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훔서,하바쿡서,스바니야서는 아시리아제국멸망과 신바빌론제국의 침입에 의한 유다왕국 말기를 그 배경으로 하는 소예언서들입니다. 나훔은 612년 아시리아의수도 니네베 멸망 무렵 또는 기원전 663년의 이집트 테베시의 약탈사태 사건 이전으로 봅니다. 하바쿡은 신바빌론인들이 아시리아 제국을 와해시키고 근동지역 장악에 성공하는 기원전 7세기 말 무렵 유다왕국 멸망시기의 예언자입니다. 스바니야는 기원전 630년쯤에 활동을 개시하였고 612년의 니네베 몰락 소식을 직접 듣고, 예루살렘 도성의 함락까지 직접 겪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이 세 예언자는 아시리아가 이집트를 제압하고 이후 바빌론이 아시리아를 제압하고 바빌론에 의해 예루살렘이 파괴되는 유다의 마지막 시기를 겪으면서 하느님의 개입을 희망하는 위로의 메시지를 전한 예언자들입니다. (대.소예언서에 관한 상세 내용은 본블로그 sunny river 구약성경 46권 기본정보[8] 예언서① 참조)
46-41. 나훔서 NAHUM / ΝΑΟΥΜ (약칭; 나훔/Na)
1.예언자 나훔
나훔은 '위로받은 이'를 뜻하는 이름으로서 어두운 시대에 희망의 힘으로 지탱해 나아가게 하는 위로와 위안을 자기 백성에게 가져다 준 예언자입니다. 그를 움직일뿐더러, 그 자신도 신앙의 커다란 힘으로 확언하는 이 희망은, 사자처럼 무서우면서도 동시에 큰 유혹의 힘을 지닌 적들이 지금은 한창 융성한다 하더라도 주님께서 기필코 승리하시리라는 것입니다. 위로를 받았기에 다른 이들도 위로할 수 있는, 이 ‘위로자’ 나훔과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은 구약 성경에 없습니다. 어근과 뜻은 같으면서 그 변형꼴인 다른 이름 므나헴(2열왕 15; 사도 13,1), 또는 나훔과 어근이 같은 유명한 이름으로는 ‘주님께서 위로하신다’를 뜻하는 느헤미야가 있습니다. 나훔서는 니네베에 관한 신탁으로서 엘코스 사람 나훔이 본 환시를 기록한 책입니다.
2.나훔서의 배경과 저작시기
①612년 가을, 아시리아의수도 니네베 멸망이라는 대사건이 일어난 직후의 신년 축제 때에 거행된 전례의 소책자로 나훔서를 제시하려는 경향도 있어왔고, 특히 서두의 시편 덕분에 이 예언서가 지니는 어떤 경신례적 경향도 인정되는 부분입니다. 그러면서도 예언자가 직접 하였을 신탁들의 선포 시기, 또 이 소책자의 저술 시기까지도, 기원전 612년의 니네베 멸망 이전으로, 더 나아가서 3장에서 시사되는 기원전 663년의 이집트 테베시의 약탈사건 이전으로 잡는 데에 일반적으로 동의합니다.
②더 상세한 시점을 찾아 나아가는 과정에서, 1,13에 따르면 유다가 아직도 아시리아 제국의 폭정 아래에 있다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이때는 곧 아시리아 임금 아슈르바니팔이 죽기 전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 2장과 3장에 나오는 인상적인 장면들의 생생함과 그 현실감 때문에, 그것들이 바빌론인들과 메디아인들의(2,4) 아시리아 침공(3,12-13), 곧 니네베 포위를(2,2.4-5; 3,2-3.14) 최근의 사건으로 상기하는 것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유추는 예언자의 의도, 그리고 예언자가 그와 같은 상상력을 동원하면서 상기시키려고 하는 내용을 잘못 이해할 위험성도 있습니다. 나훔의 관심사와 역할은 단순히 주어진 정치적 상황을 피상적으로 분석하여 어떤 직접적 결론을 이끌어 내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어찌할 바를 모르는 동족 앞에서 신앙의 전망을 펼쳐 보이고, 자기에게 전달된 하느님의 효과적 말씀을 선포하면서 이러한 전망을 역사 속에 끌어들이는 데에 이바지하는 일입니다.
③1971년에 출판된 어떤 나훔 주석서에서는 신탁의 선포와 나훔서의 집필 시기를, 기원전 612년 가까이로 잡는 것이 아니라, 기원전 663년의 대사건(아시리아의 이집트약탈사건) 직후 몇 개월로 보려고 하는데 이 책이 제시하는 자료를 전체적으로 볼 때에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④나훔서는 2단계 성경편찬(대략 BC 4C후반-3세기초)시기에 편집됩니다.
❶1단계 성경편찬(대략 BC 5C 후반);오경(창세기,탈출기,레위기,민수기,신명기)/전기역사서(여호수아기,판관기,룻기,1.2사무엘기,1.2열왕기)
❷2단계 성경편찬(대략 BC 4C후반-3세기초);예언서(이사야서,예레미야서,애가,에제키엘서,호세아서,요엘서,아모스서,오바드야서,요나서,미카서,나훔서,하바쿡서,스바니야서,하까이서,즈카르야서,말라키서)역사서(1.2역대기,에즈라기,느헤미야기)
❸3단계 성경편찬(대략 BC 3C후반-2C말)/역사교훈서(토빗기,유딧기,에스테르기) /역사서(1.2 마카베오기) /시서와지혜서(욥기,시편,잠언,코헬렛,아가,지혜서,집회서)예언서(바룩,다니엘서)
3.나훔서의 구조
나훔서는 세 장, 마흔일곱 절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러한 소책자에서 예레미야서와 같은 대작에서 볼 수 있는, 예언자들의 설교의 거의 모든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은 경탄할 일입니다. 전체 3장으로 된 나훔서는 주님께서 기필코 승리하시리라는 이 근본 주제를 세 가지 형식으로 전개하는데, 먼저 이 책의 제목이라고도 할 수 있는 머리글의 "환시"(1,1)로 시작합니다. 나훔은 자기가 볼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보게 해 주는 예언자입니다. 그의 환시에서 주의를 가장 많이 끄는 것은, 그를 움직이는 열정, 그의 믿음의 열성입니다. 불굴의 확신 속에, 주님께서 승리하시리라고, 아니 이미 승리하셨다고 힘차게 확언합니다.
①첫째 부분 찬미가(1,2-8)
❶열정을 지니신 하느님으로 시작하는 이 찬미가(1,2-8)는 히브리 말 알파벳 순서에 따라 지어진 조금은 불규칙적인 면도 있는 ‘알파벳 노래’입니다.
❷‘열정을 지니다’에 해당하는 히브리 말은 흔히 ‘질투하다’로도 번역됩니다. 그런데 이는 어떤 비열한 감정이나 맹목적 정열을 낳는 옹색한 이기주의가 아닙니다.하느님의 경우, 이 열정 또는 질투는 사랑의 힘에서 비롯됩니다. 그분의 사랑에 따른 무상적(無償的) 선택에, 인간은 하느님만을 향한 배타적 사랑으로 응답해야 합니다(탈출 20,5; 34,14; 신명 4,24; 5,9; 6,15; 32,16; 여호 24,19-20.23; 시편 78,58; 에제 8,3.5 참조). 하느님께서 당신의 거룩한 이름에 대하여 지니시는 열정은(에제 39,25) ‘민족들 사이에서 더럽혀진 그 큰 이름’의 거룩함을 드러내는 것으로(에제 36,23), 당신 백성의 구원을 드러내는 것으로 표현됩니다(이사 9,6; 37,32 참조). 이로써 하느님의 질투 또는 열정이, 비록 나훔서의 이 구절과 같은 곳에서는 보복이나(이사 59,17) 분노와(6절) 더 밀접히 연관된 것으로 보이지만, 결국은 사랑과 자비와 애정과 관련된다는 사실이 더욱 분명해집니다.
❸다른 예언서들의 서론과 같은 방식으로 시편이 등장하는데(아모 1,2; 미카 1,2-4; 스바 1,2-3), 그러나 그것들보다 훨씬 강력한 방법으로 등장합니다. 이 시편은 모든 것을 지배하시는 분 앞으로 우리를 이끌어 갑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주님께서 온 세상의 지고의 심판자로서 지니시는 두려운 면이 부각되지만, 그분의 선하신 모습도 소홀히 하지 않습니다(1,3.7). 그리고 그러한 모습은 나중에 더욱 생생한 빛 속에 드러나게 됩니다(1,3).
1,7주님은 선하신 분 환난의 날에 피난처가 되어 주시는 분 당신께 피신하는 이들을 알아주시는 분이시다.8그러나 그분께서는 당신께 맞서는 자들을 넘쳐흐르는 홍수로 끝장내시고 당신의 원수들을 어둠 속까지 쫓으신다.
주님은 당신께 오는 이에게는 선하시지만, 당신께 반항하는 자에게는 한편으로는 참아 주시면서도 엄하게 대하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의 이 선하심과 엄하심은 그분의 행동 양식에서 서로 뗄 수 없는 두 면입니다(로마 11,22. 그리고 집회 5,6; 16,11-14 참조). 나훔서 둘째 부분에서는 하느님의 선성(善性)이 여러 가지로 표현됨을 볼 수 있습니다(1,9.12.13; 2,1.2). 그리고 이 예언서의 마지막 말씀에 따르면(3,19), 그분을 움직이는 보복의 열정도 결국은 폭압적 권력의 희생물이 된 이들에 대한 자비에서 비롯됩니다. “당신께 맞서는 자들”은 이미 니네베, 곧 훗날 바빌론처럼 “나야, 나밖에 없어!”(스바 2,15; 이사 47,8.10; 묵시 18 참조) 하면서 하느님의 질서와 규율을 거역하는 상징적인 도시를 언급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❹첫째 부분은 전체적으로 매우 일반적이며 초시간적인 바탕 위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구원 역사에 관한 시사들은 은근하게 이루어질 따름입니다(1,3-4 참조). 그러면서 결국 이 책의 특수한 역사적 맥락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1,8).
②두 번째 부분(1,9─2,3)
두 번째 부분에서 역사적 맥락이 분명히 드러납니다. 그러나 이 제2부에 나오는 신탁들의 어떤 요소들은 이해하기에 까다로운 면들을 지니고 있습니다.
2,1보라,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 평화를 알리는 이의 발이 산을 넘어온다. 유다야, 축일을 지내고 서원을 지켜라. 불한당이 다시는 너를 넘나들지 못할 것이다. 그는 완전히 망하였다.3약탈자들이 그들을 약탈하고 그들의 포도나무 가지들을 망쳐 버렸지만 정녕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영예처럼 야곱의 영예를 되돌려주시리라.
❶1절과 비슷한 표현이 이사 52,7에도 나옵니다. 여기의 이스라엘과 야곱은 일반적으로, 제2이사야서에서처럼(이사 40,27 등), 그리고 이미 미카 3,1에서처럼 동의어로서, 하느님과 계약을 맺은 백성 가운데에서 남은 이들, 곧 유다인들을(1절 참조) 가리킨다고 여겨집니다.
❷어떤 학자들은 이 구절을, 이사 11,1; 예레 3,18; 23,6; 31,27-28; 33,7; 에제 37,15-28; 호세 2,2; 즈카 10,6에서처럼 선택된 민족의 분단의 회복에 관한 분명한 예고는 아니라 할지라도, 이스라엘의 북 왕국을 패망시킨 자들 곧 아시리아인들의 멸망과 직접 연관이 되는 하느님 백성의 복구를 말한다고 여깁니다. 그러면서 야곱은 남 유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북 왕국을 대표하고, 적어도 성조 야곱의 모든 자손의 구원을 상기시킨다고 주장합니다.
③니네베의 패망(2,4─3,19)
세 번째 부분은 니네베의 멸망을 기원하는 것, 또는 그 위력의 절정에 다다른 니네베의 파멸을 불러오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저마다 통일성을 지니면서도 니네베 성읍과 그 파멸의 여러 가지 면을 부각시키는, 특별히 시사적인 일련의 장면들이 이어집니다. 마찬가지로 이 성읍과 그 임금에게 내린 벌도 보편적 교훈을 이룹니다. 곧 하느님께서는 니네베를 본보기로 만드시는 것입니다(3,6). 주님께서 개입하시는 것은, 그것도 비상한 방식으로 그렇게 하시는 것은, 결국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하시고(3,19), 당신 백성을 구원하시려는 것입니다(1,7; 2,1.3).
4.나훔서의 사상
①나훔의 환시에서 주의를 가장 많이 끄는 것은, 그를 움직이는 열정, 그의 믿음의 열성입니다. 현실은 비록 반대처럼 보일지라도, 그는 결국 하늘에서 주어지는 불굴의 확신 속에, 주님께서 승리하시리라고, 아니 이미 승리하셨다고 힘차게 확언합니다. 나훔 예언자에게서도 살아 계신 주 하느님, 역사와 모든 인간의 주님, 바로 그러한 분과 이루어진 특별한 통교에서 비롯되는 예레미야와 같은 대예언자들과 똑같은 역동성이 드러남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②우리는 주님께서 당신의 그 열정 때문에 여러 가지 모습을 취하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1,2). 그렇기 때문에 그분께서 부르신 예언자들의 목소리도 그 어조가 매우 다양하다는 점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닙니다.
③동일한 전통의 원천에 속한다는 연대 의식 속에, 예언자들은 조심스럽게 서로 영감을 주고 받으며, 서로 확장시키고 보완할 줄 압니다. 그래서 예컨대 요나서는 나훔의 지평을 이어받아 그것을 더 넓혀 갑니다. 그리고 간혹 나훔의 니네베 멸망의 서술에 들어 있는 어떤 요소들을 이용하는 것으로 보이는 요엘은(요엘 2,4-9. 그리고 나훔 2,4-5.11; 3,2-3 참조), 나훔서의 내용을 확장시키는 가운데 더욱 보편적 효력을 지닌 사건을 선포하기 위하여 “주님의 날”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이러한 비교는 다른 예언서들과도 많이 할 수 있습니다.
④금세기 중반부에 사해 부근의 쿰란에서 ‘나훔 주해서’의 단편들이 발견되었습니다. 기원전 약 100년경에 집필된 이 주해서는, 신앙인들이 나훔서에서 역사의 모든 순간을 비추는 하느님의 말씀을 발견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나름대로 증언해 줍니다.
46-42. 하바쿡서 HABAKKUK / ΑΜΒΑΚΟΥΜ (약칭; 하바/Hab)
1.예언자 하바쿡
하바쿡이라는 이름은 어원학적으로 불확실한데 아카드어(BC 2000년경까지 메소포타미아 남부의 구어로서 수메르어를 대신하여 쓰였으나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 셈족계언어)에서 ‘향기로운 식물’을 뜻하는 식물의 이름 또는 히브리어 ‘포옹하다’를 뜻하는 어근에서 유래했을 수 있습니다. 하바쿡 예언자에 대해서도 알려진 내용이 없습니다. 히브리 말 성서의 다른 경전들은 물론, 하바쿡서 자체도 그의 생애나 인물에 대해서 확실한 것은 하나도 말하지 않습니다. 반면에 하바쿡이라는 이름으로 전해지는 이 예언서가 널리 퍼진 다음에는, 하바쿡이 이를테면 전설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사자 굴에 던져진 다니엘에 관한 장면에서(다니 14,33-39) 특정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나오기도 합니다.
2.역사적 배경과 저작시기
①유다말기의 사건들은 역사를 좌우하시는 하느님의 능력과 약속에 대한 성실성을 의문시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느님께 대한 신뢰심이 부족했을 터이지만 백성들은 지배국의 神에게 비위를 맞추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 듯합니다. 다른 한편에서는 하느님께서 공의롭지 않다는 소리도 들려옵니다. 이 시대의 예언자들은 바로 이러한 문제에 몰두하여 민족적 비극을 극복하도록 최선을 다합니다. 예레미야서와 에제키엘서를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지만 바빌론 치하의 여호야킴시대로 보이는 하바쿡도 그러한 예언자중의 하나입니다.
②1,6의 칼데아인들에 대한 언급은 하바쿡의 예언을, 신바빌론인들이 아시리아 제국을 와해시키고 근동지역 장악에 성공하는 기원전 7세기 말로 자리잡게 합니다. 하바꾹 예언자는 660년에서 610년까지 이어진 칼데아군대의 원정, 유다의 점령, 그리고 예루살렘의 포위와 유배 등(2열왕 23─25), 유다 왕국에 중대한 결과를 초래한 이 역사적 사건들을 서술합니다. 그러나 하바쿡 예언서의 편집과 저작을 둘러싼 상세한 배경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습니다.
③이 책의 각 부분은 칼데아 군대가 수행한 정복의 각 단계에 해당되고, 그럼으로써 이 책의 저작도 그것에 따라 순차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주장입니다. 이렇게 주장하는 학자들에 따르면, 그러한 순차적 저작은 크든 작든 중요성을 지닙니다. 1─2장의 대화 형식과 3장의 찬미가 형식은, 이 시가들이 지닌 전례적 성격을 가리키는 표지라는 주장입니다. 그리고 이것들은 경신례 거행의 핵심에 들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시가들이 사후(事後)에 전례 형식을 취하게 된 예언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예언으로 제시된 본래의 전례적 창작인지에 대한 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문제가 어떻게 풀리든, 하바쿡서의 이러한 면에 주의를 기울이는 독자는, 본문의 배후에서 알아볼 수 있는 사건들의 그 순간, 그리고 그 사건들에 이어지는 불안한 시기에 1─2장의 대화와 3장의 시편을 이끌어 간 집단적 격정의 감정을 함께 느끼면서, 이 책을 읽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④하바쿡서서는 2단계 성경편찬(대략 BC 4C후반-3세기초)시기에 편집됩니다.
❶1단계 성경편찬(대략 BC 5C 후반);오경(창세기,탈출기,레위기,민수기,신명기)/전기역사서(여호수아기,판관기,룻기,1.2사무엘기,1.2열왕기)
❷2단계 성경편찬(대략 BC 4C후반-3세기초);예언서(이사야서,예레미야서,애가,에제키엘서,호세아서,요엘서,아모스서,오바드야서,요나서,미카서,나훔서,하바쿡서,스바니야서,하까이서,즈카르야서,말라키서)역사서(1.2역대기,에즈라기,느헤미야기)
❸3단계 성경편찬(대략 BC 3C후반-2C말)/역사교훈서(토빗기,유딧기,에스테르기) /역사서(1.2 마카베오기) /시서와지혜서(욥기,시편,잠언,코헬렛,아가,지혜서,집회서)예언서(바룩,다니엘서)
3.본문과 구성
1) 본문
모두 세 장으로 이루어진 하바쿡서의 히브리 말 본문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을 많이 안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대 번역본들은 가끔 서로 다른, 그러면서도 늘 흥미로운 독해를 제시합니다. 유다 광야의 여러 동굴에서 발견된 쿰란 공동체의 수사본들(일명, 사해 수사본) 가운데에는, 하바 1─2장의 본문이 거의 다 들어 있으면서 기존의 본문을 확인해 주고 때로는 보충해 주는 ‘하바쿡 주해서’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주해서는 기원전에 필사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래서 이 주해서가 단연코 하바쿡서 히브리 말 원문의 가장 오래된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그리하여 오늘날 우리가 하바쿡서를 봉독하는 것은 여러 목소리를 지닌 본문 속으로 들어감을 의미합니다. 예언자 자신의 목소리가 서로 다른 여러 방식으로 들릴 수 있는 것입니다.
2) 구성
3장으로 된 하바쿡서는 머리글(1,1)에 이어서, 예언자가 하느님께 올리는 탄원이 두 번에 걸쳐 나옵니다(1,2-4와 1,12-17). 이 탄원에 따라 하느님의 응답도 두 번 주어집니다. 첫 번째 응답(1,5-11)은 칼데아 군대의 거침없는 행군에 관한 환시입니다. 역시 “환시”라는 제목을 단(2,2) 두 번째 대답(2,2-19)은, “판에다 분명하게 써라.”라는 명령에서 볼 수 있듯이(2,2), 이 예언서의 핵심이 되는 신탁으로(2,2-4) 시작됩니다. 그리고 나서 “불행하여라”라는 말과 함께 어떤 적에게 쏟아 붓는 다섯 연(聯)의 ‘불행 선언’이 이어집니다(2,6-19).
두 개의 연결문도 있는데, 첫째 연결문은 예언자를 파수꾼으로 소개하고(2,1), 둘째 연결문은 이제 이 예언자가 다섯 번에 걸쳐 질책하게 되는 적을 소개합니다(2,5-6ㄱ). “온 세상은 그분 앞에서 조용히 하라”는 2,20의 연결문은 3장의 시편을 예고하는데, 이 시편은 하느님의 개입을 서술하고 그분에 대한 찬미로 끝을 맺습니다.
3)거만한 사람
하바쿡의 설교는 이중의 상황을 그 배경으로 하였을 수 있습니다. 그가 칼데아인들이라는 외적, 특히 무자비하고 탐욕스럽게 다른 나라들을 정복해 나아가는 그들의 군주를 주 대상으로 한다는 것은 명백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2장에 들어 있는 질타에서는 또 다른 인물에 대한 비판이 나오는데(2,5의 거만한 사람) 이 인물은 바로 유다의 임금인데, 틀림없이 여호야킴일 것입니다. 그가 바로 자기의 왕국 내부에서, 적어도 예언자의 시각에서는, 칼데아인들이나 마찬가지로 불의의 커다란 원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2,6-12를 예레 22,13-19와 비교할 때, 그러한 사실을 엿볼 수 있습니다.
2,5 참으로 재물은 믿을 수 없다. 거만한 사람은 견디어 낼 수 없다. 저승처럼 목구멍을 넓게 벌린 그자는 죽음과 같아 만족할 줄 모르고 모든 민족들을 끌어들이며 모든 백성들을 모아들인다.6그러나 이들은 모두 그를 두고 조롱의 노래를 부르고 이렇게 그를 비웃는 수수께끼를 지어 내지 않겠느냐?
그리고 그를 비웃는 노래 다섯 가지 불행 선언이 이어집니다.
2,6불행하여라, 남의 것을 긁어모으고 담보로 잡은 것을 쌓아 두는 자!
2,9불행하여라, 자기 집안을 위하여 부당한 이득을 취하고 재앙의 손길에서 벗어나려고 높은 곳에 둥지를 트는 자!
2,12불행하여라, 피로 성읍을 세우고 불의로 성을 쌓는 자!
2,15불행하여라, 이웃들에게 술을 먹이고 취할 때까지 화를 퍼붓고는 그들의 알몸을 바라보는 자!
2,19불행하여라, 나무에게 “깨어나십시오.” 하고 말 못하는 돌에게 “일어나십시오.” 하는 자! 그것이 가르칠 수 있느냐? 금과 은으로 입힌 것일 뿐 그 안에 숨결이라고는 전혀 없다.
2,20주님께서는 당신의 거룩한 성전에 계시다. 온 세상은 그분 앞에서 조용히 하여라.
4.하바쿡서의 메시지
①하바쿡은 이사야의 전통을 계승하여 그와 비슷한 관점에서 바빌론을 하느님 심판의 도구로 보았고(1,2-11) 바빌론은 정해진 역할을 한 다음 역시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시온의 하느님은 유일한 하느님이시니 공의로우심과 자신의 백성을 구원하실 수 있음을 굳게 믿으면서 하느님의 개입과(3장)바빌론에 대한 심판을 신뢰하며 기다려야합니다.
②나라의 대내외적 상황으로 하느님과 그분의 백성 사이에 맺어진 관계의 바탕까지 문제시되자, 신앙 공동체 안에서는 극적인 사건들이 전개됩니다. 하바쿡의 예언은, 그러한 가운데에서 당혹해하면서도, 이제 역사 안에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시는 것으로 보이시는 하느님을 거슬러 바로 그 하느님께 탄원하는 충실한 이들의 증언이 됩니다.
③이 탄원에 응답이 주어지는데, 거기에 핵심 낱말로서 “성실함”이 나옵니다(2,4). 신앙인의 삶에 근거가 되고 정당성을 부여하는 이 “성실함”에, 비록 겉모습은 보이지 않아도 분명히 실재하는 하느님의 성실함에 관한 환시가 주어집니다. 3장의 시편은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이를테면 당신께서 그러하시다는 것을 이미 과거에 입증하셨음을 상기시키는 표현들로 짜여 있습니다. 이제 바로 그 하느님께서 오십니다(3,3). 여기에서부터 확고한 결론이 나옵니다. 곧 ‘주님은 나의 주님, 바로 그분께서 나의 힘이시다.’라는 것입니다.
◎하바쿡의 노래(3,1-19)
3,17무화과나무는 꽃을 피우지 못하고 포도나무에는 열매가 없을지라도 올리브 나무에는 딸 것이 없고 밭은 먹을 것을 내지 못할지라도 우리에서는 양 떼가 없어지고 외양간에는 소 떼가 없을지라도18나는 주님 안에서 즐거워하고 내 구원의 하느님 안에서 기뻐하리라.19주 하느님은 나의 힘. 그분께서는 내 발을 사슴 같게 하시어 내가 높은 곳을 치닫게 해 주신다.
④역사가 흐르면서, 사람들은 어려운 시대에 바로 이러한 신앙의 시각을 재발견하고자 하바쿡서의 도움을 받게됩니다. 쿰란 공동체는 이 예언서를 자기들이 겪은 혼란스러운 사건들을 비추어 주는 결정적 조명으로 해석합니다.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에 대한 신자들의 정체성을 정의할 때, 이 예언서에서 도움을 받습니다. 신약 성경의 저자들은 하바 2,4를 인용하면서(로마 1,17; 갈라 3,11; 히브 10,38), 이 예언서의 핵심 용어인 “성실함”의 의미를 확장시켜 “믿음”을 표현하는 데에 사용합니다. 이러한 강조는 하바쿡서의 이 절을 인용하는 교부들의 저술 대부분에서도 발견됩니다.
2,4 그러나 의인은 성실함으로 산다.
46-43. 스바니야 ZEPHANIAH/ ΣΟΦΟΝΙΑΣ(약칭;스바/Zp)
1. 예언자 스바니야
스바니야(그리스어와 라틴어 Sophonias)라는 이름은 '야훼가 숨겨 주다' 또는 '피신시켜 주다'라는 뜻입니다. 이 예언자의 이름은 길고도 특이한 족보 끝에 나오는데, 그의 선조에 대해서는 여러 가설이 있습니다.
1,1아몬의 아들, 유다 임금 요시야 때에 스바니야에게 내린 주님의 말씀. 스바니야는 쿠시의 아들, 쿠시는 그달야의 아들, 그달야는 아마르야의 아들, 아마르야는 히즈키야의 아들이다.
요시야는 기원전 640년부터 기원전 609년까지 유다왕국을 통치합니다.이사야 예언자가 활동하던 시대의(기원전 8세기) 임금도 히즈키야입니다. 그러나 스바니야가 이 임금의 후손인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2. 역사적 배경
스바니야서의 배경은, 다른 예언자들에게도 마찬가지이지만, 예언자에게 역사의 의미에 관한 질문을 제기하는 매우 극적인 시대입니다. 이 시대는 무엇보다도 아시리아 제국이 팽창해 나아가던 때입니다.
당시 아시리아제국의 세력은 아주 대단해서, 유다의 조정이나 백성의 신앙까지 위협할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아시리아의 천체숭배 사상이 널리 유포되어 있었고, 아시리아제국도 유다왕국의 조정대신들을 마음대로 임면(任免)할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습니다(1,8). 또한 암몬인들이 숭배하던 신 밀콤(Milkom) 숭배, 가나안의 토속신앙(1,4), 외국 문물(1,8), 거짓 예언자들의 만행(3,4), 폭력과 사회불의(1,11; 3,1-3) 등 숱한 폐풍(弊風)이 만연되어 있었습니다.
특히 므나쎄의 오랜 통치를 특징짓는 아시리아 시대에 예루살렘도 국제 정치의 음모, 그리고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사이에 자리잡은 군소 국가들의 동맹에 가담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유다 임금 아몬이, 반아시리아파로 보이는 일단의 관리들 손에 살해되고 여덟 살의 요시야가 등극합니다(2열왕 21,24; 22,1). 요시야 임금이 아직 어릴 때에 이루어진 아시리아 지배에 대한 저항의 선상에서, 외국을 신봉하는 자들에게 가하는 스바니야의 정치적, 종교적 비판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3.저작 시기와 친저성
스바니야의 경우 자기 시대의 역사를 시사하는 그의 표현은 매우 분명하고, 아울러서 정치 세계에서 오랜 경험을 쌓았음을 전제합니다. 이로써 그의 작품 시기를 대략으로나마 추정할 수 있습니다. 우선 요시야 임금이 아직 어릴 때에 기원전 640년 그가 활동을 시작하였다는 점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역사가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스바니야가 기원전 630년쯤에 활동을 개시하였다면, 그가 612년의 니네베 몰락 소식을 직접 듣고, 게다가 예루살렘에 대한 두 번의 포위(597년과 587/586년), 그리고 이 도성의 함락까지 직접 겪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예루살렘 주민이 바빌론으로 끌려갔다는 사실은, 불행의 예언을 그렇게 많이 한 스바니야가 왜 유배자들에게 귀향과 복구를 약속하는 신탁들을 선포하였는지를 설명해 줍니다. 스바니야 예언자의 실존 여부나 이 예언서의 경전성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의문이 제기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스바니야서는 2단계 성경편찬(대략 BC 4C후반-3세기초)시기에 편집됩니다.
❶1단계 성경편찬(대략 BC 5C 후반);오경(창세기,탈출기,레위기,민수기,신명기)/전기역사서(여호수아기,판관기,룻기,1.2사무엘기,1.2열왕기)
❷2단계 성경편찬(대략 BC 4C후반-3세기초);예언서(이사야서,예레미야서,애가,에제키엘서,호세아서,요엘서,아모스서,오바드야서,요나서,미카서,나훔서,하바쿡서,스바니야서,하까이서,즈카르야서,말라키서)역사서(1.2역대기,에즈라기,느헤미야기)
❸3단계 성경편찬(대략 BC 3C후반-2C말)/역사교훈서(토빗기,유딧기,에스테르기) /역사서(1.2 마카베오기) /시서와지혜서(욥기,시편,잠언,코헬렛,아가,지혜서,집회서)예언서(바룩,다니엘서)
4.스바니야서의 구성
예레미야서나 에제키엘서 같은 곳에서 예언은 고전적이고 전형적인 3부 구조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곧 ⒜이스라엘에 대한 경고, ⒝민족들에 대한 심판, ⒞복구의 약속입니다. 3장으로 되어있는 스바니야서 역시 이 구조에 따라서 세 부분으로 정리되는데, 이는 이 책의 편집자들의 작업으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세부적으로는 다음과 같이 배열되어 있습니다.
①편집자들이 붙인 머리글(1,1)
②유다에 대한 경고와 위협 신탁(1,2-13)
③주님의 날(1,14-18)
④남은 자들, 겸손한 이들에 대한 권고(2,1-3)
⑤유다의 적인 민족들에(필리스티아, 모압, 암몬, 에티오피아, 아시리아) 대한 심판과 위협(2,4-15)
⑥배척되고 이민족들과 같아지는 예루살렘(3,1-8)
⑦복구의 약속(3,9-20)
5.스바니야서의 주제
묵시 문학적인 ‘하늘’과 주님의 겸손한 이들의 ‘땅’, 이것이 스바니야의 두 지평입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또한 핵심적 실재가 있습니다. 곧 당신 백성 “한가운데에” 계시는 하느님이십니다(3,5.12.15). 그분 홀로 역사를 이끌어 가시며 억눌린 이들을 구원하십니다.
1) 주님의 날 (The day of Yahweh)
①‘주님의 날’ 이것이 스바니야의 예언을 유명하게 만든 주제입니다. 이 예언자의 사고에는 중심축을 이루는 두 극이 있는데, 하나는 이스라엘이고 다른 하나는 민족들입니다. 이 두 적대적 힘이 충돌할 때에 “남은 자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 “주님의 날”의 주제는 이스라엘의 어느 시대이든 당시의 거대한 정치적 혼란이라는 역사적 상황으로 말미암아 결정됩니다.
②이 “날”은 주님께서 당신 백성을 위하여 보복하시는 날, 그들의 운명을 결정하시는 날, 이집트 탈출 때처럼 그들을 구원하시는 날, 그들을 구원하시려고 민족들에게 당신의 무서운 이적들을 다시 행하시는 날입니다. 사람들은 주님께서 직접 개입하셔서 당신의 모든 적을 굴복시키시고 당신의 백성이 민족들을 쳐 이겨 승리를 거두게 해 주실 “새날”을 고대하게 됩니다. 예언자들은 그날이 이스라엘에 구원의 빛이 아니라, 심판의 암흑을 가져오리라고 선포합니다. 그러나 심판이 하느님의 최종적 행동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그분의 인격적 계시는 자비와 구원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스바니야 이전에도 많은 예언자들이 주님의 날을 선포하였습니다(이사 2,11; 예레 30,5-7; 요엘 1,15; 스바 1,14.15. 그리고 이사 11,11; 12,1; 30,26; 요엘 3,4; 4,1; 말라 3,19-23참조).
③주님의 날에 대한 스바니야의 지평은 역사의 제한적 틀을 넘어섭니다. 그가 예언하는 것은 우주적 대이변입니다. 그 어떠한 주저도, 그 어떠한 감정도 드러내는 일 없이, 예언자는 이 ‘진노의 날’(라틴 말로, dies irae; The anger of Yahweh)과 파멸의 날을 선포합니다. 겸손한 이들은 계속하여 희망을 가질 수 있지만, 역사는 하느님께서 친히 주재하시는 피의 축제로 끝난다는 것입니다. 이미 아모스, 나훔, 요엘도 이야기한 “주님의 날”은 총체적 전복(顚覆)의 날이 될 것입니다.
④스바니야는 공포와 파멸 속에, 인간과 인간이 만들어 낸 문명뿐만 아니라 땅 위의 모든 생명체까지 휩쓸어 가는 일종의 창조의 붕괴가 될 심판을, 그 누구보다도 폭넓게 서술합니다(1,2-3.15).그러면서도 스바니야 예언서에서는 “주님의 날”이 근본적으로 세상과 역사의 종말이 아니라, 하느님 백성의 변형과 개조, 죄악의 시대의 종말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모든 것은 “남은 자들”이 부르는 기쁨의 노래로 흘러 들어갑니다(3장).
2) 예루살렘과 민족들을 질타하는 신탁
①예루살렘 도성이 불충하고 완고하기 때문에, 그 우두머리들과 판관들, 예언자들과 사제들이 하느님의 목소리에 귀가 막힌 것처럼 행동하기 때문에, 스바니야 예언자는 예루살렘이 하느님의 심판 아래 놓이고 불행에 빠지리라고 예고합니다. 주님께서는 심문하고 단죄하고 벌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권력자들만이 아니라 우상 숭배자들, 관리들, 상인들, 불신자들도 고통을 당할 것입니다. 성전에서 시장에 이르기까지 이 도성의 모든 것이 이러한 하느님의 행동반경 안에 들어갈 것입니다.
②이민족들 역시 하느님의 벌을 받게 됩니다. 다른 예언자들처럼 스바니야도 사방으로 몸을 돌려, 필리스티아(서쪽), 모압과 암몬(동쪽), 에티오피아(남쪽), 아시리아(북쪽)에 파멸과 멸망을 예고합니다.
③이 예언서는 시대의 표징들을 읽는 예언자적 독해(讀解)를 제시합니다. 이 독해가 바로 묵시 문학의 탄생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3) 겸손한 이들
예언자는 한편으로 청천벽력같이 소리를 지르지만, 다른 한편으로 주님의 뜻을 실천하는 작은 이들에게는 애정 어린 목소리로 말합니다. 이 겸손한 이들에게는 하느님의 진노가 일으키는 대이변을 피할 희망이 있습니다. 이들이 바로 “남은 자들”, 하느님의 새로운 백성입니다.
4) 주님의 거룩한 산
하느님께서는 자격을 갖춘 이스라엘 곧 “남은 자들”을 모으시어, 민족들 앞에서 그들을 영광스럽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은 바로 흥겹고 자유롭고 거룩한 예루살렘에서 일어나는데, 그분 친히 임금으로 이 예루살렘에 거처하실 것입니다. 이처럼 스바니야서는 구약 성경의 가장 어두운 부분을 이루면서도, 희망과 기쁨의 말로, 예루살렘에서 벌어지는 축제를 전망하면서 끝맺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예언서 ⑩ 나훔,하바쿡,스바니야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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