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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46권 기본정보

구약성경46권 기본정보[8] 예언서⑪ 하까이서/즈카르야서

by 써니리버 2026. 6. 16.

하까이와 즈카르야는 예루살렘 성전 재건에 기여한 동시대의 예언자들입니다. 구원 역사의 흐름에서 이 두 예언서는 큰 역할을 수행합니다. 기원전 537년에 유배에서 돌아온 유다인 공동체가 성전 재건축을 시도하지만(에즈 3,7-12), 경제적 어려움과 사마리아 주민의 적대 행위로 작업을 멈출 수밖에 없게 됩니다. 하까이는 하느님께서 은총을 베푸시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전제 조건이 성전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하까이는 백성들이 하느님의 현존장소에 대한 관심을 잃었고 하느님의 집을 폐허로 방치한 채 자신들의 집에 안주하려는 무관심을 맹렬히 비난합니다.  
즈카르야는 윤리 도덕적 삶의 중요성을 크게 강조하였으며 또한 단식의 시대에서 구원의 시대로 넘어가는 대 전환기에 이스라엘이 서있다고 하는 신탁을 선포합니다. 또한 즈카르야서는 천상 세계와 시련 중에 있는 사람들을 가깝게 이어 주는 중개자들을 많이 소개함으로써 전체적으로 희망을 증진시킵니다. 즈카르야의 선포는 520년 10-11월에, 곧 하까이가 마지막 신탁을 선포할 무렵 등장하여 518년 11월까지, 곧 기원전 515년 새 성전이 봉헌되기 삼년 전까지 이어집니다. 하까이는 종교적 각성을 불러일으키는 데에 성공하였고(하까 1,14), 즈카르야는 동포들의 성실성에 호소함으로써, 그리고 미래에 대한 약속을 선포함으로써 하까이가 시작한 운동을 강화합니다.

46-44.하까이서(HAGGAI / ΑΓΓΑΙΟΣ)(약칭; 하까/Hg)

1.예언자 하까이
하까이(Haggai)라는 히브리말은 ‘하느님의 축제(haggiah)’ 라는 말의 축약형으로 ‘축제의’ 혹은 “나의 축제”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전재건의 예언자적인 특징을 나타내는 이름입니다. 성전을 빨리 재건하고 축제를 지내자는 의미를 포함합니다. 하까이예언자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고 이 이름만이 성전재건 예언자의 특징을 말해줄 뿐입니다.

2.역사적 배경; 이스라엘의 귀향과 성전 재건
1) 키루스대왕(Κῦρος; Cyrus II BC580-529)의 포고령(布告令)
①BC 539년10월, 페르시아의 키루스는 나보니두스(Nabonidus BC 556-539)의 악정으로 이미 민심을 잃은 바빌론을 저항 없이 무혈점령 하였습니다. 키루스는 해방자로서 바빌론에 입성하였고, 키루스 통치1년인 538년, 이집트에 이르기까지 서부 아시아 전지역이 키루스의 지배하에 들어갔습니다. 
②팔레스티나의 유다인 공동체에게 포고령이 내려졌습니다(에즈 1,1-11 : 6,3-5). 이 포고령은 성전을 재건할 것과, 그 비용은 왕실 금고에서 지출할 것을 규정하고, 바빌론의 예루살렘 침공시 네부카드네자르가 탈취한 성전의 기물도 제자리에 가져다 놓도록 지시하고 있습니다. 키루스는 점유지의 민족을 추방하여 그 민족의 문화를 말살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기존의 성전례를 보호 육성하고 토착 군주들에게 행정 책임을 맡겼습니다. 
③유다인에게는 귀향이 허락되었고 바빌론에 남아있기 원하는 자는 성전 건축에 경제적 기부를 하라고 지시했으며 이 업무가 세스바차르(Sheshbazzar; Σασαβασὰρ)에게 주어졌습니다.

2)성전재건공사의 지연
①귀향의 일차 대열은 키루스왕의 칙서가 반포되자 즉시 움직였지만 다른 대열은 수십년의 간격을 두고 뒤따랐습니다. 상당수가 이미 바빌론에 터전을 잡았고 일부는 추세를 관망한 것으로 보입니다. 에즈라기 7─10장에 따르면, 첫 귀향이 있고 나서(1차 귀향명단은 에즈라 2장, 느헤미야 7장에 기록) 수십 년이 지난 뒤, 아르타 크세르크세스(Arta xerxes) 임금에게서 공적 임무를 부여받은 사제이며 율법 학자인 에즈라가 예루살렘에 도착합니다. 이 리스트는 후대에 엮어진 것이지만 아무튼 유배자들 중 많은 무리가 이때(2차) 귀향한 것으로 보입니다. 기원전 437 년의 상업문서 니푸르(nippur)에 의하면 많은 유다인들이 바빌론에서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었고 요세푸스의 유다고대사에 의하면 그들은 재산을 포기하려 하지 않았으므로 세스바차르와 동행한 1진은 헌신적인 정신을 가진 소수의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②유다인들은 대거 귀향하지 않았고 사마리아의 귀족들과 유다 땅에 남아있던 자들은 돌아온 자들을 열렬히 환영하지는 않았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50년가량의 유배기간이 참작되어야할 것입니다. 
③귀향 후 부터(538~522까지)의 배경은 유다인들에게 과히 희망적이지 않았습니다.경제적 사정이 절박해졌는데 다투어 서로 땅을 차지하려는 혼란이 불가피해졌고 흉년으로 사태는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돌아온 자들은 새로운 출발을 해야 했고 여러 해에 걸쳐 빈곤으로 허덕이게 되었습니다. 남아있던 자들은 쉽게 자리를 내어주지 않았고, 돌아온 자들은 자신들이 참 유다인이라고 주장했으며 사마리아인들과 이미 혼혈족이 되어버린 남아있는 자들을 부정한 이방인으로 취급했으니 서로간의 긴장은 고조되어 치안마저 위태롭게 되었습니다. 세스바차르가 시작한 성전 기초공사는 그러므로 중단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④역대기 편집자는 세스바차르에 관하여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아마 후임자인 듯한 즈루빠벨의 행적을 동시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3)성전공사의 재개
①유다인 공동체가 하나의 공동사회로 존속하기 위해서 성전 건축은 필요한 일이었으나 대부분의 백성들은 하까이서 1,2의 표현대로 아직은 성전을 지을 때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②캄비세스 사후 다리우스1세가 등극하자 페르시아 정국은 어지러워졌습니다(아래 페르시아 왕조참조). 이시기에 유다는 페르시아의 멸망을 예감하면서 하느님의 승리를 기대했습니다. 마침내 기다리던 때가 왔다고 몇 몇 예언자들은 백성들에게 희망을 불러 일으켰고 이 격려로 성전공사는 다시 시작되었던 것이니 그들은 하까이와 즈카르야였습니다. 그들의 설교는 대담했고 선동적이었으니 당장에 효과가 있었습니다. 
③성전공사는 급속도로 진행 되었습니다. 다리우스는 왕실 문고에서 키루스의 교령을 확인하여 성전 보조금을 대주었고 즈루빠벨에게 성전 공사협조를 거절당한 이유로 황제에게 반역의 온상인 성전공사를 중단해야 한다는 상소를 올렸던 사마리아와의 갈등은 무마되었습니다. 성전의 재건은 페르시아왕의 명령에 의한 것이었고 그 자금도 페르시아제국에서 조달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을 관할하는 관청은 아직 사마리아에 있었고 사마리아 관리들이 성전건축에 참여하기를 원했으나 거절당했기 때문에 상소사건은 있음직한 일이었습니다. 
④바빌론에서 첫 귀향자가 돌아온지 18년이 지난 무렵 다시 성전 공사는 시작되었고 그로부터 4년 후 성전은 완공되었습니다. 다리우스 6년 515년 3월, 벅찬 기쁨 속에서 성전은 봉헌 되었습니다(에즈 6,13-18).

◉ 페르시아제국 아케메네스 왕조
흔히 페르시아라고 하면 아케메네스왕조를 가장 많이 떠올리며, 현대의 이란, 아프가니스탄(북부 한정), 타지키스탄의 시조가 되는 나라라고 할 수 있다. 아케메네스 왕조를 세운 건국자는 아케메네스지만, 우리가 아는 대제국의 모습으로 성장한 것은 키루스 2세 대왕 때부터이다. 
키루스 2세(Κῦρος; Cyrus II BC580-529)는 메디아, 리디아, 신바빌로니아, 엘람 등 수많은 지방을 정복하며 페르시아 제국의 영토 대부분을 일구어냈고, 그를 이은 캄비세스 2세가 이집트를 정복하며 세계 최강국의 지위를 확고히 다졌다. 캄비세스 2세 사후 다리우스 1세가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제국의 번영을 이끌었다.
다리우스 1세의 뒤를 이은 크세르크세스 1세가 아버지 다리우스 1세가 투입한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어마어마한 대군을 동원한 제2차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에서 패배하면서 페르시아 제국은 잠시 침체기를 겪었다. 허나 크세르크세스 1세의 후계자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는 국내에서의 전쟁 패배의 여파를 수습하고 그리스 도시들 간의 분란을 이용해 오히려 역으로 그리스와의 관계에서 우세를 점하기까지 했다.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가 죽자 잠시의 혼란기가 도래했다가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 때 다시 안정을 찾았고 아르타크세르크세스 3세 재위기에는 철권통치로 각지에서 일어나는 반란을 찍어누르며 제국의 세력을 과시했다.
그렇게 아케메네스왕조 페르시아는 키루스 2세부터 아르타크세르크세스 3세 시절까지 약 220여 년에 가까운 전성기를 누리며 세계 최강대국으로 군림했다. 하지만 아르타크세르크세스 3세가 환관 바고아스에게 암살당한 후부터 모든게 꼬였다. 강력한 무력으로 제국을 휘두르던 아르타크세르크세스 3세가 죽은 후 다리우스 3세가 바고아스를 죽이고 혼란을 수습했지만 다리우스 3세의 불행은 마케도니아 왕국에서 알렉산드로스 대왕이라는 희대의 인물이 자라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기원전 334년 알렉산드로스대왕은(Ἀλέξανδρος;Alexandros;Alexander the Great BC 356-323)  그리스 전체를 통합한 뒤 페르시아로 쳐들어오기 시작했다. 다리우스 3세는 이를 막으려했지만 가우가멜라 전투에서 대패하며 결국 끝장나고야 말았다. 다리우스 3세는 무력하게 도망치다가 파르티아 지방에서 암살당했고 잔존세력마저 모두 알렉산드로스 대왕 앞에 무릎 꿇으며 페르시아 제국은 완벽히 멸망했다. 페르시아 제국은 당시로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대제국이었다.
 
3.하까이예언자의 활동시기
①하까이예언자의 활동시기는 BC522년 페르시아제국의 캄비세스가 죽은 뒤 다리우스1세의 집권 초기인 520년 8월에서 12월 사이로 봅니다.
②522년 캄비세스가 죽은 뒤, 격렬한 내부 혼란이 페르시아 제국을 뒤흔들게 됩니다. 캄비세스에 이어 왕좌에 오른 다리우스의 집권 초기에 일어난 이러한 정치적 불안정은(그리스-페르시아 전쟁의 패전) 예루살렘에도 긴장감을 불러일으킵니다. 하까이, 그리고 곧바로 이어서 즈카르야 예언자는 그것을 공동체를 일깨우는 기회로 삼게 됩니다. 
③정확히 기원전 520년 8월에서 12월 사이에 선포된 하까이의 메시지는, 동시대인들에게 시대의 징표를 해석해 주려고 합니다. 빈곤과 흉작은 그들의 영성적 혼수상태에 대한 벌로서, 이제 신앙의 열성을 되찾고 주님께 합당한 집을 지어 드리는 작업을 재개하면, 많은 복을 받고 구원의 시기가 결정적으로 시작되리라는 것입니다. 사실 이러한 식의 선포는(...하면 복을 받고) 성전이라는 공적건물의 필요성에 대하여 한시적인 정당성을 부여받는 것입니다. 
④520년경 선포된 이 예언의 말씀은 2단계 예언서편찬시기(대략 BC 4C후반-3세기초)편집 완료된 것으로 봅니다. 
❶1단계 성경편찬(대략 BC 5C 후반);오경(창세기,탈출기,레위기,민수기,신명기)/전기역사서(여호수아기,판관기,룻기,1.2사무엘기,1.2열왕기)
❷2단계 성경편찬(대략 BC 4C후반-3세기초);예언서(이사야서,예레미야서,애가,에제키엘서,호세아서,요엘서,아모스서,오바드야서,요나서,미카서,나훔서,하바쿡서,스바니야서,하까이서,즈카르야서,말라키서)역사서(1.2역대기,에즈라기,느헤미야기)
❸3단계 성경편찬(대략 BC 3C후반-2C말)/역사교훈서(토빗기,유딧기,에스테르기) /역사서(1.2 마카베오기) /시서와지혜서(욥기,시편,잠언,코헬렛,아가,지혜서,집회서)예언서(바룩,다니엘서)

4.하까이서의 구조와 내용
①성전 재건에 대한 질책 [1장]
하까이서는 단 두 장, 서른여덟 절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구약성경의 흐름 안에서 하까이서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큽니다. 에즈라기에서도 중단된 성전재건공사가 하까이의 독려로 다시 시작 된다는 것이 언급됩니다.   
❶머리글
1,1 다리우스 임금 제이년 여섯째 달 초하룻날, 주님의 말씀이 하까이 예언자를 통하여 스알티엘의 아들 즈루빠벨 유다 총독과 여호차닥의 아들 예수아 대사제에게 내렸다.
다리우스임금 제2년 여섯째 달은 기원전 520년 8월 말입니다. 매달 초하룻날은 안식일처럼 일을 쉬면서 제물을 바치는 축일입니다(민수 28,11-15; 1사무 20,5; 이사 1,13; 66,23; 호세 2,13; 아모 8,5). 이로써 즈루빠벨은, 기원전 598년 첫 번째 유배 당시 유다의 마지막 임금, 여콘야라고도 불리는(예레 28,4) 여호야킨의 손자로서(2열왕 24,8-17; 25,27-30), 다윗 왕조의 혈통에 속합니다(1역대 3,17-19). 페르시아 중앙 정부가 이러한 즈루빠벨에게 유다 지방의 행정권을 맡긴 것입니다.
❷성전재건을 독촉하시다
1,2만군의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 백성은 ‘주님의 집을 지을 때가 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하까이는 하느님의 집을 폐허로 방치한 채 자신들의 집에 안주하려는 무관심을 맹렬히 비난하였지만 그러나 백성들은 가뭄으로 생활도 어렵고 아직은 성전을 지을 때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1,2). 
1,12스알티엘의 아들 즈루빠벨과 여호차닥의 아들 예수아 대사제와 나머지 모든 백성은, 주 저희 하느님의 말씀과 주 저희 하느님께서 보내신 하까이 예언자의 말을 잘 들었다. 그리고 백성은 주님을 경외하게 되었다.13주님의 사자 하까이는 주님의 말씀을 백성에게 전하였다. “내가 너희와 함께 있다. 주님의 말이다.”14주님께서 스알티엘의 아들 즈루빠벨 유다 총독의 영과 여호차닥의 아들 예수아 대사제의 영과 나머지 모든 백성의 영을 일으키셨다. 그래서 그들은 가서 저희 하느님, 만군의 주님의 집을 짓는 일을 하였다.15그날은 여섯째 달 스무나흗날이었다.
하까이의 설교는 당장에 백성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멈추었던 성전재건공사는 다시 시작됩니다.15절의 이 날짜가 1,1의 날짜와는 맞지 않습니다. 날짜는 거의 항상 신탁이나 이야기 앞에 소개되는데 이러한 연유로, 이 말이 본디 재건축 작업을 시작한 지 삼 주가 지난 뒤의 첫째 독려의 말씀이 될 수 있는 2,15-19를 도입하는 것이었다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성전 재건공사의 중단과 재개 
에즈 3,1-9에 따르면, 유배에서 돌아온 첫 번째 귀향자들이 성전 재건축에 착수합니다. 그러나 유다 공동체의 곤궁과 사마리아인들의 반대 때문에(에즈 4,4) 작업이 중단됩니다. 에즈라서 4장4절의 성전공사에 반대하는 “그 지방 백성”은 사마리아인들입니다. 이들은 에사르 하똔(기원전 680-669년) 같은 아시리아 임금들이 이주시킨 외국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의 후손입니다. 북왕국이 아시리아에 멸망하면서(722년) 수도 사마리아에 외국인들이 들어와 자기들의 옛 민족 신과 함께 이스라엘의 하느님도 공경하였습니다(2열왕 17,24-41 참조). 이들의 혼합 종교는 경건한 유다인들에게 위험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즈루빠벨은 그들과 타협하기를 거부하고 성전재건공사에도 참여할 수 없도록 하였습니다. 이에 분노한 사마리아인들이 페르시아임금에게 상소를 올립니다. 에즈라기 4,6-23절에는 다리우스 이후, 크세르크세스와(기원전 486-464년) 아르타크세르크세스 일세(기원전 464-424년) 치하에 계속된 사마리아 주민의 방해 공작 이야기가 삽입됩니다. 그 내용은 ‘유다인들이 예루살렘으로 가서, 반역과 사악의 도성을 다시 짓고 있다’는 것입니다(에즈 4,12). 
성전재건공사는 페르시아 임금 다리우스 통치 제이년까지 중지되었습니다(에즈 4,24). 공사는 다리우스 통치(기원전 522-486년) 제2년인 520년에 가서야 재개됩니다. 
“그때에 하까이 예언자와 이또의 아들 즈카르야 예언자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있는 유다인들에게, 그들 위에 계신 이스라엘의 하느님 이름으로 예언하였다.2그러자 스알티엘의 아들 즈루빠벨과 여호차닥의 아들 예수아가 나서서, 예루살렘에 있는 하느님의 집을 다시 짓기 시작하였다.”(에즈 5,1-2) 
에즈라기 5,1의 ‘유다와 예루살렘에 있는 유다인들’이 아람 말 본문에 유다는 여후드로 되어 있는데, 이것이 페르시아 제국 내의 행정 구역 유다(그리스어Ἰουδαία/라틴어 Judæa/ 영어 Judea·Judaea)라는 공식 명칭이었습니다. 이스라엘 통일왕국이 분열한 후 먼저 북왕국이 멸망하였고 남왕국 유다는 한세기반 정도 더 유지되다가 바빌론제국에의해 패망하여 유배를 떠났지만 이스라엘정신을 유지하면서 유배지에서 율법서를 편찬하여 귀환합니다. 팔레스티나본토에는 잔류 유다인들과 이민족들이 있었지만 귀환자들을 중심으로 율법에 의한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합니다. 이 공동체의 이름이 유다이며 에즈라와 느헤미야의 종교개혁으로부터 강력한 유다이즘이 형성됩니다. 세스바차르가 성전의 기초를 이미 놓은 바 있지만(에즈 3장), 공사는 중단되어 있었습니다. 공사가 본격적으로 재개되도록 예언자 하까이와 즈카르야가 힘을 쏟아야 했던 것입니다. 다리우스임금은 문서고에서 키루스대왕의 칙령을 발견하고 키루스의 유지를 받들어 칙령을 내립니다.(성전 건축 재개에 관한 다리우스의 칙령; 에즈 6,1-12)  

②성전재건과 번영의 약속[2장]
하까이는 이스라엘을 다시 한 번 성전이라는 틀에 묶음으로써(2,3),하느님의 주권을 시인하게 하여 그의 세계를 확대시킵니다. 왜냐하면 만군의 주님이신 하느님은 이제 성전을 통하여 모든 민족을 뒤 흔들 것이기 때문입니다(2,6-9). 
2,6─ 정녕 만군의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 머지않아 나는 다시 하늘과 땅 바다와 뭍을 뒤흔들리라.7내가 모든 민족들을 뒤흔들리니 모든 민족들의 보화가 이리 들어오리라. 그리하여 내가 이 집을 영광으로 가득 채우리라. ─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9이 집의 새 영광이 이전의 영광보다 더 크리라. ─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내가 이곳에 평화를 주리라. 만군의 주님의 말씀이다.’
당시 국제 정치의 혼란스러운 상황에 힘입어(이 부분은 전술한 페르시아제국 아케메네스 왕조 참조), 메시아적 희망의 실현이 매우 임박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이 부분은 히브 12,26-27에서 인용됩니다.
빈곤과 흉작은 그들의 영성적 혼수상태에 대한 벌로서, 이제 신앙의 열성을 되찾고 주님께 합당한 집을 지어 드리는 작업을 재개하면, 많은 복을 받고 구원의 시기가 결정적으로 시작된다고 촉구합니다. 

③메시아의 약속(2,20-2,23):
다윗의 혈통을 이어 받은 유다총독 즈루빠벨(Zerubbabel;  Ζοροβάβελ)이 이 메시아적 희망을 구현할 이로 여겨집니다. 예루살렘이 파괴되기 이전의 것보다 더 영화로운 성전, 그리고 임금으로 오시는 메시아에 대한 기다림이, 이후 새 시대를 향해 나아가는 하느님의 백성을 힘차게 지탱해 줍니다. 그리고 이 이중의 희망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됩니다.

5.하까이서의 의미
하까이의 성전재건에 대한 사상은 이사야나 예레미야와는 결합될 수 없는 표상들입니다. 그래서 때때로 하까이를 이사야 등과 구별하여 내면성이 덜한 것으로 간주하려는 경향도 있었습니다. 예레미야의 돌아옴,하느님의 마음,이사야의 우주적창조론, 새로운 탈출 등 이러한 심도 있는 표상에 비해 성전 짓는 것이 중요하다는 하까이의 선포가 덜 신학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전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시고 그들의 죄를 용서하며 당신의 백성들을 위해 현존하시는 장소입니다. 그러므로 성전을 향한 자세에서 하느님을 향한 내적 상태도 결정되는 것입니다. 
하까이는 이스라엘을 다시 한 번 성전이라는 틀에 묶음으로써, 이사야가 전망한 우주적 시야를 좁힌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의 주권을 시인하게 함으로써 그의 세계를 확대시킨 것입니다. 왜냐하면 만군의 주님이신 하느님은 이제 성전을 통하여 모든 민족을 뒤 흔들 것이기 때문입니다(2,6-9). 
하까이 예언자가 사마리아의 종교혼합주의자들을 거부한 것에 대해서는 토론의 여지가 있지만, 그러나 하느님신앙은 이교의 신을 섬기는 것과는 그 영역과 차원이 다르기에 종교혼합주의자들에 대한 하까이의 거부가 그 시대의 사고에서는 무리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현대에는 이러한 문제가 다른 옷을 입고 등장하기는 합니다. 하느님신앙의 선택은 자유롭게 열려있는 문입니다. 그러나 ‘좁은 문’입니다.  

◈주님의 집
하까이는 하느님께서 은총을 베푸시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전제 조건이 성전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성전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시고 그들의 죄를 용서하며 당신의 백성들을 위해 현존하시는 장소입니다. 그러므로 성전을 향한 자세에서 하느님을 향한 내적 상태도 결정되는 것입니다. 하까이는 이스라엘의 종말론적 신앙의 중심에 이스라엘의 제의(祭儀)가 있다는 신념을 가졌습니다. 사실 하느님께서 한정된 장소에 계시는 것은 아니지만 성전은 사람이 영적인 존엄 하신 존재에 대한 내외적 태도를 바라보는 곳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마음이 산란할 때 성당에 가야겠다고 말합니다. 성당은 조용히 하느님을 대면하는 곳입니다. 하까이에게는 우선 성전이 중요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성당(聖堂)이 중요합니다. 
‘“주님의 집으로 가세!” 사람들이 나에게 이를 제 나는 기뻤네.’(시편 122,1). 축일 때 성전으로 순례하면서 불렀으리라고 생각되는 순례자의 찬양시편 중 한 구절입니다. ‘주님의 집으로 가자’고 할 때의 기쁘고 벅찬 감정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나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몇 년 동안 성당에 가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파스카성야 전례가 사무치도록 그리웠습니다. 성당에 다시 돌아온 첫 번째 이유가 전례에 참석하고 싶어서였습니다. 언제나 영혼의 고향이었던 주님의 집! 누군가가 상담이나 대화를 청할 때 또는 기도해 달라고 할 때, 나는 그와 함께 주님의 집으로 가자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저 함께 앉아있습니다. 그는 그렇게 함께 성당에 가서 많이 울었습니다. 하느님을 만났으니 마음 정리도 되었을 것입니다. 성당(聖堂)이 아니면 전적으로 자신을 대면할 조용한 곳이 어디 있을까요? 언제나 어느 때나 나를 기다리고 계시는 주님이 계신 곳. 하까이는 성전을 짓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46-45.즈카르야서(ZECHARIAH/ ΖΑΧΑΡΙΑΣ) (약칭;즈카/Zc) 

1.예언자 즈카르야 
히브리어 즈카르야는 ‘자카르’(기억하다) 동사에서 파생한 고유명사로 우리말로 “야훼께서 기억하신다”란 뜻입니다. 구약 제1경전 「타낙」의 ‘즈카르야’를 그리스말 「칠십인역」은 ‘Ζαχαριαs’(자카리아스), 라틴어 대중 성경 「불가타」는 ‘Zacharias’,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펴낸 우리말 「성경」은 ‘즈카르야서’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예언자 즈카르야는 사제 이또의 손자이며 베레크야의 아들(즈카 1,1), 또는 이또의 아들(에즈 5,1; 6,14)로 알려져 있습니다. 느헤 12,16에 의하면 그는 500년경까지도 이또 사제 집안의 우두머리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2.즈카르야서의 배경과 활동시기
①즈카르야서 역시 성전의 재건을 위해 동포들의 분발을 전하는 메시지인데 대부분 신비적 환상의 형식으로 후대에 널리 유행하게 된 묵시문학의 선각자로 볼 수 있는 양식으로 표현되었습니다. 그는 아직 바빌론에 남아있는 동포들에게 귀향을 촉구했고 하느님의 역사 개입이 임박했음을 알립니다. 
②다리우스 황제의 제국을 뒤흔든 정치적 소요가(1차 그리스/페르시아전쟁) 가져온 상황을 기회로, 유배자들의 여러 집단이 희망을 가득히 품고 바빌론에서 속속 돌아옵니다. 그러나 공동체 안에서 일어나는 통합상의 어려움으로, 그들은 곧바로 용기를 잃습니다. 또 근동 전역이 점점 평온해지면서 신속한 변화를 바라던 그들의 희망도 무너지고 맙니다. 무슨 일이 생길 줄 알았는데 페르시아제국이 안정을 찾아간다는 것이었습니다.  
③이 사제는 결연히 옛 예언자들의 노선을 따르면서 그들처럼 즈카르야도 회개를 호소합니다(1,3-6; 7,4-14; 8,16-17). 그의 사제로서의 특성이 성전의 역할을 강조하는 그의 태도를 설명해 줍니다. 
④1,7에서, 기원전 519년 2월 중순이라는 정확한 날짜와 함께 도입되는 환시 이야기는, 그 때가 예언자의 설교에서 중요한 시기이고, 이 예언서가 전개하는 중심임을 드러냅니다. 이 환시의 중간 중간에 신탁들이 삽입되는데, 그것들은 환시를 당시의 사건과 연결시키는 구실을 합니다. 520년경 저술기록 되었고 아마도 즈카르야 사후에 완성된(2단계예언서 최종편찬시기) 이 이야기는 예언자 자신의 작품으로 볼 수 있습니다. 
⑤예언자 즈카르야의 순교설은 요아스 임금에게 살해된, 여호야다의 아들 즈카르야사제와 혼동한 데에서 비롯된 것입니다(2역대 24,20-22;마태 23,35).  

3.즈카르야서의 구조 1부[1―8장]
전체 14장의 즈카르야 예언서도 한 예언자의 작품으로 간주할 수 없는 책입니다. 전반부 1─8장은 확실히 통일된 하나의 책으로서, 귀향 후의 하까이와 동시대인인 즈카르야의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9─14장은 통상 제2즈카르야라 불리는 훨씬 후대의 저자에게서 비롯됩니다. 
제1부는 일인칭으로 작성된 일종의 일지로서, 공동체의 완전한 복구를 미리 서술하는 여덟 개의 ‘환시’이야기를 중심으로 하는 설교(1,1-6; 7,4-14)와 미래에 관한 약속(8,1-17.20-23)이 ‘메시아시대의 행복’이라는 열 가지 말씀으로 그 기본 골격을 이룹니다. 이 소책자의 구조는 균형이 잘 잡혀 있습니다. 환시의 전반적인 내용은 아모 7장, 측량줄을 쥔 천사는 에제 40,3-4, 날아다니는 두루마리는 에제 2,9-10과 연관됩니다. 즈카르야예언서의 전통은 그가 전한 메시지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이러한 그의 예언적 자질을 여러 차례에 걸쳐 역설합니다(2,13.15; 4,9; 6,15).

①머리글
1,1다리우스 제이년 여덟째 달에 주님의 말씀이 이또의 손자이며 베레크야의 아들인 즈카르야 예언자에게 내렸다.
즈카르야의 선포는 520년 10-11월에(1,1), 곧 하까이가 마지막 신탁을 선포할 무렵 등장하여 518년 11월까지(7,1), 곧 기원전 515년 새 성전이 봉헌되기 삼년 전까지 이어집니다.

②여덟 개의 환시(1─6장)
밤에 보는 여덟 가지 환시가(1,7─6,15) 나오는데, 이 환시는 매번 장면의 목격-질문-답변 순으로 전개됩니다. 환시 중에 주님의 말씀이 즈카르야에게 내립니다.
❶처음 세 환시는 메시아적 복구의 준비 단계를 제시합니다. 
⑴첫 번째 환시: 말 탄 기사(1,7-13) 
이 기사들은 ‘주님께서 세상을 두루 다니도록 보내신 것’이라고 천사가 즈카르야에게 설명합니다.  
⑵두 번째 환시:뿔과 대장장이(2,1-4)
2,1내가 눈을 들어 보니 뿔이 네 개 있었다.2나와 이야기하던 천사에게 내가 물었다. “이것들은 무엇입니까?” 그가 나에게 대답하였다. “이것들은 유다와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을 흩어 버린 뿔이다.” 
흩어진 유다와 이스라엘은 유배로 흩어진 것을 뜻합니다. “뿔”은 통상 힘, 그리고 폭력도 가리키는데(1사무 2,1; 1열왕 22,11; 시편 22,22 등 참조), 여기에서 ‘네 뿔’은 총괄적으로 이스라엘의 적들을 가리킵니다. 
⑶세 번째 환시:측량줄(2,5-9)
“측량줄”은 건축할 때에 토지를 측량하는 데에 쓰이는데(2,5; 예레 31,38-40; 에제 40,3 참조) 측량줄을 가진 사람이 “예루살렘을 측량하여, 그 너비와 길이가 얼마나 되는지 알아보러 간다고 천사에게 말합니다. 천사가 측량줄을 쥔 사람에게

2,8‘사람들과 짐승들이 많아 예루살렘은 성벽 없이 넓게 자리 잡으리라.9주님의 말씀이다. 내가 예루살렘을 둘러싼 불 벽이 되고 그 한가운데에 머무르는 영광이 되어 주리라.’
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하느님께서 구원을 이루시고자 직접 나서시겠다고 언약하시는 탈출 3,12.14를 암시하는 말입니다. 그분께서는 그 언약을 갱신해 주시는 것입니다. 위 말씀에서 언급되는 “불 벽”과 “영광”이 또 바로 탈출기를 상기시킵니다. 그래서 이제 예루살렘은 8절 성벽 없이 넓게 자리 잡으리라는 말대로 하느님께서 예루살렘을 둘러싼 불 벽이 되고 그 한가운데에 머무르는 영광이 되십니다. 

❷이어지는 두 환시는 새 공동체의 통치와 관련됩니다. 
⑷네 번째 환시:예수아 대사제(3장) 
3,1그가 주님의 천사 앞에 서 있는 예수아 대사제를 나에게 보여 주었다. 그의 오른쪽에는 사탄이 그를 고발하려고 서 있었다.3그때에 예수아는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서 있었다.4천사가 자기 앞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저 사람에게서 더러운 옷을 벗겨라.” 하고서는, 예수아에게 말하였다. “보아라, 나는 너에게서 네 허물을 치워 버렸다. 나는 너에게 예복을 입혀 주겠다.”
사탄이라는 히브리 말은 본디 ‘고발자’를 뜻합니다. 이 존재가 여기에서는 아직 ‘악령’, 곧 악마와 동일시되지 않습니다. 인격적이며 완전히 사악한 존재, 하느님과 인간의 적으로서 이 존재는 구약 성경에서는 점진적으로 발전됩니다(1열왕 22,22; 1역대 21,1; 욥 1,6; 지혜 2,24 참조).더러운 옷을 입은 예수아는 유배에서 돌아온 것을 의미합니다.
 
3,8예수아 대사제야! 너와 네 앞에 앉아 있는 너의 동료들은 들어라. ─ 이들은 정녕 예표가 되는 사람들이다. ─ 보라, 내가 나의 종 ‘새싹’을 데려오려고 한다.
예레 23,5; 33,15에서 빌려 왔고 이사 11,1-2와 관련되는 “새싹”은 메시아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종”이라는 개념은 사람들이 고대하는 이 인물의 메시아적 자질을 더욱 분명하게 해 줍니다(이사 49,5-6; 52,13; 하까 2,23 참조). 정화되고 복구된 사제직이 이제 메시아 도래의 보증이 되는 것입니다.

3,9내가 예수아 앞에 놓은 돌을 보아라. 돌은 하나인데 눈은 일곱이다. 만군의 주님의 말씀이다. 거기에 내가 비문을 새기고 이 땅의 허물을 단 하루에 치워 버리리라.10그날에 만군의 주님의 말씀이다. 너희는 서로 이웃들을 자기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로 초대하리라.’
여기에서 말하는 “돌”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탈출 28,36과 39,30에 나오는 “패”와 같이 사제 복장에 고정시킨 것으로서, 히브리 말 일곱 글자로 “주님께 성별된 이”(14,20 참조)라는 글씨가 새겨진 보석을 가리키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 경우에 ‘일곱 눈’은 하느님께서 사제들과 백성의 보호자로서 현존하심을 표현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돌”은 하느님께서 대사제에게 보존하고 관리하라고 맡기신 성전 자체를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
3,10절의 이 표상은 번영과 안녕, 그리고 사람들 사이의 형제적 관계를 표현합니다(1열왕 5,5; 1마카 14,12; 미카 4,4 참조). 메시아 시대는 이러한 낙원 생활의 환경들을 복구시킨다는 것입니다.

⑸다섯 번째 환시; 등잔대와 두 올리브 나무(4장)
4,5나와 이야기하던 천사가 나에게, “너는 이것들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느냐?” 하고 묻자, 나는 “나리, 모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6그가 나에게 말하였다. “이것은 즈루빠벨을 두고 하신 주님의 말씀이다. ‘권력으로도 힘으로도 되지 않고 나의 영으로만 될 수 있다. ─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등잔대에 관한 환시는 즈루빠벨에 관한 말씀으로 여기에서 중단되었다가, 10절에서 다시 계속됩니다.
즈루빠벨이 인간적인 노력에 너무 의존하지 않도록 미리 주의를 주시는 말씀입니다. 공동체의 복구와 메시아의 도래는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창조적인 권능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4,14천사가 “이것들은 온 세상의 주님 곁에 서 있는 성별된 두 사람을 뜻한다.” 하고 말하였다.
올리브나무 두 그루는 성별된 두사람을 뜻합니다.“성별된 두 사람”의 직역은 “햇기름의 두 아들.”입니다. 이들이 현 공동체의 두 우두머리, 곧 즈루빠벨과 예수아를 가리키는지, 아니면 앞으로 시작될 새 시대의 새로운 큰 지도자들을 가리키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❸마지막 세 환시는 최종적 복구의 조건들을 상기시킵니다.
⑹여섯 번째 환시;두루마리(5,1-4) 
5,1내가 다시 눈을 들어 보니 날아다니는 두루마리가 하나 있었다.2그 천사가 나에게 “무엇이 보이느냐?” 하고 물었다. “날아다니는 두루마리 하나가 보입니다. 그 길이는 스무 암마이고 너비는 열 암마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에제키엘 예언자가 본 것처럼(에제 2,10) 아마도 양쪽 면에 글이 적힌 두루마리일 것입니다.
한 암마는 약 46센티미터입니다. 20×10 암마의 면적은 솔로몬이 지은 첫 성전의 현관과 같습니다(1열왕 6,3). 이제 이 두루마리가 나라 위를 돌아다니면서 죄 때문에 성소에 들어갈 수 없는 사람들을(시편 15; 24,3-5 참조) 모두 제거하는 것입니다.
⑺일곱 번째 환시; 뒤주(5,5-11)
“뒤주”로 옮긴 히브리 말은 에파입니다. 이는 곡식 같은 것을 재는 도량형이면서(약 40리터), 동시에 재는 데에 쓰이는 그릇을 뜻합니다.
5,10나는 나와 이야기하던 천사에게, “저들이 뒤주를 어디로 가져 가는 것입니까?” 하고 물었다.11그가 나에게 “뒤주를 둘 집을 지으려고 신아르 땅으로 간다. 그 집이 세워지면 뒤주는 받침대 위에 놓일 것이다.” 하고 대답하였다.
신아르는 이교적(異敎的) 권력욕의 중심인 대제국을 가리키는 상징입니다(창세 10,10; 11,2; 이사 11,11; 다니 1,2 참조). 여기에서는 구체적으로, 이스라엘을 유혹하고 많은 불행을 가져온 바빌론을 뜻합니다.
⑻여덟 번째 환시; 병거(6,1-8)
6,1내가 다시 눈을 들어 보니, 두 산 사이에서 병거 넉 대가 나오고 있었다. 그 산들은 청동 산이었다.8천사가 나에게 소리쳐 말하였다. “보아라, 북쪽 땅으로 떠난 말들이 나의 영을 북쪽 땅에 편안히 자리 잡게 하였다.”
예언자는 여기에서 청중에게 잘 알려진 신화적 요소들을 사용합니다. 바빌론의 어떤 신화에 따르면 “두 산”은 신들이 사는 거처의 입구입니다.“북쪽 땅”은 바빌론을 가리킵니다. 이어지는 단락이 말하는 것처럼, 하느님께서는 바빌론으로 끌려간 유배자들이 다시 각성을 하여 행복 속에 성전을 재건하도록 이끄실 것입니다.

❹대사제의 착복식 (6,9-15)
즈카르야서는 전체적으로 희망을 증진시킵니다. 물질적 어려움과 실망으로 회의나 수동적 체념에 빠지는 공동체에, 예언자는 행동을 이끌어 내는 희망을 불어넣습니다. 성전의 재건축과 적법한 경신례의 복구가 바로 구원을 바라는 구체적 방식이라는 것입니다. 즈카르야는 이 구원이 벌써 문 밖까지 와 있다고 말하는데 즈루빠벨이 이 구원의 시대를 열어갈 인물로 여겨졌던 것입니다. 그의 상징적 대관식이 그러한 사실을 가리키는 표지입니다. 여기에서 대사제의 착복식에 관한 환시가 문학적으로, 신학적으로 특별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주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환시에서는 예수아 대사제에게 더 우월한 지위를 부여하는 반면, 그 다음의 환시에서는 기름 부음을 받은 예수아와 즈루빠벨, 두 사람이 동등한 대접을 받습니다. 
6,11너는 은과 금을 받아 왕관을 만들어, 여호차닥의 아들 예수아 대사제의 머리에 씌우고,12그에게 말하여라. ‘만군의 주님이 이렇게 말한다. 이 사람을 보아라. 그의 이름은 ′새싹′이니 그가 제자리에서 돋아 나와 주님의 성전을 지으리라.13그가 주님의 성전을 지을 것이며 바로 그가 엄위를 갖추고 자기 왕좌에 앉아 다스리리라. 그의 왕좌 곁에는 한 사제가 있을 터인데 그 두 사람은 평화롭게 조화를 이루리라.’
예언자는 유배자들 중 몇몇으로부터 금과 은을 받아 왕관을 만들어 예수아 대사제에게 씌우라는 말씀을 듣습니다(6,9-11). 본디 본문에는 예수아 대사제가 아니라 다윗 집안의 즈루빠벨 제후가 왕관을 받는 것으로 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바로 이 즈루빠벨을 메시아로 여겼습니다(3,8; 하까 2,23 참조). 13절도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하는데 이 두 사람은 정치 지도자 즈루빠벨과 종교 지도자 예수아를 말하는 것입니다. 나중에 즈루빠벨이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갑자기 사라진 다음에, 공동체의 대내적 통치가 사제단의 손으로 넘어가고 대사제가 즈루빠벨의 역할까지 이어받게 됩니다. 즈루빠벨이 사라진 뒤에 이 기대는 수정되어 메시아의 역할이 사제에게 집중된 것입니다. 히브리서는 이 희망이 예수님에게서 성취되었다고 선언합니다(히브3―10;대사제 그리스도 참조). 

④단식문제(7장)
7장은 단식에 대한 질문과 응답의 형식으로 되어있고 참된 단식의 의미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제 성전도 재건되었으니 다섯째 달의 단식을 계속해도 되는지 아닌지를 묻습니다(7,3). ‘다섯째 달의 단식을 계속 해야 하는가?’ 의 질문에 대하여 즈카르야를 통한 하느님의 응답의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 응답에는 하라, 하지 말라는 말씀은 없고 단식의 진정한 의미만을 말씀하실 뿐입니다.  
‘너희가 지난 일흔 해 동안 다섯째 달과 일곱째 달에 단식하며 슬퍼할 때 참으로 나를 위하여 단식하였단 말이냐? 너희는 진실한 재판을 하여라. 서로 자애와 동정을 베풀어라.과부와 고아 이방인과 가난한 이를 억누르지 마라. 서로 남을 해치려고 마음속으로 궁리하지 마라.’ ....너희는 ‘들으려 하지 않고 등을 돌렸으며, 듣지 않으려고 귀를 막았다.’(7,5-11)
⑴‘다섯째 달의 단식’은 587년 7월 예루살렘이 함락된 날로부터 그날을 기념하며 애도하던 단식이었습니다. 
⑵일곱째 달은 바빌론이 세운 유다총독 그달야가 살해된 것을 기념하는 단식입니다. 
⑶8장에 나오는 넷째 달의 단식은 바빌론이 예루살렘성벽을 뚫은 날을 애도 탄식하는 단식입니다.
⑷열째 달은 바빌론이 예루살렘을 포위한 날을 기념하는 단식이었습니다. 
아무튼 사람들은 모든 것을 하느님이 아니라 ‘예루살렘과 성전’에 의미를 두었습니다. 

‘너희가 지난 일흔 해 동안 다섯째 달과 일곱째 달에 단식하며 슬퍼할 때 참으로 나를 위하여 단식하였단 말이냐?’ 

그러니 기념을 위한 단식을 하느님을 위해 하는 것처럼 생색 내지 말고 과부와 고아 가난한 이방인들을 억누르지 말라는 진실한 단식을 요구하시는 것이지만, 그들이 요구하는 답은 계속 단식을 할 것인지 그만해도 되는지에 대한 것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단식실행에 관한 확실한 답변 외에는 들으려 하지 않고 등을 돌렸으며, 듣지 않으려고 귀를 막았습니다.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부를 때에 그들이 듣지 않은 것처럼, 그들이 부를 때에 나도 듣지 않겠다.”’(7,13).  
이것이 자신들이 원하는 답 외에는 듣지 않으려는 백성들에 대한 하느님의 대답입니다.
  
⑤메시아 시대의 행복 (8장)
8장은 ‘만군의 주님이 이렇게 말한다’는 식으로  메시아시대의 행복 열 가지 선포가 이어지는데 다만, 그 행복선포에 이어 사람이 해야 할 일이 제시 됩니다.    
“너희가 해야 할 일은 바로 이것이다. 너희는 서로 진실을 말하고, 성문에서는 평화를 이루는 진실한 재판을 하여라. 남을 해치려고 마음속으로 궁리하지 마라. 거짓 맹세를 좋아하지 마라. 이 모든 것은 내가 미워하는 것이다. 주님의 말이다.”(8,16-17)      
이어지는 8,19절은 7장에 이어지는 단식에 대한 답변입니다. 그러나 역시 단식을 계속해야할지 중단해야할지에 대한 답은 없습니다.   
“만군의 주님이 이렇게 말한다. 넷째 달의 단식과 다섯째 달의 단식, 일곱째 달의 단식과 열째 달의 단식은, 유다 집안에 기쁨과 즐거움의 때가 되고 흥겨운 축제가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너희는 진실과 평화를 사랑하여라.”   
정해진 날의 단식은 실행여부 보다는 ‘유다 집안에 기쁨과 즐거움의 때가 되고 흥겨운 축제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진실과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면 하느님을 모르던 사람들이 너를 붙잡고 이렇게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때에 저마다 말이 다른 민족 열 사람이 유다 사람 하나의 옷자락을 붙잡고, ‘우리도 여러분과 함께 가게 해 주십시오. 우리는 하느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하고 말할 것이다.” (8, 23)  
16절 너희가 해야 할 일 즉, 서로 진실을 말하고, 성문에서는 평화를 이루는 진실한 재판을 하고 17절 남을 해치려고 마음속으로 궁리하지 말고 거짓 맹세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되면 다른 민족 사람들이 지나가는 유다사람의 옷자락을 붙잡고 하느님께 갈수 있게 해달라고 통사정을 한다는 것입니다. 
16절의 “성문”은 원로들이 모여서 법적인 문제를 심의하고 판결을 내리는 곳으로, 법정과 같은 구실을 하였습니다(룻 4,1; 아모 5,10).“유다 사람”이라는 말은 성경에서 상당히 후대에 와서야 사용되는 용어이입니다.느헤미야기와 에스테르기에서부터 비로소 널리 쓰이기 시작합니다(느헤 1,2; 에스 2,5; 3,6.10.13).

4.환시에 등장하는 천사
①이 예언자는 하느님께서 사람들 사이에 개입하시는 방식에 어떤 변화가 있음을 증언합니다. 즈카르야서에서는 하느님께서 세상의 일이 벌어지는 무대에서 멀리 떨어져 계신 분처럼 보입니다. 예언자가 환시를 볼 때에도 그분께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시며, 하느님의 뜻을 설명하는 임무를 띤 존재로서 천사가 나타납니다.그리고 하느님의 계획은 천사나 기사(騎士) 같은 중개자들을 통하여 실현됩니다. 
②이러한 관점은 당시 백성들의 일종의 하느님 부재(不在)의 체험에 상응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유배의 시련과 귀향 후에도 부딪히는 가난의 어려움으로 ‘하느님께서는 정말 우리의 운명에 관여하시는가?’라는 질문이 제기됩니다. 이제 신앙은 이러한 표면상의 공허를 메워 주고, 천상 세계와 시련 중에 있는 사람들을 가깝게 이어 주는 중개자들을 많이 소개함으로써 그러한 질문에 대답합니다. 
③이 중개자들이, 후대의 묵시문학에서는 신비로 가득한 상징으로써 하느님을 가리게 되겠지만,즈카르야서에서는 하느님과 인간을 일치시키는 끈이 됩니다. 
④하느님께서는 여러 방법으로 대화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간혹 하느님의 부재를 느낀다하더라도 포기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사야도 얼굴을 숨기신 그 하느님을 찬미하리라고 했습니다(이사 8,17). 

❋쉬어가기
하느님께서는 여러 방법으로 대화하십니다. 천사가 여기에서도 다양한 모습으로 표현되듯이 아브라함처럼 지나가는 이웃을 대접할 때 그가 곧 천사였고, 토비트의 아들을 동행하면서 도와준 사람도 천사였고, 
내가 어머니와 성지순례를 갔을 때 가는 곳마다 휠체어를 밀어주고 올려주고 한 사람도 천사였고, 처음 미국에 갔을 때 너무 막연하고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지 몰라 성당에 가서 하염없이 앉아 울고 있는데 그때 다가온 한국인 한 분이(내가 대화를 청하지도 않았는데) 미국생활을 잘 안내해 주었습니다. 그는 연락처를 주지 않고 갔습니다. 그렇게 안내하고 떠난 그 사람은 정말 천사였습니다. 그 분은 나를 벌써 잊었을 것이고 기억에조차 없을 것이지만 마태 25장 최후의 심판 때에 자신도 기억 못하는 선행을 하느님께서 기억하고 계셨다는 감동적인 구절로 인하여, 때때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친절한 이웃이 천사였다고 나는 믿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가 누군가에게 다가갈 때 그의 기억이 될 수 있겠습니다.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들아,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 그러면 그 의인들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언제?.....’”(마태 25,34-40)

5.즈카르야서 2부[9―14장] (제2 즈카르야)
1)저자와 저작시기
①즈카르야서의 이 둘째 부분은 첫째 부분과 동일한 저자의 작품으로 볼 수 없게 만드는 몇 가지 특징들을 드러내는 데 우선 역사적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첫째 부분에서는 분명하게 거명된 사람들이 둘째 부분에서는 아무도 등장하지 않으며 여러 차례에 걸쳐 언급되는 포로들은(9,11-12; 10,8-11), 이제 기원전 587년에 끌려간 사람들이 아니라, 넓은 의미에서 디아스포라(북 이스라엘왕국과 남 유다왕국이 차례로 멸망하면서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근동의 각 지역에 흩어져 살게 되었는데 이들을 ‘분산’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디아스포라 διασπορά 라고 부른다.)에 흩어져 사는 이들을 일컫고 있습니다. 
②이 밖에도 제2부는 '신탁'이라는 머리글로 시작됩니다(9,1). 12,1과 말라키서의 첫머리에서도 되풀이되는 이 머리글은, 열두 소예언서 마지막 부분의 특별한 유래를 드러내는 표지입니다. 
③이 책의 저작 시기와 관련하여 제기된 가설들의 범위는 상당히 넓습니다. 곧 위로는 유배 이전 시대부터, 밑으로는 기원전 2세기까지 제시됩니다. 여러 가지 사정을 감안하여 이 소책자의 저작 시기를, 그리스 시대가 시작하는 기원전 330년과 기원전 300년 사이로 보고 있습니다. 즈카 9―14장의 작품은 전체적으로 페르시아를 제압하고 그리스를 통합한 마케도니아출신 알렉산드로스대왕(Ἀλέξανδρος; Alexandros; Alexander the Great BC 356-323)의 승리에 이어지는 동요(動搖)를 명백히 드러냅니다.

2)구조
이 소책자의 전체 내용은 '메시아 도래의 서술'이라는 말로 종합할 수 있으며 구원 사업이 이중의 방향으로 전개되는 두 부분이 대칭을 이루면서 구성되어 있습니다. 곧 백성이 실패의 늪으로 빠져드는 움직임, 그리고 구원을 가져오는 완전한 쇄신입니다. 
①첫째 부분 9,1─11,17
❶이웃 민족들에 대한 심판과 정화 9,1-8
하느님의 결정적 개입이 예고됩니다. 정복당한 민족들은 정화된 다음에 신앙인들의 공동체에 통합되며(9,1-8), 이어서 겸손한 모습으로 이상적 통치를 시작할 임금-메시아가 나타납니다(9,9-10). 
❷평화를 가져오는 겸손한 메시아 9,9-10
9,9딸 시온아, 한껏 기뻐하여라. 딸 예루살렘아, 환성을 올려라. 보라, 너의 임금님이 너에게 오신다. 그분은 의로우시며 승리하시는 분이시다. 그분은 겸손하시어 나귀를, 어린 나귀를 타고 오신다.10그분은 에프라임에서 병거를, 예루살렘에서 군마를 없애시고 전쟁에서 쓰는 활을 꺾으시어 민족들에게 평화를 선포하시리라. 그분의 통치는 바다에서 바다까지, 강에서 땅끝까지 이르리라.
이 9절은 예수님께서 수난 직전에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는 장면을 전하는 네 복음서에서 직간접적으로 인용됩니다(마태 21,1-11; 마르 11,1-11; 루카 19,28-40; 요한 12,12-19).
이 ‘임금’은 부자들이나 권세가들이 타는 짐승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선조들이 이용하던(창세 49,11; 판관 5,10) 평범한 짐승을 타고 입성하십니다. 나귀는 평민들이 타는 짐승입니다. 평화를 선포하시는 겸손한 메시아는 어린 나귀를 타고 오십니다. 
 
◉시온-예루살렘
다윗이 점령한 예루살렘에 여부스족의 성읍 시온이 있었고 이곳을 다윗성이라 불렀습니다. 솔로몬이 북쪽에 예루살렘 성전을 지은 후, 시온은 성전과 그 주변 지역까지 포함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시온은 곧 예루살렘입니다. 점차적으로 시온은 이스라엘의 신앙의 수도로서 예루살렘 전체나 그곳의 주민을 의미하게 되었고(시온의 딸들, 또는 딸 시온, 아들들과 자손들) 후에는 이스라엘 나라 전체 또는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이스라엘을 비유하는 이름으로 쓰이게 됩니다. 이스라엘 신앙의 전통 안에서 시온이라는 말은 하느님이 택하신 거룩한 거처, 그분의 통치, 그분의 왕국, 정의와 의로움과 평화의 영역, 안전과 보호, 구원 등을 떠올리게 하는 핵심적인 상징이 되었습니다. 신약성경에서 ‘시온산’은 메시아 왕국의 지상 중심지를 일컫는 용어로 사용되며 때로는 예루살렘 자체를 가리키기도 합니다(묵시 14,1;히브 12,22-23 여러분이 나아간 곳은 시온산이고 살아 계신 하느님의 도성이며 천상 예루살렘으로, 무수한 천사들의 축제 집회와 하늘에 등록된 맏아들들의 모임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❸이스라엘의 회복 9,11-17
❹구원을 약속하시는 참목자(10장)
그리고 큰 전투들이 벌어지는데, 그 덕분으로 여기저기 흩어진 하느님 백성의 재결집이 이루어집니다. 10,1-2에서는, 이 모든 것이 하느님 혼자 하시는 일로서, 그분 외에 다른 것이나 다른 존재에 의지하는 것은 헛되다는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목자로 소개되는 메시아가, 호의와 일치라는 목자의 두 지팡이로 상징되는 자기의 계획을 실현하기 위한 일에 착수하지만 우두머리들과 양 떼의 종교적 타락은 이 메시아의 노력을 허사로 만들어 버립니다. 
❺사악한 통치자들에게 내리는 위협(11장)
11,14 그러고 나서 나는 ‘일치’라는 둘째 지팡이를 부러뜨려, 유다와 이스라엘의 형제 관계를 깨 버렸다.
이 “형제 관계”의 파기는 기원전 328년경 사마리아의 그리짐산에 분파적인 성전을 지음으로써, 예루살렘 공동체와 사마리아 공동체가 완전히 갈라진 것을 두고 하는 말일 수 있습니다. 이 파기는 하느님의 옛 백성의 모든 구성원이 재결합한다는 꿈을 좌절시키고 맙니다(예레 3,18; 에제 37,15-28; 호세 2,1-2).
◉그리짐산의 성전
‘여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선생님, 이제 보니 선생님은 예언자시군요.저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그런데 선생님네는 예배를 드려야 하는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고 말합니다.”’(요한 4,19-20) 
사마리아인들이 예배를 드리는 산은 그리짐산 입니다. BC 450년 에즈라의 종교 개혁으로 이방인과 결혼한 사람들 주로 사마리아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추방되었습니다. 이들은 예루살렘 성전에 갈수 없었는데 거룩한 씨가 섞이기 때문입니다(에즈 9,1). 유다와 결별한 사마리아는 야곱의 아들 요셉을 묻은 스켐성이 보이는 그리짐 산 위에 성소(聖所)를 세워 놓고 그곳에서 경신례를 거행하였습니다. 이 성소를 유다의 대사제 요한 히르카누스가 기원전 129년에 파괴해 버렸습니다. 그 사건으로 유다와 사마리아의 관계는 더욱 악화되어 서로 증오심으로 얽혀있었습니다. 사마리아는 성서와 역사자체를 변경하고 아브라함이 이사악을 바치려던 곳, 모세가 제일 먼저 제사를 드린 곳이 그리짐산이라고 가르쳤습니다. 또한 자신들이 참석하지 못하는 예루살렘 성전과 유다가 관련된 예언서 전체를 거부하고 오경만을 인정했습니다(사마리아 경전). 

11,15주님께서 또 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어리석은 목자의 도구를 다시 들어라.
나쁜 목자를 특징짓는 도구는 따로 없습니다. 예언자가 받은 명령은 상징적으로, 악한 우두머리의 도래를 예고하는 것입니다.
11,16이제 내가 이 땅에 한 목자를 세우겠다. 그는 없어진 것을 찾아보지도 않고 헤매는 것을 찾아오지도 않으며, 다친 것을 고쳐 주지도 않고 지친 것을 먹이지도 않으며, 살진 것은 살을 발라 먹고 심지어 그 발굽까지 뜯어 먹을 것이다.17불행하여라, 양 떼를 저버리는 쓸모없는 나의 목자! 칼이 그의 팔과 오른눈을 쳐서 그의 팔은 바싹 말라 버리고 오른눈은 아주 멀어 버리리라.”
“그 소년”으로 되어 있는 히브리 말 본문을 약간 수정하면 “헤매는 것”이 됩니다.아무튼 이 악한 목자들은 소년 또는 헤매는 사람, 다친 사람을 거들떠보지 않고 먹이지도 않으며 살진 것은 잘 발라먹고 발굽까지 뜯어먹고 있다는 것입니다. 

②회복:  둘째 부분 12,1-14,21
그러나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보일 때, '찔려 죽은 이'의 희생이 복구를 가져옵니다. 구원된 백성이 새 영을 받는 것입니다(12,1-13,1). 
❶예루살렘과 유다의 구원과 영화 12,1-8
12,7주님은 먼저 유다의 천막들을 구원할 것이다. 그래서 다윗 집안의 영화와 예루살렘 주민들의 영화가 유다보다 더 크지 않을 것이다.
수도 예루살렘과 나머지 유다 지방 사이에 이따금 어떠한 대립 또는 적대 관계가 있었음에 틀림없어 보입니다. 저자는 이러한 기회를 이용하여 예루살렘 주민에게 겸손하라고 촉구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먼저 방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유다지방을 해방시키시고 나서, 튼튼한 요새로 된 수도 예루살렘을 구원하시리라는 것입니다.
❷‘찔려 죽은 이’를 위한 애도 12,9-14
12,9“그날에 나는 예루살렘을 치러 오는 모든 민족들을 없애 버리고 말겠다.10나는 다윗 집안과 예루살렘 주민들 위에 은총과 자비를 구하는 영을 부어 주겠다. 그리하여 그들은 나를, 곧 자기들이 찌른 이를 바라보며, 외아들을 잃고 곡하듯이 그를 위하여 곡하고, 맏아들을 잃고 슬피 울듯이 그를 위하여 슬피 울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여기에서 사람들에게 찔려 죽은 당신의 사자(使者)와 당신 자신을 동일시하십니다. 이어지는 문장에서는 다시 하느님과 이 신비로운 인물이 구분됩니다. 그러나 히브리 말 본문을 약간 수정하여 “그리하여 그들은 자기들이 찔러 죽인 이를 바라볼 것이다.”, 또는 문장을 달리 하여 “그리하여 그들은 나를 바라볼 것이다. (그러고 나서) 자기들이 찔러 죽인 이와 관련해서는”으로 옮기기도 합니다.
12,11그날에 므기또 벌판에서 하닷 림몬을 위하여 곡하는 것처럼 예루살렘에서도 곡소리가 크게 울릴 것이다.
페니키아인들의 신 하닷 림몬을 위하여 해마다 종교 의식으로 거행하는 애도를 시사하는 것입니다(에제 8,14). 식물의 생장의 신인 이 하닷 림몬은 수확이 끝나면서 죽었다가, 봄에 비가 오면 되살아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 신과 관련된 의식은 특히 비옥한 이즈르엘평야에 있는 므기또에서 중요하였을 것입니다.
❸남은 자들의 정화와 계약의 갱신(13장). 
❹주님의 날(14장)
이제 구원은 온 세상으로 퍼져 나갈 것이며 모든 민족은 주님의 왕권을 고백하기 위하여 이스라엘과 결합해야 합니다. 이러한 내용을 담은 14장은 후대의 작품일 수 있지만 즈카르야서 제2부 전체의 훌륭한 결론 역할을 합니다.
14,20그날에는 말방울에도 ‘주님께 성별된 것’이라고 새겨지고, 주님의 집에 있는 솥들은 제단 앞에 있는 그릇들처럼 될 것이다.21예루살렘과 유다에 있는 모든 솥도 만군의 주님께 성별된 것이 되어, 제물을 바치려는 이들이 모두 와서, 그 솥들을 가져다가 고기를 삶을 것이다. 그날에는 만군의 주님의 집 안에 더 이상 장사꾼들이 없을 것이다.
사제들과 성전은 거룩하기 때문에 속된 사람이나 물건과는 구별되고 분리되어야 했습니다. 주님께 성별되었다는 뜻으로 사제들이 이마에 다는 성직패에는 “주님께 성별된 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었습니다(탈출 28,36). 그런데 제2즈카르야서는 “그날”에 이 글이 장식용 말방울에까지 쓰이리라고 예고합니다. 평범한 솥도 예배 의식에 사용되는 거룩한 물건이 됩니다. 모든 것이 거룩하게 됨으로써 성(聖)과 속(俗) 사이에 어떠한 차이도 없어지리라는 것입니다.
“그날에는” 성(聖)과 속(俗)의 구분이 없어지고 “말방울”(20절)같이 하찮은 것까지 모두 거룩해지므로, 하느님께 바칠 수 있는 ‘깨끗한’ 돈이나 짐승을 사거나 바꿀 필요가 없고, 따라서 성전에서 그러한 교환이나 매매를 하는 상인들도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3)제2즈카르야서의 메시지
➀메시아 사상  
9,1-8; 9,11-17; 10,3-11,3; 14,1-21에서 소개되는 메시아적 이상은, 이사야의 묵시록과 가깝습니다(이사 24─27장). 구원의 모든 업적은 주님께서 손수 이루십니다. 그분께서는 적들을 진압하시고 당신의 온 백성을 다시 모아들이십니다. 이러한 조건이 채워져 나아갈 때, 이민족들도 이 공동체에 온전히 통합되기를 희망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이들도 율법의 모든 요구 사항에 복종해야 합니다. 이 요구 사항은 구체적으로 제의적 규정과(9,7) 예배 실천 규정으로(14,16-19) 표현됩니다. 이는 한편으로 관대한 포용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약간의 제한을 담고 있습니다. 곧 이방 민족들의 합류는 유다 공동체에 흡수되고 편입되는 형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②여러 모습의 메시아
하느님께서 구원자로서 혼자 이루시는 업적이 다른 단락들에서는 특별한 인물의 업적과 겹쳐집니다. 이 인물은 세 가지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이 셋 가운데 어떤 것도 다른 두 모습과 정확히 들어맞지 않습니다. 
❶임금-메시아: 9,9-10. 
9,9;어린 나귀를 타고오는 메시아
‘딸 시온아, 한껏 기뻐하여라. 딸 예루살렘아, 환성을 올려라. 보라, 너의 임금님이 너에게 오신다. 그분은 의로우시며 승리하시는 분이시다. 그분은 겸손하시어 나귀를, 어린 나귀를 타고 오신다.’ 
이와 관련된 용어들의 일부가 이 '임금-메시아'를 그 원형인 다윗이나 솔로몬과 연관 짓지만, 다른 것들은'가난한 이와 의인'이라는 예언자적 이상과 연결됩니다. 이는'주님의 가난한 이들'의 종교적 이상으로 표현되는 메시아입니다(시편 22,27; 69,33-34; 이사 49,13; 57,15; 61,1-2; 66,2; 스바 2,3; 3,11-13). 
❷선한 목자: 11,4-17과 13,7-9
임금-메시아보다는 분명하지 않은 모습으로 나타나는 이 메시아는, 왕정 사상과 덜 밀접하게 관련되는 대신에, 에제 34,11-22.31이 제시하는 것과 같은, 주님 자신인 목자의 표상에는 더욱 확실하게 연관됩니다. 제2즈카르야서에 나오는 은유에서는, 예언자가 표현해 내는 목자가 여러 번에 걸쳐 어떠한 중간 과정도 없이 곧바로 주님 자신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❸찔려 죽은 이 : 12,9-14 
메시아의 이 모습은, 전혀 다른 용어들을 사용하기는 하지만, 이사 53장에 나오는 고난받는 주님의 종의 모습을 이어받습니다. 이 주님의 종처럼, 이 메시아의 희생 역시 마음의 변화와(12,10) 정화의(13,1) 근원이 됩니다. 옛 임금과의 연결은 은근하게만 이루어지는데 이 연결선은 다윗과 그 혈통을 되풀이하여 상기시키는 사실로써만 나타납니다(12,7-8.10.12; 13,1).메시아의 영광은 약탈당함과 패배로 대체됩니다. 그러나 이것들이 바로 구원의 원천이 됩니다. 

③제2즈카르야의 심도 있는 메시아 사상은 후대의 사고에 풍성한 양분을 제공합니다. 복음서 저자들 역시 특별히 수난하시는 예수님과 그분의 역할을 제시하는 데에, 폭넓게 이 예언자의 도움을 받게 됩니다(마태 21,4-5와 요한 12,15; 마태 26,31과 마르 14,27; 마태 27,9-10; 요한 19,37).
<하까이서.즈카르야서 끝>