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드야서,요나서,미카서는 유다왕국 말기의 예언자들인데 시대적 배경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오바드야서는 예루살렘 함락 이후(BC587)에 활동한 예언자로 알려져있습니다. 요나 예언서는 열두 소예언서 가운데 흥미로운 소재 면에서 가장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요나서의 독특한 면은 예언자가 전하는 하느님 말씀이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요나예언자에 관한 에피소드 형식을 보여줍니다. 요나서는 그 문학 유형이 후에 나타나는 토빗기, 에스테르기, 다니엘서를 저술하게 되는 현인들의 문체를 상기시키는데 이 시기는 페르시아제국의 지배시대 말기 대략 BC 3C후반-2C말이 됩니다. 예언자 미카는 유다임금 히즈키야 시대, 곧 BC750년에서 697년 사이에 임무를 수행한 것으로 알려진 이사야와 동시대 인물입니다.
구약성경 전체 46권중 예언서(히브리어;느비임)는 열여덟 권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성경의 예언서 목차는 히브리 성경에서 대(大)예언서로 구분되는 이사야,예레미야,에제키엘,다니엘예언서 순으로 배열되어있는데 예레미야와 관련된 책들인 애가와 바룩서는 예레미야서 뒤에 두고, 다니엘서는 책의 분량과 年代를 고려해 에제키엘서 다음에 놓았습니다. 大예언서에 이어지는 성경목록은 소(小)예언서 호세아서,요엘서,아모스서,오바드야서,요나서,미카서,나훔서,하바쿡서,스바니야서,하까이서,즈카르야서,말라키서 등 열두 권입니다.(구약기본정보[8]-①예언서 입문참조)
46-38 오바드야서 OBADIAH / ΟΒΔΙΟΥ(약칭; 오바/Ob)
①예언자 오바드야
오바드야라는 이름은 '주님의 종'을 뜻하는데, 오바드야 예언자에 대하여는 더 이상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파괴되고 백성은 유배를 가서 이제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보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오바드야에게 당신의 '날'의 도래를 선포하시고, 당신께서 민족들의 주님으로서 역사 속에 개입하시어 통치하신다는 사실을 오바드야의 환시를 통해 드러냄으로써 낙담한 생존자들의 공동체에 위안을 주는 하나의 신탁을 이룹니다.
②오바드야서의 구조
에돔에 내릴 심판으로 시작되는 오바드야서는 21개의 절로만 이루어진 소책자로서, 예언서 가운데에서 가장 짧습니다. 이 예언서는 거대한 영감이 흐르는 매우 아름다운 신탁들로 구성되어 있고 그 문학 유형은 예언자들의 민족들에 관한 신탁, 주님의 날의 도래를 선포하는 신탁들의 유형과 유사합니다.
❶오바드야의 환시(1-14절;에돔에 내린 심판,에돔의 멸망,에돔의 죄악)
야곱은 형 에사우가 아버지 이사악으로부터 받을 장자의 축복을 가로챕니다. 에사우는 집을 떠나 에돔을 세웁니다(창세 25─27). 성경에서는 야곱과 에사우가 재회하면서 화해한 것으로 되어있지만 이 두 집안의 끈질긴 원한은 줄곧 이 두 민족을 대립시킵니다. 질투심이 많은 에돔은 거듭해서 이스라엘을 공격함으로써 이 적개심을 의도적으로 유지해 나갑니다(민수 20,14-21; 요엘 4,19).
(야곱 에사우에 관한 내용은 본블로그 sunny river 구약노트 3-④ 창세기의 인물 야곱 참조)
11네가 저만치 떨어져 서 있던 그날 이민족들이 야곱의 재산을 끌어가고 낯선 자들이 그의 대문으로 쳐들어가 예루살렘을 두고 제비를 뽑던 그날 너도 그들과 마찬가지였다.
예루살렘의 멸망을 전하는 전통들은 모두, 에돔이 신이 나서 예루살렘을 약탈하였다고 말합니다(시편 137,7; 애가 4,22; 에제 25,12; 35,5.12 참조).
12너는 네 아우의 날을, 그 재난의 날을 흐뭇하게 바라보지 말아야 했다. 유다의 자손들이 멸망하던 날 너는 그를 두고 기뻐하지 말아야 했다. 환난의 날에 너는 입을 크게 벌리지 말아야 했다.
에돔의 조상 에사우와 유다의 조상 야곱은 형제입니다. 곧 에돔과 유다는 결국 형제국인 것입니다.그런데 에돔은 형제의 불행을 기뻐하며 피신하는 유다인들을 전멸시키고 살아남은 이들을 바빌론국에 넘겨주었다는 것입니다(14절). 에돔인들은 난을 피해 살아남은 유다인들을 정복군인 바빌론인들에게 넘겨 주었다고 전해집니다.
❷어떤 편집자의 손에 이루어진 결론적 선언이 이어집니다(민족들의 심판과 이스라엘의 구원;15-18절).
❸익명의 서기들이 산문에 가까운 문체로 쓴, 앞부분 전체에 관한 해설이 첨가되어 있습니다(새로운 이스라엘;19-21절).
③저작시기
2-6절이 형식은 약간 다르지만 예레 49,7-16에 다시 나오는데, 이러한 사실 때문에, 어떤 학자들은 오바드야서가 예레미야서보다 앞서 저술된 책으로서 기원전 9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의 멸망에(587년) 관한 시사가 너무나 분명하기 때문에, 그러한 가설을 받아들이기는 어렵습니다.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로는 예레미야서의 구절과 오바드야서의 구절 가운데에서 어느 것이 먼저인지에 대해서도 어떤 판단을 내리기가 쉽지 않고 두 개가 공통된 출전에서 나왔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예언자는 환시에서, 예루살렘이 함락당할 때에, 에사우의 후손들인 에돔인들이 야곱의 후손들에게 한 행실을 고발합니다(10절). 이 예언서는 예루살렘이 함락된 해인 587년 조금 이후에 쓰여졌을 것입니다.
46-39 요나서 JONAH /ΙΩΝΑΣ (약칭; 요나/Jon)
1)예언자 요나
요나는 아미타이의 아들로 소개됩니다(1,1). 요나는 히브리어로 ‘비둘기’라는 뜻입니다. 비둘기는 평화,순결 등의 이미지가 떠오르지만 이 책에서 요나는 니네베로 가라는 하느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비둘기가 전령 구실을 하였듯이, 요나도 하느님을 피해 도망해야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할 수 없이 아시리아의 수도 니네베에 가서 주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물론 요나가 하느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을 억압했던 아시리아의수도 니네베에는 가고 싶지 않았고 그곳에 회개하라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사실 이전의 예언자들도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라는 소명을 받을 때 도망가고 싶은 생각이 없지 않았지만 직접 도망가는 행동을 한 것은 요나뿐입니다. 요나는 유다인을 억압했던 이방인들이 회개하는 것이 달갑지 않습니다. 그들이 회개하면 하느님께서 틀림없이 그들을 용서하고 받아주실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불편하고 화가 납니다. 요나라는 이름이 비둘기라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예로부터 비둘기의 회귀본능이 옛사람들에게 통신수단이 되었듯이 결국에는 니네베 백성들과 함께 하느님에게도 돌아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2)저자와 저작시기
❶요나는 아미타이의 아들로 소개되는데(1,1) 요나서의 이 구절은 북왕국 예로보암2세(Jeroboam;Ἱεροβοὰμ;BC 783-743)의 재위 기간에 예언활동을 했던 요나와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요나의 이야기는 그것이 예언자들의 실제 체험이라는 점을 부각시키고자 역사적 실존 인물과 연결됩니다(“이는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갓 헤페르 출신으로 당신의 종인, 아미타이의 아들 요나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 그대로다.”;2열왕 14,25). 그러면서도 더욱 교훈적으로 만들기 위하여, 더러는 한편의 우화처럼, 갖가지 표상들로 가득한 경탄스러운 이야기로 전개됩니다. 이 이야기의 저자는 여러 요소를 외국의 신화들에서, 그러나 특별히 예레미야서와 같은 성경 전통에서 빌려 옵니다(3,8과 예레 18,11; 23,22; 25,5. 그리고 3,10과 예레 18,8.10; 26,3.13.19 비교).
❷여기에서 언어와 문체는 명백히 고전 히브리 말 시대 이후의 것입니다. 그리고 이 책의 메시지는 예컨대 유배에서 돌아올 당시의 제2이사야서보다(이사 40─55) 더 폭넓은 보편주의를 반영합니다. 이 이야기에서의 해학(諧謔)은 요나서를, 에즈라 시대에 자신들에게만 갇혀 있던 유다교의 민족주의 경향을 비판하는 일종의 팸플릿으로 생각하게 합니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씌어진 룻기처럼 요나서도 편협한 유다민족주의에 반대하는 책으로 보입니다.
❸열왕기에 나와 있는 전승 자료의 일부가 초기 요나서와 관련되어 있을 수 있으나, 현재 형태의 요나서는 후기의 많은 이야기들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요소는 요나서를 유배 이후의 작품으로 생각하게 합니다. 이 소책자에서 표상이 풍부한 문학 유형은 유배 이전 역사가들의 문체보다는, 얼마 뒤에 토빗기, 에스테르기, 다니엘서를 저술하게 되는 현인들의 문체를 상기시킵니다. 이 시기는 대략 BC 3C후반-2C말에 이르는 역사교훈서(토빗,유딧,에스테르기)가 최종편집된 3단계 성경편찬시기가 됩니다. 2단계 예언서성경편찬이 이루어지는 페르시아제국 지배시대의 대략 BC 4C후반~3세기초 무렵도 배제되지는 않습니다.
❹요나서의 저자는 느헤미야와 에즈라의 정책이 편협한 민족주의를 조성하고 있던 무렵인 기원전 4세기경에 유다 공동체의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선민사상과 구원관을 우려하는 유다의 진취적이고 개방적인 지식인 중 하나였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3)문학 유형
①교훈서적 특징
큰물고기 이야기는 당시대에 모든 민족이 아는 전래동화입니다. 요나서는 역사서술적 성격을 띤 설화로서 종교적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신학적으로 이 교훈 설화는 중요한 예언서이지만 역사적 문헌으로 간주되지는 않습니다. 사실상 요나서는 후대에 나타나는 미드라쉬문학이나 지혜서에 가깝습니다.
②예언서적특징
❶니네베 사람들의 회개를 선포하고 그들이 회개한 이야기를 전하는 요나서는 교훈 설화로 각색된 예언자설화이지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다른 예언서에 비해 요나예언자 자신의 이야기가 중심입니다.
❷배 안의 요나와 니네베로 가라는 소명 앞에 선 요나를 보면 이 두 경우 다 이방인들이 요나보다 우수합니다. 그들은 폭풍이 엄습하는 동안에도 최선을 다합니다. 니네베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신 앞에서 솔직한 반면 요나는 심리적으로 복잡합니다. 그의 복잡성이 드러나는 부분중 하나는 배 안에서의 종교적대화이며 하나는 용서에 관한 하느님과의 대화입니다. 첫 부분은 뱃사람들이 요나의 하느님께 제물을 드리는 것으로 끝납니다. 그들이 이스라엘의 하느님 앞에 돌아왔다는 것으로써 하느님의 계획들 중 하나는 이미 그 목표에 도달한 셈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니네베 구원의 서곡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요나의 설화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유형, 즉 예언자설화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점은 단지 그전 예언자 설화들보다 더 교훈 설화로 각색된 것뿐입니다.
❸우리는 이 날카롭고도 경쾌한 화법을 다른 예언서에서는 볼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몇 날 남지 않은 한 도시의 운명과 자신의 직책을 농락하는 예언자가 매우 진지하게 거론됩니다. 물론 이 이전 예언자들에서는 예언자 자신이 설화의 주인공이 된 일이 없습니다. 주인공은 언제나 자신을 드러내는 하느님이셨습니다.
❹이방인들에게 하느님의 자비가 베풀어지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아주까리나무의 그늘에서 기쁨을 만끽하다가, 그것이 시드는 것을 보자 화를 내는 가소롭고 고집센 요나는 어떻게든 하느님의 구원을 방해하지 못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느님의 뜻은 그 목표에 도달한다는 이 사상이 바로 이 책의 특별한 수수께끼입니다. 즉 요나는 그의 모든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역시 하느님을 존엄하게 섬긴 인물입니다. 그를 통해 뱃사람들이 하느님을 주목하게 되고 그를 통해 니네베인들은 회개하게 됩니다. 이렇게 여기에는 하느님의 사람들의 배신에 대한 절망도 탄식도 없습니다. 하느님의 승리적 섭리를 감안하면서 그런 배신도 낙관적으로 전해질수 있었습니다.
4)저술목적
①이러한 요나서는 두 가지 가르침을 담고 있습니다. 이 책은 첫째, 예언자가 전인적으로 겪는 내적 체험이 어떠한지를 보여 주려고 합니다. 예언자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의 죄악을 고발하는 것으로 자기의 직무를 시작합니다. 동시대인들과는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이러한 사명은, 예언자에게 극히 고통스러운 일일뿐더러 그를 다른 이들에게서 소외시키는 일이기도 합니다. 예언자가 자기가 전해야 하는 메시지의 중압에 억눌려서 두려운 나머지, 사람들에게 감히 말을 하지 못한다거나(1,1-16) 체념한 설교가로 전락한다 하더라도(3,1-10), 그가 전하는 또는 전해야 하는 말씀은 선원들과 바다, 바람과 큰 물고기, 니네베인들, 그리고 짐승들과 초목이 보여 주는 것처럼, 의도하였던 효과를 가져올 수가 있습니다. 예언자는 자기가 원한다고 해서 사명을 벗어 던져 버릴 수가 없기 때문에, 그가 있다는 단순한 사실만으로도, 하느님의 말씀은 동물과 자연을 포함한 온 세상을 움직이게 되는 것입니다.
②요나서의 두 번째 가르침은, 주님께서 선포하라고 명령하시는 말씀의 내용과 그 말씀을 받는 자들의 자질을 통하여 드러납니다. 이스라엘에게 “자비하고 너그러운” 분으로 당신을 계시하신 하느님(탈출 34,6-7), 달리 말하면 선하신 구원자 하느님께서는 당신께서 니네베인들 곧 이방인들도 사랑하신다고 선언하십니다. 여기에서 니네베 성읍, 그리고 그것과 관련된 어림수, “사흘”(3,3)과 주민 “십이만 명”(4,11)은, 그러한 하느님의 구원 계시의 보편적 효력을 나타내고자 채택된 것입니다. 유딧 2,5.15에도 나오는 “십이만 명”은 보편주의적 의미를 지닌 상징적 수입니다.
5)요나서의 구조 및 내용
전체4장으로 된 요나서는 히브리 말 성경에서 예언서들 가운데에 들어가 있지만, 언뜻 보기에도 다른 예언서들과 다르게 여겨집니다. 일련의 신탁으로 구성된 일반 예언서들과는 달리, 요나서는 서로 연결된 세 장면의 이야기로 되어 있으며, 거기에서 예언자는 부차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처음 두 장면에서 요나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은 뒤에, 과묵하고 고독한 사람으로 소개됩니다. 반면에 그의 상대자들, 곧 선원들, 그리고 이어서 니네베 사람들은 분주하게 움직일뿐더러, 요나보다 훨씬 더 종교적인 자세를 보입니다. 이로써 독자는 바로 그들에게서 자기들의 모습을 보고 또 그들의 모범을 따르도록 자극을 받게됩니다. 세 번째 장면에서는 요나 혼자 하느님과 대면합니다. 이 부분이 바로 요나서의 절정입니다. 그것은 곧 요나 예언자의 가장 중요한 기도, 그리고 그의 사명에 관한 하느님의 가장 큰 계시입니다. 이러한 전체 맥락에서, 영감을 받은 어떤 저자가 훗날에, 그러나 요나서의 상황에 꼭 맞는 방식으로, 이 책의 종교적, 예언적 가치를 더해 주는 시편을 2장에 삽입합니다.
1장 : 도망치는 요나 (1,1-16)
①아시리아의 수도 니네베로 가서 그들의 죄를 고발하고 회개하도록 하라는 주님의 말씀에 요나는 가능한 한 빨리 반대 방향인 타르시스로 도망칩니다. 타르시스는 이스라엘인들 생각에 세상의 끝이라고 여기는 곳입니다.
②타르시스로 가는 도중 폭풍이 배를 덮치자 뱃사공들은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이 어려움에 대처하는데 요나는 방관적인 태도를 취합니다. 그는 하느님의 계획이 무엇인지 알았고 이 상황에서 벗어 날 수 없다는 것도 압니다. 그래서 요나는 잠을 잡니다.
③선원들은 요나를 바다에 던집니다. 이것은 물론 너희가 살려거든 나를 바다에 던지라는 요나의 제안입니다. 요나는 원수 니네베를 구원하시려는 하느님의 계획에 참여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죽는 것이 났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④바다가 잠잠해지자 선원들이 하느님을 경배합니다. 원하지 않은 일이었지만 요나는 선원들을 하느님께 인도하는 도구가 됩니다.
⑤요나는 그의 모든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을 존엄하게 섬긴 인물이며, 바로 이점이 이 책의 특별한 수수께끼입니다. 반항하면서 섬기는 하느님-현대인들 중 적지 않은 신앙인들이 여기에 속할 수 있겠습니다.
⑥1,9에서 요나가 뱃사람들에게 자신을 소개하는 “히브리 사람”이라는 칭호는 일반적으로 이스라엘인들이 이민족들에게 자신들을 알리거나 이민족들이 이스라엘인들을 가리킬 때에 쓰이는 말입니다.
2장:요나가 큰물고기 뱃속에서 사흘 후 살아나다 (2,1-11)
①그러나 요나는 죽을 수도 도망할 수도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큰 물고기를 보내시어 그를 삼켜 육지에 토해 놓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요나는 오히려 자기 자신과 대면하고 하느님과 만나도록 강요됩니다. 이 체험은 바다와 큰 물고기 뱃속으로 상징된 어둡고 고통스러운 고뇌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②요나는 깨닫게 됩니다. 구원은 하느님께 속하고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바라시는 사람에게 어떻게든 구원을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③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하는 것으로 나타난 이 시편은 후대의 편집자에 의해 요나 이야기에 삽입된 것으로 여겨집니다. 좀 해학적인 면을 누그려 뜨리려는 의도가 있을 것입니다. 탈출기 34장 및 18/86/103/120/130/ 등 많은 시편이 들어있습니다.
3장: 요나와 니네베사람들 (3,1-10)
주님의 말씀이 다시 요나에게 내립니다. 이제 니네베로 가라는 명령을 요나는 피할 수 없습니다. 그는 니네베로가서 임박한 몰락의 소식을 전한 후 벌어질 일을 보기위해 그 도시 변두리에 자리를 잡습니다. 그러나 그는 니네베가 몰락하지 않을 것임을 압니다. 왜냐면 이 낯선 예언자의 소식으로 왕의 명령을 받은 도시전체가 회개운동에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이방인이 뉘우쳐 회개하고 심지어 동물들까지 회개에 참여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보다 훨씬 더 민감한 이 족속에게, 하느님께서 어떻게 용서를 부인하실 수 있을 것인가? 요나는 하느님의 마음이 달라질 것을 안 것입니다. 여기에서 니네베는 이방인 세계의 상징입니다.
4장: 요나가 반항한 이유 (4,1-11)
“아, 주님! 제가 고향에 있을 때에 이미 일이 이렇게 되리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저는 서둘러 타르시스로 달아났습니다. 저는 당신께서 자비하시고 너그러우신 하느님이시며, 분노에 더디시고 자애가 크시며, 벌하시다가도 쉬이 마음을 돌리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요나 4,1-2)
요나는 하느님께서 그들을 자애롭게 대하시리라는 것을 알았던 것이고 그것이 요나가 순종하지 않은 이유였습니다. 니네베 사람들이 회개하고 하느님께서 그들을 용서하시는 것을 보고 요나는 기뻐하는 대신 깊이 실망합니다. 요나는 마치 아무것도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어 하지 않는 어린이처럼 보입니다. 그의 마음은 닫혀 있고 하느님의 선하심이 다른 사람들에게 미치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요나는 하느님께서 니네베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푸시는 것을 용납할 수가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니네베로 인하여 많은 고통을 겪고 그만큼 마음의 상처도 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오히려 화가 나있는 그의 머리 위에서 아주까리나무가 자라게 하고 그 그늘에서 요나의 화가 가라앉기를 기다리십니다. 요나는 시원한 나무그늘 때문에 아주 기분이 좋아졌으나 그러나 이내 나무는 벌레가 먹고 시들어버립니다. 요나는 다시 화가 납니다.
“너는 네가 수고하지도 않고 키우지도 않았으며, 하룻밤 사이에 자랐다가 하룻밤 사이에 죽어 버린 이 아주까리를 그토록 동정하는구나! 그런데 하물며 오른쪽과 왼쪽을 가릴 줄도 모르는 사람이 십이만 명이나 있고, 또 수많은 짐승이 있는 이 커다란 성읍 니네베를 내가 어찌 동정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4,9-11)
6)요나서의 핵심사상
저자는 이와 같은 요나의 인간상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의 어리석음을 풍자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하느님께서 요나에게 주신 대답으로 끝납니다. 그 대답은 세상의 모든 가소로운 일, 불가해한 일, 모든 인간적인 애매모호함에서 일어나 직접 하느님의 마음에 접하게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에 요나 혼자 하느님과 대면합니다. 이 부분이 바로 요나서의 절정입니다. 그것은 곧 요나 예언자의 가장 중요한 기도인 하느님의 본성에 관한 기도와(저는 당신께서 자비하시고 너그러우신 하느님이시며, 분노에 더디시고 자애가 크시며, 벌하시다가도 쉬이 마음을 돌리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사명에 관한 하느님의 가장 큰 계시인(결코 외면할 수 없는 오른쪽과 왼쪽을 가릴 줄도 모르는 십이만 명)보편적 사랑입니다.
7)복음서와 요나서(마태 12,38-41;마르 8,11-12 ; 루카 11,29-32)
그때에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스승님이 일으키시는 표징을 보고 싶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악하고 절개 없는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구나! 그러나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요나가 사흘 밤낮을 큰 물고기 배 속에 있었던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사흘 밤낮을 땅속에 있을 것이다. 심판 때에 니네베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다시 살아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 그들이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마태 12,38-41)
①예수님께서는 당신께 기적을 요구하는 불신자들의 청을 거절하시면서, ‘요나의 표징’을 말씀하십니다. 메시아에게는 백성들이 믿을 수 있는 표징이 있어야한다는 것이 유다교의 전통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요구가 악의에 차있거나 표징을 단순한 기적선호와 동일시 될 때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1코린 1,22; 유다인들은 표징을 요구하고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찾는다). 기적의 의미는 무엇보다도 회개를 촉구하시는 말씀을 실현하는 것임을 뜻합니다.
②예수님의 부활 이후에, ‘요나의 표징’의 의미는 복음서 안에서 발전한 내용이 증언하는 것처럼 더욱 잘 이해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성서에 기록된 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1코린 15,4)는 가장 오래 된 신경의 표현도, 이 ‘요나의 표징’과 관련지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서의 ‘예언자 요나의 표징 한 가지 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한다’는 말씀은 세 가지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❶예수님의 기적들은 모두 그분의 존재와 구원행위를 가리키는 단 한 가지 표징일 뿐이다.
❷요나가 바다 괴물의 뱃속에서 사흘을 지낸 후 다시 살아난 것처럼 사람의 아들은 죽음의 영역에서 사흘 후 부활하실 것이다.
❸요나는 니네베사람들에게 회개를 요구하며 하느님의 구원을 선포한다. 니네베 사람들은 요나의 설교만 듣고도 도시 전체가 회개한다.
③유다는 기적은 요구하면서 기적의 메시지는 들으려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표징은 영원한 생명과 직결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더 큰 이’는 구원사를 계승할 뿐 아니라 구원사를 능가하는 일이 지금 일어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요나서의 해학적 요소는 역사를 통하여 그리스도교적 예술을 하는 조각가와 화가들에게 끊임없이 영감을 주어 왔습니다. 오늘날에도 요나라는 인물은 우리에게 계속 호감을 느끼게 합니다. 그런데 그 이유는 특별히 흥미로운 요나라는 사람보다는, 그의 메시지 때문일 것입니다. 그것은 요나가 하느님에 대하여 말하는 내용, 곧 그분의 보편적이며 모든 것을 뒤바꾸어 놓는 사랑입니다.
8)이스라엘의 배타적 종교에 대한 자기비판
때때로 이 책을 에즈라와 느헤미야의 편협주의적 자세에 대한 저항적 시각으로 보기도합니다. 이 책이 말하는 대상은 언약과 공동체를 잘 아는 사람들입니다. 다른 민족들에 대한 계획으로부터 하느님의 자유를 침해하려는 인간적인 유혹을 막기 위해 이 책은 그들에게 말을 건네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나라는 예언자를 통하여 구체화된 이 사건을 본다는 것은 우리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몇 몇 예언자들 역시 이스라엘을 통한 세계의 구원을 말해왔기 때문입니다. 요나의 본래의 잘못은 역시 그의 방관적 태도입니다. 그는 배 안에서도 그랬고 니네베의 성에서도 그랬습니다. 물론 이 설화에서 가령 이스라엘의 예언에 관한 전체적인 평가 같은 것을 찾아내려고 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그러나 주목을 끄는 것은 역시 이스라엘 예언서의 마지막 진술들 중 하나가 이렇게 자기비판의 말이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유 안에서 당신이 원하는 사람에게 자비를 보이고,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장소에도 당신 구원을 보이십니다.
46-40 미카 (MICAH ; ΜΙΧΑΙΑΣ)(약칭; 미카/Mi)
1)예언자 미카
'미카'라는 이름은 '누가 주님과 같으랴?'라는(7,18 참조)질문의 단축형입니다. 그리고 전례 중에 백성이 지르는 탄성을 상기시키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시편 35,10; 89,7-9; 113,5; 이사 44,6 이하).
이 이름은 성경에서 자주 나타나지만, 저술 예언자인 이 미카와 판관기 17장 등 다른 곳에 나오는 미카와는 구분해야 합니다. 이 책의 머리글에(1,1) 나오는 미카의 고향 모레셋이라는 작은 마을은, 일반적으로 예루살렘에서 직선거리로 남서쪽 약 40킬로미터 지점에 있던 곳으로 생각됩니다. 이곳은 팔레스티나 중심부의 남북으로 뻗은 산악 지방에서 지중해 쪽으로 완만하게 경사진 평원 지대입니다. 유다 땅 모레셋의 이러한 위치는 이 책이 시사하는 시대와 역사적 사건들을 생각할 때에 나름대로 중요성을 지닙니다.
2)활동시기
모레셋 사람 미카(1,1)는 유다 임금 요탐과 아하즈와 히즈키야 시대, 곧 BC750년에서 697년 사이에 임무를 수행합니다. 미카는 이사야와 동시대 인물입니다. 그러나 어떠한 본문도 그가 실제로 요탐의 치세 때에 등장하였다는 사실을 분명히 확인해 주지는 않습니다. 그보다는 그 다음의 임금 아하즈 통치 말기를 생각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머리글이 이 예언자의 전체 활동 시기를 제시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특별히 신랄한 내용을 담은 몇몇 구절은, 하느님께 불충한 므나쎄 임금과 그의 시대를 대상으로 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 가설을 따를 경우, 미카의 활동 시기는 기원전 725년에서 기원전 680년까지 이어집니다. 이 시기는 중요한 두 가지 사건을 볼수 있는데 우선 기원전 722년에 발생한 사마리아의 멸망입니다. 미카는 이 재난을 체험하였고 1,6-7에서 이 사실을 선포합니다. 또 다른 사건은 기원전 701년에 일어난 아시리아 임금 산헤립의 평원 지대 침공입니다. 이 침략으로 미카 예언자의 고향은 아시리아 군대의 행동반경 안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미카는 불행이 예루살렘으로도 다가오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멸망은 피할 수 없다고 여깁니다(1,8-16과 3,12).
3)저자와 저작시기
미카서는 예언서의 고전적 구성 방식에 따라 단죄의 말씀과 구원의 약속이 규칙적으로 번갈아 등장하는데 이러한 배열은 미카의 신탁들이 집성된 뒤에 편집자들이 작업한 결과임이 분명합니다. 이로써 그 안에 들어 있는 몇 몇 요소들의 친저성 문제가 제기됩니다. 1─3장과 6,1-7,6은 거의 모든 학자가 미카가 선포한 말씀으로 판단 합니다. 다만 2,12-13의 시기는 일반적으로 기원전 536년 이후, 유배에서 돌아온 때로 잡는데 7,8-20의 전례도 마찬가지입니다. 4장과 5장의 저술 시기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의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이 두 장을 유배 이후의 신탁들이 한데 모아진 것으로 보고 다른 이들은 미카의 말씀을 기초로 후대의 사람들이 연이어서 자기들의 시대 상황에 따라 재작업한 것이라고 판단합니다. 이 문제는 아직도 결정적 답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4)미카서의 구조
전체 7장으로된 미카서는 예언서의 고전적 구성 방식에 따라 단죄의 말씀과 구원의 약속이 규칙적으로 번갈아 등장합니다.
①단죄의 말씀
❶이스라엘을 단죄하시다 (1,2-7)
❷예언자의 애가 (1,8-16)
이 애가는 예루살렘 남서쪽에 위치한 열두 성읍과 관련됩니다. 그 가운데에서 대부분의 성읍 위치는 확인되었지만, 더러는 어디에 있었는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아무튼 이 열두 도시는 기원전 701년에 아시리아 임금 산헤립의 군대가 필리스티아 땅에서 예루살렘으로 진군하는 길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❸착취자들과 거짓 설교자들 (2,1-11)
사회적 불의에 관한 미카의 맹렬한 단죄는 기원전 8세기의 예언자들, 곧 아모스, 호세아, 이사야와 맥을 같이합니다. 왕정의 도입과 함께 국가 구조가 옛 지파 동맹의 틀을 대체하면서 옛 사회 구조가 지녔던 평등과 형제애의 가치들을 보존할 수 없게 됩니다. 또 사회 계층 간의 격차, 물욕에 젖은 부유층과 일반 대중 사이의 대립이 분명해집니다. 이러한 구조 아래 못 가진 자들의 상황은 더욱 나빠지게 됩니다.
❹백성의 지도자들과 거짓예언자들 3,1-8
미카는 뇌물을 받고 신탁을 넘겨주는 거짓 예언자들과, 청중에게 멸시를 받고 자신을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는 진리를 두려움 없이 선포하는 성실한 예언자 상을 대조시킵니다. 예언자는 여기에서 심판을 선포하는 사자(使者)로 나오는데, 그의 용기와 분별력은 “주님의 영”에게서 주어집니다.
❺예루살렘의 멸망 (3,9-12)
3,12그러므로 너희 때문에 시온은 갈아엎어져 밭이 되고 예루살렘은 폐허 더미가 되며 주님의 집이 서 있는 산은 수풀 언덕이 되리라.
예루살렘 도성과 그 성전이 이처럼 송두리째 파멸되리라는 예고는 여기에 처음으로 나옵니다. 한 세기 뒤에 예레미야의 청중이 바로 기억해 낼 정도로(예레 26,18), 미카의 이 신탁은 이스라엘인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❻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의 죄를 밝히신다 (5,9-14)
❼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고발하시다 (6,1-8)
6,6내가 무엇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아가고 무엇을 가지고 높으신 하느님께 예배드려야 합니까? 번제물을 가지고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분 앞에 나아가야 합니까?7수천 마리 숫양이면, 만 개의 기름 강이면 주님께서 기뻐하시겠습니까? 내 죄를 벗으려면 내 맏아들을, 내 죄악을 갚으려면 이 몸의 소생을 내놓아야 합니까?
미카 시대의 사람들은 계약의 도덕적 성격을 파악하지 못하고, 순전히 제의적 전망 속에만 머무릅니다. 그들은 제물만 많이 바치면 율법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심지어는 율법에 엄격히 단죄되어 있음에도(레위 18,21; 20,2-3; 신명 12,31; 18,10. 그리고 1열왕 16,34; 2열왕 16,3; 21,6; 에제 20,26 참조), 어린아이들을 희생 제물로 바치기까지 합니다.
6,8사람아, 무엇이 착한 일이고 주님께서 너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그분께서 너에게 이미 말씀 하셨다. 공정을 실천하고 신의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느님과 함께 걷는 것이 아니냐?
이스라엘이 생각하는 것과 인상적인 대조를 이루면서, 예언자는 하느님의 이름으로, 참다운 신앙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묘사합니다. 곧 하느님께 온전히 봉헌된 삶과 무관한 희생 제물은 아무런 가치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 짧은 8절에 율법, 윤리, 하느님과 맺은 계약이 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요약됩니다.이는 동시대의 예언자들, 곧 아모스(아모 5,24), 호세아(호세 2,19-20; 6,6), 이사야가(이사 7,9; 30,15) 선포한 내용과 맥락을 같이합니다(마태 23,23도 참조).
❽예루살렘의 불의와 징벌 (6,9-16)
❾온 백성의 타락 (7,1-7)
②구원의 말씀
❶이스라엘이 포로에서 풀려나리라는 약속 (4장)
❷메시아의 탄생; 베틀레헴에서 일어날 새로운 날을 준비하신다 (5,1-8)
5,1그러나 너 에프라타의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 부족들 가운데에서 보잘것없지만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릴 이가 너에게서 나오리라.
유다교-그리스도교 전통은 계속해서 이 신탁을, 이스라엘을 다스릴 직무를 띤 미래 인물의 도래를 예고하는 메시아 예언으로 보게 됩니다. 이 인물의 기원은 유다의 왕조입니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 메시아 시대의 양 떼를 치는 목자이기 때문에, 그는 새로운 다윗처럼 보입니다(1사무 16; 2사무 5,2; 7,8 참조). 마태오 복음서 저자는 이 약속이 예수님의 탄생으로 성취되었다고 봅니다(마태 2,6. 그리고 요한 7,42도 참조).
❸시련과 복구 (7,8-13)
❹자비를 청하는 예루살렘의 기도 (7,14-20)
5)미카서의 메시지
①미카의 설교는 근본적으로 유다의 윤리적, 종교적 상황을 그 배경으로 합니다. 예루살렘 주민은 하느님과 맺은 계약이 자기들의 도성에 불가침성을 보장해 준다고 믿지만 그것은 잘못된 안전 의식이라고 미카는 고발합니다. 예루살렘에서는 권력가들이 놀랄 정도로 쉽게 매수되고, 예언자들과 재판관들은 자기들의 책임 아래 맡겨진 진실과 공정보다 자신들의 이익을 더 생각합니다. 가진 자들과 가난한 이들 사이의 틈은 더욱 커지고, 사회 상황은 통탄할 지경이 되었습니다.
②경신례는 호화롭게 거행되지만, 마음의 회개는 전혀 가져오지 못합니다. 그리하여 하느님의 심판에 이어지는 징벌이 그들의 반역의 정도에 따라 내려집니다.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으로 다가오고 있다고 미카가 예고하는 재앙은 하느님의 심판입니다.
③미카 예언자는 계약의 이상을 말합니다. 그것은 6,8에 훌륭히 요약되어 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하느님께 받은 선택에 따라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④그러나 미카서가 어두운 전망에만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미 에프라타의 보잘것없는 씨족에게서 일어날 새로운 부흥을 준비하십니다(5,1-5). 바로 거기에서 다윗의 후손 메시아 임금이 태어나리라는 것입니다.
⑤흩어진 지파들의 재결합은, 땅끝까지 퍼져 나갈 위대한 평화의 시작을 알립니다. 예루살렘은 온 세상의 중심지가 되어, 민족들이 주님을 만나 뵙고 그분의 말씀을 들으려고 예루살렘으로 달려올 것입니다(미카 4,1-5).
⑥이스라엘인들 가운데에서 소수의 남은 자들은,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온 이 민족들이 받는 복의 원천이 됩니다. 인간의 잘못된 안전 의식, 허위에 찬 경신례, 우상 숭배는 모조리 없어질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전적으로 주님만 의지하고, 하느님의 주도 아래 주어지는 구원만 기다릴 것입니다.
6)미카, 이사야, 아모스의 일치된 사상
①사회 정의, 사회 정의에 대한 고발에 있어 미카, 이사야, 아모스는 완전히 일치합니다.
“너희는 주님을 찾아라. 그러면 살리라. 그러지 않으면 그가 불처럼 들이쳐 요셉 집안을 삼켜 버리리니 베텔에는 그 불을 끌 자 없으리라. 아 너희, 정의를 땅바닥에 내팽개치는 자들아!...너희가 힘없는 이를 짓밟고 도조를 거두어 가니 너희가 다듬은 돌로 집을 지어도 그 안에서 살지 못하고 포도밭을 탐스럽게 가꾸어도 거기에서 난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리라....너희는 의인을 괴롭히고 뇌물을 받으며 빈곤한 이들을 성문에서 밀쳐 내었다.”(아모 5,6-12).
‘올바른 것을 역겨워하고 올곧은 것마다 왜곡하는 야곱 집안의 우두머리들아 이스라엘 집안의 지도자들아, 이 말을 들어라. 너희는 피로 시온을, 불의로 예루살렘을 세운다. 그 우두머리들은 뇌물을 받아 판결을 내리고 사제들은 값을 받아 가르치며 예언자들은 돈을 받고 점을 친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주님을 의지하여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에 계시지 않느냐? 우리에게는 재앙이 닥칠 리 없다.” 하고 말한다. 그러므로 너희 때문에 시온은 갈아엎어져 밭이 되고 예루살렘은 폐허 더미가 되며 주님의 집이 서 있는 산은 수풀 언덕이 되리라.’(미카 3,9-11).
“불행하여라, 술 마시는 데에는 용사들이요 독한 술을 섞는 데에는 대장부인 자들! 뇌물 때문에 죄인을 죄 없다 하고 죄 없는 이들의 권리를 빼앗는 자들!...그들은 만군의 주님의 가르침을 업신여기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의 말씀을 경멸하였다. 그러므로 주님의 분노가 당신 백성 위에 타올라 당신 손을 뻗치시어 그들을 치시니 산들이 뒤흔들리고 그들의 주검들이 오물처럼 거리 한가운데에 널려 있다. 이 모든 것에도 그분의 분노는 풀리지 않아 그분의 손은 여전히 뻗쳐 있다.”(이사 5,22-25).
②종교의 외적 형식주의를 배격하는 고발과 남은자 사상 등도 미카, 이사야, 아모스가 많이 비슷합니다.
미카는 북부에서 예언활동을 한 아모스와 이사야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을 것입니다. 특히 이사야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보이며 미카가 이사야의 제자라는 설도 있습니다. 이사야는 귀족 가문이라는 설이 있고 아모스처럼 농촌에서 성장한 미카는 사회적 불의를 규탄하고 하느님의 정의와 사랑을 선포했습니다.
③메시아 대망에 대한 사상은 미카와 이사야가 같은 사상을 보입니다(이사 9,5-6; 미카 5,1-4).
7)예언자 미카의 사상
이사야, 미카는 마지막 날에 시온 예루살렘이 만방의 깃발이 되리라 했지만 이 두 예언자 사이에는 신학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미카는 예루살렘에서 성장한 이사야와는 달리 다윗전통보다는 탈출전승을 배우며 성장한 것으로 보입니다. 미카는 다윗 왕조의 번영에 대해서는 한마디의 언급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피로 세운 시온이, 불의로 세운 예루살렘이 구제받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3,12 시온은 갈아엎어져 밭이 되고 예루살렘은 폐허 더미가 되며 주님의 집이 서 있는 산은 수풀 언덕이 되리라!).
미카는 조국에 닥친 격랑 속으로 끌려 들어갑니다. 그러나 이사야와 달리 미카는 사실상 정치에 관여하지 않습니다. 그는 예컨대 책임자들이 전개시킨 외교적 행동에 어떠한 심판의 말도 하지 않습니다. 반면, 다가오는 사건을 이스라엘이 저지른 죄악의 불가피한 결과로 봅니다. 그 죄악은 특별히 사회적 불의, 그리고 이민족의 종교 의식과 타협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죄악들과 싸워 나가는 미카는 외톨이처럼 보입니다. 그는 백성의 고통을 함께 나누면서도 그들 앞에서 혼자입니다. 사제들, 판관들, 제후들과 같은 권력자들 앞에서도 혼자이며(3장 참조), 행복하고 편안한 미래를 예고하는 분별없는 예언자들 앞에서도 혼자입니다(2,6-11). 그러나 미카는 자기에게 임무를 완수할 힘을 주시는 주님의 영이 인도해 주신다는 의식 아래, 그들과 용감히 맞섭니다(미카 3,8).
“사람아, 무엇이 착한 일이고 주님께서 너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그분께서 너에게 이미 말씀하셨다. 공정을 실천하고 신의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느님과 함께 걷는 것이 아니냐?”(미카 6,8)
그 시대에, 모세의 율법을 다섯 걸음은 뛰어넘었던 인물이 미카 예언자 였습니다.
<오바드야서/요엘서/미카서 끝>
'구약성경46권 기본정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구약성경46권 기본정보[8] 예언서⑪ 하까이서/즈카르야서 (0) | 2026.06.16 |
|---|---|
| 구약성경46권 기본정보[8] 예언서⑩ 나훔/하바쿡/스바니야 (1) | 2026.06.08 |
| 구약성경46권 기본정보[8] 예언서⑧ 아모스 (0) | 2026.05.18 |
| 구약성경46권 기본정보[8] 예언서⑦ 요엘서 (2) | 2026.05.09 |
| 구약성경46권 기본정보[8] 예언서⑥ 호세아서 (1) | 2026.05.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