한 부류의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이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당신 백성에 대한(타락한 백성들) 주님의 사랑 역시 그렇게 어리석은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호세아가 고메르에게 애착을 가지고 그를 다시 아내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응답이 없는 일방적인 사랑이라 하더라도, 그 사랑의 놀라운 심화를 뜻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⑧오로지 남편과만 지내는 완전한 고립이라는 시련만이 고메르를 반성과 회개로 이끌 수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역시 자기의 모든 복, 곧 종교적 복, 그리고 하느님과의 특수 관계로 이해되는 모든 복을 완전히 박탈당함으로써만 자신을 돌아보고 하느님께 돌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3장은 동시에, 고메르가 부정을 저지르는 그 시간에도 호세아가 그 여자에게 품고 있는 애정을 드러내 보입니다. 고메르가 바로 그렇게 부정한 여자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이 자기의 죄악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데, 바로 그러한 죄악에도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이 백성에게 애정을 품으시는 것입니다. 당신 백성에게 갖는 주님의 이 사랑만이 그들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⑨호세아는 고메르를 있는 그대로 사랑함으로써, 당신 백성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이해하고 그것을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호세아 예언서에서 사랑이 분개와 분노를 극복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 사랑이 그저 순진하거나 무지하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것은 고통으로 다듬어진 사려 깊은 사랑이며, 어떠한 시련에도 주저앉지 않는 사랑입니다.
6.호세아 예언서의 구조
이미 여러 학자가 말한 대로, 호세아서의 첫 절은 사마리아의 멸망 뒤에 유다 땅에서 쓰여졌다는 것이 거의 틀림없고 마지막 절 역시 편집자가 쓴 것으로 여겨집니다. 호세아신탁의 기본적인 소여성(所與性)의 두 가지는 ❶가나안 생산신(生産神)에 의한 부족들의 하느님신앙의 해체와 ❷이스라엘의 특수한 국가적,정치적 구조입니다. 전체14장의 호세아 예언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1부 1,2-3,5]
호세아의 혼인 생활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그에 대한 개인 설화와 이 설화에 비추어 이스라엘과 주님의 관계를 설명합니다. 호세아예언서는 책 전체가 1─3장에 서술된 이 예언적 행동에 대한 해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1유다 임금 우찌야, 요탐, 아하즈, 히즈키야 시대에, 그리고 이스라엘 임금 여호아스의 아들 예로보암 시대에 브에리의 아들 호세아에게 내린 주님의 말씀.2 호세아를 통하여 주님께서 하신 말씀의 시작. 주님께서 호세아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가서 창녀와 창녀의 자식들을 맞아들여라. 이 나라가 주님에게 등을 돌리고 마구 창녀 짓을 하기 때문이다.”3호세아는 가서 디블라임의 딸 고메르를 아내로 맞아들였다. 그 여자가 임신하여 그에게 아들을 낳아 주자,4주님께서 호세아에게 말씀하셨다. “그의 이름을 이즈르엘이라고 하여라. 머지않아 나는 이즈르엘의 피에 대한 책임을 물어 예후 집안을 벌하고 이스라엘 집안의 왕조를 없애 버리리라.
①호세아는 본디 “창녀”와 “창녀의 자식”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명칭을 쓰지 않고 “창녀 짓의 여자”와 “창녀 짓의 자식들”이라는 보기 드문 표현을 사용합니다. 그런데 3절에서 호세아의 아내로 나오는 고메르에게 이 표현을 어떤 뜻으로 적용해야 하는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호세아와 혼인하기 전에 창녀였다는 것일 수도 있고, “창녀기”(4,12; 5,4)가 있는 여자로서 혼인하고서도 그러한 성향을 버리지 못한다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아마도 이 두 가지가 다 포함되어 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②고메르는 보통 창녀가 아니라, 가나안인들에게서 유래하는 신전의 경신례와 관련된 이른바 ‘신전 창녀’였을 것입니다(신명 23,18). 호세아는 이러한 고메르와 함께하는 극적인 혼인 생활에서 상징적 의미를 이끌어 냅니다. 바로 그러한 극적인 혼인 생활이 하느님과 그분 백성 사이에서 전개되는 관계를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③“창녀의 자식들”은 어머니의 부정한 행실의 결과로 태어난 사생아이면서(5,7), 동시에 어머니의 행실을 본받는 자식들입니다. 이 혼인 비유는 호세아서 전체를 통하여 발전합니다. 그 가운데에서 처음 몇 장에는 호세아의 체험에서 나오는 전기적 요소들도 들어 있을 것입니다. 이 전기적 요소들은 상징적 의미를 갖는 전체 안에서, 이스라엘의 왕조와 종교의 역사에서 나오는 모습들과 밀접히 얽혀 있습니다. 그러나 표상들의 일관성보다는 열정이 우위를 차지하는 상징이 또한 호세아가 전하는 예언 메시지 자체를 이루기도 합니다. 호세아 이후에 이 ‘창녀 짓’이라는 표상이 이스라엘의 불충을 고발하는 데에 쓰이게 됩니다.
④자녀들의 이름은 주의를 환기시키고 예언 메시지를 전달하는 목적을 지닌 상징적 이름입니다(1,4.6.9). 그렇다고 이것을 단순히 가상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증거로 내세울 수는 없습니다. 실제로 고메르와 디블라임이라는 이름은 상징적 의미를 지닌 것 같지 않을뿐더러, 호세아 자신도 이 두 이름을 상징적으로 이용하지 않습니다. 이즈르엘이라는 이름은 이스라엘 땅을 가리키는 동시에 그 역사 속에 뿌리를 둡니다.
⑤예후는 이즈르엘에서 오므리의 친척들을 모두 학살함으로써 자기가 찬탈한 왕권을 굳힐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2열왕 9─10장 참조). 열왕기는 하느님께 불충한 아합과 이제벨의 통치에 종지부를 찍은 예후의 권력 쟁탈을 우호적으로 평가합니다. 그러나 호세아는 그것을 예로보암 2세의 통치 끝에서부터 사마리아 멸망까지 이어지게 될 정변의 전형으로 보고, 음모와 살인으로 얼룩진 그러한 상황을 단죄합니다.
◉예후의 학살 (The history of Jehu/Ιοὺ 841-814)
예후는 요람왕(오므리왕조 아합왕의 아들) 군대의 사령관으로 모든 면의 남용 즉, 무절제가 그의 특징이었습니다. 예후는 분노한 민중 사이에서 일어나 쿠테타식 혁명을 일으켰는데 이것은 북 이스라엘의 누적된 분노였습니다. 엘리사와 예언자 무리에 의하여 선택을 받고 백성의 지지를 받은 예후는, 남북 두 왕국의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하던 유다왕족과 북왕국 아합의 온 가족을 몰살하였습니다. 예후의 유다왕 살해와 유다 궁정 신하들의 이유 없는 살해로(2열왕10,12-14) 남북관계는 회복이 불가능해졌습니다. 아합의 아들 요람의 병문안 차 이즈르엘로 내려갔다가 유다 임금 여호람의 아들 아하즈야도 예후에게 요람과 함께 살해된 것입니다(2열왕 8,29). 예후는 요람과 그의 모친 이세벨, 아합왕족 모두를 살해합니다. “또한 그 집안의 대관들과 친지들과 사제들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죽였다.”(2열왕 10,1-11). 쿠테타는 대학살로 이어졌고 오므리 왕가는 종말을 맞게 되었습니다. 예후는 바알 숭배자들을 신전에 모아놓고 무자비한 학살을 감행하였습니다. 이 숙청은 비참한 결과를 초래했으나 바알은 근절(공식적으로는)되었습니다. 예후는 자신의 열정에 도취되어 그를 도울 수 있는 많은 고관들을 몰살함으로써 왕국의 뿌리를 뽑아버린 셈이 되었고 또한 이 예후의 유혈참극은 나라를 마비시킨 비참한 고통이 되었습니다.
열왕기저자는 예후의 열성에 감명을 받았고 또한 아합의 집안과 바알 숭배자들을 무자비하게 학살 한데 대해 치하했지만(2열왕 10, 28;그는 바알을 치워버렸다!), 호세아예언자는 가혹하게 비난합니다(호세 1,4: 7장 참조). 예후는 완벽하게 악습을 처단하였고 하느님께서 시대에 필요한 인물로 세우셨으나 자신의 자만심에 걸려 넘어진 것입니다.
[2부 4,1-14,9]
이스라엘의 범죄와 징벌에 관한 신탁들입니다.
①사제들의 죄(4,1-5,7) ②하느님의 분노(5,8-15) ③하느님을 바로 아는 것(6,1-6) ④이스라엘을 둘러싼 죄(6,7-7,2) ⑤왕위 찬탈전(7,3-7) ⑥어리석은 외교정책(7,8-16) ⑦우상숭배(8,1-10,15) ⑧하느님의 교육(11,1-11)⑨구원 역사를 통하여(12,1-15) ⑩하느님의 분노(13,1-14,1) ⑪사랑의 승리(14,2-9)⑫결어 14,10 참된 지혜
7.호세아 예언서의 영향
①호세아 예언서의 표상 가운데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주님과 그분의 백성 사이를 혼인 관계로 표현한 것입니다. 여기에는 또 부정, 간음, 매음 등과 같은 명제가 뒤따릅니다. 이 표상은 예레미야서(2,23-24; 3,1; 30,14; 31,22), 에제키엘서(16장과 23장), 이사야서의 후반부에서(50,1; 54,4-7; 62,4-5) 다시 볼 수 있고, 아가에서는 해석의 열쇠가 되기도 합니다. 구약성경에서 혼인의 표상이 주님과 그분 백성의 일치를 상징하듯, 신약성경에서도 이 표상이 그리스도와 교회의 일치를 상징하게 됩니다(마르 2,19-20; 에페 5,25).
②호세아 예언서의 영향은 성서 전체에 걸쳐서 넓게 나타납니다. 구약성경에서는 예레미야가광야로의 귀환이라는 주제를 이어받고(예레 2,2-3과 호세 2,17 참조), 또 새 계약이라는 주제도 더욱 명확히 합니다.
③신약 성경에서는 호세아서가 17번 인용됩니다. 호세아의 신학은 하느님 사랑의 신학입니다. 이 사랑은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표상 안에서 정성과 자애로 표현됩니다. 호세아는 남녀 간 사랑의 표상 속에 인간적 열정의 언어를 사용합니다. 호세아가 이러한 표현을 대담하게 채택함으로써, 이 예언자 이후부터 주님께서는 열정적인 하느님이라고 불리게 됩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바람, 실망, 분개와 분노를, 그러면서도 동시에 나날이 커져 가는 당신의 자애를 말씀하십니다. 결국은 분노나 징벌이 아니라, 피할 수 없이 되어 버린 시련 너머로, 이제는 정결한 일치 속에 이루어지는 행복이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④하느님의 자애는 인간의 마음을 바꿀 수 있을뿐더러 죄에 대한 기억마저 소멸시켜 버릴 수 있는 하느님의 힘이십니다. 이렇게 호세아서는 신학과 신앙의 가장 깊은 곳까지 파고듭니다. 호세아는 하느님의 자비를 드러내면서 바로 그분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계시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 말이 요한 복음서에서처럼 그렇게 분명하게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하느님 사랑의 계시 자체는 호세아서에서도 명백히 드러납니다.
⑤호세아서가 그 메시지의 깊이와 열정을 통하여 신앙의 본질적인 것에까지 다다르기 때문에, 이 예언서는 과거처럼 오늘도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 당신 교회에 하시는 말씀이 됩니다. 호세아서의 마지막 절은 읽는 이에게 하느님 말씀의 현실성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촉구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이를 깨닫고 / 분별 있는 사람은 이를 알아라”(14,10). 예수님께서도 같은 내용의 말씀을 하십니다.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마르 4,9). 이렇게 성경의 계시는, 역사의 특정 상황에 깊숙이 끼워져 있으면서도, 그것을 듣는 모든 이에게, 그리고 성경을 펴는 모든 이에게 바로 하느님의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⑥주님께서는 오늘도 호세아를 통하여 당신의 백성에게, 당신의 교회에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질책의 말씀이면서 동시에 자비의 말씀이고, 준엄한 말씀이면서 동시에 사랑의 말씀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무엇을 요구하는 사랑입니다. 그것은 ‘너희에게서 모든 불의를 내쫓고, 우상의 속임수를 경계하라.’는 것입니다. 이 요구는 피할 수 없는 절대적인 요구입니다. 그러나 이 요구는 또한 진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사랑의 요구입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의 마음에 유일하신 분이 되고자 하시는 것은, 그분께서 진실로 유일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우상은 무(無)일 뿐입니다. 오로지 주님에게서만 행복과 생명이 나옵니다.
⑦호세아 예언서가 성경의 모든 계시를 담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 예언서가 그토록 멀리 또 깊이 나아가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하느님의 백성은 이 예언서를 읽으면서 희망의 전율을 느끼지 않을 수 없고, 또 자기 신앙의 순수성에 대해서 묻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8.호세아예언서의 주요 사상 요약
①구원사적 전통
호세아의 전선포는 구원사적으로 뿌리박고 있습니다. 즉, ❶하느님께서는 이집트 땅에서부터 이스라엘의 하느님이시다(12,10;13,4).❷하느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을 인도하신다(12,14).❸옛 이스라엘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모든 사랑을 베풀고 이스라엘을 인정의 끈으로 사랑의 줄로 인도했던 시대이다(11,1.4). 그러나 지금 이스라엘은 반대가 되었고(11,2), 부정한 아내처럼 하느님을 저버렸다는 것입니다.
②신인식(神認識)과 바알종교
❶호세아 예언자는 ‘하느님께 대한 신앙’과 ‘바알 예배’의 혼합주의(1열왕 12,26-33; 호세 8,5; 10,5)를 비판하면서,이 모든 원인이 하느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5,4;6,6 정녕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신의다. 번제물이 아니라 하느님을 아는 예지다).
❷이스라엘의 가나안신 숭배를 호세아는 간통의 개념으로 말합니다. 그것은 배신행위 전체이고 예언자를 예언활동으로 불러낸 동기가 됩니다(4,12-19;8,4-6;13,1-3).이스라엘은 하느님을 섬기면서 동시에 농산물의 풍작은 바알의 축복으로 믿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생산의 주관자가 하느님이라는 것을 그들은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2,10). 이러한 백성들의 행위에 사제들의 배신이 강조됩니다(4,4-11;5,1-7).
❸이스라엘민족은 가나안의 신들을 자기들의 하느님이신 주님의 자리까지는 아니라 할지라도, 최소한 그분 곁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마음이 끌립니다. 가나안의 신들은 땅의 풍요다산을 관장함으로써, 농경 생활의 여러 가지 필요를 채워 주는 전문가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호세아가 단죄하는 것은 제의나 제사 자체가 아니라, 그러한 종교 생활을 이끄는 사고방식입니다. 곧 의식(儀式)을 정확히 거행하면 하느님의 호의를 자동적으로 획득할 수 있다는 그들의 확신이었습니다. 격노한 호세아는 이교 의식에 따른 도덕성의 부패를 통렬히 비난하였고 진실한 참회의 조짐이 없으니 나라는 멸망할 운명이라고 예언합니다.
❹호세아는 이스라엘의 깊은 도덕적 타락(4,1-2; 6,7-10; 7,1), 곧 온갖 사회 정의의 부재와 그것에 따른 지도층의 책임을 고발합니다. 그는 바로 종교적 불충이 온갖 부패의 뿌리이고 모든 불행의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모든 원인이 하느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5,4;6,3.6). 신인식(神認識)의 이 개념은 특별히 계약의 백성임을 기억하는 ‘하느님의 구원역사에 대한 앎’에 관계되는 것입니다.
③하느님의 심판과 구원
“그들이 양 떼와 소 떼를 거느리고 주님을 찾아가도 찾아내지 못하리니 주님이 그들을 떠났기 때문이다.”(5,6)
❶이스라엘의 왕권구조는 예언자들의 역할에 의존되어있었습니다. 그러나 호세아에게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예로보암 2세 이후에 이스라엘을 통치한 임금들을 이 예언서가 언급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호세아 예언자가 주님의 이름으로 선포한 내용, 곧 그들이 임금들을 세웠지만 나와는 상관없다.(8,4)는 말씀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호세아는 이 정치적 현상에서(예로보암2세가 죽은 다음 10년 미만의 시기에 왕이 다섯 번 바뀌던 시대) 이스라엘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이 이미 시작되었음을 인식했습니다. 이것이 호세아사상에 들어있는 가장 본질적인 것입니다.
❷호세아는 민족의 불행이 훨씬 더 깊은 곳에 있음을 보았습니다. 이 위협을 막을 수 있는 것은 하느님자신 뿐입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촉발시킨 악의 세력에 매우 깊이 휘말렸기 때문에 이미 그곳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자신이 그 백성을 치시려 일어나셨기 때문입니다(5,2). 그러나 이러한 심판에 이어 호세아는 미래의 구원도 말합니다(11,8).
❸호세아는 심판과 구원이라는 이 역설(逆說)을 잘 알고 있습니다. 분노와 사랑을 어떻게 하느님 마음에서 해결하셨는지를, 그리하여 유례없는 진술이 기록됩니다.
“에프라임아, 내가 어찌 너를 내버리겠느냐? 이스라엘아, 내가 어찌 너를 저버리겠느냐?내 마음이 미어지고 연민이 북받쳐 오른다. 나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이다. 나는 네 가운데에 있는 ‘거룩한 이’ 분노를 터뜨리며 너에게 다가가지 않으리라.”(11,8-9).
④호세아서에 나타난 하느님의 교육과 구원의 과정의 요약
❶광야- 심판과 구원의 병행은 호세아서에서 잘 드러내고 있는 교육사상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길 잃은 자들을 바로잡으시기 위해 이스라엘을 다시 광야로 내보내려하십니다(2,16).광야는 이스라엘민족이 하느님과의 사랑을 처음시작한 곳입니다. 처음의 상태로 그들을 복귀시키는 것입니다.
❷혼인-그리하여 하느님은 새로운 이스라엘과 혼인하실 것입니다(2,21). 호세아의 메시지는 질타와 위협으로 그득하지만 주님의 이름으로 선포되는 질타는(이것은 실망한 사랑의 질타이기 때문에 그만큼 격렬할 수밖에 없다) 그 무엇도 좌절시킬 수 없는 사랑으로 바뀌게 됩니다. 시작이 사랑이었던 만큼 끝도 사랑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처음 만났을 때 이스라엘은 광야의 포도송이 같았다.”(9,10). 거칠고 메마른 광야에 탐스러운 포도송이의 모습으로 이스라엘은 있었다는 것입니다. 어느 사랑의 고백이 이 보다 강할까?
❸그리하여 사랑은 분노를 이길 뿐만 아니라 죄까지 없애 버릴 것입니다(14,5). 하느님은 이스라엘을 다시 사랑하실 것이며 이스라엘은 다시 꽃을 피우게 될 것입니다(14,5-8).
“그들에게 품었던 나의 분노가 풀렸으니 이제 내가 반역만 꾀하는 그들의 마음을 고쳐 주고 기꺼이 그들을 사랑해 주리라.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이 되어 주리니 이스라엘은 나리꽃처럼 피어나고 레바논처럼 뿌리를 뻗으리라.”(14,5-6)
④호세아서의 결어(結語); 참된 지혜
“지혜로운 사람은 이를 깨닫고 분별 있는 사람은 이를 알아라. 주님의 길은 올곧아서 의인들은 그 길을 따라 걸어가고 죄인들은 그 길에서 비틀거리리라.”(14,10).
예수님께서는 같은 내용의 말씀을 간결하게 하십니다.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알아들어라."(마르 4,9).
<예언서⑥ 호세아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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