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엘서의 주요선포는 “주님의 날”입니다. 기원전 5세기경, 유배에서 돌아온 유다인들은 예루살렘 성전도 재건하고 성벽도 쌓고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때에 요엘은 메뚜기 재앙과 가뭄을 선포하며 등장합니다. 요엘은 먼저 사제들에게 단식하고 기도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주님의 날이 가까웠고 전능하신 분께서 보내신 파멸과 멸망이 순식간에 들이닥치듯 다가올 것이기 때문입니다.(요엘 1,15) 요엘은 하느님께서 심판도 하시지만, ‘모든사람’에게 영을 불어넣으시고 그 심판의 날을 ‘구원의 날’로 바꿔주신다는 그분의 약속을 전하며 이제 곧 약속이 성취될 날이 오리라는 것을 선포합니다. 그런데 요엘서에서 심판 이후에 이루어질 구원을 묘사하는 가장 큰 특징은 “모든 사람에게 내 영을 부어주리라”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은 베드로의 오순절설교(2,14-42)에서 성령강림의 현상이 언어폭발로 드러난 표징이 바로 옛 예언의 성취라고 말하면서 요엘서 3,1-2를 제시 합니다.
46-36.요엘서 ;JOEL ;ΙΩΗΛ (약칭 요엘/Jl)
1.예언자 요엘
요엘이라는 이름과 그의 아버지(프투엘) 이름만(1,1) 확실할 뿐 이 예언자에 대해서 알려진 것이 거의 없습니다. 요엘이라는 이름은 신앙 고백을 담고 있습니다. 요는 야훼의 준말이고, 엘은 ‘하느님’을 뜻합니다. 그래서 요엘은 ‘주님은 (참)하느님이시다.’라는 뜻을 지닙니다. 프투엘이라는 이름은 구약 성경 다른 곳에서는 나오지 않습니다.
2.활동시기와 저작년대
①언제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이스라엘 땅에 유례없는 메뚜기 재앙이 벌어집니다. 사태를 더욱 절망적으로 만든 것은, 그때에 이미 기근으로 땅이 황폐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조금 남아 있던 식물마저 메뚜기 떼의 먹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생존이 온전히 땅에 매일 수밖에 없던 옛날에, 이러한 사태는 사람은 물론 짐승들에게조차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이러한 재앙의 때에, 요엘 예언자가 탄원 기도를 올리며 참회 예절을 거행할 것을 촉구하고 나섭니다.
②요엘서 전체를 볼 때, 그가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서 활동하였다는 것은 분명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활동 시기를 알아내는 일은 매우 어렵습니다. 이 예언서의 주요 배경이 자연 재앙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재난의 서술을 바탕으로는 그 시대를 알아내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기원전 9세기로 생각하는 학자들이 있는가 하면, 기원전 3세기로 잡는 이들도 있습니다.
③4,1-3은 기원전 587년에 일어난 유다 왕국의 멸망과 예루살렘의 함락을 오래전의 일로 전제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그리스인들까지 나오는 4,4-8은 일반적으로 후대에 보태진 첨가문으로 학계는 판단합니다). 곧 요엘 예언자의 활동 시기를 유배 이후로 잡아야 한다는 말이 됩니다.
④임금과 왕실은 전혀 언급되지 않는 반면 원로들과 사제들이 나라를 이끈다는 사실(1,2.13-14; 2,16-17 참조), 성전과 종교 의식의 거행에 별다른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아서 기원전 5세기 후반부에 활동한 에즈라와 느헤미야의 활동이 전제된다는 점, 그리고 이 책에서 직간접적으로 인용되는 다른 예언서들과의 관계를 고려할 때, 기원전 400년 전후로 생각하는 것이 가장 합당하다고 여겨집니다. 이때는 정치적 안정 속에 예루살렘 성전이 유일한 성소로 확고하게 자리 잡고, 제사가 어려움 없이 바쳐지고 있었습니다.
⑤요엘예언서는 2단계 예언서성경편찬이 이루어지는 페르시아제국 지배시대의 대략 BC 4C후반~3세기초 무렵 최종편찬 되었을 것으로 봅니다.
3.요엘서의 구조 및 내용
유례없는 재앙의 때에, 요엘 예언자가 참회 예절을 거행할 것을 촉구하면서 등장하는데 기근이나 메뚜기 재앙이 아니라, “주님의 날”이 요엘 예언자의 관심사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이 예언서의 명확하면서 독특한 구조에서도 잘 볼 수 있습니다.
①전체 4장으로 되어있는 요엘서는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1,2─2,17과 2,18─4,21입니다. 첫째 부분에서 예언자는 단식하고 참회하며 탄원 기도를 올리라고 촉구합니다. 그 배경은 1장에서는 이미 닥친 기근과 메뚜기 재앙이고, 2,1-11에서는 이제 막 시작하는 “주님의 날”입니다. 그런데 요엘서의 관심사인 “주님의 날”은 이미 1장에서부터 모습을 드러냅니다(1,15). 그리고 메뚜기 떼를, “주님의 날”에 예루살렘으로 쳐들어오게 될 “셀 수 없이 많고 힘센 족속”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1,6).
②첫째 부분에서 둘째 부분으로 넘어가는 분기점은 2,12-17입니다. 12-14절에서는 가뭄과 메뚜기 재앙, 그리고 15-17절에서는 “주님의 날”과 관련된 참회 예절을 말합니다. 이 참회 예절에 대한 하느님의 대답이 둘째 부분에 나옵니다. 2,18-27은 참회 예절에 대한 첫째 응답이고, 4,1-3.9-17은 참회 예절에 대한 둘째 응답입니다. 이렇게 메뚜기 재앙과 “주님의 날”과 관련해서 계속 둘씩 대칭을 이루면서 배열될 뿐만 아니라, 그것들과 관련된 말들도 비슷하게 표현됩니다. 예컨대 참회 예절의 모임을 소집하는 1,14와 2,15 그리고 하느님의 구원 개입이 지향하는 백성의 참다운 앎도 서로 거의 같은 표현으로 이루어집니다(2,27과 4,17).
③이렇게 볼 때, 메뚜기 재앙과 “주님의 날”이라는 두 주제가 병행을 이루면서 전개되지만, 중요하고 유일한 관심사는 “주님의 날”임이 분명해집니다. 사실 요엘서는 하느님의 백성이 고통 중에 겪어야 했던 재앙을, 예전의 예언자들이 선포한 종말의 날이 시작하는 것으로 설명합니다.
④요엘이 선포하는 메시지에는 “주님의 날”과 관련해서 두 가지 새로운 점이 첨가됩니다. 첫째는, 이날이 단순히 미래의 어느 날에 일어날 사건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날”은 이미 지금 여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둘째는, 이 종말이 하느님의 백성에게 멸망과 함께 궁극적인 구원을 가져온다는 것입니다(3─4장). “주님의 날”은 이렇게 이중의 모습을 지닙니다.
[1장] 가뭄과 메뚜기 재앙
“이러한 일이 너희 시대에 있었느냐? 이러한 일이 너희 조상 시대에 있었느냐?”(1,2).
“풀무치가 남긴 것은 메뚜기가 먹고 메뚜기가 남긴 것은 누리가 먹고 누리가 남긴 것은 황충이 먹어 버렸다”(1,4).
“흙덩이 밑에서는 씨앗들이 오그라들었다.들의 곡식이 메말라 곳간은 황폐해지고 곳집은 허물어졌다.”(1,17).
요엘 시대에 일어난 메뚜기 재앙은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재난이었습니다. 땅의 파란 것을 하나도 남기지 않는 메뚜기 떼의 그 게걸스러운 식욕은, 마치 그들의 이가 사자의 이빨 같다는 강한 인상을 사람들에게 남겼습니다. 그렇지 않고는, 그처럼 포도원을 짓밟고, 무화과 동산을 찍어 내 버린 듯이 나무껍질까지 하얗게 벗겨 버릴 수가 없었으리라는 것입니다(1,6-7). 나무가 이 지경이 되었으니, 다른 곡식은 더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밀과 보리를 생각하며 농부들아, 질겁하여라. 포도나무를 가꾸는 자들아, 울부짖어라. 들의 수확이 다 망가졌다”(1,11).
이 이중의 재앙 속에서, 가축들도 먹을 것이 없어 ‘타 버린 들판에서’ 울부짖다 죽어 갑니다(1,18-20). 이런 불행의 정점은 하느님께 바칠 제물까지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처녀가 젊고 건강한 약혼자를 잃어버리는 것처럼, 하느님의 백성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1,8-9.13). 사는 즐거움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하느님을 찬양하고 그분께 제사를 드리는 기쁨이 없어져 버렸습니다(1,12.16). 죽어 버린 자연과 함께 찾아온, 삶의 끝이며 세상의 종말과 같은 상황입니다.
[2장] 참회의 촉구-“주님의 날”의 시작
①“주님의 날”의 시작(2,1-11)
‘너희는 시온에서 뿔 나팔을 불고 나의 거룩한 산에서 경보를 울려라. 땅의 모든 주민이 떨게 하여라. 주님의 날이 다가온다. 정녕 그날이 가까웠다.’(2,1).
❶경보를 울리는 데에도 쓰이는 ‘뿔 나팔 소리’는 유다의 주민에게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것이었습니다. 전쟁이 발발하거나 자연재해의 위험이 있을 때 실행했을 이 경보는 아마도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유다의 맨 끝 촌락까지, 산꼭대기에서 산꼭대기로 이어졌을 것입니다.
❷뿔 나팔, 함성, 공포 (그리고 10절의 우주적 혼돈) 등은 하느님의 현현에 관한 통상적 서술의 일부를 이룹니다(탈출 19,16 이하; 시편 18,8-10; 하바 3,7 이하 참조).
❸요엘은 하느님의 백성을 멸망의 문턱까지 몰고 간 메뚜기 재앙이, 한 번으로 그냥 끝나 버린 사건이 아니라고 외칩니다. 이 재난은 더욱 근본적이고 중요한 사건, 이스라엘인들이 늘 생각하면서 두려움 속에 기다리는 사건, 곧 “주님의 날”을 가리킵니다(1,15 참조). 이것은 아모스서와 이사야서를 거쳐, 스바니야서와 에제 30장, 그리고 오바드야서와 말라 3장 등에 이르기까지, 여러 예언자가 오래전부터 예고해 온 날입니다. 그래서 요엘이 이날을 거론할 때, 청중들은 곧바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날은 종말의 날입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자기들의 죄에 대해서 심판을 받는 날, 또는 하느님의 백성이 최종적으로 구원을 받는 날입니다. 그래서 단순한 끝 날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시대의 시작입니다.
②참회예절을 촉구하는 요엘 (2,12-17)
“옷이 아니라 너희 마음을 찢어라. 주 너희 하느님에게 돌아오너라. 그는 너그럽고 자비로운 이 분노에 더디고 자애가 큰 이 재앙을 내리다가도 후회하는 이다. 그가 다시 후회하여 그 뒤에 복을 남겨 줄지 주 너희 하느님에게 바칠 곡식 제물과 제주를 남겨 줄지 누가 아느냐?”(2,13-14)
❶옛날 이스라엘인들은 슬픔이나 재난을 당하였을 때, 옷을 찢고 머리에 재를 뿌리고 단식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의식은 자칫 외형적인 것으로 흐를 수 있습니다. 예언자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든 백성이 하나가 되어(2,16), ‘진심으로 뉘우쳐 단식하며 가슴을 치고 우는’ 참회(2,12), 단식과 참회가 하나인 탄원의 기도를 만물의 주인이신 하느님께 바치라고 촉구합니다. 그러한 속마음을 보시고 하느님도 ‘마음’을 움직이시어, 이 재난을 멈추게 하시리라는 것입니다.
❷이러한 “주님의 날”을 맞이하려면, 단순히 하느님의 백성에 소속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는 결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율법이나 경신례에 충실하는 것만으로는 구원을 보장받지 못합니다. 이는 특히 요엘서의 분기점을 이루는 2,12-17에서 잘 볼 수 있습니다. 예언자들의 말씀에 따라 ‘마음을 찢는 참회’를 해야, 심판의 날이 구원의 날이 될 수 있습니다.
❸하느님의 후회에 관한 이 문장은 계약의 하느님의 본질적 성격을 열거하는, 하느님에 대한 이스라엘 신앙의 요약이라 할 수 있습니다(탈출 34,6; 느헤 9,17; 시편 86,15; 103,8; 145,8; 요나 4,2 참조).
③참회예절에 대한 주님의 응답 (2,18-27)
과연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의 마음을 아시고, 그들을 가엾이 여기십니다(2,18). 그리고 기적적으로 죽음과 불행의 땅에 생명과 기쁨을 내려 주십니다. 이제 사람과 땅과 짐승이 모두 즐거워하고, 되찾은 생명을 누리며 노래하게 됩니다(2,21-24).
[3장] 구원의 약속;모든 이에게 내려지는 영
‘그런 다음에 나는 모든 사람에게 내 영을 부어 주리라. 그리하여 너희 아들딸들은 예언을 하고 노인들은 꿈을 꾸며 젊은이들은 환시를 보리라.그날에 남종들과 여종들에게도 내 영을 부어 주리라.내가 하늘과 땅에 징조를 보여 주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다.그 크고 두려운 주님의 날이 오기 전에 해는 어둠으로, 달은 피로 바뀌리라.그때에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는 모두 구원을 받으리라.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시온산과 예루살렘에는 살아남은 이들이 있고 생존자들 가운데에는 주님께서 부르시는 이들도 있으리라.’
①하느님께서는 구원을 위한 준비를 순전히 사람에게만 맡기지 않으십니다. 그분께서는 당신 백성의 '모든 사람'에게, 곧 아들과 딸, 늙은이와 젊은이, 자유인과 노예의 구분 없이, 모든 이에게 당신의 영을 풍성히 내려 주십니다. 그리하여 저마다 예언자처럼 하느님과 가까워지고, 그분의 뜻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3,1-2). 그럼으로써 사람들은 이제 주님의 이름을 참된 마음으로 부를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당신의 이름을 부르는 이는 모두 구원을 누릴 수 있게 해 주십니다(3,5).
②요엘이 선포한 '주님의 날'은 아직도 완전히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강조한 참회, 그리고 이 날이 지닌 현재성은 지금도 큰 의의를 지니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③이 3장은 성령의 강림을 서술하는 사도 2장에서 칠십인역 본문이 인용됩니다.
[4장] 회복; 궁극적 구원으로서의 주님의 날
①이민족들에 대한 심판(4,1-17)
❶4,2의 이민족들을 심판하는 ‘여호사팟 골짜기’는 실재 골짜기의 이름이 아닌 상상의 것으로, 묵시론적 장소, 주님께서 심판을 수행하실 곳입니다.
❷4,6의 유다의 자손들과 예루살렘의 자손들을 그리스인들에게 팔아넘기는 인신매매가 언제 일어났는지 정확한 연대를 밝히기는 어렵습니다. “그리스인들”의 직역은 “야완의 자손들”입니다. 에제 27,13에는 티로와 인신매매를 하는 야완이 언급됩니다(야완은 본디 소아시아의 이오니아를 지칭하다가, 이 요엘서 같은 곳에서는 그리스까지 가리키게 됩니다). 요엘은 이 치욕스러운 매매를 필리스티아인들과 관련짓습니다. 이미 아모스서의 한 구절은 가자가 그와 같은 범죄를 저질렀다고 고발합니다(아모 1,6-8). 곧 가자인들이 노예들을 에돔에 팔아넘겼다는 것입니다. 같은 관행이 마카베오 시대에도 지속됩니다(1마카 3,41; 2마카 8,10).
❸4,9의 “전쟁을 거룩히 준비하여라.” 의 직역은 “전쟁을 거룩하게 하여라.”로서, “전쟁을 선포하여라.”, “성전(聖戰)을 준비하여라.” 등으로 옮기기도 합니다. 전쟁은 ‘거룩한’ 활동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특별히 성관계 금지와 같은 관련 규정들을 정확히 지켜 가며 준비해야 했습니다(1사무 7,8-9; 21,6 참조). 군사들 자신이 “봉헌된 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이사 13,3 참조).
②이스라엘의 회복(4,18-21)
‘그날에는 산마다 새 포도주가 흘러내리고 언덕마다 젖이 흐르리라. 유다의 개울마다 물이 흐르고 주님의 집에서는 샘물이 솟아 시팀 골짜기를 적시리라.’(4,18)
❶재건된 유다에는 다시 포도주, 젖, 생수가 풍성히 흐릅니다. 이는 종말을 특징짓는 것들이기도 합니다(아모 9,13 참조).
❷시팀골짜기는 “아카시아 골짜기”로 옮기기도 합니다. 이 골짜기의 정확한 위치에 관해서는 아직도 논의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4.베드로의 오순절 설교와 요엘 예언의 성취
‘그때에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일어나 목소리를 높여 그들에게 말하였다. “유다인들과 모든 예루살렘 주민 여러분, 여러분은 이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내 말을 귀담아들으십시오. 지금은 아침 아홉 시입니다. 그러니 이 사람들은 여러분이 생각하듯이 취하지 않았습니다. 이 일은 요엘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대로 된 것입니다.”’(사도 2,14-16).
하느님의 구원계획 전체를 보여주는 베드로의 오순절설교(2, 14-42)는 회개➜세례➜용서➜성령을 선물로 받는다는 말로 맺습니다. 이 설교에서 성령강림의 현상이 언어폭발로 드러난 표징을 베드로는 옛 예언의 성취로서 요엘서 3,1-2를 제시 합니다.
“그런 다음에 나는 모든 사람에게 내 영을 부어 주리라. 그리하여 너희 아들딸들은 예언을 하고 노인들은 꿈을 꾸며 젊은이들은 환시를 보리라. 그날에 남종들과 여종들에게도 내 영을 부어 주리라.”(요엘 3,1-2)
하늘까지 닿는 탑을 쌓아 이름을 날리자고 야망의 탑을 쌓던 바벨탑의 사람들은 본래 하나의 언어였는데 서로 못 알아들었습니다. 남편이 아내의 말을, 자녀가 부모의 말을 못 알아듣고 서로의 마음과 생각을 소통하고 이해시키라고 주신 말로 오히려 상처를 주기도하고 받기도 합니다. 오순절 성령강림은 서로 다른 언어를 서로 알아듣는 영적일치를 가능하게 합니다. 인생의 모든 것이 끝났다고 무력감을 느끼는 노인들이 꿈을 꾸게 된다는 놀라운 축복입니다. 젊은이들은 성령의 은사로서 미래를 계획하고 오늘을 사는 것입니다. 이러한 요엘의 예언이 성취되었음을 베드로는 유명한 오순절 설교를 통하여 선포합니다.
<요엘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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