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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46권 기본정보

구약성경46권 기본정보[8] 예언서⑧ 아모스

by 써니리버 2026. 5. 18.

예언자 아모스는 유다출신으로서 북왕국에서 활동한 저술예언자의 서두를 연 인물입니다. 구약성경의 예언자들 중 특별하게 사회정의를 강력하게 외친 이 예언자는 “정의의 예언자”라고 불립니다. 북왕국의 마지막시기에 활동한 예언자 호세아보다는 10년 먼저 활동을 시작 하였으나 성경목록은 호세아서가 첫 순서이고 아모스예언자의 활동시기는 매우 짧습니다. 아모스의 메시지는 하느님의 위대성, 모든 민족에게 퍼져 나가는 그분의 권능과 정의, 그러면서도 또한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그분의 영원한 우선적 사랑을 그 주제로 합니다. 아모스의 예언은 이스라엘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고 호세아, 이사야, 미카 등 여러 예언자도 아모스의 예언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 예언의 강직함과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에 대한 연민과 변호, 그리고 아모스의 유일신 사상은 오늘날에도 힘 있는 예언의 말씀으로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46-37. 아모스서 ; AMOS / ΑΜΩΣ (약칭; 아모/Am)

1. 정의의 예언자 아모스
아모스라는 이름은 히브리 말로 '들어올리다, 나르다'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아모스야'라는 이름의 단축형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아모스야'는 '주님께서 날라 주셨다'라는 뜻이며 주님의 호의적인 개입에 대한 감사를 표현하는 이름입니다. 
아모스는 예언자들의 새로운 계통을 연 인물로서 통상 저술(문서) 예언자라고 부르는 예언자시대를 연 최초의 저술예언자입니다. 저술예언자라고 불리는 이유는 그들의 이름을 제목으로 한 성서의 책 안에 그 활동과 사상이 보존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문서로 남겨진 예언서들은 후기예언서에 속합니다(전기 예언서와 후기예언서에 관한 내용은 본블로그 sunny river 구약성경46권 기본정보[8]-⑦ 참조).
아모스는 트코아(tekoa)출신인데, 이곳은 베들레헴에서 도보로 두 시간 가량 걸리는 유다 사막 부근입니다. 그는 유다 왕 우찌야의 가축 떼를 치던 목축 업자(7,14)로 왕의 목장을 관리하던 목장주였던 것 같습니다. 아모스의 사명은 주로 북왕국 안에서 수행되었고 이 예언자에 대하여 달리 전해지는 기록은 없으나 그 당시 상당한 지식을 소유한 인물로 추측됩니다. 

2. 역사적 배경
1)남왕국 유다
①아모스예언자가 활동하던 시기는 유다임금 우찌야 치세 때 입니다(2열왕 15,1-7). 우찌야(Uzziah, Οζίου BC 781-740)는 아자르야(Azariah ;그리스어Αζαρίας) 임금의 다른 이름으로, 2역대 26─27; 이사 1,1; 6,1; 호세 1,1; 아모 1,1; 즈카 14,15에도 나옵니다. 이 이름은 열왕기 하권에서만 세 번 나오는데, 모두 15장에 있습니다. 한 임금을 두 이름으로 부르는데 대한 한 가지 가설은 유다 임금들에게는 두 가지 이름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는 태어날 때, 다른 하나는 왕위에 오를 때 갖게 된 이름입니다. 아자르야-우찌야, 여호아하즈-살룸(23,30; 1역대 3,15; 예레 22,11), 엘야킴-여호야킴(23,34), 마탄야-치드키야(24,17)가 그 좋은 예들입니다. 그리고 여디드야-솔로몬도(2사무 12,24.25) 이 경우에 해당될 것입니다. 
②우찌야는 16세에 왕이 되어 52년간 통치합니다. 우찌야의 치세동안 목축와 농업은 번성했고 군대도 증강되었습니다. 그러나 2역대 26장16-21이 전하는 그의 죄는 왕이 하느님의 전에 들어가서 사제만이 할 수 있는 향을 분향한 일입니다. 우찌야는 그 후 나병에 걸려 왕의 직무를 수행할 수 없어 별궁에 거하였고 왕자 요탐이 우찌야가 죽을 때까지 왕으로서의 정무를 담당했으나 우찌야의 영향력은 여전히 계속되었습니다. 이 시기는 유다 세력의 절정기로서 요탐(740-735)의 통치 기간 동안에 유다왕국은 계속해서 번영을 누렸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찌야 시대에 유다는 반 아시리아연합군의 주도세력이었으나 요탐의 아들 아하즈(2열왕 16장;2역대 28,1-4)는 아시리아의 티글랏 필에세르(Tiglath PileserⅢ 747-727)의 도움을 청합니다.

2)북왕국 예로보암2세
①선택된 민족의 열두 지파 가운데에서 열 지파로 구성된 북 왕국은, 국제 정치적인 면에서 무엇보다도 인접한 시리아 왕국의 쇠퇴 덕분에 태평 시기를 누립니다. 북 왕국의 강력한 경쟁국이었던 시리아가 동쪽에서 몰아치는 아시리아 제국의 팽창 정책의 희생물이 되었던 것입니다. 예로보암 2세는 예전에 이스라엘의 지파들이 살던 요르단 건너편 지역을 탈환합니다(2열왕 14,25). 이러한 승리로 사람들은 새로운 영화를 꿈꾸게 됩니다(아모 6,13-14 참조). 
②왕국의 안녕은 이제 완전히 보장된 것으로 여겼으나(6,1-3) 치명적인 위협의 기운이 이미 이스라엘 왕국 위에 감돌기 시작합니다. 아시리아 군대가 팔레스티나에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③경제적인 면에서는 외국과의 교역이 왕국에 번영을 가져오는 것이지만 그것은 가난한 사람들과 부유한 사람들 사이의 사회적 불균형을 심화시키기도 합니다. 특별히 수도 사마리아에는 사치가 만연하고, 이른바 졸부들의 속물근성이 확산됩니다(3,12; 6,4-7). 계약의 백성을 서로 결속시켜 주던 이전의 연대 의식은 변질되어, 약자들에 대한 강자들의 착취가 자행됩니다. 게다가 그러한 착취는 법정에서 이루어지는 부정한 판결의 비호까지 받고있었습니다(2,6-7; 4,1; 5,7).
④종교적인 면에서는 온 백성이 자랑스러워하는 화려한 의식 속에 경신례가 거행됩니다. 그러나 아모스는 그러한 종교 의식에 특별히 준엄한 비판을 가합니다(4,4-5; 5,4-5.21-27).
⑤전성기의 예로보암2세가 죽은 뒤 10년 미만의 시기에 왕이 다섯 번 바뀌었습니다. 예로보암 2세는(2열왕 14,23-29)샬룸의 반란으로 죽고(그 사이에 6개월간 그의 아들 즈카르야가 즉위했으나 암살 되었다), 샬룸은 1개월 후 므나헴에게 죽고 그 아들 프가흐야가 즉위했으나 부관 페카의 반역으로 암살됩니다. 아람과 연합한 페카의 모반으로 아시리아는 북이스라엘을 침략, 북쪽 전 지역을 점령하여 주민들을 아시리아로 끌고 갔습니다(아시리아에 의한 1차 유배. 2열왕 15,29). 페카 즉위 후 호세아왕이 반란을 일으켰으며 호세아는 페카를 암살하여, 732년 북 왕국의 마지막 왕이 되었습니다. 호세아는 강력한 티그랏 필에세르가 죽고 살만에세르 5세가 즉위한 후 이집트의 도움으로 반 아시리아정책을 폈으나 실패하고 호세아 9년 살만에세르 5세에게 722년 멸망합니다. 북왕국 주민들은 아시리아에 의해 강제 추방되었습니다(아시리아에 의한 2차 유배로 아시리아 임금 실록에 의하면 사르곤2세 722-705에 의해 실행되었다). 
예로보암2세(Jeroboam;Ἱεροβοὰμ;783-743/예언자아모스)➜즈카르야 743(6개월)  ➜샬룸 743(747)-746 ➜므나헴746-738  ➜프가흐야 738-737 ➜ 페카 737-732 ➜ 호세아732-724 (예언자: 호세아) ➜ 호세아임금9년 사마리아 멸망 722/721 
(예로보암2세 사망후 혼란기의 임금연대는 자료에 따라 년도 차이가 있습니다. 저의 블로그는 영역본 예루살렘바이블 연대를 사용하였습니다) 

3. 저작년대와 활동시기
①아모스는 기원전 8세기 중엽에 활동합니다. 이 시기는 아모스예언서 1,1의 머리글이 말하는 것처럼, 북이스라엘 왕국의 예로보암 2세와 유다 왕국 우찌야의 유명한 치세가 돋보이는 때입니다. 북왕국예로보암 2세의 요르단 건너편 지역을 탈환하는 승리로 사람들은 새로운 영화를 꿈꾸게 됩니다. 왕국의 안녕이 보장된 것으로 여겨졌으나 치명적인 위협의 기운이 이미 이스라엘 왕국 위에 감돌기 시작합니다. 아시리아의 군대가 팔레스티나에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②아모스의 사명은 특수한 ‘보편적’ 중요성을 지닙니다. 유다 왕국의 백성인 아모스가 북 왕국 이스라엘을 위하여 설교하라는 명령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여러 갈래로 갈라진 현대에 비유할 때에, 아모스는 한 종파에서 다른 종파로 파견된 설교사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가 북부로 간다는 것은 일치의 표지입니다. 곧 이스라엘이 아무리 정치적이나 종교적으로 분리되었다 하더라도, 그 민족을 선택하시고 그들에게 책임을 물으려고 하시는 하느님께는 여전히 한 백성인 것입니다. 
③아모스는 북왕국의 성소 베텔(예로보암1세가 세운성소 곧,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갈릴 때에 예루살렘 성소와 경쟁하기 위해서 세운 성소)에서 예언한 것으로 보입니다. 아모스의 활동은 길어야 몇 달밖에 지속되지 않았는데, 아모스를 공공 질서의 교란자로 임금에게 고발하고 이어서 추방시킨 베텔의 사제에 의해서 아모스의 활동이 중단된 것 같습니다(7,10-17). 
④이러한 예언 활동 금지에 대항하기 위하여, 아모스(또는 그의 제자단)가 자기의 환시들과 신탁들을 기록하고, 또 기록한 것을 백성 가운데 유포시켰을 수 있습니다. 아모스의 말씀은, 주님께서 당신의 예언자를 통하여 선포하신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는 청중들 사이에서 전승됨으로써, 그의 사후에도 계속 살아 있는 말씀으로 남게 됩니다. 그리고 나중에 새로운 상황에서 예언자의 메시지를 현실화하기 위하여 몇몇 신탁이 첨가되었을 것으로 봅니다. 유다를 거슬러 선포한 신탁(2,4-5), 그리고 저술 시기에 대해서 계속 논란이 이는 마지막 약속도(9,11-15) 바로 그러한 경우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⑤선집(選集)이라 할 수 있는 문서예언서들은 예수님의 활동과 설교를 전해 주는 복음서들처럼, 대개는 예언자 자신이 아니라 그 제자들의 작품입니다. 그러나 아모스의 다섯 환시 이야기처럼, 특별히 예언자가 자신에 관해서 단수 일인칭으로 말하는 부분들은 그가 직접 기록하였을 수도 있습니다. 아모스예언서는 성경편찬 2단계, 大小예언서전체의 편집이 완료될 무렵인 기원전 2세기말을 전후하여 편집된 것으로 보입니다. 

4. 아모스서의 구조 및 내용
1)아모스서의 언어
①아모스는 시골 출신이기는 하지만, 일부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문맹도 아니고 교양 없는 시골사람도 아닙니다. 이러한 주장들이 문맹이며 시골출신인 그의 강렬한 언어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고는 해도 아모스의 언어는 지혜 문학의 섬세한 표현뿐 아니라(3,3-8; 5,19; 6,12) 전례의 폭넓고 장엄한 표현도 잘 사용하고(1,3─2,16; 4,6-13; 5,4-6.14-15), 서정적 어조의 열정을 드러내기도 하며(4,1-2; 9,1-4), 언어 유희와 풍자도 구사합니다(3,12; 5,5; 6,13; 8,1). 
②그의 언어는 무엇보다도 간결함이 인상적입니다. 자기의 메시지를 선포하는 데에, 아모스는 번개처럼 빠르고 지진처럼(그의 활동은 지진에 대한 기억과 연결된다: 1,1) 환상을 깨뜨리는 몇 개의 낱말로 충분하였습니다. 
③그는 조국과 주변 민족들의 삶에 영향을 주는 사건들을 숙고합니다. 그는 사마리아를 파괴시키게 될 북쪽의 세력 곧 아시리아의 존재를 예감합니다. 그는 또 하늘과 땅에서 비롯되는 위협에도 민감하였습니다. 그러한 위협 속에서 주님의 활동을 보았던 것입니다. 전체 9장으로 된 아모스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구분됩니다. 

2)아모스서의 구조 및 내용
①주변국과 이스라엘에 대한 신탁(1,3 – 2,16) 
머리글과(1,1) 짧은 서론에(1,2), 이스라엘 주변의 일곱 국가와 이스라엘 자체를 질타하는 일련의 신탁들로 이루어진 첫째 부분이 이어집니다(1,3─2,16). 여기에서 이민족들에 대한 ‘철회 하지 않겠다’는 징벌이 선포됩니다. 아모스의 하느님은 그곳이 어느 곳이든 역사에서 심판하십니다. 이스라엘의 과오는 더 무겁습니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신뢰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신탁들은 모두 같은 형식으로 되어 있지만, 이스라엘에 대한 신탁이 더욱 폭넓게 전개됩니다.

1,1트코아의 목양업자 가운데 한 사람인 아모스가 전한 말씀. 유다 임금 우찌야 시대에, 곧 이스라엘 임금 여호아스의 아들 예로보암 시대에, 지진이 일어나기 이태 전 그는 이스라엘에 관한 환시를 보았다.
①정확한 연대는 모르지만 기원전 760년경에 일어난 이 지진은, 예언자가 선포한 위협의 심각성을 확인해 주는 표지로 오랫동안 사람들의 기억에 남게 됩니다(9,1; 즈카 14,5 참조. 4,11; 6,8-11; 8,8도 함께 고려해 볼 수 있겠다).
②아모스 시대에는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이 북쪽의 열 지파로 이루어진 왕국을 가리킵니다.
이스라엘12지파의 명칭은 야곱의 12아들이름(❶르우벤 ❷시메온 ❸레위 ❹유다❺즈불론 ❻이사카르❼단 ❽가드 ❾아세르 ❿납탈리 ⓫요셉 ⓬벤야민)에서 유래하는데 후에 야곱의 12 아들 중 레위와 요셉이 빠지고 요셉의 아들 에프라임과 므나쎄가 이스라엘의 12지파를 이룹니다(❶르우벤 ❷시메온 ❸유다❹즈불론 ❺이사카르❻단 ❼가드 ❽아세르 ❾납탈리 ❿에프라임⓫므나쎄 ⓬벤야민).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죽은 후 이스라엘이 남.북왕조로 분리 될 때 북왕조는 에프라임지파와 10개 지파, 남왕조는 유다지파와 벤야민지파로 이루어지는데 보통 유다왕국이라 부릅니다. 요셉의 아들 에프라임은 요셉지파 예로보암을 왕으로 세우고 북왕국을 건립합니다. 
③아모스는 이 이스라엘 왕국을 “이사악의 집안”(7,16), “야곱의 집안”(3,13; 9,8), “요셉 집안”(5,6), 또는 그냥 이사악(7,9), 야곱(6,8; 7,2.5), 요셉(5,15)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지금은 깨졌지만 복원되어야 할 선택된 백성의 일치에 관한 기억을 담고 있기도 합니다. 요셉집안은 요셉의 아들 에프라임 가문으로, 북왕국을 에프라임이라고도 불렀습니다. 통일이스라엘이 분열된 후 북왕국의 초대임금이 에프라임 지파 느밧의 아들 예로보암이었기 때문입니다.

1,2아모스가 말하였다. “주님께서 시온에서 호령하시고 예루살렘에서 큰 소리를 치시니 목자들의 풀밭이 시들고 카르멜 꼭대기가 말라 버린다.”
①호령의 직역: “포효” 포효하는 사자처럼 호령하신다는 것입니다. 포효하는 사자의 표상은 저항할 수 없는 주님의 권능과, 그분께서 당신의 절대 주권을 행사하실 때에 그 권능이 불러일으키는 공포를 나타냅니다(이사 5,29; 호세 11,10 참조). 신약 성경에서는 포효하는 사자가 위협적인, 그러나 신앙으로 이겨 낼 수 있는 마귀의 표상으로 나옵니다(1베드 5,8).
②푸른 언덕들, 특히 카르멜산의 풍요로움은 그 지방 주민의 자랑거리였습니다. 그러나 예언자는 그곳들이 하느님의 위협 아래 한순간에 메말라 버리는 모습을 봅니다.

➜다마스쿠스
1,3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다마스쿠스의 세 가지 죄 때문에, 네 가지 죄 때문에 나는 철회하지 않으리라. 그들이 타작기로 길앗 사람들을 짓뭉갰기 때문이다.4그러므로 내가 하자엘 집안에 불을 보내리니 그 불이 벤 하닷의 성채들을 삼켜 버리리라.5나는 다마스쿠스의 성문 빗장을 부러뜨리고 아웬 골짜기에서는 그 주민들을, 벳 에덴에서는 왕홀을 쥔 자를 없애 버리며 아람 백성은 키르로 잡혀가게 하리라.”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①유다와 이스라엘을 둘러싼 나라들이 연이어서, 그리고 예외 없이 단죄를 받고 또 멸망하리라고 선포됩니다. 곧 북동쪽의 다마스쿠스, 남서쪽의 가자, 북서쪽의 티로, 남쪽의 에돔, 동쪽의 암몬, 남동쪽의 모압입니다(1,3─2,16). 마지막으로 유다와 이스라엘도 그들만의 특권이 있음에도, 바로 그 특권 때문에 다른 민족들처럼 단죄와 위협을 받고 심판과 벌을 받게 됩니다.
②이어지는 신탁들이 모두 “세 가지 죄 때문에, 네 가지 죄 때문에”라는 똑같은 형식으로 시작합니다. 이 정식은 악의 정도가 가득 찼음을 뜻합니다. 심판의 때가 임박한 것입니다.
③‘철회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 말이 여기에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 분명하지 않지만, 하느님의 결정, 그분께서 내리기로 결정하신 벌을 취소하는 것으로 이해함이 가장 타당하다고 여겨집니다.
④길앗은 요르단 동쪽, 다마스쿠스와 암몬 사이에 위치한 지방으로 므나쎄 지파의 영토입니다.“타작기”는 피정복민들을 짓누르는 다마스쿠스의 잔악함을 표현하는 표상입니다.
⑤4절에서 유다를 포함하여 예언자가 단죄하는 나라의 성읍들을 파멸시키는 “불”은, 외국 군대가 포위하고 공격하여 파괴한 도시에서 일어나는 화재를 가리킵니다. 여기에서 외국 군대는 하느님의 처벌 도구로 생각됩니다. 하자엘과 벤 하닷은 다마스쿠스의 여러 임금의 이름으로서, 이들은 이스라엘의 돌이킬 수 없는 원수로 등장합니다(1열왕 20,1; 2열왕 8,12; 10,32).
⑥“아웬 골짜기”(불의의 골짜기)와 벳 에덴(희열의 집)은 어느 곳인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바라다 또는 아바나라 불리는 서늘한 계곡 안에 자리 잡은 다마스쿠스를 가리키는 상징적 이름일 수도 있습니다(2열왕 5,12 참조).9,7에 따르면 키르는 아람인들의 출신지입니다. 이곳을 우르와 동일시하기도 하지만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에돔
1,11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에돔의 세 가지 죄 때문에, 네 가지 죄 때문에 나는 철회하지 않으리라. 그가 칼을 들고 제 형제를 뒤쫓으며 동정심마저 버린 채 끊임없이 화를 내고 줄곧 분노를 품었기 때문이다.12그러므로 내가 테만에 불을 보내리니 그 불이 보츠라의 성채들을 삼켜 버리리라.”
①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받은 야곱은 형 에사우가 아버지 이사악으로부터 받을 장자의 축복을 가로챈 인물입니다. 에사우는 집을 떠나 에돔을 세웁니다(창세 25─27). 성경에서는 야곱과 에사우가 재회하면서 화해한 것으로 되어있지만 이 두 집안의 끈질긴 원한은 줄곧 이 두 민족을 대립시킵니다. 질투심이 많은 에돔은 거듭해서 이스라엘을 공격함으로써 이 적개심을 의도적으로 유지해 나갑니다(민수 20,14-21; 요엘 4,19; 오바 11 참조).
②테만과 보츠라는 사해 남동쪽에 위치한 에돔 족장들의 거처 성읍입니다(창세 36,15; 예레 49,7.13; 오바 9 참조).
(야곱 에사우에 관한 내용은 본블로그 sunny river 구약노트 3-④ 창세기의 인물 야곱 참조)


➜암몬,모압
1,13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암몬 자손들의 세 가지 죄 때문에, 네 가지 죄 때문에 나는 철회하지 않으리라.14전쟁의 날, 함성이 터지는 가운데 회오리바람이 몰아치는 날, 폭풍의 한가운데에서 내가 라빠 성벽에 불을 지르리니 그 불이 성채들을 삼켜 버리리라.15그들의 임금은 대신들과 함께 포로로 끌려가리라.”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2,1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모압의 세 가지 죄 때문에, 네 가지 죄 때문에 나는 철회하지 않으리라. 그가 에돔 임금의 뼈를 불살라 횟가루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다.2그러므로 내가 모압에 불을 보내리니 그 불이 크리욧의 성채들을 삼켜 버리리라. 
①롯의 후손들인 암몬족은(창세 19,30-37) 요르단강 동녘에 있는, 야뽁강 남쪽에 정착하였고, 그들의 임금은 현재 요르단의 수도 암만인 라빠를 도읍으로 삼았습니다(14절; 2사무 12,26 참조).
②크리욧은 사해 동쪽에 위치한 모압의 수도 키르 모압일 것입니다. 당시에는 유골을 부수어 버리면, 죽은 이가 죽음 너머에서 휴식을 누리지 못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③모압족과 암몬족의 기원 창세 19,29-38
창세 19,29-38에 나오는 롯의 후손에 관한 짧은 이야기는 비꼬는 듯한 어조로 모압족과 암몬족의 기원을 설명합니다. 
“하느님께서 롯이 살고 있던 성읍들을 멸망시키실 때, 롯을 그 멸망의 한가운데에서 내보내 주셨다. 롯은 초아르를 떠나 산으로 올라가서 자기의 두 딸과 함께 살았다. “자, 아버지에게 술을 드시게 하고 나서, 우리가 아버지와 함께 누워 그분에게서 자손을 얻자.”이렇게 해서 롯의 두 딸이 아버지의 아이를 가지게 되었다.맏딸은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모압이라 하였으니, 그는 오늘날까지 이어 오는 모압족의 조상이다.작은딸도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벤 암미라 하였으니, 그는 오늘날까지 이어 오는 암몬인들의 조상이다.”(창세 19,29-38)
❶모압과 암몬은 근친상간의 후예들입니다. 맏딸의 아들 히브리어 모압(Moab ; Μωάβ)은 히브리 말에서 “아버지에 의해서”와 철자와 발음이 유사합니다. 작은딸의 아들이름 벤 암미는 ‘나의 친족의 아들’을 뜻합니다.
❷하느님께서 새로운 삶을 위하여 주신 땅에서의 삶은 하느님의 섭리와 관련되나 아버지를 통하여서라도 대를 잇고자하는 것은 인간적인 욕망입니다. 
❸모압인들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후손이지만 이스라엘을 저주하려 했고(민수 22,1-21;모압 임금 발락은 예언자 발라암에게 복채를 주며 이스라엘을 저주하라고 청탁한다), 우상을 섬기도록 유혹한 이들(민수 25,1-18; 모압여인들과 불륜을 저지르며 그들의 신 바알에게 경배하다)입니다. 또한 모압족은 이스라엘의 축복에서 제외되었고 하느님 앞에 모이는 집회에 나올 수 없는 이들입니다(신명 23,3-6).
 
➜유다
2,4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유다의 세 가지 죄 때문에, 네 가지 죄 때문에 나는 철회하지 않으리라. 그들이 주님의 법을 배척하고 그 규정들을 지키지 않았으며 저희 조상들이 따라다니던 거짓 신들에게 홀려 길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유다도 다른 나라들과 같이 단죄되지만, 다른 종류의 죄 때문에 그렇게 됩니다. 그것은 법을 거부하는 것, 곧 하느님의 가르침을 배척함으로써 계약을 파기하는 것, 그리고 자기들의 주님에 대한 불충입니다. “거짓 신들”로 옮긴 히브리 말은 본디 ‘거짓(말)’을 뜻하는데, 여기에서는 “거짓 신들” 곧 우상들, 그리고 그것들을 둘러싼 우상 숭배를 가리킵니다.


➜이스라엘
2,6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의 세 가지 죄 때문에, 네 가지 죄 때문에 나는 철회하지 않으리라. 그들이 빚돈을 빌미로 무죄한 이를 팔아넘기고 신 한 켤레를 빌미로 빈곤한 이를 팔아넘겼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첫째로 돈에 매수되는 죄 때문에 단죄받습니다. 돈 때문에 법정의 정의가 전도(顚倒)된 것입니다. 재판관들은 하찮은 이유로 또는 신 한 켤레 같은 변변찮은 선물을 받고 불의한 판결을 내립니다(5,7.12; 신명 17,19-20; 예레 22,3; 미카 3,9.11 참조).
2,7그들은 힘없는 이들의 머리를 흙먼지 속에다 짓밟고 가난한 이들의 살길을 막는다. 아들과 아비가 같은 처녀에게 드나들며 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힌다.
예언자는 가난한 이들을 악착스레 수탈하는 것을 비난하는 것입니다. 강자들은 한 가정의 가장을 궁핍 속으로 몰아 그의 온 가족들을 절망하게 하고, 결국에는 여종으로 팔린 그의 딸을 농락하기에 이릅니다(탈출 21,7-11; 레위 18,8 참조).
이 말을 성전 매음의 고발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예언자는 이러한 죄의 속성들을 밝힙니다. 이스라엘에서 사회 정의를 거스르는 행동은 바로 하느님 자신에게 오점을 남기는 것입니다(에제 36,20-21 참조).
2,8제단마다 그 옆에 저당 잡은 옷들을 펴서 드러눕고 벌금으로 사들인 포도주를 저희 하느님의 집에서 마셔 댄다.
채무자가 빚을 갚지 못할 경우, 그의 모든 재산을 압류하고 그의 겉옷까지 담보로 잡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에 따르면 겉옷은 해가 지기 전에 돌려주어야 합니다(탈출 22,25-26; 신명 24,12-13 참조).

9절부터 16절까지는 장엄한 심문의 형태로 전개됩니다. 여기에서 ‘나-그들’, ‘나-너희’의 대립이 계약 선포의 용어들로 표현됩니다(탈출 20,2; 여호 24,2-13). 하느님께서는 역사 속으로 개입하시어 한 백성을 선택하시고 그 운명의 윤곽을 잡아 주십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저지르는 잘못은 결국 이러한 하느님과의 계약을 거부하고 배신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연유로 이스라엘에 내리는 징벌도 그토록 무거워집니다.
2,9그런데 나는 그들 앞에서 아모리인들을 없애 주었다. 그 아모리인들은 향백나무처럼 키가 크고 참나무처럼 강하였지만 위로는 그 열매를, 아래로는 그 뿌리를 없애 주었다.
아모리인들은 여기에서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그곳에 살던 여러 원주민을 가리키는 총칭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선두에 서서 이스라엘 군대가 승리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신명 7,1; 여호 3,6; 2사무 5,24 참조).

2,11너희 자손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예언자로 세우고 너희 젊은이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나지르인으로 세웠다. 이스라엘 자손들아, 사실이 그러하지 않으냐? 주님의 말씀이다.12그런데 너희는 나지르인들에게 술을 먹이고 예언자들에게 ‘예언하지 마라.’ 하고 명령하였다.
예언자의 말은 곧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또한 나지르인은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한 이들입니다. 나지르인에 관한 관습의 세부 사항들은 우리에게 부분적으로밖에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서원의 근본 의미도 명확하지는 않습니다. 어쨌든 나지르인은 주님을 위하여 ‘자신을 따로 떼어 놓은 이’, 주님께 ‘자신을 봉헌한 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서원은 종신 서원이 될 수도 있고(판관 13,5; 1사무 1,11; 루카 1,15 참조) 한시적 서원이 될 수도 있습니다(판관 5,2; 1마카 3,49; 예레 7,29; 사도 18,18; 21,23-25 참조). 민수기에 나오는 나지르인 규정은, 하느님께 자신을 바치는 아주 오래된 것으로 여겨지는 관습을 법으로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민수기 6장에서는 나지르인 서원을 한시적인 것으로 설정하고, 2절에서는 여자도 포함시키지만(여자 나지르인에 대해서는 판관 13,4.7 참조) 다른 곳에서는 남자에 관해서만 말합니다. 

2,14날랜 자도 달아날 길 없고 강한 자도 힘을 쓰지 못하며 용사도 제 목숨을 구하지 못하리라.15활을 든 자도 버틸 수 없고 발 빠른 자도 자신을 구하지 못하며 말 탄 자도 제 목숨을 구하지 못하리라.16용사들 가운데 심장이 강한 자도 그날에는 알몸으로 도망치리라.” 주님의 말씀이다.
14-16절에는 새로운 표상이 나옵니다. 여기에서는 패전 때의 전쟁터가 서술됩니다. 어떤 무기로 무장을 하였든 군인들은 모두 그 자리에서 꼼짝달싹 못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심판의 날에 이스라엘은 다른 민족들과 저희의 하느님 앞에서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②이스라엘을 비난하는 신탁(3─6) 
둘째 부분은 이스라엘을 비난하는 신탁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3─6장). 일반적으로 짧고 일정한 순서 없이 모아진 이 말씀들에서는 ⑴참회하지 않는 이스라엘에 관한 연설(4,6-13), ⑵베텔의 경신례를 지적하는 말씀(4,4-5; 5,4-5.21-27), ⑶사회적 불의와(3,9-11; 4,1-3) ⑷교만과 잘못된 안전 의식을 단죄하는 말씀(3,1-2.12; 5,18-20; 6,1-7.13-14), ⑸임박한 심판의 묘사(3,13-15; 5,1-3.13.16; 6,8-11), ⑹주님께 돌아가라는 호소(5,4-6.14-15) 등을 볼 수 있습니다.
아모스가 환시들을 통해 알아들은 것은 하느님께서 더 이상 이스라엘을 용서하지 않으시리라는 것이었습니다. 북이스라엘은 결국 종국을 맞을 것인데 아모스의 강렬한 선포에 의하면 사마리아에는 남은 자라고는 없습니다.(3,2.12) 

❶이스라엘의 선택과 징벌
3,1“이스라엘 자손들아, 주님이 너희를 두고, 이집트 땅에서 내가 데리고 올라온 씨족 전체를 두고 한 이 말을 들어라.2나는 이 땅의 모든 씨족 가운데에서 너희만 알았다. 그러나 그 모든 죄를 지은 너희를 나는 벌하리라.”
히브리 말의 ‘알다’라는 동사는 어느 한쪽의 주도 아래 시작되어, 두 존재 사이의 통교와 사랑의 인격적 만남으로 이끌어 가는 관계를 표현합니다. 곧 부부 관계(창세 4,1; 루카 1,34),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이사 63,16), 목자와 양 떼 사이의 관계(요한 10,4.14) 등입니다. 여기에서는 이 동사가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당신의 백성으로 결정적으로 선택하신, 이집트 탈출을 통하여 조성된 관계를 특징짓게됩니다(9,7; 탈출 19,5; 신명 7,7-8; 로마 8,29 참조). 
이미 전부터 있어 온 이 주제는(창세 18,19; 탈출 3,7; 4,22 참조), 후대의 예언자들도 이어받습니다(이사 5,1-7; 41,8-9; 예레 2,2-3; 에제 16,6; 호세 11,1; 13,5 참조). 아모스 예언자의 동시대 사람들은 이러한 관계를 구원의 손쉬운 보장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모스는 여기에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해방시켜 주신 하느님 앞에서 그들이 져야 할 책임의 기초를 밝힙니다.

3,3두 사람이 약속하지 않았는데도 같이 갈 수 있겠느냐?
6절까지 이렇게 답이 명확한 일곱 개의 반어적 의문문이 나열됩니다. 이것들은 모두 7-8절을 향합니다. 곧 예언자가 예언을 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친히 말씀하셨기 때문이고,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면 예언자는 예언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❷사마리아의 운명
3,9“너희는 아스돗의 성채들과 이집트 땅의 성채들에서 선포하여라. ‘너희는 사마리아의 산들 위에 모여 그 안에서 일어나는 큰 혼란과 그 속에서 벌어지는 폭행을 보아라.’10그들은 옳게 행동할 줄을 모른다. 주님의 말씀이다. 그들은 자기들의 성채 안에 폭력과 억압을 쌓아 올리는 자들이다.
칠십인역은 아스돗을 “아시리아 Ασσυρίοις”라고 씁니다. 
사마리아는 기원전 870년에 오므리 임금이 북 왕국의 수도로 삼으려고, 스켐 북쪽 10킬로미터 지점의 언덕 위에 세운 성읍의 이름입니다(1열왕 16,24 참조). 
“폭력과 억압”은 자주 짝지어 나오는 용어입니다(예레 6,7; 20,8; 48,3; 에제 45,9; 하바 1,3 참조). 이 문장은 풍자를 담고 있습니다. 성읍의 주민은 안전한 재산을 쌓아 간다고 믿지만, 하느님의 눈에는 그들이 불의한 행동을 축적할 따름입니다.

3,12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목자가 사자의 입에서 다리 두 개나 귀 한쪽을 빼낸다. 사마리아에 사는 이스라엘 자손들도 침상 발치와 침대 머리맡에서 그렇게 구출되리라.
하느님께서는 먼저 당신 자신을, 맹수가 집짐승을 잡아먹고 남긴 부분을 주인에게 가져가는 목자에 비유하십니다. 목자는 그렇게 하여 그 집짐승을 자기가 잡아먹거나 빼돌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책임을 면하는 것입니다(탈출 22,12 참조). 이스라엘은 잡아먹힌 짐승에 비유됩니다. 하느님의 무죄와 이스라엘 백성의 유죄를 증명할 만한 증거가 남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구절에서 하느님께서는 재판관이시면서 동시에 소송 당사자이십니다. 이스라엘은 잡아먹힐 짐승에 비유되지만 나중에 예언자는 하느님의 용서와 자비를 선포하게 됩니다(5,15; 9,8ㄷ).

3,14내가 이스라엘의 죄를 벌하는 날 베텔의 제단들도 벌하리니 제단의 뿔들이 꺾여 땅에 떨어지리라.
①야곱은 에사우를 피해 하란으로 가는 중에 어떤 곳에서 밤을 지내게 되었는데, 하느님께서 꿈에 나타나시어 아브라함에게 했던 세 가지 약속, 즉 이스라엘에게 땅을 주시고, 크고 위대한 민족이 되고, 또 세상의 모든 사람이 이스라엘을 통해서 복을 받게 되리라고 약속을 갱신하십니다. 그가 보니 땅에 층계가 세워져 있고 그 꼭대기는 하늘에 닿아 있는데, 하느님의 천사들이 그 층계를 오르내리고 있었습니다.(창세 28,10-22)
②창세 28,12의 층계는 구약 성경에서 이곳에만 나오는데 이 낱말은 “사닥다리”로 옮길 수도 있습니다. 고대인들은 하느님이 높은 곳에 계신다고 생각했습니다. 천사들이 탑과 같이 높은 사다리를 타고 오르락 내리락 한 야곱의 꿈은 인간의 소망이 하느님께 전달되고 하느님은 인간의 기도를 들어 주신다는 신학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교부들은 이 사다리를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중개자가 되신 그리스도의 예표로 보았습니다. 야곱은 기념 기둥을 세우고 그곳의 이름을 베텔이라 하였습니다. 베텔은 ‘하느님의 집’이라는 뜻이며 본디는, 베트-엘입니다. 
③북 왕국을 세운 예로보암 1세는 남 왕국의 예루살렘 성전에 대항하려고 베텔에 성소를 세우고 새로운 경신례를 거행하게 하였습니다(1열왕 12,26-33 참조).
④제단의 네 귀퉁이에 뿔을 만들어 뿔과 제단을 한 덩어리가 되게 하여 청동을 입힙니다(탈출 27,2). 제단의 네 귀퉁이 돌기 부분이 제단의 가장 거룩한 곳입니다. 희생 제물들의 피를 여기에 발랐고(레위 4), 어떤 이유로든 도망치게 된 사람은 이를 붙잡고 보호받을 권리를 요구할 수도 있었습니다(1열왕 1,50; 2,28 참조). 힘의 상징인 뿔은 고대 근동에서 자주 신상들에게 만들어 붙여졌습니다.

3,15나는 여름 별장에다 겨울 별장까지 쳐부수리라. 상아로 꾸민 집들이 사라지고 큰 집들이 없어지리라.” 주님의 말씀이다.
벽을 상아 판으로 장식한 호화 주택을 말하는데 아합이 지은 궁도 이러했습니다(1열왕 22,39). 여기에서 파괴될 건축물들이 점층적으로 나열됩니다. 먼저 가볍게 지어진 “여름 별장”이 파괴되고, 이어서 그보다 튼튼한 “겨울 별장”이, 그리고 “상아로 꾸민 집”과 ‘큰 저택’이 없어집니다. 이러한 집들마저 파괴될 때에는, 다른 집들은 더 말할 나위가 없어집니다. 징벌이 총체적 파괴를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4,4“너희는 베텔로 오너라. 그리고 죄를 지어라. 길갈로 오너라. 그리고 더욱더 죄를 지어라. 아침에 너희의 희생 제물을 바치고 셋째 날에 너희의 십일조를 바쳐라.
베텔에서 거행되는 경신례 자체가 죄가 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즐겨 받으시는 경신례는 겸손, 그분의 규정에 대한 순종, 그리고 그분에 대한 사랑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율법이 정한 것에 따르지 않고, 사람들이 스스로 의식을 결정하고 관습을 고치며, 전례력을 바꾸거나 하느님과의 만남의 장소를 임의로 선택하여 제물을 바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연유로 하느님께서는 성조들의 성소들, 특히 베텔에서 거행되는 경신례에 반대하는 것입니다. 
길갈은 여호수아 시대부터 있어 온 예리코 부근의 성소(여호 4,19-20), 또는 베텔 북쪽의 길갈일 수도 있습니다(2열왕 2,1; 4,38 참조).

4,6“나도 너희의 모든 성읍에 끼닛거리를 없애고 너희의 모든 동네에 먹을거리가 모자라게 하였다. 그런데도 너희는 나에게 돌아오지 않았다. 주님의 말씀이다.
동일한 후렴구를 기준으로 다섯 개의 연(聯)으로 되어 있는 6-11절에는, 당신 백성을 위한 하느님의 업적과(“나”) 이스라엘의 응답이(“너희”) 대칭됩니다. 하느님께서 내리시는 징벌은 호소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러한 호소를 계속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데도 너희는 나에게 돌아오지 않았다.”라는 질책이 연이어 나오는 것입니다.

4,12그러므로 이스라엘아, 내가 너에게 이렇게 하리라. 내가 너에게 이렇게 하리니 이스라엘아, 너의 하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여라.”
지금까지는 이스라엘을 단죄하는 내용을 열거하였고, 이제는 아직 구체적으로 결정되지 않은(“이렇게”) 어떤 불행의 위협이 나옵니다. 이 불행이 어떤 것인지는 모르지만 지금까지 일어난 모든 불행보다 더 크리라는 점은 벌써 분명히 예견됩니다.
‘준비를 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 말은 군사 동원(에제 38,7), 또는 전례 소집에 쓰이는 동사입니다. 여기에서는 심판자이신 분과의 인격적 만남을 앞두고 회개의 결심을 촉구하는 호소가 됩니다.

5,4정녕 주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집안에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는 나를 찾아라. 그러면 살리라.
여기에서 ‘찾다’의 결과로 나타나는 ‘살다’는 하느님에게서 생명과 행복을 받음을 뜻합니다(신명 30,15-16 참조). 이 말은 이어서 세 방향으로 전개됩니다. 곧 ⑴‘주님을 베텔 등이 아닌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한다.’(5절), ⑵‘주님을 찾음이 이스라엘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6절), 그리고 ⑶‘찾음은 계약의 법에 계시된 주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다.’(14-15절)라는 것입니다.

5,15너희는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며 성문에서 공정을 세워라. 어쩌면 주 만군의 하느님이 요셉의 남은 자들에게 자비를 베풀지도 모른다.
죄 많고 회개하지 않는 이스라엘에 아무런 희망도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예언자들이 선포하는, 예기치 않았던 결정적 계시가 처음으로 나옵니다. 곧 “남은 자들”이 구원을 받으리라는 희망, 그리고 확신입니다.

5,17포도밭마다 곡소리가 터져 나오리니 내가 너희 가운데를 지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직업 곡꾼으로는 모자랄 정도로(16절 곡꾼들을 불러 곡하게 하리라) 초상이 많이 일어나리라는 것입니다. 밭에서 일하는 사람들, 그리고 포도밭 일꾼들까지도 불러들여야 합니다. 포도 수확꾼들이 부르는 기쁨의 노래가 이제 곡소리로 바뀝니다(9,10; 예레 9,16-20 참조).

❹주님의 날 5,18-20
5,18불행하여라, 주님의 날을 갈망하는 자들! 주님의 날이 너희에게 무슨 득이 되느냐? 그날은 어둠일 뿐 결코 빛이 아니다.
①아모스는 “주님의 날”의 도래와 관련한 동시대인들의 환상을 논박합니다. 주님의 날에 대한 희망은 아마도 주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그들의 원수들에게서 구원하시면서 당신의 권능을 보여 주신, 이스라엘 역사의 특정한 날들을 회상하면서 싹트게 되었을 것입니다. 예컨대 이사 9,3과 10,26이 이어받는 판관 7,9의 ‘미디안의 날(판관 기드온이 미디안족을 쫓아낸 날)’, 호세 2,2의 “이즈르엘의 날(예언자호세아의 아들 이즈르엘이라는 이름은 이스라엘 땅을 가리키는 동시에 그 역사 속에 뿌리를 둔다.호세 2,2에서 이즈르엘의 큰날이 선포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스라엘이 기브온에서 승리를 거둔 그 유명한 날(여호 10,12-14) 등입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주님께서 직접 개입하셔서 당신의 모든 적을 굴복시키시고 당신의 백성이 민족들을 쳐 이겨 승리를 거두게 해 주실 “새날”을 고대하게 됩니다. 아모스도 그날이 오리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자주 언급합니다(2,16; 3,14; 4,2; 8,9.11.13; 9,11.13). 
②아모스는 그날이 이스라엘에 구원의 빛이 아니라, 심판의 암흑을 가져오리라고 선포합니다. 또한 승리의 날이 아니라 패배의 날이라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불충한 당신 백성을 당신의 원수들처럼 다루시고, 또 그렇게 하심으로써 계속 당신께서 선택하신 이들의 주님이심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③그러나 심판이 하느님의 최종적 행동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그분의 인격적 계시는 자비와 구원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아모스 이후의 다른 예언자들도 이 주님의 날을 선포합니다(이사 2,11; 예레 30,5-7; 요엘 1,15; 스바 1,14.15. 그리고 이사 11,11; 12,1; 30,26; 요엘 3,4; 4,1; 말라 3,19-23참조).

5,23너희의 시끄러운 노래를 내 앞에서 집어치워라. 너희의 수금 소리도 나는 듣지 못하겠다.
전례 의식을 고발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랑거리로 여기는 이러한 경신례가 하느님께는 혐오감과 불쾌감만 일으킬 뿐입니다.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정의의 법에 순종하는 것이며(24절) 이스라엘이 사막에서 보여 준 것처럼, 그분과의 종속 관계가 표현되는 경신례입니다(25절).
5,25이스라엘 집안아, 너희가 광야에서 지낸 사십 년 동안 나에게 희생 제물과 곡식 제물을 바친 적이 있느냐?
이 물음은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어떠한 제물도 바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베텔의 사치스러운 경신례를,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살던 시절의 궁핍함에 대비시키는 것입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은 오히려 모든 것을 그분에게서 받았습니다.
5,26너희는 스스로 만든 너희 임금 사쿳 상과 너희 별 신 케완 상을 짊어지고 가리라.27그러므로 내가 너희를 다마스쿠스 너머로 유배를 보내리라.
사쿳이 히브리 말 본문에는 시쿳으로 되어 있지만, 구약 성경에서 여기에만 나오는 이 낱말을 바빌론 신의 이름으로 여겨, 일반적으로 위와 같이 옮겼으며 케완도 히브리 말 본문에는 키윤으로 되어 있지만, 구약 성경에서 여기에만 나오는 이 낱말을 또 다른 바빌론 신의 이름으로 여겨, 일반적으로 위와 같이 옮깁니다.

❺흥청거리는 지도자들 6장 
6,4그들은 상아 침상 위에 자리 잡고 안락의자에 비스듬히 누워 양 떼에서 고른 어린양을 잡아먹고 우리에서 가려낸 송아지를 잡아먹는다.5수금 소리에 따라 되잖은 노래를 불러 대고 다윗이나 된 듯이 악기들을 만들어 낸다.6대접으로 포도주를 퍼마시고 최고급 향유를 몸에 바르면서도 요셉 집안이 망하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는다.7그러므로 이제 그들이 맨 먼저 사로잡혀 끌려가리니 비스듬히 누운 자들의 흥청거림도 끝장나고 말리라.
당시 부정부패 빈부의 처참한 실태를 적나라하게 표현한 부분입니다. 비스듬히 누운 모습은 간단한 식사가 아니라 손님을 초대하여 한나절 이상 계속되는 잔치 급의 식사가 거의 매일 벌어졌던 던 당시의 귀족사회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입니다. 
‘다윗이나 된 듯이’는 시편 저자들과 성전 음악가나 되는 듯이 그러하다는 비꼬는 말투입니다. 당시에는 식수사정이 좋지 않아서 포도주를 약하게 담가서 식수를 대신하기도 했지만 가난한 백성들에게는 어려운 일이어서 마실 물도 어려웠던 처지인데 지도층에 속하는 귀족들이 양 떼에서 고른 어린양을,우리에서 가려낸 송아지를 잡아먹고 대접으로 포도주를 퍼마시면서 요셉 집안 즉 북이스라엘이 망하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❻무서운 징벌
6,8“나는 야곱의 자만을 역겨워하고 그 성채를 싫어한다. 나는 성읍과 그 안의 모든 것을 넘겨 버리리라.”10죽은 이를 불사르려고 온 친척이 그 집에서 시체를 꺼내 가면서, 그 집 가장 안쪽에 있는 사람에게 “또 있느냐?” 하고 물으면, 그는 “없다.” 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면 그 친척이4 “쉿! 주님의 이름을 불러서는 안 된다.” 하고 말할 것이다.
하느님의 징벌을 보면서 사람들이 품는 종교적 경외심(하바 2,20; 스바 1,7; 즈카 2,17 참조), 그리고 주님의 이름을 부름으로써, 무서운 벌을 내리시는 하느님을 다시 불러올지도 모른다는 미신적 공포를 반영하는 말로 여겨집니다.

❼헛되고 무익한 승리
6,13너희는 로 드바르에서 기뻐하며, “우리가 우리 힘만으로 카르나임을 차지하지 않았느냐?” 하는구나.14이스라엘 집안아 주 만군의 하느님의 말씀이다. 내가 지금 너희를 거슬러 한 민족을 일으킨다. 그들은 하맛 어귀에서 아라바 마른내까지 너희를 억누르리라.
①로 드바르는 요르단강 동쪽의 성읍으로(여호 13,26), 당시에 예로보암 2세가 재정복한 성읍 가운데 하나일 수 있습니다(2열왕 13,25 참조). 그러나 로 드바르가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또는, 이유 없이) 기뻐함’을 표현하는 언어유희로 이해할 수도 있겠습니다.
②‘두 뿔’을 뜻하는 카르나임도 요르단강 동쪽의 성읍 이름입니다(창세 14,5; 1마카 5,26 참조). 로 드바르의 경우처럼 여기에서도 힘과 권세의 상징인 ‘뿔’로써 언어유희를 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③“하맛 어귀에서 아라바 마른내까지”는 전통적으로, 이스라엘인들이 요르단강 동쪽에서 정복한 지역, 곧 북쪽으로는 헤르몬산 부근에서(여호 13,5) 남쪽으로는 사해에 이르기까지의 지역을 가리킵니다(1열왕 8,65 참조). 이는 예로보암 2세가 재탈환하였다고 자랑하던 지방이기도 합니다(2열왕 14,25 참조).

③다섯가지 환시 (7―9장)
셋째 부분에는(7─9장) 다섯 가지 환시에 관한 이야기들이 모아져 있습니다. 그 가운데에서 앞의 네 환시는 둘씩 짝을 이룹니다. 곧 메뚜기 떼와(7,1-3) 불(7,4-6), 그리고 다림줄과(7,7-8) 여름 과일 바구니입니다(8,1-2). 마지막으로 성전의 진동에 관한 다섯째 환시가 나옵니다(9,1-4). 이 환시들을 중심으로 아모스의 추방 이야기와 같은 몇몇 신탁이 다섯 개의 환시 사이에 더해집니다(7,9-17;아모스의 추방 /8,3-14;하느님말씀의 부재 /9,7-10특전없는 이스라엘). 아모스 예언서는 이스라엘의 회복과 구원에 관한 신탁으로(9,11-15) 끝나는데, 이 신탁을 아모스가 직접 선포하였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❶첫 번째 환시: 메뚜기 떼(7,1-3)
❷두 번째 환시: 불(7,4-6) 
7,1주 하느님께서 나에게 이러한 것을 보여 주셨다. 그분께서는 두 번째 그루 곡식이 올라오기 시작할 무렵에 메뚜기 떼를 빚고 계셨다. 그 그루 곡식은 임금에게 바치는 수확 다음의 두 번째 것이었다.2메뚜기 떼가 땅의 풀을 모조리 먹어 치웠을 때, 내가 이렇게 아뢰었다. “주 하느님, 제발 용서하여 주십시오. 야곱이 어떻게 견디어 내겠습니까? 그는 참으로 보잘것없습니다.”3그러자 주님께서 마음을 돌이키셨다. 그리고 “이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하고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①“두 번째 그루 곡식”은 봄에 수확이 끝난 다음, 반년에 걸친 건기가 시작되기 전 4월에 늦은 봄비를 맞고 올라오는 곡식, 또는 더 넓게는 동물의 사료용 풀까지 가리키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첫 번째 그루 곡식 또는 풀의 일정량을 임금에게 바쳤던 것으로 보입니다.
②예언자가 백성을 위해서 중개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백성에게 선포하는 것은 예언자 직무의 한 면일 따름입니다. 첫째 둘째 환시에서는(7,3.6) 예언자의 중개로 하느님께서 마음을 돌리시지만 마지막 세 개의 환시에서는(8절; 8,2; 9,1) 하느님께서 예언자가 개입할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기도할 시간도, 용서할 시간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③메뚜기 떼의 침입은 백성 전체의 생업에의 위협이 됩니다. 게다가 불이 지하수를 말리고 오곡이 무르익은 농토까지 말린다면 온 백성은 갈증과 굶주림으로 죽게 될 것입니다. 아모스는 이 사건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하느님께 자신을 맡겨야했습니다. 그리고 두 번 불행한 일을 방지하는데 성공합니다. 

❸세 번째 환시: 다림줄(7,7-9) 
7,8주님께서 나에게 “아모스야, 무엇이 보이느냐?” 하고 물으시기에, 내가 “다림줄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지금 내 백성 이스라엘 한가운데에 다림줄을 드리우려고 한다. 나는 더 이상 그들을 그냥 지나쳐 버리지 않겠다.
그의 중개기도는 이미 쌓인 범죄의 짐을 이스라엘에게서 덜어줄 수는 없었습니다. 셋째 다림줄(“다림줄”에 해당하는 히브리 말은 구약 성경에서 여기 7-8절에만 나오는 것으로, 그 뜻이 확실하지 않은데 목수들이 집을 지을 때 사용하는 도구의 이름을 그렇게 부른다)환상에서 하느님께서는 아모스의 말을 막고 아모스는 이때부터 하느님께 복종하기 시작합니다. 

➜아모스가 베텔에서 쫓겨나다 7,10-17
이 단락은 전체적으로 산문으로 되어 있는데, 예언자가 선포하는 두 가지 신탁은 운문으로 되어 있습니다(11절과 16-17절). 예로보암 왕조에 비판적인 예언과(9절) 관련된 이 역사 이야기는, 예언자 생애 중에 베텔에서 일어난 일화를 전해줍니다. 아모스와, 그리고 베텔의 사제 아마츠야와 임금 사이에 야기된 갈등으로, 베텔에서 수행하던 아모스의 예언 활동이 중단된 것으로 여겨집니다. 사실 아모스의 이 예언은 북왕국의 누구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7,10베텔의 사제 아마츠야가 이스라엘 임금 예로보암에게 사람을 보내어 말하였다. 11아모스는 이런 말을 해 댑니다. ‘예로보암은 칼에 맞아 죽고 이스라엘은 제 고향을 떠나 유배를 갈 것이다.’
이 절은 아모스 설교의 주제들 가운데 두 가지를 요약합니다(7,9; 9,4.10). 아마츠야는 예언자가 누구의 이름으로 불행을 예고하는지를 말하지 않음으로써, 아모스를 단순한 정치적 선동가로 고발하려고 합니다.
7,9이사악의 산당들은 황폐해지고 이스라엘의 성소들은 폐허가 되리라. 내가 칼을 들고 예로보암 집안을 거슬러 일어나리라.”
9,4그들이 적군 앞에서 끌려가더라도 내가 칼에게 명령하여 거기에서 그들을 죽이게 하리라. 행복이 아니라 재앙을 겪도록 그들에게서 내 눈을 떼지 않으리라.”

❹네 번째 환시: 여름 과일 한 바구니(8,1-3) 
8,1주 하느님께서 나에게 이러한 것을 보여 주셨다. 그것은 여름 과일 한 바구니였다.2그분께서 “아모스야, 무엇이 보이느냐?” 하고 물으시기에, 내가 “여름 과일 한 바구니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종말이 다가왔다. 나는 더 이상 그들을 그냥 지나쳐 버리지 않으리라.3그날에 성전의 노래가 통곡으로 바뀌리라. 주 하느님의 말씀이다. 시체가 너무 많아 온갖 곳으로 던져지리라. 조용히 하여라!
네 번째 환상은 사물에 의한 상징적인 의미 대신 언어의 유희를 통해 미래를 예고합니다. 여름은 가을로 시작하는 일 년 주기에서 마지막 계절입니다. 이 절에서는 발음이 비슷한 히브리 말 “여름 과일”(카이츠)과 “종말”(케츠) 사이에 언어유희가 이루어집니다. 즉 여름철(qayitz, 카이츠)의 과일을 담은 바구니는 이스라엘에게 다가올 종말(qetz 케츠)을 가리키는데 베텔에 있는 주님의 성전에서 거행되던 전례 축제의 종말을 뜻할 것입니다.과일 광주리 환상에서는 ‘나의 백성에게 마지막이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아모스는 이 말을 묵묵히 듣고 있습니다. 

➜하느님말씀의 부재(不在)
8,11보라, 그날이 온다. 주 하느님의 말씀이다. 내가 이 땅에 굶주림을 보내리라. 양식이 없어 굶주리는 것이 아니고 물이 없어 목마른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여 굶주리는 것이다.12그들이 주님의 말씀을 찾아 이 바다에서 저 바다로 헤매고 북쪽에서 동쪽으로 떠돌아다녀도 찾아내지 못하리라.
‘사해에서 지중해까지’로 이해하기도 하지만, 세상 끝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됩니다. 곧 이스라엘인들이 유배로 끌려간 넓은 세상 전부를 뜻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음 행의 “북쪽에서 동쪽으로”와도 더 잘 맞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내리신 징벌 이외에도, 이스라엘의 불충이 가져온 가장 큰 결과는 하느님의 부재, 그리고 그분 말씀의 부재입니다. 언제나 당연히 함께 계시기 때문에 하느님이 우리를 떠난다는 것은 생각해본 일도 없었던 하느님의 선택된 백성들. 그러나 이제 주님의 말씀을 듣지 못해 굶주리고 세상을 떠돌아다녀도 결코 찾아내지 못하리라는 것입니다.처절한 절망이 찾아올 것입니다. 

❺다섯 번째 환시: 성전의 진동(9,1-4)
9,1나는 주님께서 제단 옆에 서 계신 것을 보았다. 그분께서 말씀하셨다. “기둥머리를 쳐서 문지방들이 흔들리게 하고 기둥들이 모든 사람의 머리 위에 떨어지게 하여라. 아무도 도망치지 못하고 아무도 피신하지 못하리라.3그들이 내 눈을 피해 바다 밑바닥에 숨더라도 내가 바다 뱀에게 명령하여 거기에서 그들을 물게 하리라.
주님께서 서계신 곳은 희생 제물을 바치는 성소 앞의 제단입니다. 바다 뱀은 셈족의 신화에서 큰 바다 밑바닥에 산다고 하는 괴물인데 그러나 주님께서 당신의 명령을 따르게 만드신 존재를 가리킵니다(욥 26,12-13; 시편 74,13-14 참조).

➜이스라엘에게 특전은 없다
9,7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는 나에게 에티오피아 사람들과 똑같지 않으냐? 주님의 말씀이다. 내가 이스라엘을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왔듯이 필리스티아인들도 캅토르에서, 아람도 키르에서 데리고 올라오지 않았느냐?
캅토르는 필리스티아인들의 기원지인 크레타, 키르는 메소포타미아 남부의 우르를 가리키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아람인들은 본디 기원상 이스라엘과 매우 가까운 종족이었지만, 이스라엘에게 두려운 적이 되었습니다(1,5). 
이 신탁은 이스라엘이 특별하게 선택받았음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이 선택을 바탕으로 한 이스라엘 백성의 자만을 논박합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는 다른 민족들의 운명도 결정지으시는 분이심을 확인시킵니다. 이처럼 아모스의 보편주의는 이스라엘의 선민사상을 보완합니다.
9,8보라, 주 하느님의 눈길이 죄 많은 이 나라 위에 있다. 나는 이 나라를 땅에서 없애 버리리라. 그러나 야곱 집안은 완전히 없애 버리지 않으리라. 주님의 말씀이다.
이는 의미심장한 부연 설명입니다. 죄 많은 왕국은 멸망하지만 선택된 민족 전체가 그러하지는 않으리라는 것입니다. 예언자는 5,15에서 희망의 여지를 남겨 둔 것을 여기에서 확실히 선포합니다.

④복구의 약속 (9,11-15) 
9,11그날에 나는 무너진 다윗의 초막을 일으키리라. 벌어진 곳은 메우고 허물어진 곳은 일으켜서 그것을 옛날처럼 다시 세우리라.12그리하여 그들은 에돔의 남은 자들과 내 이름으로 불린 모든 민족들을 차지하리라. ─ 이 일을 하실 주님의 말씀이다. ─
“초막”은 하느님께서 영원히 지속시켜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다윗 집안의 나약한 모습을 견고한 성이 아닌 초막으로 생각할 수 있고 또는 초막절의 기쁨을 연상시킬 수도 있습니다(신명 16,13-15). 
“내 이름으로 불린”의 의미는 물건에 자기의 이름을 써서 소유를 밝히듯이(2사무 6,2), 하느님께서는 다윗이 옛날에 정복한 이스라엘 주변의 민족들에게 당신의 이름을 표시해 두셨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구원은 신정(神政)의 정치적, 종교적 이상인 다윗 왕국의 재건을 가져옵니다. 11-12절은 사도 15,16-17에서 인용됩니다.
아모스 예언서는 다윗왕국을 다시 세운다는 이스라엘의 회복과 구원에 관한 신탁으로 끝나는데, 이 신탁을 아모스가 직접 선포하였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아모스의 격정적인 표현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징벌이 하느님의 최종 목적은 아닙니다. 때문에 파멸에 관한 메시지로 시작한 아모스의 예언은 희망에 찬 미래에 대한 예언으로 끝맺습니다.

5. 아모스서의 주요메시지 
1)아모스의 소명
①다섯 환상
소명(召命)이란 어떤 토론도 불허하는 상황에서 시작됩니다. 아모스를 예언자로 부른 이 소명은 7─9장의 다섯 환상과 연결시킬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하느님께서 매우 돌발적으로 오직 아모스만을 상대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아모스가 피할 수 없다는 것을 확실하게 인식할 때까지 그가 걸어야했던 내적인 길을 전해줍니다. 이 환상들 중에는 아주 고독하게 하느님과 아모스 사이에 일어난 극적 사건이 포함되어있습니다. 자기 백성을 위하여 중개에 나서서 두 번에 걸쳐 용서를 받아 낸 아모스는, 이제 더 이상 용서가 베풀어지지 않는다는 사실과(7,8), 야곱 집안이 멸망하는데, 그래도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을(9,8) 알게 됩니다. 이러한 계시가, 한편으로는 그를 신중하게 만들어 침묵하게도 하지만(5,13), 그에게 말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듭니다(3,8).

②재생작업
❶관찰(觀察) -백성들을 돌아보다
⑴아모스가 이 환상들을 통해 알아들은 것은 하느님께서 더 이상 이스라엘을 용서하지 않으시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무엇이 더는 용서되지 않는 일인지, 무엇을 지적하시는지를 알아내는 것은 아모스의 몫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계시를 받은 후에 시작된 가장 긴장된 정신적 재생작업의 과정입니다. 아모스는 사형선고를 받은 백성들 사이를 두루 돌아다니며 살폈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불평등이 참을 수 없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⑵유다인 아모스는 처음부터 다윗전통 위에 서있습니다. 선행된 이스라엘의 선택에는 임박한 하느님의 심판행위의 근거가 들어있습니다. 아모스의 선포가 얼마나 집요하게 선택표상과 대결하고 이로부터 특별한 자극들을 받았는가를 볼 수 있어야합니다. 우리는 아모스의 재생작업의 과정에서 이 사람의 생기와 정신적인 예리함이 작열함을 보게 됩니다. 언제나 새로운 신탁들이 그를 압도해왔음이 확실합니다. 
⑶개별적인 범법자는 어느 시대에나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개별적으로 심판을 받습니다. 그러나 아모스에 있어서는 전 이스라엘의 특정한 그룹들이 고발된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존립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위협하는 새로운 강력한 예언자가 등장한 것입니다. 아모스의 공격은 철저하고 날카롭습니다. 
“시온에서 걱정 없이 사는 자들 사마리아 산에서 마음 놓고 사는 자들 으뜸가는 나라의 귀족들! 그들에게 이스라엘 집안이 의지하러 가는구나.상아 침상 위에 자리 잡고 안락의자에 비스듬히 누워 양 떼에서 고른 어린 양을 잡아먹고 ...대접으로 포도주를 퍼마시고 최고급 향유를 몸에 바르면서도 요셉 집안이 망하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는다....보라, 주님께서 명령하신다. 그분께서 큰 집을 박살내시고 작은 집을 조각내시리라.”(아모 6,1-11). 
⑷상류층의 향락이 계명에 실제로 위배되지는 않습니다. 아마도 이들은 신명기의 말씀대로 추수 후 이삭을 밭에 뿌려놓았을 것이며(굶주리는 자들을 위한 배려) 문간에서 구걸하는 거지도 내쫒지 않았을 것입니다(루카 16장 부자와 라자로 참조). 아모스는 다만 공동책임, 공동체의식을 말할 뿐입니다.
 
❷관찰(觀察)- 세계사적 전망 
북이스라엘은 예로보암2세 치하에서 어느 정도 세력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상아로 치장된 사마리아 궁전에서 왕국의 멸망을 예견하지 못했으나 이스라엘은 추방될 것이라는 아모스의 예언대로(아모 3,15; 5,27; 5,17;7,9) 북이스라엘은 결국 아시리아의 티그랏 필에세르에 의해 그 종국을 맞았습니다. 이 강렬한 선포에 의하면 사마리아에는 남은 자라고는 없습니다(3,12 사자의 입에서 다리 두 개나 귀 한 쪽을 빼낸다). 1장의 가사詩에는 이스라엘과는 무관한 민족들의 범법행위가 고발되어있습니다. 아모스의 하느님은 그곳이 어느 곳이든 역사에서 보복하십니다. 이스라엘의 과오는 더 무겁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신뢰하셨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 땅의 모든 씨족 가운데에서 너희만 알았다. 그러나 그 모든 죄를 지은 너희를 나는 벌하리라.”(아모 3,2)

2)아모스書의 메시지
①正義의 하느님
아모스의 메시지는 하느님의 위대성, 모든 민족에게 퍼져 나가는 그분의 권능과 정의, 그러면서도 또한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그분의 영원한 우선적 사랑을 그 주제로 합니다. 그는 율법이 요구하는 것들, 특별히 경신례를 규정짓는 율법의 조항들, 가난한 이들과 힘없는 이들의 권리를 밝히는 율법의 조항들을 상기시킵니다. 아모스는 장엄하고 강렬한 어조로 부자들과 권력자들, 판관들과 사제들에게, 장차 복음서가 아래와 같이 표현하게 될 내용을 선포합니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 
아모스는 또 하느님께서 좋아하시는 경신례가 어떠한 것인지도 상기시킵니다. 이스라엘인들의 경신례는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응답입니다. 이러한 경신례가 겸손과 정의로써 표현되기를 하느님께서는 바라시는 것입니다. 이 점에서도 아모스는 다시 신약 성경과 이어집니다. “그대가 가진 것 가운데에서 받지 않은 것이 어디 있습니까? 모두 받은 것이라면 왜 받지 않은 것인 양 자랑합니까?”(1코린 4,7)


②징벌과 용서의 하느님
아모스의 하느님께서는 불굴의 사랑과 함께 정열을 지니신 하느님이십니다. 그분께서는 악한 세상의 힘이 사람들을 당신에게서 멀어지게 하도록 결정을 내리실 수 있는 분이시며, 사실 또 몇 번에 걸쳐 그렇게 하십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죄악의 무게가, 또 하느님 없이 살거나 당신의 법 밖에서 사는 죄인들의 요구가 당신을 압도하지 못하게도 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위하여, 그리고 영성적으로 이스라엘에 속한 모든 이를 위하여 그렇게 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죄악과 교만이 죄인에게로 모든 벌을 끌어들이리라고 선포하기도 하십니다. 그러면서도 또한 죄와 오만이 가득 찬 곳에 용서와 은혜가 충만하게 만들기도 하십니다. 인간의 기도가 하느님을 감동하게 하고 그분께서 당신의 결정을 번복하시게 할 정도로 큰 효력을 지닐 수 있음을, 아모스는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하느님의 백성을 위한 예언자의 이러한 중개는, 예수님께서 당신 제자들을 위하여 하신 기도에서 완성됩니다(요한 17).
그렇다고 아모스의 하느님께서 이중의 모습, 곧 벌하시는 하느님의 모습과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신 분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아모스의 하느님은 벌을 내리시면서도 동시에 구원을 베풀고자 하시는, 언제나 같으신 하느님이시며 주님이십니다. 그분의 벌 자체가 예외 없는 정의의 엄격하고 차가운 논리를 넘어섭니다. 그분의 벌은 상처 받거나 배신당한 사랑의 표현, 징벌 너머로 그 마지막 외침 속에 아직도 회개를 호소하는 사랑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아모스보다 몇 년 뒤에 이스라엘에서 예언 활동을 하는 호세아는, 하느님의 이 극적인 사랑을 새로운 언어로 표현해 내게 됩니다.

6.아모스 예언의 영향
①아모스, 호세아, 이사야, 미카 등은 기원전 8~7세기에 활동한 예언자들입니다. 호세아는 북왕국의 농민층 출신으로서 특히 제의적 문제에 관심을 가졌고, 이사야는 도시인으로서 냉철한 눈으로 세계사의 움직임과 정치영역에서의 모든 변화를 합리적으로 설명하면서 예루살렘의 수호를 믿고 평화의 왕을 기다리는 자였습니다. 아모스는 이사야처럼 잘못된 정치, 군비확장과 동맹에 반대하면서 싸우지도 않았고, 미카는 동시대인인 이사야의 시온에 대한 희망에 길을 같이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예언자들은 하느님께서 자신들을 깨우쳐 점차적으로 자신들을 이해하게 하셨다는 확신에서 일치합니다. 
②아모스가 정의를 외친 불의의 대상들은 지배계급입니다. 그러나 사실 상류층의 향락이 계명에 실제로 위배되지는 않습니다. 너무 즐겁게 살면 안 된다는 계명은 없으니 말입니다. 아모스는 다만 공동체의식을 말할 뿐입니다. 법규는 중요해서 지키고 가난한 사람들은 마실 물도 없는데 포도주를 대접으로 퍼마시는 상류층을 고발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오로지 그들 각자를 향한 하느님의 말씀과 위임을 듣고 순종하는 데서 각기 특수한 인물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스라엘에게서 지금까지 아직 들어보지 못한 방식으로 말할 수 있었고 그러한 말들이 수세기를 걸쳐 종교적 언어를 전수하였습니다. 
③사실 예언자의 소명에 대하여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십시오.” 와 같이 말하는 예언자는 이사야 뿐이었고(이사 6장 참조), 보통은 저는 정말 ‘말을 못합니다’라고 소명을 철회해 주기를 간청했던 모세, 또는 사람들이 싫어하는 말을 해야 했기 때문에 유다인들이 ‘마고르 미싸빕’ 곧, 사방에서 공포가! 라고 부른 예레미야(20,10), 유다에서 사는 사람인데 북왕국으로 가서 예언하라는 소명을 받고 시키는대로 했다가 베텔의 사제에게 쫓겨나서 예언을 못하게 되는 아모스, 처음부터 창녀와 혼인을 시키시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람을 피우는 아내를 받아들이는 이러한 행동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표현했던 호세아 등 이와 같이 예언자들은 하느님의 말씀뿐 아니라 하느님의 마음을 받아 느끼는 것이었기에 우리에게 예언자들의 생애는 참으로 숭고한 것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④아모스로부터 시작된 이 예언운동은 이후 3세기동안 계속되면서 이스라엘 역사의 전체과정에 심각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예언자들은 이스라엘의 전통을 새로운 시대상황에 적응시킨 인물들이었습니다. 예언자들이 백성들로 하여금 이전 생활로부터의 단절을 요구하는 정신은 매우 깊은 것이어서 이전의 것들을 자신의 생활에 옮겨갈 수 없었습니다. 부름을 받은 자는 그 사회와 그 사회가 제공하는 모든 사회적 경제적 보장들에서 벗어나서 독립된 상태 안에 말하자면 보장 없이 하느님의 예속으로 옮겨진 것입니다. 예언자들의 이러한 삶이, 선포를 듣는 대상자들에게 요구하는 이전생활로부터의 단절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다음과 같은 표현에서 더욱 드러납니다.
“사자가 포효하는데 누가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으랴? 주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는데 누가 예언하지 않을 수 있으랴?”(아모 3,7-8). 
⑤교회역사 안의 신비가들의 승화된 체험들이 당시의 영역에 머물렀던 반면 예언자들의 소명환상들은 분명히 한 영역을 넘어서는 것입니다.예언자들은 처음 계시를 받을 때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는 공통적인 사실을 말해줍니다(1사무 3,4). 그리고 그러한 부름은 예언자들 깊숙이 침투하여 그의 존재를 흔드는 것이었습니다. 예언자들이 하느님의 부르심을 통해 하느님 앞에서 결단함으로써 하나의 새로운 인격을 이룬 모습을 우리는 예언자들에게서 봅니다. 아모스의 예언은 이스라엘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고 호세아, 이사야, 미카 등 여러 예언자도 아모스의 예언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현 시대에서도 사회 정의가 절실히 요청됨에 따라 아모스에 대한 관심이 크게 상승하여 정의의 예언자 아모스는 애독되고 있습니다. 그 예언의 강직함과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에 대한 연민과 변호, 그리고 아모스의 유일신 사상은 오늘날에도 힘 있는 예언의 말씀으로 교회구성원 모두에게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⑥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으실 까닭이 없다고 생각하던 이스라엘, 때때로 관대해지는 나 자신의 나태함에 대해 아모스의 말을 기억해야합니다. 
내가 너의 한 가운데를 관통 한다! 비켜설 수도 물러설 수도 변명도 불필요한 강렬한 외침입니다.

“보라! 포도밭마다 곡소리가 터져 나오리니 내가 너의 가운데를 지나갈 것이기 때문이다.”(아모 5,17)
<아모스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